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에도 인류는 불행해지지 않았다
코로나가 창궐한 3년은 21세기 인류가 맞은 최악의 시기였다. 6억8000만 명이 감염돼 680만 명이 사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 인명 피해다. 경제는 뒷걸음질치고 기대수명은 짧아졌다. 그런데도 인류는 불행해지지 않았다.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는 20일 ‘세계 행복의 날’을 맞아 코로나 3년간 137개국 사람들의 행복도가 코로나 이전보다 떨어지지 않았다는 내용의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했다.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이 조사는 국가별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대 건강수명, 사회적 연대, 기부나 봉사활동 같은 자선행위, 정부에 대한 신뢰도, 원하는 삶을 선택할 자유도 등 6가지 항목을 종합해 산출한다. 그 결과 코로나 시기 1인당 GDP와 기대수명 부문의 감소를 사회적 연대와 선행활동으로 상쇄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8명이 “어려울 때 의지할 사람이 있었다”고 했고, 자선활동이 코로나 이전보다 25% 늘었다. 코로나 봉쇄 상황에서도 서로 안부를 물어가며 고립감을 이겨낸 것이다.
▷기부하고 헌혈하고 낯선 이를 돕는 이타적 행위는 수혜자를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도움을 준 사람과 선행을 목격한 3자 모두의 행복도를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팬데믹 기간 웃고, 즐겁고, 재미있는 감정을 느꼈다는 응답이 걱정되고 슬프고 화났다는 응답의 두 배나 됐다. 초유의 감염병 사태를 계기로 경제적 성공보다 이웃과의 유대를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의 변화도 행복도에 영향을 주었다. 연령별로는 60대 이상의 행복도가 젊은 세대보다 높게 나왔다. 치사율이 높은 만큼 생존의 기쁨도 컸을 것이다.
▷가장 행복한 국가는 6년 연속 1위를 차지한 핀란드다. 한국은 코로나 3년간 행복도가 코로나 이전 3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상대적 순위는 57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한국보다 낮은 곳은 그리스 콜롬비아 튀르키예 등 세 나라뿐이다. 경제력이 상위권인 데다 기대수명은 세계 최고 수준임을 감안하면 나머지 4개 항목의 낮은 점수가 행복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는 ‘아플 때 도움 받을 사람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코로나 전보다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왔다. 헌혈 참여율과 기부금품 모금 실적도 작게나마 코로나 타격을 받았다. 낯선 사람을 돕거나 시간 내어 봉사하는 일에는 금전적 기부보다 더 인색한 편이다. 위기가 닥치면 사회 역량을 한데 모으는 정부 리더십, 남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용기, 그리고 추울 때 더 추운 사람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마음이 있으면 세기적 위기 속에서도 우린 더 행복할 수 있다.
이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