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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군유산마을 "군유산차-" 군유산의 야생차
 
 
 
카페 게시글
군유산야생차와 차이야기 스크랩 호남기행
군유산 추천 0 조회 65 13.11.27 00:1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호남 기행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1

 

전라감사 이서구(李書九·17541825)가 호남지방 54개 고을의 이름을 빌려 지은 호남가(湖南歌)가 있다. 이 호남가(湖南歌)는 조선조와 한말(韓末)의 고향 떠난 나그네의 애향심(愛鄕心), 일제강점기에는 나라 잃은 한을 달래는 비원이었으며, 때론 민초들의 희망이 담긴 노래였다.

 

함평천지(咸平天地) 늙은 몸이 광주고향(光州故鄕)을 보려하고

제주어선(濟州漁船) 빌려 타고 해남(海南)으로 건너 갈 제

흥양(興陽)의 돋은 해는 보성(寶城)에 비쳐있고,

고산(高山)의 아침안개 영암(靈岩)을 둘러있다.

태인(泰仁)하신 우리 성군 예악(聖君 禮樂)을 장흥(長興)하니

삼태육경(三台六卿)은 순천심(順天心)이요.

방백수령(方伯守令)은 진안민(鎭安民)이라.

고창성(高敞城)에 높이 앉아 나주풍경(羅州風景)을 바라보니

만장운봉(萬丈雲峰)이 높이 솟아 층층(層層)한 익산(益山)이요.

백리 담양(白里潭陽)의 흐르는 물은 구비구비 만경(萬頃)인데,

용담(龍潭)의 맑은 물은 이 아니 용안처(龍安處),

능주(綾州)의 붉은 꽃은 골골마다 금산(錦山)이라.

남원(南原)에 봄이 들어 각색화초(各色花草) 무장(茂長)하니

나무 나무 임실(任實)이요. 가지 가지 옥과(玉果)로다.

풍속(風俗)은 화순(和順)이요. 인심(人心)은 함열(咸悅)인데

이초(異草)는 무주(茂朱)하고, 서기(瑞氣)는 영광(靈光)이라.

창평(昌平)한 좋은 시절 무안(務安)을 일삼으니

사농공상(士農工商)은 낙안(樂安)이요. 부자형제(父子兄弟) 동복(同福)이라

강진(康津)의 상가선(商賈船)은 진도(珍島)로 건너갈제

금구(金溝)의 금()을 일어 쌓인 게 김제(金堤)로다.

농사(農事)하는 옥구백성(沃溝百姓) 임피사의(臨陂蓑依) 둘러 입고

정읍(井邑)의 정전법(井田法)은 납세인심(納稅人心) 순창(淳昌)이라.

고부(古阜) 청청(靑靑) 양유색(楊柳色)은 광양(光陽) 춘색(春色)이 팔도에 왔네.

곡성(谷城)의 묻힌 선비 구례(求禮)도 하려니와

흥덕(興德)을 일삼으니 부안(扶安) 제가(齊家) 이 아닌가?

호남(湖南)의 굳은 법성(法聖) 전주(全州) 백성(百姓)거느리고

장성(長城)을 멀리 쌓고 장수(長水)를 돌고 돌아

여산석(礪山石)에 칼을 갈아 남평루(南平樓)에 꽂았으니

삼천리(三千里) 좋은 경()은 호남(湖南)이 으뜸이라.

거어드렁 거리고 살아보세.

 

역시 조선 말엽, 한 시대를 풍미하고 간 김립(金笠·1807~1863) 선생, 김삿갓의 호남시(湖南詩)가 있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의 불세출의 서정시인 삿갓 선생이 역시 호남의 53개 지명을 엮어 걸거침 없는 문장(文章)으로 써 내린 호남시가 그것이니(호남시 원문은 장성 고을에 이르러 소개해 드리겠다), 2011년 여름 호남가와 호남시를 따라 호남기행을 떠나는 후손의 발걸음이 가볍다.

먼저 세상의 빛이신 신님들, 그리고 조상님, 지혜와 덕성의 현자들께 길 떠남을 고한다.

 

유세차(維歲次)! 세월은 이어져 흐르나니 토끼해인 신묘(辛卯) 칠월(七月) 열 이튿날 흰구름 김 목(金穆) 감소고우(敢昭告祐). , 그러니까 밤, 대추(?) ㅋㅋ …. 이하 생략합니다. 그놈의 애마, 소렌토를 타야하니 죽장도 삿갓도 없이, 술 한 잔도 올리지 못함을(?) 굽어 살피소서. 그 대신 호남가와 호남시를 바치며 이 풍진 세상, 소풍 길 떠납니다. 부디 앞길에 호랑이와 잡귀, 역살이 없도록 하소서. 상향(尙饗)”

 

20117월 무더운 날씨다. 장맛비를 괘념치 않고, 얼렁뚱땅 고천문(告天文)을 마무리하고 서투른 호남가 흥얼거리며 그렇게 호남기행을 나선다.

날 낳아주고 키워준 우리 선조님들의 발자취가 서린 이 산하는 나의 피요, 육신이며, ()이다. 나의 꿈이고 희망이며, 사랑이다. 살아있음에 함께 하는 길, 카메라, 노트북 달랑 들고도 흥에 겨워 노래 부르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풍 길에 나선다.

그러자. 서두르지도 말고 과욕을 부리지도 말자 다짐한다.

 

함평천지(咸平天地) 늙은 몸이 광주고향(光州故鄕)을 보려하고

 

먼저 호남가의 첫머리인 함평에 들린다. 함평천지(咸平天地)의 함평(咸平)은 지명이지만, 여기서는 하늘을 보고 땅을 딛고 사는 모든 생명체가 함께 하는 큰 세상, 대동 세상, 화목한 세상, 자연 그대로의 세상을 말한다. 늙은 몸은 지혜와 경륜을 갖춘 현자를 일컫는다. 그러니 큰 하나의(함평) 세상(천지)을 만들 현자(늙은 몸)가 세상을 밝힐 환한빛(광주)을 구하러간다는 뜻이다.

 

그 성스러운 의미가 담긴 땅, 함평은 전라남도의 서북단에 위치한 고장이다. 영광군, 장성군, 광주광역시, 나주시, 무안군 등 5개 자치단체와 경계를 이루고 함평만이 긴 해안선을 그리고 있다.

이 함평만이야말로 빛길이요, 숨길이며, 보배길이다. 이 함평만을 통해, 대륙에 살던 선조들이 들어왔고, 불교 등 문화의 왕래가 이루어졌다. 또 너른 갯벌은 생명체의 보고로, 이곳을 찾은 선조들에게는 천혜의 삶터였다.

함평군에서 제일 높은 군유산(403m)은 함평군의 북쪽 고을 손불면에서 함평만의 시작점을 가까이, 끝점을 멀리 내려다보며 팔을 벌려 내와 들과 사람을 안고 있다.

직지심경(直指心經)구류손 부처님은 현재 현겁(賢劫)의 첫 번째 부처님이다.(拘留孫佛 現在賢劫第一)’라는 구절이 있다. 지명 손불(孫佛)이 그 구류손 부처님의 이름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함평만을 통해 백제불교가 처음 들어왔을 거로 추정되는 바, 부처님의 자손들이 사는 땅이라는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백제에 불교를 첫 포교하신 마라난타 존자께서 환생하시지 않는 한 모를 일이다. 하지만 군유산에 올라 함평만과 서해를 보면 함평 손불이 자연적, 지리적 위치로 봐서 우리 고대 선조들이 이곳에서 천혜적 삶을 산 고장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무튼 대대로 대동세상을 이루며 살아온 지혜와 경륜을 갖춘 사람들이 사는 땅이 함평이다. 그 함평에서도 심성이 곱고, 이웃과 화목하며, 자연과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땅, 바로 손불(孫佛)이다. 그래서 손불이 호남 땅 기행의 첫 길인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먼저 손불면을 만든 군유산을 찾는다. 군유산은 마라란타 세존이 계실 때는 군니산(君尼山·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었고 훗날, 상서러운 기운이 감돈다 하여 서상산(瑞像山), 군자의 위풍을 닮았다고 군자산(君子山)이란 이름도 있다. 군유(君留, 君遊)는 고려 태조 왕건과 공민왕, 신라의 흥무왕(興武王) 김유신 장군에 얽힌 이름이다.

 

그 군유산을 오르기 전 먼저 삼국시대부터 있었다는 마구청(마전골)을 찾는다. 마구청은 마구(馬具)의 전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마구간의 다른 이름이다. 소가 있으면 소마구청이라고 하는 걸 봐서 말이 소보다 더 오래 인간과 함께 해왔지 않을까? 수렵과 채취, 목축 다음에 농경생활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미 신라시대에 말을 키우고 길렀다는 그 마구청 골짜기는 봉황포란지형(鳳凰抱卵地形)이다. 금계포란지형(金鷄抱卵地形)도 있지만, 군유산의 마구청 골짜기는 금닭보다 더 귀한 봉황이다. 그러니까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지형이라는 말이다.

그런 지형을 몇 군데 봤다. 성철 스님을 모시는 해인사의 백련사 뒷산, 화순 동면의 복림 마을 뒷산, 보성 율어초등학교 뒷산 등, 그 모습이 다 금계포란지형이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너르며, 특히 우리네 수많은 민초를 아우르고 있는 곳이 군유산 마구청이니, 닭보다 큰 봉황포란지형의 이름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이 땅의 아리따운 여인이 공활한 하늘의 지아비와 사랑을 나누고 세상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갈 아기를 출산하는 모습의 형국이니 바로 군유산 마구청(마전골)이 그곳이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이 어디서 출생하셨는가? 바로 마구간 아닌가?

 

휘적휘적 봉황포란지형의 자궁 속으로 걸어간다. 들어가는 한 줄기 길 좌우로는 콩이며, , 벼와 옥수수, 온갖 농작물이 싱그럽다. 이런 곳에서 농사가 안된다면 농사 지을 곳이 없는 것이다.

풍요의 여신, 농경의 여신, 사랑의 여신이 계신 곳이다.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의 은혜가 이름에 있는 곳이다. 어찌 농작물이 풍성하지 않겠는가?

화다닥! 노루 한 마리가 튄다. 낮선 나그네가 두려운 걸까? 아니다. 슬그머니 발을 멈춘 노루의 눈망울이 머루알처럼 해맑다. 재빨리 디카를 열어 사진을 찍으려다 그만 멈춘다. 사랑은, 진정한 사랑은 비밀이어야 한다. 나를 맞이해준 너는 그 때 마한에서 백제, 신라, 고려, 조선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곳을 지켜온 노루의 후손 아니겠느냐? 어찌 경망스럽게 사진 한 장으로 너의 환대를 가벼이 하며 우리의 만남을 마무리 할까보냐? 노루 한 마리가 조상신처럼 엄중하고 경이롭게 마음을 흔든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소낙소낙 쏟아진다. , 생명의 신비, 탄생의 환희, 아늑한 자궁 속에서 맞는 빗줄기다. 이 세상을 살고 있음의 환희가 빛줄기처럼 터져 가슴으로 스민다.

 

마구청을 나와 군유산을 오른다.

등성이를 오르는 숨이 가빠진다. 덥다. 하지만 군자(君子)의 산 아닌가? 흐르는 땀 아랑곳없이 글자대로 군자가 된다. 여름 산행은 일종의 자기 수양이기도 하다. 땀이 눈에 들면 쓰리고, 입에 들면 짭조름하지만, 그 느낌을 행복으로 여긴다.

그러다 보니, 소금기에 취해 이제 나그네는 천수백년 전의 마한 사람이다. 백제인이다. 신라인이다. 그러다 고려인, 조선인, 한국인이 된다. 남과 북처럼 글자만 다를 뿐 한 몸이다.

마침내 군유산에 오르니 한 눈결에 함평만과 서해바다가 안긴다.

먼저 사기봉의 미륵불을 찾는다. 언젠가 미륵이 환생하여 우리 민초를 구한다 했는데. 생각의 짧은 앎이 안타깝다. 그래도 천여 년. 아니다. 더 기인 세월, 이곳에서 함평만을 삶터로 살아온 민초들의 기원을 받아주신 미륵불을 향해 소박한 기원을 한다. 함평·대동(咸平·大同)세상의 희망인 통일을 도둑으로 여기거나, ‘우리가 무슨 거지냐?’고 눈알을 부라리며 당연히 무상급식을 받아야할 학생들을 거지로 취급하는 인간들이 득세하는 세상 아닌가? 그러니 아무쪼록 삶의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소외받는 사람을 더 생각해주시는 미륵부처님이 되어주세요! 그런 싱거운 기도를 드린다.

 

이윽고, 발길을 되돌려 가쁜 숨 고르니 마침내 군유산 정상이다.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려하고

모처럼 높이 서서 발 아래로 세상을 보지만, 겸손과 겸허가 세상살이의 으뜸 이치임을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올라가는 길이 있으면 내려가는 길이 있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이 오르는 길보다 힘들지 않다. 아쉽지도 않다. 편하고 쉽기만 하다. 내려가는 길이야 말로, 상승이 아닌 하락의 길이지만 내려놓는 발이 편하다.

그 발걸음을 삼천동으로 옮긴다.

삼천동(三泉洞)이기도 하고 삼천동(三千洞)이기도 하다는 팻말이 마을의 유래를 알려준다. 태조 왕건이 고려 건국 전 삼천(三千)병사를 주둔시킨 곳이고, 하늘나라 선녀가 하강하여 목욕을 한 3개의 큰 샘(三泉)이 있어서다.

많은 군사가 주둔하려면 물이 첫째다. 또 뒤로는 산이요, 앞은 골짜기지만 너른 농토다. 바다와 가까워 왕래가 편리한 곳이다. 바로 삼천동 지형이 그런 곳이다.

지형이 군사주둔지로서 딱이다. 안성맞춤이다. 전남 나주시의 다도에도 평지(平地)란 마을이 있다. 수천의 백제 군사가 주둔했던 곳이다. 나당(羅唐)연합군을 맞아 수천의 백제 군사가 장렬하게 최후를 맞은 곳이다. 그곳의 붉은머리재는 그 때 백제군사가 흘린 붉은 핏자국이다. 바로 삼천동의 지형이 그곳 나주의 평지와 비슷하다.

그렇듯 옛적 군영지는 뒤로는 적의 침투를 막고, 앞으로는 한 눈으로 적의 침입을 알 수 있는 지형, 그리고 식량조달이 쉽고 물이 풍부한 곳이었다.

우리의 선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 이곳에서 나라의 운명을 함께 했을 것이다. 작은 나뭇가지를 꺾어 들어 칼처럼 휘둘러본다.

나는 나를 지키려고 이곳에 오지 않았다. 내 부모, 내 사랑, 내 아들 딸을 지키려고 이곳에 왔다.’

그날의 고향을 떠나온 젊은 병사가 되어 우렁차게 외쳐본다.

함평천지 늙은 몸이 되어 그렇게 군유산에서 호남기행을 시작한다.

 

마구청에서 흘러온 물이 용암제(영광 군남면)를 이루었다. 장맛비에 물빛이 흐리다.

봉황포란지형의 마구청 골짜기

마구청 가는 길

삼국시대부터 말을 키우던 마구청 안 군유산 분지

동쪽을 보시는 미륵부처님

북쪽을 보시는 미륵부처님

미륵바위에서 바라본 함평만

군유산 정상

함평만 들머리와 서해 칠산바다

군유산 아래 삼천동

선녀의 목욕샘(三泉), 왕건의 삼천(三千)군사 삼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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