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허균의 론(論)들
[1] 개괄
허균의 사상은 성소부부고 제11권, 문부(文部) 8의 "논(論)"에 종합되어 있다. 줄거리는 아래에 정리해 놓았다. 이것을 보면 학문, 정치, 관직, 군사, 인재(人材) 등의 논의에다 인물론까지 곁들여져 있다. 지금으로 보아도 상당히 실용적이면서 개혁적이다. 무엇보다 당시는 왕조 국가이기 때문에 임금 한 사람의 역할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백성들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을 또한 강조하고 있다. 각 주장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학론(學論): 학문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학문이 바르게 서야 한다. 임금이 바르면 학문도 바르게 되고, 결국 나라도 바르게 된다.
정론(政論): 예를 들어, 이이가 아주 훌륭한 정책들을 제시했지만 속된 선비들이 방해를 해서 이루지 못했는데, 선조가 이이를 믿고 일을 맡기고 흔들리지 않았다면 임진왜란의 외적도 문제없이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임금에게 신하를 믿고 일을 맡기는 명찰(明察)이 필요하다.
관론(官論): (지금으로 말로 바꾸면) 작고 효과적인 정부를 지향해야 한다.
병론(兵論): 나라에 있어 군대란 극히 중요하다. 그런데 조선 군대는 형편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임금이 나서야 한다.
유재론(遺才論):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인재가 중요하다. 따라서 천한 출신과 서자들도 중용해야만 한다.
후록론(厚祿論):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서는 관리들의 봉급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소인론(小人論): 조선에는 진정한 군자들이 없다. 소위 스스로 군자라고 하는 자들은 무리나 짓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가져오는 붕당의 해는 무서우니 경계해야 한다.
호민론(豪民論): 호민은 언제고 나라를 뒤엎을 수 있는 백성들을 말하는데, 이들은 두려운 존재이기 때문에 임금은 부정부패를 없애서 이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치를 펼쳐야 한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임금이 자신의 욕심이나 채우고 있으면 혁명을 당해도 된다는 해석이 되는 주장이다.)
인물론: 여기서는 허균은 절개를 지키는 것과, 세상적인 명망(名望)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언행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을 성사시킴에 있어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의 주장을 한다.
정도전(鄭道傳)·권근(權近)론에서는, 권근은 목숨을 부지하려 새 왕조에 몸을 굽혔고 정도전은 자신의 부귀만을 바래서 스스로 임금을 팔아 넘긴 자라고 비난한다. 김종직론(金宗直論)에서는, 벼슬에 뜻이 없다고 입으로만 말하면서도 계속 벼슬을 한 김종직이 세상의 추앙을 받는 것을 통렬히 비난하였다. 남효온론(南孝溫論)에서는, 남효온이 시기를 기다리며 뜻을 펼칠 줄 아는 지혜와 도량이 없었음을 비난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장곤론(李長坤論)에서는, 이장곤은 소인들이 군자들을 제거한 기묘사화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지만 군자들의 처형에는 반대하다가 쫓겨난 자인데, 후대에 기묘사화에 참여한 죄가 큰데도 그 사실은 간과되고 처형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칭송을 받으니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였다.
[2] 요약
1. 학론(學論)
학문을 할 때 자신의 몸의 이익만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참 선비는 이치를 궁구해서 천하의 변화에 대응하고 도(道)를 밝혀서 후세의 학문을 열어주었다. 거짓 선비들은 사심(私心)으로 참을 어지럽게 하여 임금이 도학(道學)을 배척하게까지 만들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즉, 임금이 마음을 바르게 하여 공과 사를 밝게 분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참과 거짓이 분별되게 되고 그러면 진리를 궁구하고 도리에 밝은 자가 나와서 배운 바를 행할 것이다. 그러면 나라의 옳고 그름도 따라서 정해질 것이다.
"임금이 진실로 공과 사의 분별을 밝게 한다면 참과 거짓도 알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人君苟明公私之辨則眞僞不難知矣)
"그런즉 그 기틀은 어디에 있는가? 임금의 한 몸에 있으며, 이 말은 곧 그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然則其機安在在乎人君一身也而亦不過曰正其心而已)
2. 정론(政論)
선조 때 이이가 훌륭한 정책들을 도모했는데 속된 선비들이 방해를 하여 이루지 못했다. 만일 왕이 믿음으로써 그에게 맡기고 흔들리지 않았다면 외적(임진왜란)도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왕이 나라를 훌륭하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밝음으로써 아랫사람을 살피고, 믿음으로써 신하에게 맡겨야 하며, 끝까지 굳은 의지와 결단을 갖고 있어야 한다. "밝음으로써 아랫사람을 살피고 믿음으로써 신하에게 맡기는 이 두 가지로써 족한데 최종적으로는 확집과 결단이 있어야 한다." (明以察其下信以任其臣斯二者足以盡之而其終執與斷而已矣)
3. 관론(官論)
쓸데없는 관직이 너무 많으면 전문적이 되지도 못하며 일을 제대로 신속하게 처리하지도 못하며 봉급도 낭비된다. 유사한 기능을 하는 부서들은 합병해야 한다.
4. 병론(兵論)
나라에 있어서 군사(軍士)는 극히 중요하다. 우리 나라 군대는 형편이 없어서 나라가 유지되는 것은 기적이다. 고려 때는 군정이 엄해서 관리들도 높은 관리가 아니면 모두 군대(親軍)에 속해 있었고 재상의 아들도 군인이 되었고, 선비들도 종군했다. 전시를 대비해 군대 동원 계획이 잘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임금밖에 없다: "군사를 다스리고 장수를 통솔해서 나라를 굳세게 할 사람은 오직 임금뿐이다."
5. 유재론(遺才論)
나라를 다스리려면 인재(人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리 나라는 나라가 작아서 인재가 드물다. 그런데도 세족(世族)이거나 과거를 통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없다. 이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일이다. 천한 출신과 서자들도 중용해야만이 나라를 훌륭하게 다스릴 수 있다. "하늘이 낳아주신 것을 사람이 버리니, 이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짓이다." (天之生也而人棄之是逆天也)
6. 후록론(厚祿論)
관리에게 봉급을 후하게 주어야한다. 그래야만 이(利)를 다투지 않고 마음 편안하게 포부를 펼칠 수 있다. 봉급을 적게 주면서 청렴하기만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히 하급관리와 외직(外職)과 정년퇴직한 사람들을 우대해야 한다. 긴요하지 않은 관직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고 윗사람이 공손하고 검약(儉約)하여야 한다.
7. 소인론(小人論)
우리 나라(조선)엔 소인도 없고 군자도 없다. 군자가 없는 까닭에 소인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스스로 군자라고 칭하는 자들은 자기중심주의자들이지 진실한 군자들이 아니다. 그런 무리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나라의 기강도 서지 못하고 있다. 곧 "붕당의 해는 소인이 조정을 전횡(專橫)하는 것보다 심하다." (淫朋之害有甚於小人之專朝也較矣)
8. 호민론(豪民論)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오직 백성뿐이다." (天下之所畏者唯民而已)
백성은 그 무엇보다도 더 두려운 존재이다. 그런데 백성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항민(恒民)은 눈앞의 일에 얽매이고 법을 따르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이고, 원민(怨民)은 (세금 등으로) 심하게 빼앗겨서 시름하고 탄식하며 윗사람을 원망하는 사람이며, 호민(豪民)은 딴 마음을 먹고 천지간(天地間)을 곁눈질하다가 혹시 시대적인 변고라도 있으면 자기의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다. 항민과 원민은 두렵지 않은 존재들이지만 호민은 크게 두려운 존재이다. 호민들이 기회를 보다가 일어나면 원민은 스스로 모이고 항민은 살기를 구해서 따르게 된다. 임금은 자신 한 몸의 욕심을 채우라고 백성의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다. 우리 나라(조선)는 땅이 비좁고 백성이 나약하여 사람들이 호협한 기개가 없어서 난리를 당해도 호민들이 궐기하지 않으니 다행이긴 하다. 그러나 부패한 관리들이 백성의 세금을 거의 다 갈취하니 백성의 원망이 자자하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에 '호민이 없다'고 말하며 두려워할 줄 모른다. 어찌 호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민목(民牧, 임금)은 이런 두려운 사정을 밝히 알아 제대로 정치를 펼쳐야 한다.
9. 정도전(鄭道傳)·권근(權近)론
관리들은 역성 혁명을 만났을 때 세 종류로 나뉜다. 첫째는 절개를 굽히지 않은 사람들이고 둘째는 살기를 구해서 구차하게 새 성씨를 섬기는 자들이고 셋째는 임금을 팔아넘겨 계책을 내어 부귀를 도모한 자들이다. 둘째 부류의 사람들은 자기 목숨을 아껴 어쩔 수 없이 행동하는 자들이라 하늘이 제 명대로 살게 허락하지만 셋째 부류는 부귀만을 바라는 자들이라 하늘이 혹독한 벌을 내려 보복한다. 권근은 유배되었을 때 나라가 바뀌었는데 벼슬로 부르니까 목숨을 사랑해서 몸을 굽혀 나왔다. 그리고 벼슬이 높아졌고 제 명대로 살다 죽었다. 권근은 부름을 받았을 때 나오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숭앙(崇仰)했을 것이다. 한편 정도전은 스스로 나라를 엎을 계책을 실행하였다. 그래서 끝내는 천명을 살지 못하고 말았다.[주: 이방원에게 참수당함.] 그래서 정도전을 더욱 비난하는 바이다.
10. 김종직론(金宗直論)
[주: 김종직(1431-1492)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性理學者)이며 문신이다. 세조 때 경상도병마평사(慶尙道兵馬評事)까지 지냈으며 성종(成宗) 때 도승지, 이조참판, 한성부윤, 형조판서 등을 지냈다. 영남학파의 종조이며 많은 문하생이 관직에 올랐다. 그가 죽은 후 1498년(연산군4)에 그가 생전에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 세조의 찬탈을 비난한 글) 때문에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당하였다.]
김종직은 벼슬에 뜻이 없다고 누차 말하면서도 계속 벼슬을 하여 세상의 명망을 훔친 자이다. 수양대군(후에 세조)이 왕위를 찬탈할 때 벼슬을 하고 있지 않았기에 벼슬에 나아가지 않아도 되는데 화가 두려워 억지로 벼슬에 나간 것처럼 꾸몄다. 그리고 노모(老母) 때문에 벼슬을 하고 있고 돌아가시면 벼슬에서 물러나겠다고도 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오히려 벼슬이 높아졌다. 그가 지은 조의제문도 이미 그(세조) 아래에서 벼슬을 하여 자기 임금이 된 사람을 비난한 것이니 가소롭다.
11. 남효온론(南孝溫論)
[주: 남효온(1454-1492): 생육신의 한 사람. 김종직의 문하. 1478년(성종 9) 세조에 의해 물가에 이장된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능인 소릉(昭陵)의 복위를 상소하였으나, 대신들의 저지로 상달되지 못하자 실의에 빠져 유랑생활로 생애를 마쳤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 때는 김종직의 문인이었다는 것과 소릉 복위를 상소했었다는 이유로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당하였다.]
김종직과는 달리 남효온이 벼슬을 하지 않은 것은 자의로 그런 것이다. 하지만 남효온은 슬기가 없었고 도량이 좁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남효온이 상소를 했을 때 겨우 20세였다. 그때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많은 내조를 하고 성종 즉위 후 7년 동안이나 섭정한 정희(貞熹)왕후가 살아 있고 세조 때의 신하들이 버젓이 살아있을 때라서 상소의 내용이 시행되기에는 시기상조였다. 남효온은 수양하고 도를 닦으며 시기를 기다리면서 작은 일부터 왕에게 시행하기를 청하면서 임금과 뜻을 맞추고 있었어야만 했다.
12. 이장곤론(李長坤論)
[주: 이장곤(1474- ? ): 연산군 때 벼슬에 나갔고 갑자사화(1504)에 연루되어 귀양갔다가 도주하여 목숨을 유지했다. 1506년 중종반정 이후 관직에 다시 임명되었고 중종의 신임을 받았다. 대사헌, 이조판서, 좌찬성 등을 지냈다. 1519년 병조판서 재임시 남곤(南袞)·심정(沈貞) 등이 주도한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참여하였으나, 조광조(趙光祖) 등 사화에 연루된 사림들의 처형에는 반대하다가 삭직되었다. 1522년 복관되었으나, 여강(驪江)·창녕(昌寧) 등지에서 은거생활을 하였다.]
기묘사화에 억울하게 관련된 여러 현인들에 대한 책을 보니 이장곤이 들어 있었다. 기묘사화는 소인들이 군자들을 미워한 사건이었다. 이장곤은 당대의 명사(名士)로서 현인들과 함께 하다가 도리어 간계에 합심해서 기묘사화를 일으킨 자이다. 군자들이 죽을 줄을 알면서도 그런 일을 했는데, 나중에는 군자들을 거짓으로 구원하는 체 하였다. 이장곤을 현인 중 하나로 기록한 사람은 기묘사화를 일으키는데 참여한 죄는 간과하고 사림들 처형에 반대한 말 한마디에 놀아난 것이다. 이장곤은 갑자사화 때도 도망가서 살아났는데, 당시 연산이 아무리 무도했어도 임금은 임금이었다. 따라서 군신의 예를 어긴 것이 된다. 이장곤의 명망에 휩쓸려서 사람을 잘못 평가하였기에 따져보았다.
- 류주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