[찬샘통문 Ⅲ-41]김시습의 <천자여구>
한국사를 잘 알지 못한다해도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라는 인물의 호와 이름은 들어보셨을 터이고, 그와 관련한 일화 몇 개도 아시리라 믿는다. 내가 아주 옛날에 들은 에피소드는 3살 때 처음 한시를 지었고, 그 말을 들은 세종대왕이 5살 시습을 불러 시험을 해봤던가. 비단 5단을 선물한 후 지켜보는데, 비단의 시작과 끝을 묶어 어깨에 걸치고 끌고 가는 지혜에 탄복을 했다던가. 외조부가 공부 열심히 해 큰 인물이 되라는 뜻으로, 논어 첫 구절 ‘시습(時習. 배우고 익히라)을 이름으로 지었다던가. ‘5세 신동’으로 불렸고, 묘비명이 ‘五歲金時習之墓’라던가. 19세때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권을 찬탈했을 때 책을 불사르고 중이 되어 전국을 방랑하는 생육신(生六臣)이 되었다던가. 경주 금오산에서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었다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 그제 오후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거의 10년만에 만난 후배로부터 책을 한 권 선물을 받았다. <정본 천자여구>(지은이 김시습, 옮긴이 정주호·이문형, 학자원 2026년 6월 펴냄, 391쪽, 35000원)라는 책이다.‘문화대통령’으로 불리는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전이사장의 추천사와 번역한 정주호의 ‘책을 펴내며’를 읽다가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 했다.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하여 언재호야(焉哉乎也)로 끝나는 사자성어(四字成語) 250구(句)로 된 천자문(千字文)의 1천 자에 일일이 7언대구(對句) 시형식으로 풀이를 해놓은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총 글자수가 1만4천자임을 금세 알 수 있으리라. 아니, 이것을 600여년 전에 김시습이 지었단 말인가? 그리고 이제야 세상에 드러났다니 이게 무슨 조화일까? 기존 매월당문집에는 천자문의 405번째 글자 ‘호’자까지의 대구는 있었다한데, 2024년 전남 장흥의 어느 고택에서 나온 고서에 고스란히 정본이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또 우연히 재야 한문학자가 발견하여 번역을 하여 세상에 알린 것이다.
자, ‘짝 려’자인 사람인변에 고울 려(人+麗)와 구절 구(句), 여구는 대구를 뜻하고 ‘侶句’로 쓰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1천자에 일일이 7언 대구를 지은 것이다. 럴수, 럴수, 이럴 수가. 아무리 천재라지만, 이건 정말 ‘심한 것’같다. 조선 5백년의 천재 김시습이 지은 ‘천자문 노래’로서, 한문 문장력과 시상(詩想)을 함께 익힐 수 있는 고품격 한자 학습서에 다름아니었다. 우연히 펼친 323쪽에는 索 居 閒 處 沈 默 등 6개의 한자에 대구가 실려 있다. ‘處’‘默’‘沈’자의 대구만 봐보자. <處處花花飛蝶蝶 陰陰樹樹囀鶯鶯> <黙黙重重山疊疊 溶溶洋洋水悠悠> <心醉不知千里暮 遠遊難禁兩鄕愁>. 단어를 중첩하여 순식간에 지었을 듯한 대구가 김삿갓 김병연의 풍자시를 보는 듯 마냥 재밌다. 아니, 한시의 천재라던 김삿갓의 시들이 무색하게 보였으니. 한자(漢字)를 자유자재 봉체조나 하듯 갖고 놀고 있는 것같다. 풀이도 어렵지 않다. <곳곳에 꽃들마다 나비들이 날아들고/그늘진 나무마다 꾀꼬리를 지저귄다> <산은 겹겹이 말없이 이어지고/물은 유유히 넘실대며 흐르네> <술에 몹시 취해 먼 타향에서 해지는 줄도 모르지만/멀리 여행하며 고향 떠난 시름을 억누를 수가 없네>.
야-, 이건 숫제 ‘주긴다’(전율이다). 이제껏 조선의 천재는 5백년을 설계한 정치인 삼봉 정도전인 줄 알았는데, 문학적으로는 1000자의 여구를 이렇게 남긴 김시습이야말로 문학의 천재였음을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 도올 김용옥선생에게 이 고서와 번역서를 보여드렸다면 ‘호들갑’을 떠셨을 듯하다. 오죽하면 김종규님도 번역문을 몇 편 읽고 저윽이 놀란 듯, 추천사에서 매월당이 이렇게까지 천재인 줄은 몰랐다고 쓰셨을까. 그의 대구(對句) 문장 속에는 자연과 사람, 역사가 고스란히 편재(遍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종규 님이 인용한 ‘詩’자의 대구를 보자. <詩吟月下光涵口/酒飮花前色浸脣>. 풀이를 보시라. <달 아래서 시를 읊으니 달빛이 입을 적시고/꽃 앞에서 술을 마시니 꽃빛이 입술에 젖네>. 달빛이 입을 적시고 꽃빛이 입술에 젖는 ‘풍경’을 머리와 가슴 속에 그려보시라. 명시(名詩)가 따로 없이, 얼마나 환상적이고 낭만적인가. 입과 입술이 아니고 가슴을 찰찰찰 적시고 있지 않은가. 대다나다(대단하다)! 번역자는 말한다. 천자문이 비록 수입된 것이지만, 매월당으로 인해 아름다운 시로, 문화콘텐츠로 승화되지 않았느냐고. 한문이라는 문갑(文匣) 속에 잠자고 있던 우리의 빛나는 문학이, 문화가 세계에 알려져 향유되기를 바란다고.
멋지다. 매월당 김시습 님이여. 이런 멋진 1만4천자의 대구를 남겨주시다니. 그저 수양대군의 무도함에 청광(淸狂: 거짓 미치광이)으로 일생을 살다 57세에 가버린 한 천재가 600여년만에 세상에 나타난 듯, 나는 사뭇 감동하고 감격했다. 책상 머리맡에 두고 아무 쪽이나 펴들고 대구를 감상하는 이 ‘맛’을 그 누가 알랴. 두툼한 책을 이곳 저곳 뒤적거리며 나는 행복했다. 책을 선뜻 선물한 번역자 정주호님도 고마웠다. 그 수고로움에 박수를 보낸다. 단종을 기억하시려면,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는 <왕이 사는 남자>의 열연배우 유해진만 기억하지 마시라. 사육신도 있고 생육신도 있다. 똥통에 빠져 수양을 조롱한 매월당도 있다. 그뿐인가. 우리 고향 옆동네(임실군 오수면 주천리) 뒷산 이름이 노봉(魯峯)인데, 계유정란 이후 노산군으로 강등해 끝내 사약으로 생을 마감한 ‘소년왕’ 단종(이홍위)을 사모하고 불의에 참지 못한 당대의 충신 16명이 이름이 같은 ‘노봉’자락에 은거, 그 후손들이 세세년년 이어 내려오고 있기도 하거늘. 어디 그런 사연이 무릇 기하일 것인가. 조만간 부여 무량사에 있다는 매월당의 시비도 참관하고 싶다.
덧붙임 1: 매월당 김시습이 조선 5백년 제일의 천재라는 것을 새삼 느끼며, 열독하는데, 심경호 교수가 쓴 <김시습 평전>이 있다한다. 출판사가 마침 돌베개이기에 즉시 한철희 사장께 전화를 드리니, 재고를 찾아 보내주신다한다. 띵호아. 이 얼마나 고맙고 신나는 일인가.
덧붙임 2: 남원을 자주 가는데 만복사터가 있다. 지날 때마다 <금오신화>에 실린 5편의 소설 중 <만복사저포기>를 떠올렸다. 매월당이 남유(南遊)할 때 소설의 소재가 된 듯하다. 산 사람(노총각 양생)과 임란때 죽은 처녀귀신과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다룬 전등소설이다. '저포'는 오늘날의 윷놀이와 유사한 전통 주사위 놀이.
덧붙임 3: 한석봉 천자문으로 기초한자를 배우면 안된다. 250구 중에는 너무 어렵고 실제 잘 쓰지 않는 한자도 많다. 어차피 모두 '한자맹'인 마당에도 기초생활한자는 최소 300자, 500자는 알아야 한다. 천자문은 지레 질려버려 한자생활을 더욱 멀게 하므로 실용한자 위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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