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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Karis
출 처: 복음과 개혁 www.gospelrefor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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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 동안 아프간에 의료봉사단으로 갔던 23명의 우리들의 형제와 자매들이 인질로 납치되어 그 중에 신실한 한 분의 목사님과 형제님이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21명의 형제와 자매님들이 풍전등화와 같은 생명의 위기 속에서 실날 같은 희망만을 의지하면서 사느냐 죽느냐 하는 상황 앞에 놓여 있습니다.
TV와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슬퍼하고 애타는 심정이 되어 있는 한편, 선한 이웃이 되어서 떠났던 그들에 대하여 입에 담을 수 없는 악의의 소문을 퍼뜨리고 모멸 하는 일도 있음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동안 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잘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반기독교인들로부터 당하는 모멸은 당연한지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까지 보여주었던 한국교회들의 불미스러운 행태들로 인하여 욕을 얻어 먹어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처지가 우리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TV나 신문지상에 오르락 내리락 하였던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며 내배만 채우려는 타락한 중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받아야 하는 비난의 돌들을 엉뚱하게 분당샘물교회와 성도님들이 지금 맞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번 피랍사건에 관련하여 인터넷을 통해서 떠돌아다니는 소문들 중에서 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너무나 멀고 악의에 가득차 있으며, 파송한 교회(성도들)와 순교를 당하고 납치된 형제자매들의 거룩한 선의를 왜곡하는 일들이 있어서 비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가지 말라고 했는데 갔다느니, 그곳에 보내주지 않으면 정부에 고소를 하겠다니, 유서를 써 놓고 갔기 때문에 죽어도 싸다거나 국민의 세금으로 그들을 구출하지 말라는 등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너무나 매정하고 잔혹한 악플들이 떠돌아 다니고 있다는 것에 대한 슬픔과 아픔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탄과 슬픔과 아픔보다 우리들을 더 실망하게 만드는 일이 있습니다. 이번 피랍사태에 관련하여 한국교회들의 냉혹하다고 표현할 정도의 실천적인 무관심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들은 과연 지난주 배 형규목사님이 순교를 당하였고, 피랍된 형제와 자매들이 절체절명의 상황 앞에 있을 때 기도하자는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에 대하여 물어 본다면 “No” 일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질문을 하는 나를 향해서 “글쓰는 시간에 기도나 해라!” 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한국 안에는 세계 20대교회 안에 들어가는 교회가 10개 정도가 있을 정도로 세계 교회를 향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서울 중심과 근교에만 하여도 수 십만명, 수만명, 수천명이 매주 모이는 교회들이 흔치 않는 상황이 되었다. 미국의 대도시에도 매주 수 천명씩 모이는 한인교회들이 제법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이러한 중, 대형, 초대형교회들이 과연 이번 피랍사건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고 배 형규목사님이 순교를 당하고 22명의 성도들의 목숨이 풍전등화와 같은 사태 속에 있었던 지난 주일설교를 조사해보았습니다.
제가 예상하였던대로 중, 대, 초대형교회들의 목회자들은 결코 나를 실망(?) 시키지 아니하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의 순복음교회의 주일설교, 한국에서 두번째 크다는 은혜와 진리의 교회의 주일설교, 세계 감리교회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하는 금란교회의 주일설교, 대형 감리교회인 광림교회의 주일설교, 또한 온누리교회, 왕성교회, 경향교회 등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들의 주일설교들 가운데 현재 온 국민과 성도들이 안타까움과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피랍자들에 관한 내용이나 기도하자는 내용을 들을 수 없습니다.
정말 이럴 수 있는가? 라고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천명, 수만명, 수십만명 앞에서 설교하는 목회자들이 이 정도로 시대성에 무감각하며, 매정하고, 냉정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도 놀랐습니다. "무엇이든지 내 이름을 구하기만 하면 응답한다" 는 주님의 말씀을 수 십년동안 강단에서 외친 그 분들이 풍전등화와 같은 생명의 위기 속에 있는 그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자는 그 한 줄의 소리도 할 수 없는 그 가슴에 과연 예수생명, 예수사랑이 들어 있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거대한 교회를 짓기 위하여, 내교회의 성도수를 불리기 위하여 그토록 함께 기도하자고 하였던 그 유명 목회자들의 입에서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피랍자들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는 점에 대하여 대단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찾고 찾아서 꼭 있다면 고 배 형규목사의 장신대 스승들인 새문안교회의 이 수영목사님, 소망교회의 김 지철목사님 정도가 설교의 주제를 핍박과 순교적인 삶로 삼고서 함께 기도하자고 호소하는 정도였습니다.
한국에서 제일 크다는 초대형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중형교회 규모의 교회에서 행해진 목회자들의 냉혹한 설교들을 들어면서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가슴이구나? 과연 저 가슴 속에 성도들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 털끝 만큼이라도 있는가?” 에 대해서 탄식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가슴은 아프간에서 피랍된 한 사람의 생명과 일국의 정권과도 바꾸지 않을 정도로 “당신이 택한 백성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신다” 는 것을 확신합니다.
현재 무장세력들 앞에서 피랍되어 실날 같은 희망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구출될 날을 기다리는 21명의 성도들이 바로 하나님이 택한 자녀들이자, 우리들의 형제와 자매님들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어떻게 수천명, 수만명, 수 십 만명 앞에 설교하는 목회자들이 “그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합시다” 라고 단 한마디의 설교라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땅을 바라보면서 외쳐 봅니다. 지금, 누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누가 그들을 구출을 위해서 기도해주어야 하는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기도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기도를 요청할 것인가? 한국 정부의 손에, 아프간정부의 손에, 미국정부의 손에 그들의 생명을 맡길 것인가? 세상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금식이라도 선포하면서 간절히 합심기도를 하여야 하지 않는가? 그냥 기도해서 되지 않으며 주님께 CRY OUT하여야 하지 않는가?
예레미야 33장 3절은 빚진 것을 해결해 달라고 하거나 교회를 크게 해달라고 하거나 우리 아들 대학에 넣게 해달고 하거나, 사업잘되고, 큰 집으로 이사가게 해달라는 성경구절이 결코 아닙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다윗은 전쟁의 위험 속에서 근심하고 탄식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시편55:17, 18) “ 에스더는 백성들과 함께 금식하면서 “죽으면 죽으리라” 는 심정을 기도하면서 생명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거대한 건물을 지어 놓고서 구름 떼와 같은 사람들 앞에서 마치 주와 왕과 같이 유명한 자의 모습을 가지기를 좋아 하지만, 정작 백성들을 위하여 눈물의 기도를 하였던 예레미야와 같이, 마음을 찢고 탄식하였던 다윗과 같이, 금식하며 목숨까지 내어 놓았던 에스더와 같은 가슴을 가진 지도자들은 교회에 많지 않다는 것이 우리들을 더욱 슬프게 만드는 일입니다.
일제 36년의 식민지 통치 말기에 우상숭배인 신사참배강요로 교회를 극단적으로 핍박하였습니다. 그때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라고 확신한 목회자들이 참배를 거부함으로 투옥당하고 순교를 당하였지만, 그 분들의 숫자가 너무나 적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관심에서 벗어났으며, 감옥에 있었던 그 분들은 고독과 외로움과 슬픔 속에서 지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고독과 외로움과 슬픔을 지금 21명의 피랍자들은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 기철 목사님 같은 분은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던 일제의 핍박이 자신을 슬프게 만들었던 것이 아니라, “꼭 그런 식으로 믿어야 하느냐?” 는 주위 사람들의 권면과 조롱이었다고 합니다.
한번 머리를 숙여주고 목사직을 그만 둔 후, 핍박을 일단 면해보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주위의 소리를 듣고서 “만약 그렇게 한다면 내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어떻게 주의 얼굴을 보리이까? 라고 하면서 결국 순교로 생애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지난 1세기 동안 수 많은 목회자들은 내 교회를 짓고, 내 교회를 성장시키는데 고인들에게 피땀을 흘리는 순교적인 삶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순교의 삶을 살면서 가난해지고 병들고 아무 것도 바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자유를 찾아서 수 많은 탈북자들이 북에서 넘어 왔지만, 일부 교회를 제외하고는 그들에게 무관심한 것이 진실입니다.
수백 억의 교회건물을 짓고, 수만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시무하는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시청앞 애국 및 반공집회에 와서는 마이크를 잡고서 돼지 목타는 소리로 “김 정일정권은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를 주라, 탈북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핍박하지 마라!” 라는 맹규탄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유를 찾아 넘어온 탈북자들을 위해서 진심으로 헌신하고 섬기고 있는 활동이 거의 없다는 것이 진실입니다. 그들의 규탄대회설교를 액면 그대로 듣고 남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이 대거 교회로 몰려오는 것을 돼지 목타는 소리를 외치는 그 목회자들이 가장 먼저 겁내고 두려워나 할 것이빈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들로 알려져 교회들은 큰 덩치에 걸맞게 그들의 도덕적 수준이나 역사의식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가슴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해외에 있는 대형이민교회들의 모습도 예외가 아닙니다.
피랍된 일 때문에 한국은 온통 초상집이 되어 있는데, 뉴욕은 할렐루야 대회라는 이름으로 고전적인 부흥집회로 잔치를 벌이면서, 피랍된 우리들의 형제들과 자매들의 생명구출을 위해서 함께 금식하고 탄식하고 기도하자는 교회와 목회자들은 많지가 않습니다.
내 교회만을 위하고 내 교회만을 키우는데 몰입해 있으며,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무관심한 목회자들이 차고 넘친 각박하고 메마른 상황 앞에서 아무 힘이 없는 듯이 보여지는 우리들 네티즌 성도들이라도 힘을 합쳐서 “여호와서 살려 주시옵소서, 여호와여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여호와서 그들의 생명을 보전하소서” 라고 간절히 탄식하면서 기도합시다.
애끓는 심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들을 보호하셔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모든 환란과 핍박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당신의 섭리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가슴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혼란한 정보와 소문 속에서 분별과 통찰을 할 수 있는 지혜와 믿음을 가지고 생명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것이며, 지금까지 예수 이름을 팔아서 내 배와 채워 온 자들은 남의 일처럼, 강건너 불 구경하는 식으로 형식적으로 기도해주는 척을 하거나 아니면 무관심 하게 대할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말하든지 상관이 없이 분명한 것은 피랍된 23명은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가슴을 가지고 세운 아프간의 병원과 유치원에 가서 의료와 교육봉사를 하러 간 선한 이웃이었던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내어 놓고 하나님의 보호와 긍휼을 구합시다.
세상의 사람들은 휴가를 맞이 하여 피서지로 떠났지만 그들은 전쟁과 죽음과 상처가 있는 세계에서 가장 척박한 땅에 있는 환자들과 어린이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아프간에 간 것을 우리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선교한다는 쇼를 부리고 인기를 얻기 위해서 그런 험악한 곳에 갔다고 하는 교회 내의 악의에 찬 소리는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을 파송한 분당샘물교회의 탄생 배경과 박 은조목사의 인격과 목회적인 삶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절대로 그러한 악의에 찬 비난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온 세상이 전부 비난의 돌을 들어서 치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분당샘물교회 성도들 그리고 순교 당하고 피랍중인 형제와 자매들과 함께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라도 그들을 위해서 내 친 형제들, 친 자매들, 내 가족들을 살려달라는 마음으로 금식하면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동일한 내용이 복음과 개혁 (www.gospelreform.org) 에도 실려 있습니다]
첫댓글 네.. 옳으신 말씀이세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제가 참으로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