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안
글쓴이 수리양
그들은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는 대신 나를 말이 있는 곳으로, 황금빛 들판으로 데려가 일을 시켰다. 그들은 내가 일을 하다가 힘에 겨워 주저앉으면 때렸고, 조금이라도 눈물을 흘리면 때렸으며, 내가 살살 눈치를 보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때도 가차없이 때렸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고통스럽고 고되서 몇 번은 도망치려고도 해봤지만 12살이었던 나는 너무나 어렸다. 내가 도망이라도 치는 날이면 그 집안의 모든 식구가 나를 사정없이 구타했다.
“살려... 세요...”
툭하면 음식물 쓰레기 같은 식사마저 박탈당하고 모욕적인 행동까지 감내해야 했으며 매일 같이 비굴한 행위를 강요 받았다. 어쩌면, 내가 맨처음 배운 그들의 언어가 ‘살려주세요’였던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사랑만 잔뜩 받으며 자라온 나에게 지금 같은 학대는 너무도 힘겨웠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철저히 무시 당하면서 살아가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었다. 더욱이 내겐 죽을 용기도 없다.
“당신은....뭐... 입니다?”
내가 이 집에 온지 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느꼈다. 이 존재들의 정체에 대해서. 대체 어째서 죄없는 우리들을, 그리고 나를 이토록 괴롭히고 있는지 궁금했다. 낯선 이 존재들은 내가 이전에 듣도 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종족이다. 나는 들판에서 일을 하다가 스스로를 감독관이라고 부르는 존재에게 다가가 용기를 내었다. 하지만 다른 존재들에게 고래고래 비명을 질러대던 감독관은 짜증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당신은... 뭐 입니다?!”
굉장히 큰 목소리로 반문하는 바람에 기세에 눌려버렸지만 용기를 내서 한번 더 질문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내가 기대하는 것과 달랐다.
“뭐야 지금, 말도 제대로 못하는 자식이 재수 없게 말을 걸어? 이 새끼야, 네가 말거는 바람에 내가 방금 너를 쳐다봤잖아! 내 눈이 썩으면 니 눈깔 빼줄래? 엉?”
딱딱한 구두를 신고 있는 그의 발이 가차없이 내 몸에 꽂혔다. 이루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고통이 나의 이성을 사로잡는다. 내가 가졌던 의문 따위는 당장에 버리고, 나는 벗어나야한다는 본능에 충실하며 배를 부여잡고 땅바닥을 기어갔다. 하지만 모두 소용없었다. 구둣발로 내 손을 짓이기자 손바닥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내가 손을 붙잡고 흐느끼고 있을 때, 그 존재는 그대로 내 얼굴을 걷어찼다. 내 이빨이 몇 개 빠지고 입술이 찢어져서 새빨간 피가 흘러내린다. 더 맞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밀려오자 나는 얼른 그의 발을 껴안고 울먹거리면서 애원했다.
“살려... 세요!! 살려... 제요!!”
그러자 그 존재는 망설임 없이 내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쳐서 나를 떼어놓았다. 그리고는 일어서려는 내 몸에 구둣발을 꽂아넣었다. 명치를 구두로 사정없이 밟히자 숨이 막혀서 주변이 노랗게 보인다. 입에서는 차마 비명조차 새어나오지 못하고 짧은 신음소리만 애절하게 비져나왔다.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고통, 견딜 수 없는 이 아픔...
“설마 내가 뭐냐고 묻고 싶었냐? ”
“어억.... 어어어....억...”
감독관의 발이 고통으로 신음하는 내 머리를 짓밟는다.
“내가 인간이지 뭐냐. 병신 같은 놈.”
쓰라림과 신음의 파도 속을 허덕이면서도 인간이라는 단어는 내 머릿속에 깊숙이 각인되었다. 그 때 나는 결심했다. 인간이란 종족을 평생동안 저주하며 살아가기로. 인간이 내게 안겨준 고통과 눈물을 모두 기억하면서 복수하기로.
언젠가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내가 이 짜증나는 곳에서 얼마나 일했는지조차 가늠하지 못했다. 그저 졸리고 배고프면 잠을 잤고, 인간들이 걷어차면 깨서 일을 했으니까. 지긋지긋한 하루, 저항하면 더욱 강하게 얻어맞고 순응하면 조금 얻어맞는 현실에 나는 조금씩 길들여져갔다. 일상은 체념과 눈물로 얼룩져서 불쾌할만큼 눅눅했다.
어느 날 나는 처음에 이곳에 온 것처럼 또다시 덜컹거리는 무언가를 타고 어딘가로 실려갔다. 밤에 출발해서 다음날 낮까지 이동한 뒤 도착한 곳은 새로운 대저택이었다. 그랬다. 나는 그들이 사고파는 한낱 상품이었다.
매번 이런식이었다. 어떤 인간들이 나를 사들이든 간에 나는 미치도록 얻어맞고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내 몸에는 알이 배기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인간이 명령하면 걸어야했고 맞아야했고 굶어야했다. 덕분에 내 몸에는 어울리지 않는 근육들이 덕지덕지 달라붙게 되었지만, 엘프가 지닌 놀라운 신체 치유 능력 덕분에 상처와 흉터는 전혀 남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들은 나의 상품성을 보존하면서도 자신들의 파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던 모양이다.
어떤 때는 중년의 부인이 나를 사간적이 있었다. 그 여자는 고맙게도 내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피곤할 때는 자게했고 먹을 것도 잘 차려주었다. 처음에는 인간 중에서도 이렇게 착하고 고마운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항상 헐벗고 있던 나에게 좋은 옷을 주고 내게 집의 일부를 할애해줬던 그녀는, 마치 여신이 내 앞에 현신해서 내려온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가 직면한 현실이 너무나 행복하고 만족스러워서 그 여자가 내게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종종 집에 찾아오는 인간들에게 언제나 고풍스럽고 인자한 미소를 짓던 그 여자의 모습은 천사와 같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그녀가 내게 다른 형태의 고통을 안겨주기 위해 준비해온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엘프들은 보통 성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시키는 종족이다. 게다가 순결과 목숨을 동일하게 취급할 만큼 성에 대해서 보수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다. 당시에 나는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어린애였지만 순결이 무엇인지, 그리고 성이 무엇인지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그 여자가 내게 강요하는 행위들이 얼마나 역겹고 더러운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차라리 맞아서 죽는게 편할 수도 있겠다고 처음 생각했다. 늙은 여우의 성노 따위로 전락해서 온갖 수치심을 겪는 현실보다, 하루하루 멍든 몸을 어루만지는 과거가 나았다. 그 여자는 너무도 무서웠다. 낮에는 위선과 가식으로 전신을 뒤집어 쓴 채 미소 지었고, 밤에는 감춰 둔 욕정을 꺼내는 그녀는 한낱 짐승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의 마지막 이성과 저항을 자신의 성적 쾌감을 위해서 사용했고 조금이라도 더 자극을 받기 위해 혐오스러운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나의 온전한 정신마저 황폐화시켜버리는 그녀가 증오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가 내게 제공하는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려웠던 탓이었다. 게다가 또다시 도망쳐서 다른 엘프 마을을 발견할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내 일상은 쳇바퀴 도는 다람쥐처럼, 그리고 인간들에게 사육되는 소나 돼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그랬다. 나는 인간들에게 이용만 당할 뿐, 단 한번이라도 소중한 생명으로 생각된 적이 없었다. 내가 엘프였던 사실, 그리고 모두에게 사랑 받았던 일은 모두 거짓말처럼 녹아버려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죽어버리면 인간들이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기 보다는 경제적 손실부터 따져볼게 분명했다. 나는 생명으로서의 가치 따위는 없는 존재다. 그것이 내가 인간들에게 10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노예로 취급당하면서 배운 유일한 깨달음이었다.
아아 암울합니다
시드 ㅜㅜ 불쌍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작가가 나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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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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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으~ 저리 심하게 당하는 건 해리 이후 처음인 듯.
시드 불쌍해요 작가가 나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