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편재성(omnipresence) 하느님께서는 시공간 어디에나 계신다. 이 말을 부인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우리는 시간 자체를 느낄 수는 없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나무의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뿌리로부터 줄기가 올라오고 가지를 치면서 잎이 피기 시작한다. 이것은 나무라는 물체의 현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며 이 변화로부터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데 여기서 이러한 변화를 읽으려면 변화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고정 불변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준하여 변화가 있다는 것을 상대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이 잇따라 흐른다는 것은 하나의 사물이 변화한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하는 것에 앞서서 고정 불변의 것이 존재한다는 것과 또한 그 사물과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다른 사물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느끼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시간이 흐른다는 경험에서 세 가지 사실을 유추하게 된다. 1. 고정불변하는 것이 존재한다. 2. 잇따른 변화가 일어난다. 3.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있다. 여기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고정 불변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일 고정불변의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고정 불변을 바탕으로 해서 변화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 고정불변의 것을 '실체'라고 표현한다면 모든 사물은 결코 변하지 않는 실체가 존재해야만 한다. 예를 들자면 나무를 태워 연기와 함께 사라지고 재만 남았다고 치자. 원래의 나무가 10 Kg이었는데 재가 1Kg만 남았다면 나머지 9 Kg은 사라진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비록 나무는 사라졌지만 나무가 지니던 무게는 다른 것으로 변화했을 뿐이며 실체는 공간 안에 다른 형태(흔히 에너지라고 하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사실로부터 모든 물체는 고정 불변의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된다. 따라서 만일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변화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시간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역으로 말하면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사실을 기독교의 창조론에 대입해보자. 기독교 창조론의 대부로 알려진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세계가 무에서 유로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물의 실체가 그 전에는 없었던 것이 되므로 모든 활동, 즉 변화가 없었어야 하며 시간도 존재하지 않아야 하고 창조라는 활동ㅡ창조 활동 그 자체도 변화이므로ㅡ도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모순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이 세계의 실체는 창조된 것이 아니며, 영원히 고정 불변인 하느님 자신이어야 하는 것이다. 다만 변화하는 것이 우리가 보는 현상 세계인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만물 가운데 내재하는 분이시며 만물과 분리된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신 즉 자연"인 것이다. 한편 우리가 슬프거나 아플 때, 하느님 자신도 동일한 감정을 겪으신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자연 자체가 하느님이시고 그 일부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이 상하거나 영이 낙담할 때, 자연 전체는 인간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동일한 감정을 가진다. 따라서, 그분이 우리의 모태이시며, 가까이 계시며, 나아가 우리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치유하게 하는 힘이다. 이러한 인식이 대단이 중요한 것이다. 하느님이 함께하고 계시는데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는 자기의 낙심이 증가하여 우울증이나 더 심한 신체의 질병에 시달릴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인식할 때, 그 치료책은 스스로 마련되며, 우리는 상심과 낙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디스크라는 질병에 걸렸을 때, 우리가 그것을 인지한다면, 신체 자체에서 그것을 치유하는 물질이 나와 정상상태로 회복시키지만,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때, 디스크는 점점 심해져 나중에는 수술이 아니면 치유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래서 인식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동일한 사물이나 상황에 대해서 중요한 것을 인식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그의 인생행로에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생명과 사망의 선택에 놓이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 . .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의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과 같으리라(신 11:18-21, 개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