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이오는 날리도 아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무심히 쓰고 있는 말 중에「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는 말이 있다. 뜻을 깊이 인식하며 하는 말인지 남따라 흉내 내는 것인지 모르지만 생각해 보면 끔찍한 말이다.
전쟁은 다시 일어나서 안 되는 참혹한 참상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내몰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어 불구자가 되고. 얼마나 많은 가족이 생이별하여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이나 해보고 하는 말일까?
육이오로부터 무려 칠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가슴을 후벼 파고 있으며 아물지 않는 상처의 고통에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잠을 설치고 있다.
나는 저 육이오의 고통을 흠뻑 보듬고 태어나서 그 기나긴 후유증에 진저리나도록 시달리며 살아온 사람이다.
내 아버지 전쟁에 나가 돌아가셨고 어리디어린 우리를 두고 어머니도 그 후유증을 견디다 끝내 돌아가셨다. 돌보아줄 아무도 없는 시리고 차가운 세월을 형제들은 모질게 견디어야 했다.
지금부터 칠십여 년 전 우리는 스스로 원해서 이루어진 남북 분단이 아닌 여러 역사적 인과 관계와 국제적 이해관계로 분단되어 남북이 사생결단의 치열한 육이오전쟁을 치루어야 했다.
이때 입은 남북한의 인명 피해는 세계역사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남쪽에서만 군인. 경찰. 민간인 약 200만이 죽었고, 북쪽에서 250만이 죽었으며, 미군 사망자가 약 4만 5천 명이고 중국군이 약 99만이었다고 한다.
내 아버지 전장에서 나가시면서 우리 가정이 풍비박산 났듯이 저 많은 전쟁 희생자들 가정도 하나 같이 풍비박산 났을 것이다. 사람의 죽음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도 같이 죽음 같은 고난으로 내몰리게 됨을 알아야 한다.
그때의 우리 국민 소득이 300불~ 정도의 세계 최빈국에 해당했다. 거리에는 총알이나 포탄으로 죽은 사람 외에도 굶어 죽는 사람들도 질펀했다.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세계로 팔려가는 고아 수출국 1위를 전쟁이 지난 한참 뒤까지도 기록했다.
얼마나 그 시절의 우리가 참담했으면 외국인 기자가 ‘이 참담한 현실에서 과연 경제가 성장 될 수 있으며 민주주의를 일구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기사를 썼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끈질기고 부지런한 민족성을 발휘하여 세계를 경악케 하는 세계 7위를 오르내리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어냈으며 세계 민주주의 역사를 새로 쓰게 하는 경악의 민주국가를 만들어 냈다.
육이오 참혹했던 시절로부터 칠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 아프고 시렸던 상처에서 겨우 벗어날 즈음에 이르렀다. 이제 사람들은 그 두렵고 고통스럽던 배고프고 추위에 떨었던 그 시절을 잊은 것일까?
차마 입에 담기도 두려운 그 참혹한 전쟁을 농담으로 입에 올리고 있다.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전쟁에 대한 아픔을 공감하지 못해서인가?
어떤 이유에서건 전쟁은 다시 일어나서 안 된다. 다시는 그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운 참혹한 역사를 다시 되풀이하게 해선 안 된다. 우리 이제 말로라도 그런 참상을 올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사랑하는 아들 딸들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내몰리게 해선 절대 안 된다. 마음은 말을 만들고 말은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말은 재앙의 근원이 되니 함부로 뱉어서는 안 된다.’ 고 부처님께서 당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