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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 디지털 문명을 이해하는 12가지 言語
디지털이란 무엇인가?
컴퓨터는 20세기 과학기술혁명의 대표주자다.
세기말 정보혁명을 카운트 다운시킨 주역이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디지털 신호 ‘1과 0’만으로 세계를 하나의 작은 지구촌으로 엮어낸 디지털 문명의 전위대였다.
그리고 마침내 새 천년이 밝았다. 21세기의 화두는 단연 ‘디지털’이다. ‘디지털 시대’ ‘디지털 혁명’ ‘디지털 경제’ 등 언제부터인가 ‘디지털’과 결합된 무수한 문구들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다. ‘디지털’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 네트워크 타임라인
1957 소련의 인공위성 스프트니크에 대응하여 미 국무부 산하에 ARPA(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창설
1962 릭라이더(Licklider)가 ARPA의 행동과학부문 책임을 맡음
1969 ARPAnet가 컴퓨터 네트워킹에 관한 연구 시작함. 최초로 UCLA와 SRI(Stanford Research Institute)가 서로 네트워크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는 데 성공함.
1973 ARPAnet의 국제적 연결이 이루어짐. 메트켈프(Metcalfe)가 이더넷(Ethernet)에 관한 박사논문 제출.
1974 봅 칸(Bob Kahn)과 빈튼 서프(Vinton Cerf) 가 TCP 디자인에 관한 논문 제출함.
1976 엘리자베스 여왕이 e-mail을 보냄
1982 컴퓨터가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뽑힘/IBM PC 탄생
1984 Domain Name System 시행
1985 WELL(Whole Earth `Letronic Link) 시작됨.
1990 미치 캐포(Mitch Kapor)에 의해 EFF(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 설립
1991 CERN의 팀 베너스 리(Tim Berners-Lee)가 WWW(World-Wide-Web) 개발함
1992 ISOC(Internet Society : 인터넷협회) 출범
1993 웹 브라우저인 모자익(Mosaic) 공개
‘디지털’이란 단어가 21세기에 살아남기 위한 첨단의 주문이 되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대기업들은 앞다퉈 디지털 경영을 선언하고 나섰다. 대통령은 장관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가 인터넷과 전자우편을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한다. 그런가 하면 정보통신부는 ‘주부가 인터넷 강국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면서 주부 100만명을 대상으로 이달부터 주부인터넷 교육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산업화에는 뒤졌지만 정보화에서는 앞서자’는 구호가 한동안 유행하다 이제 아예 ‘디지털 강국’을 건설하자고 사방에서 난리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천박한가는 아전인수식 갖다 붙이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빨리빨리’의 한국적 조급성이 인터넷 시대에는 엄청난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코미디 대사 같은 이야기가 버젓이 신문 칼럼에 실리는 정도다. 그뿐이 아니다. 기마민족이었던 우리 민족은 앞으로 디지털 시대에 강국이 될 것이라느니, ‘손에 손에 인터넷을 들고 다니니 이제 한국은 강대국이 된다’느니, 밑도 끝도 없는 낙관론과 희망이 난무하고 있다.
사이버 증권 세계 2위, 전세계에서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PC방, 스타크래프트 게임짱이 있는 나라, 사이버 복권 1등이 사는 나라… 이런 것들이 인터넷 강국을 꿈꾸면서 우리의 언론이 제시하는 근거들이다. 이 얼마나 황당무계하고 근거없는 자신감인가.
좁은 국토의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촌의 열악한 주거 상황이 인터넷망을 값싸게 깔 수 있는 천혜의 조건으로 둔갑하고, 우리의 조급성은 디지털의 광속 전송에 적응할 수 있는 하늘이 준 복으로 뒤바뀐다. 그러나 아줌마 디지털 부대 100만명을 양성하여 아줌마 디지털 바람을 한바탕 불게 하고, 전국방방곡곡에 PC방을 열고, 어린아이들을 온통 스타크래프트 쌈장으로 양성한다고 해서 디지털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겁주고 뒤로 어르는 디지털 캠페인으로 과연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인터넷과 디지털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새 천년의 승자라고 주장하던 언론은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꾸어 ‘제조업은 영원하다’는 캠페인을 벌인다. 앞도 뒤도 없고 주먹구구식인 디지털 인식으로는 앞날을 개척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얼빠진 디지털 캠페인은 사람들에게 문화와 경제, 사회 모두가 디지털로 개편중인 것 같은 착각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에서는 앞서자’거나 ‘아날로그’ 없이 ‘디지털 세상’을 건설하려는 조급함은 모두 현실성 없는 구호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정보화의 기반은 산업화이고 디지털의 토대는 아날로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지털의 새로운 문화는 결국 우리의 현실에서 싹튼다는 평범한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 이런 난리 북새통에서 보통 사람들은 빛의 속도로 달려오는 디지털 유령이 마냥 무섭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은 유령이 아니다. 다가오는 디지털 세상을 잘 맞이하려면 디지털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실체를 잘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디지털 키워드’는 디지털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마련하고자 정리한 것이다.
1. 컴퓨터(digital : atom and bit)
디지털은 우리의 생각을 가공하고 전달하는 도구다. 산업혁명기에 등장한 증기기관의 터빈이 육체의 힘을 확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컴퓨터는 마음과 지식의 힘을 확장한다. 컴퓨터는 1년이 걸려도 온전하게 풀지 못할 수식을 불과 1∼2초 사이에 해결한다. 그리고 방대한 정보를 전 인류가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든다. 산업혁명기의 기술이 육체적 근력을 확장하였다면 디지털 기술은 마음을 확장한다. 이런 차이점은 지식사회의 도래나 정보 사회의 도래를 넘어 새로운 공동체의 지평을 여는 새로운 혁명적 효과로까지 과대포장되기도 한다.
‘비트’는 컴퓨터를 움직이는 기본 단위다. 컴퓨터가 처리하는 모든 정보는 비트로 이루어진다. 컴퓨터는 비트로 비트를 처리하고 비트로 비트를 만든다. 그러나 서로 다른 곳에 있는 컴퓨터의 비트가 서로 만나게 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1960년대만 해도 사람들은 컴퓨터를 계산기로 생각했다. 거대한 몸체와 엄청나게 비싼 기계는 아무나 다룰 수 없었다. 흰색 가운을 입고 마치 의사처럼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환자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유리방 안의 컴퓨터를 다뤘다. 컴퓨터는 그 자체로 완결적인 존재였다. 완결적인 존재는 커뮤니케이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보도 공유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컴퓨터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개인과 컴퓨터를 만나게 해주는 새로운 기계가 탄생했다. 1970년대는 PC의 시대였다. 조그만 차고에서 개인과 컴퓨터를 만나게 해주는 새로운 기계가 탄생한 것이다. 마치 마굿간에서 예수가 태어났듯 초라한 탄생처는 이후 세상을 바꿔놓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퍼스널 컴퓨터의 보급으로 컴퓨터는 실험실에서 해방되었다. 무거운 몸체와 비싼 가격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의 반도체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였으며 컴퓨터의 성능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향상되고 가격은 아주 빨리 떨어졌다.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컴퓨터는 이제 더이상 신이 아니라 인간과 친숙한 친구가 되었다. 신의 아들 예수가 인간에게 다가와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친 것처럼 컴퓨터는 인간들에게 서로 만나 이야기하고 사랑하고 공동체를 만들라고 손짓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 컴퓨터와 컴퓨터가 네트워크로 연결되기 시작하자 1960년대 히피 세대의 후손들은 좌절된 공동체에 대한 열망을 컴퓨터에서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컴퓨터 통신을 통해 만들어지는 사이버 공동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그들은 열린 마음을 갖고 서로 사랑을 나누었다. 그들은 가진 것을 서로 공유했으며 마음을 열어놓고 서로 사귀었다.
불친절하고 딱딱했던 글자 위주의 인터페이스도 여러 미디어를 함께 사용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1993년 월드와이드웹이라는 신기술이 대중적으로 실현되면서 사람들은 이제 아주 쉽게 서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월드와이드웹을 처음 고안한 베너스 리(Berners Lee)는 그가 고안한 웹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웹의 진정한 목적은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동의 정보 공간’을 만드는 데 있었습니다. 보편성이 가장 본질적인 고려 대상이었습니다. 하이퍼텍스트 링크는 어떤 것이라도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개인적이든, 지역적이든 세계적이든, 간단한 초고이든 잘 완성된 것이든 상관없이 말이지요. 두번째 꿈이라면 웹이 아주 일반적으로 사용되어 그것이 우리가 일하고 놀고 사회를 엮는 현실의 거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상호작용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면 우리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그것을 분석하고 우리가 하는 것을 의미 있게 만들고 우리의 개성을 살려 어떻게 하면 더 잘 함께 일할 수 있을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장사꾼이 등장한다. 인터넷에 시장이 열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자 수많은 장사꾼들이 인터넷으로 찾아들었다. 이제 인터넷은 더이상 초기 공동체 지향자들의 거처가 아니다. 네트는 광장에서 저잣거리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통신회사와 소프트웨어회사, 각종 엔터테인먼트 회사, 방송사 등이 서로 결합하면서 네트의 바벨탑을 쌓게 된 것이다.
2. 인터넷 (Internet)
인터넷은 TCP/IP를 사용해 상호 접속된 ‘네트워크의 네트워크’(Network of network)이다. 이러한 인터넷은 1)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컴퓨터 2)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사람들(Netizen : community of people) 3)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information)로 구성된다.
인터넷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무런 규제 없이 할 수 있는 무정부주의적인 컴퓨터 네트워크다. 아무도 인터넷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규정하지 않는다. 인터넷은 여러 가지 다양한 정보가 오가는 범용 인프라 스트럭처인 동시에 갖가지 시험이 시도되고 있는 시험장이다. 인터넷은 정보를 검색하고, 질문을 던지며(Newsgroup), 서로 이야기하고(IRC : Internet Relay Chat), 게임을 하며(Mud), 편지(e-mail)를 주고받는 네트워크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독립적인 컴퓨터가 분산적, 탈중심적으로 대등하게, 병렬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는 전체적인 통제와 감시를 담당하는 중앙 컴퓨터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새로운 네트워크로서 인터넷이 갖는 가능성이자 특징이다. 컴퓨터간의 상호독립성, ‘상호소통성’(interoperability)은 자유주의의 철학적 원리를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토대라 할 수 있다. 인터넷의 기본철학을 ‘제퍼슨’(Jefferson)의 ‘자유주의’(liberalism)에서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독특한 매체적 성격을 지닌 인터넷의 성공은 초기부터 이루어진 미 연방정부의 보조 덕분이었다. 만약 정부의 보조가 없었다면 인터넷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고립적인 컴퓨터들이 다도해의 섬처럼 존재했을 것이다.
인터넷의 모체인 아르파넷(ARPANET)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릭라이더(Licklider)는 1964년에 “컴퓨터는 커뮤니케이션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당시 사람들은 컴퓨터를 계산 도구나 비즈니스의 효율성을 높이는 기계로만 파악하였다. 그러나 릭라이더는 일찌감치 컴퓨터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컴퓨터를 커뮤니케이션으로 보게 되면 고립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덩치 큰 메인 컴퓨터들간의 연결과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과제로 다가온다.
그래서 이들은 아르파넷이란 프로젝트를 통하여 컴퓨터들이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한 기계가 다른 기계를 불러내고 기계들간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가 이루어졌다. 통신 프로토콜이라는 규약을 개발하여 서로 다른 컴퓨터가 데이터와 정보를 주고받는 방법을 실험하였다.
드디어 1969년 캘리포니아 대학을 비롯하여 네군데의 커다란 연구소에서 컴퓨터간의 커뮤니케이션 시험이 이루어졌다. 그 실험은 접속을 뜻하는 로그(log)의 L자와 O자, 그리고 G자를 서로 주고받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이것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컴퓨터들이 서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컴퓨터간의 의사소통을 기점으로 하여 여러 컴퓨터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그 사용층이 엔지니어·기술자·과학자·학생층에 국한되었다. 1980년대에는 NSFNET의 백본과 연결된 연구소, 대학, 정부기관에서만 사용이 가능했으나 1990년대 중반부터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의 등장으로 가정과 회사에서 손쉽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사용자의 규모도 증가하고 사용자 계층도 초기의 연구 전문가 집단에서 일반인으로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인터넷은 초기에 냉전시대의 네트워크로서 출발하여 연구망으로 확대되다가 미국 과학재단(NSF)의 교육망에 주도권을 넘겨준 후 최근에는 급격한 상업망의 증가로 사유화되는 순서를 밟고 있다. 전 세계적 규모의 네트워크와 엄청난 사용자에 주목한 기업들이 속속 인터넷에 접속하면서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에서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그래서 인터넷의 상업화를 지적하는 논자들은 자본의 개입을 통해 철저하게 상업화된 제2의 인터넷이 만들어질 것을 걱정한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신인터넷’이란 인터넷의 분권적이고 자유로운 개방적 성격이 퇴색하면서 국가와 자본의 개입으로 중앙집권적 통제가 강화되며 공동체가 상실되는 암울한 네트이다.
네트의 상업화와 국가 개입은 현재 인터넷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1996년 초에 통신품위법을 둘러싸고 미국 정부와 네티즌간의 한판 싸움이 벌어진 바 있다. 결과는 법원에서 이 법률에 대한 위헌 판결이 내려짐으로써 네티즌의 승리로 일단락되었지만 앞으로도 국가가 인터넷에 개입할 구실과 명분은 도처에 깔려 있다.
정부는 디지털 저작권에 이해를 갖고 있는 정보 자본가들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네트에서 오가는 정보에 통행세를 물리고자 골몰하고 있다. 통신품위법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국가와 네티즌간의 1회전은 네티즌의 판정승으로 끝났지만 이제 지적재산권 문제를 둘러싸고 네티즌과 자본-국가연합 사이에 불꽃튀는 공방이 벌어질 것이다. 초기 인터넷의 자유로운 개방 구조와 이를 바탕으로 한 네티즌의 영향력과 자체 방위력도 그리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다. 그들은 20세기 말에 새롭게 등장한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공간이 국가와 자본에 유린당하는 것을 넋놓고 바라보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3. 네트워크(Network)
현대 사회는 정보사회, 후기자본주의 사회, 포스트모더니즘, 디지털 사회, 네트워크 사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이전에는 네트워크란 주로 기술적인 연결망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네트워크는 텔레비전 전국 네트워크라든지 전화국의 네트워크란 말로 사용되었고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생소한 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말이 젊은층을 사로잡는 하나의 상징 기호로까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젊은이들이 단지 인터넷이나 네트워크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일까? 물론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년 되지 않았으며 비교적 자신의 성장기에 이를 접한 젊은층은 이러한 매체와 문화에 익숙하고 이를 자주 사용할 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차원에서도 전혀 어려움을 갖지 않을 것이다.
네트란 말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것이 통신망을 연결하거나 컴퓨터를 연결해 주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의 장을 제공하고 사람과 사람간의 만남을 주선하며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열린 공간에서 나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의 얽힘이 없다면 네트는 그냥 전선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는 그런 통신망을 특정 회사나 권력기관에서만 사용했으나 이제 일반인들이 네트의 연결망을 통하여 손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네트워크 혁명의 핵심이다.
누구나 네트워크에 접속해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의견을 펼치고, 새로운 사람과 사귀고, 생각을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커다란 축복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장소의 속박 없이 쉽게 접하게 된 것도 커다란 혜택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우리가 익숙한 사물을 서로 연결할 때 생겨난다. 지우개가 연필을 만나 지우개 달린 연필이 되어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별로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두가지 사물이 서로 만나면 아주 새로운 것이 생겨날 때가 많다. 이런 ‘뜬금없는’ 만남이 네트워크 시대의 창의력을 낳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과 무엇을 만나게 해야 할까를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한다. 기존의 통상적 발상으로는 서로 만나게 하려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는 사람과 사물을 만나게 해야 한다. 어른과 어린이가 만나야 하고 도시와 시골이 만나야 하며 바보와 천재가 만나야 한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연구실이 아닌 해변가를 산책해야 한다. 똑같은 장소에 줄곧 틀어박혀 고루한 일상을 반복하는 사람은 부지런할 수는 있으나 창의적일 수는 없다.
커뮤니케이션은 서로 다른 생각과 사람과 사물의 만남이어야 한다. 그래서 디지털 시대에는 순종 교배의 순수함을 보전하려는 엘리트주의가 아니라 잡종교배의 다양함과 풋풋함이 넘쳐나는 각종 새로움의 실험과 교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네트워크의 정신이며 다양함의 보장이며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네트워크의 창의력인 것이다.
4. 네트워크 법칙( Metcalf’s law)
디지털 혁명은 새로운 인간형을 낳는다. 산업시대는 위계적인 질서에 잘 순응하는 표준화된 인간형을 양산하였다. 규격화된 생산체제는 사람의 인성까지 표준화했다. 그래서 100명, 1,000명을 모아 놓아도 이들이 집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지적 역량은 한명이 갖고 있는 지적 역량에 불과하다. 물리적 힘은 100명이 모이면 한사람의 힘의 100배가 되지만, 생각하는 게 똑같은 100명이 생각을 짜내봐야 한 사람의 지적 역량을 넘어설 수 없다.
그런 경우 이른바 메트켈프(Metcalfe)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이더넷’을 고안하고 3com이란 회사를 만들었던 메트켈프는 네트워크의 효과란 ‘네트워크로 연결된 노드의 수의 자승’이라고 지적하였다. n개의 노드가 네트워크로 엮이면 그의 총 효과는 n의 자승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후 이것을 메트켈프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물리적인 네트워크망만으로는 네트워크 효과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네트워크 효과가 일어나려면 의사소통을 매개하는 언어와 문화 그리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소통의 규칙(프로토콜)이 필요하다. 서로 생각을 공유하거나 나눌 수 없고 오직 자기 주장만 관철하려는 독불장군식 천재들만 있다면 네트워크 효과는 나오지 않는다. 이를 사람간의 네트워크에 적용해보자.
메트켈프의 법칙이 적용되려면 두가지 전제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첫째, n개의 노드가 각기 차이를 갖는 개성적인 것들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n개의 노드를 이어주는 네트워크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n개의 개성적인 노드를 갖추고 있어도 이들을 이어줄 의사소통 구조나 프로토콜이 없다면 네트워크의 효과는 발휘되지 못한다. 경상도 천재와 전라도 천재가 서로 만나 서로에 대한 편견으로 다투거나, 한 사람이 ‘아’했는데 ‘어’했다고 서로 싸운다면 네트워크 효과는 없다.
똑같은 표준화된 사람 100명, 1,000명이 네트워크로 엮여봐야 그의 지적 총량 혹은 네트워크 효과는 1에 불과하다. 다가올 디지털 시대에 개성과 창의성이 주된 미덕으로 강조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네트워크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함이다. 1,000명의 창의적인 사람이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주고받을 때 1,000의 자승이라는 놀라운 지적 역량이 발현된다. 그래서 디지털 시대에는 개인의 창의성이 더욱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5. 디지털 복제(digital reproduction)
현대 사회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는 ‘기계 복제’와 ‘디지털 복제’, 그리고 ‘DNA 복제’의 얽힘을 밝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산업사회에 대한 설명의 관건이 기계 복제를 해명하는 데 있다면 정보사회를 이해하는 실마리는 디지털 복제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다가올 2000년대의 미래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에는 DNA 복제가 놓여 있다.
한시간에 수천개의 똑같은 복제물을 만들어내는 대량생산-대량소비(포디즘)시대의 기계는 원본의 외양을 고스란히 판박이로 복제한다. 이러한 기계 복제는 필연을 복제한다. 최대의 효율과 이윤을 목표로 하는 기계 복제는 우연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계 복제는 끊임없는 반복이며 지겨움이며 소외다. 기계 복제는 대량으로 이루어지지만 사람들을 고립화할 뿐 서로를 이어주지 못한다. 기계 복제에는 합리와 계산과 순서와 질서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기계 복제품에는 ‘혼’(아우라)이 없다. 기계 복제품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땀과 지혜가 묻어 있지만 기계 복제품에서 영혼을 느끼기는 아무래도 무리다. 그래서 벤야민은 대량생산된 기계 복제품과 현대 예술이 아우라를 상실했다고 보았다. 그런데 디지털 복제는 정신과 마음의 산물이 복제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혼’을 다시 잇는다. 디지털 복제를 통해 혼과 생각과 아이디어가 전달되고 이어지고 얽힌다. 그렇다면 네트는 디지털 시대의 ‘영매’인 셈이다. 기계 복제품이 완결된 닫힌 복제의 모습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간다면 디지털 복제는 타인에게서 완성되는 열린 복제인 것이다.
네트에서 서로간의 얽힘이 쉽게 이루어지는 이유는 현실세상의 얽힘보다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육체의 얽힘과 꼬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네트에서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걸지 않아도 된다. 네트의 반영이 솔직한 이유는 육체를 동반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디지털 복제는 육체성을 결여하고 있지만 정신의 반영에는 매우 충실할 수 있다. 기계 복제에서 디지털 복제로 이행하는 것은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포디즘에서 포스트포디즘으로 변화하는 폭과 깊이에 비례한다. 기계 복제가 사용의 배타성과 일회성을 갖는 포디즘적 대량생산의 산물이라면 디지털 복제는 포스트포디즘식 수시 대량 복제다. 디지털 복제는 필요할 때 수시로 복제가 가능하고 사용의 공유성을 보장한다. 그래서 디지털 복제는 성서의 ‘물고기 다섯 마리와 보리떡 두덩이’의 설화를 새로운 경제논리와 소비형태로 실현한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의 복제를 통해 만들어지는 문화는 기계 복제 시대의 대량생산된 예술품이나 문화와 어떤 차이점을 지니게 될까? 미술품에는 제작품이 ‘진품’임을 증명하는 서명이 흔히 말미에 따라붙는다. 그런데 이것이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포디즘적 복제 시대에 이르면 예술가나 제작자의 서명이 아니라 생산품에 부치는 상표가 그 기능을 대신하게 된다. 불법 복제는 대량 생산물의 상표를 다시 복제한다. 이것이 상품화된 자본제적 생산방식 내에서 복제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트레이드마크나 브랜드 네임이라는 다양한 기호가 장인의 서명을 대신하게 된다. 물질에 각인된 이러한 서명은 대량생산된 상품의 물질 ‘아우라’를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상품에 부착된 기호가 전달하는 아우라는 현대 소비자에게 이데올로기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이른다.
그런데 디지털 복제는 기본적으로 모자이크식 복제 방식에 뿌리를 갖는다. 통일적 전체를 송두리째 베껴 내거나 기계 주물을 통하여 동일한 물건을 판박이로 찍어내는 포디즘의 대량생산 방식과 달리 디지털 복제는 파편화된 부분들을 골라 모아 새로운 전체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취한다.
물론 단순 디지털 복제와 복합 디지털 복제를 갈라볼 필요가 있다. 단순 디지털 복제는 동일한 정보를 아무런 내용의 첨삭 없이 동일한 정보의 형태로 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포디즘 시대의 판박이 복제가 물질의 복제라면 디지털 복제는 정보의 복제이기 때문에 물질의 추가분이나 원료의 추가투입이 불필요하다. 따라서 동일한 정보의 비트가 어떤 컴퓨터에서 네트를 통하여 다른 컴퓨터로 전송되고, 그것이 다른 컴퓨터의 보조기억장치에 복제되어 저장되는 과정 외에 어떠한 물질적 추가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아톰의 물질 재생산이나 기계 복제 때 필요한 추가적인 물질 투입과 아주 다른 특성이다. 이러한 디지털 복제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소량으로 생산된 정보가 대량으로 공유되고 소비, 재창조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나타나게 된다.
복합 혹은 2차적 디지털 복제는 모자이크 상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네트를 통해 수집한 수많은 부분들을 원료로 하여 새로운 현실을 구성하는 창조적인 작업과정을 거친다. 이런 맥락에서 디지털 시대의 창조성은 복합 디지털 복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한편 앞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될 DNA 복제는 모양과 내용을 동시에 복제하는 기계적 복제와 유기적 복제의 통합물이다. 앞으로 DNA 복제가 일반화되면 사람들의 정체성은 심각한 위험을 맞게 될 것이다. 자신의 형식-본질 반영물인 자식에게 아무 대책이 없듯 사람들은 대책없는 복제물에 휩싸여 자아는 물론 이웃까지 상실할지도 모른다. 자기를 판박이로 닮은 DNA 복제물들은 과연 ‘나’를 반영할까? 오히려 ‘나’에게 ‘반역’하지 않을까? 기계적 반영과 디지털 반영, 그리고 DNA 반영은 그 반영의 충실도에서 보자면 점차 상승하지만 거꾸로 반영물의 자율성도 커지면서 원본의 반영물을 넘어 반역의 주체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진다. 아이가 자라 하나의 독립된 인격으로 성장하듯 DNA 복제물의 자립성과 자율성이 커지면 반영을 넘어 반역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진행될 디지털 복제와 DNA 복제의 시대에 대응하려면 기계 복제 시대 패러다임을 넘어 복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6. 네티즌(Netizen)
인터넷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사람들(Netizen)로 구성된다. 네트 사용자간의 통신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볼 때 네트는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공동의 협동과정’이자 서로 다른 마음과 생각이 만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낳는 ‘창조적인 움직임’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 유의하면 컴퓨터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사람 자체가 중요한 고려 대상으로 떠오른다. 왜냐하면 컴퓨터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네트의 성격과 변화 방향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젊은 연구자 허번(Hauben)은 ‘네티즌’(Netizen)이란 신조어를 처음으로 소개했다. 허번이 말하는 네티즌은 네트의 문화를 만들고 네트 공동체를 꾸려 나가는 의미함축적인 개념이다. 그래서 단순히 네트를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은 네티즌이 아니다.
네트의 공동체적 성격에 주목한 허번은 네트워크 사용자들이 공동체적 지향과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들을 네트의 시민(Net Citizen), 곧 네티즌이라 불렀다. 온라인 토론과 질문, 상대에 대한 논평, 그리고 조언이 오가는 유스넷(Usenet)의 특성에 주목한 허번은 이들의 공동체적 특성에 주목하여 네티즌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것이다.
네트 사용자와 네티즌간의 차이는 공동체적인 관점의 소지 여부다. 네티즌은 개인적인 이익이나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 네트를 찾는 사람들이 아니다. 네티즌은 문화적인 의미에서 가치를 만들고 사회적 차원에서 관계를 이루어 가는 가치 함축적인 개념이다. 네티즌은 네트를 형성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사이버 스페이스의 개척자인 것이다.
네트 사용자의 급격한 수적 증가와 이에 참여하는 다양한 계층의 자기 이해는 네트의 성격을 변화시킨다. 최근 상호소통의 공동체에서 출발한 인터넷이 점차 시장을 위한 도구로 변화하는 조짐들이 보인다. 인터넷의 상업적 도구화는 네트의 공동체적 성격을 퇴색시킨다. 이러한 상업적 탈정치화는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은폐되는 과정이며, 자본의 지배가 자리잡는 과정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네트는 아주 빨리 상업화되기 시작했다. ‘네트와 네티즌의 권력을 깔보지 말라’는 당당한 주장은 자본의 침입으로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네트의 상업화는 네트 사용자의 공동체적 지향을 약화시키는 한편 ‘개인화’(privatization)를 촉진한다. 초기 네트의 문화적 특성과 공동체적 지향들이 약화되면서 네트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허번이 찾았던 긍정적 의미의 네티즌이 차지하는 지분과 영향력은 차츰 약화되고 이를 대신하여 거대 기업과 상업화를 추구하는 사업가들이 네트의 새로운 주도세력으로 등장하였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던 자유와 공동체의 꿈이 자본주의의 상업적 ‘탐욕’에 의해 사라져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인터넷은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존재다. 인터넷은 상업적 도구인 동시에 여전히 다양한 주체의 표현공간인 것이다. 현재의 추세를 보면 인터넷이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에 침식당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공간이 현실세계와의 긴장관계를 놓아버릴 때 개인주의화의 촉매로 전락할 우려도 항시 존재한다. 그러나 사이버스페이스가 개인적 문제와 공적 영역의 관계를 재활성화하는 새로운 공동체 형성의 가능성을 열어 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7. 디제라티(digerati)
디지털 혁명의 영향으로 지식인과 권력 엘리트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19세기말 제정 러시아의 인텔리겐차에서 20세기말 멕시코 치아파스(Chiapas)의 사파티스타(Zapatistas)에 이르기까지 지식인은 민중의 편에 서서 권력에 대항하였다. 20세기의 지식인은 민중과 권력 사이에서 끊임없이 양자택일을 강요당했다. 그러나 지식기반사회인 디지털 시대에는 지식이 스스로 권력이 된다.
디제라티(digerati)란 디지털(digital)과 리터라티(literati·지식인)를 합성하여 만든 신조어다. 디제라티는 ‘지식인’의 사이버 버전으로 디지털 변혁의 선봉에 선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디지털 시대의 지식인은 과거의 지식인과 달리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동시에 스스로 권력을 갖게 되어 디지털 시대의 파워 엘리트를 이룬다.
새로운 세기를 열어나갈 디지털 지식인은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아우르면서 ‘제3의 문화’를 펼쳐나갈 잡종들이다. 그들은 말보다 행동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사후에 말로 비평하기보다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는 실행적 지식인이다. 디지털 지식인은 힘이 세다. 그래서 그들은 남의 권위나 힘에 빌붙지 않는다. 그렇지만 서로 연결하고 스스로 연대한다. 이들은 과거의 파워 엘리트와 달리 지연, 학연, 혈연의 연줄이 아니라 서로를 수평적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통해 스스로 연대한다. 디지털 시대에 독불장군은 없다.
21세기에는 아마도 디지털 기업을 이끄는 신진 디제라티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반면 사후약방문식 분석을 일삼는 사이비 전문가 집단은 몰락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이미 수많은 대중이 디지털 언어를 쓰고 있고, 무엇보다 젊은 세대에서는 디지털 문맹이 드물기 때문이다. 앞으로 새로움과 개방성으로 무장한 젊은 디제라티들이 우후죽순처럼 출몰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 사회를 주도할 사이버 스페이스의 새로운 엘리트는 누구일까?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소프트방크의 손정의? 야후를 만들었던 제리 양? 아마존의 베조스? 세상 사람들의 찬사와 부러움을 온몸에 받고 있는 이들은 모두 정보사회의 선발분야를 잽싸게 꿰어차고 먼저 달려나간 사람들이다. 이들의 가장 핵심적인 공통점은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란 점이다. 이들의 뛰어남으로 손꼽히는 모든 인간적 미덕은 사실 금전적 성공이라는 최종적인 결과 때문에 빛나는 것이다. 아무리 창의적이고,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갖고 있고, 뛰어난 인간성을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성공이라는 마지막 잣대에서 빗나가면 디지털 시대의 ‘사이버 엘리트’ 반열에 오를 수 없다. 바로 이점이 디제라티 신화가 갖는 맹점이자 그림자이다.
올초 우리나라에서도 ‘신지식인’이란 말이 희망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 적이 있다. 세간의 유행어로 떠올랐던 ‘신지식인’이란 말은 성공신화의 ‘국민의 정부’식 변형에 다름아니다. 거기에서 새로운 천년의 지식인,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는 지식인의 모습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사이버 엘리트’는 누구인가?
정보통신산업에 종사하거나 디지털 신경제의 선봉에서 일하는 ‘지식노동자’의 실제적인 지위가 ‘노동귀족’의 모습을 보인다면 이들을 디제라티로 설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디지털 경제와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직업군에는 1)프로그래머 2)디자이너 3)각종 컨텐츠 생산자 4)신종 경영자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를 편의적으로 1)기술적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계층(프로그래머/엔지니어/신기술개발자)과 2)문화적 지식과 감성을 기반으로 하는 계층(컨텐츠 기획자/예술가) 3)기술과 문화를 결합하여 상품화하는 계층(경영자/광고종사자/웹마스터 등)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학과 공학을 전공한 첫번째 계층과 문화상품을 생산하는 두번째 집단, 그리고 이들 상품을 뒤섞어 상품화하는 세번째 계층이 광의의 ‘디제라티’를 이루는 직업집단들일 것이다. 이들을 다시 작업장에서의 지위와 생활상태에 따라 상·중·하 등 계층 구분을 할 수 있겠다. 이들을 하나의 ‘계급’으로 묶어 주는 공동의 생활상태와 집합적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면 이들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계급으로 떠오를 것이다.
8. 복수 정체성(multiple identity)
전근대 농경사회에서는 가족이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규정하였다. 근대 산업사회에서는 작업장에서의 지위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결정한다. 후기자본주의 혹은 소비자본주의의 시기에는 작업장보다 생활세계에서 형성되는 아이덴티티가 더 영향력이 크다. 이는 곧 소비가 아이덴티티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침을 의미한다.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생활세계는 실제적인 소비와 생활이 이루어지는 현실세계와, 네트워크를 통해 가상으로 이루어지는 사이버스페이스로 구성된다.
작업장에서 이루어지는 자아정체성과 생활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자아정체성 간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작업장의 아이덴티티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통제의 산물인 데 반해 생활세계의 아이덴티티는 탈권위적인 성격을 지닌다. 사이버스페이스는 현실 생활세계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분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만들어지는 자아정체성의 특성으로는 육체성의 상실과 익명성, 유동성을 들 수 있다. 컴퓨터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공간은 현실세계의 육체적 제한에서 벗어난 세계다. 사이버 커뮤니티의 비육체성은 몸과 정신이 분리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얼굴 표정이나 몸짓 등 일상세계의 의사소통 도구가 작동하지 않는다.
육체를 수반하지 않는 의사소통은 익명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가상적인 의사소통 공간을 만든다. 이러한 익명성은 현실세계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사회적인 지위와 위치를 밝히지 않는 한 상당기간 지속된다. 이에 따라 자아정체성 자체가 유동적인 모습을 갖게 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사이버스페이스는 새로운 자아정체성을 낳는다. 현실세계의 정체성이 육체와 직업에 의하여 규정되는 단일한 정체성인 데 반해 사이버스페이스의 정체성은 생각과 마음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를 갖는다.
현실세계에서 육체는 개인의 자기정체성을 형성하는 근원이다. 내가 나임을 가장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은 육체를 통한 자기 확인이다. 나의 육체는 공간에 의해 구속당하며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생물학적인 아이덴티티는 육체적 단일성에 기초한다. 이에 반해 사회적인 아이덴티티는 사회적 지위와 제도, 역할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심리적인 아이덴티티, 마음의 아이덴티티는 이와 다르다. 네트에서는 육체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아이덴티티가 만들어진다. 때로는 가상의 공간이 실체화되거나 가상의 참여와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 놓은 마음의 공동체가 존재하기도 한다.
생물학적 정체성의 기본인 남녀의 성차, 인종, 계급이라는 장벽은 네트의 정체성에서는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직업이라는 사회적 규정력도 마찬가지다. 생각의 교환과 공유만이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근거이자 바탕이 된다. 그러나 이처럼 유연한 정체감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관련 및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개입의 정도, 그리고 그들의 사용방식, 커뮤니케이션의 종류에 따라 매우 다양한 스팩트럼을 갖는다. 현실의 아이덴티티와 가상현실의 아이덴티티가 대립하는 경우에서부터 비교적 유사한 정체감을 유지하는 형태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아이덴티티의 유형이 이루어진다. 젊은 세대의 경우 가상세계에 대한 몰입도가 크고 사회적 규정력으로부터 자유로울수록 새로운 정체성을 지닐 가능성이 높다.
9. 지식기반사회(knowledge-based society)
최근 디지털과 더불어 많이 사용되는 것이 ‘지식사회’(knowledge society) 혹은 ‘지식기반사회(knowledge-based society)란 용어다. 그런데 지식사회란 말은 완결된 개념이나 사회과학적 용어가 아니다. 지식사회라는 말은 1962년 대니얼 벨(Bell)이 ‘기술과 사회변동’이란 토론회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벨의 탈산업사회론이 지식사회에 대한 최초의 논의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지식사회’에 관한 최근의 논의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Drucker)에 의하여 촉발된 것이다. 드러커는 1993년에 간행된 그의 책 “탈자본주의 사회”(post-capitalist society)에서 지식이 사회적 부의 원천이 될 것임을 강조한다. 그는 새로운 생산과정과 서비스 및 생산물에 끊임없이 창조적 지식을 적용한 것이 미국 산업의 경쟁력 재생을 가져온 원동력이었다고 본다.
그는 블루칼라의 급속한 몰락을 지적하면서 혁신과 경쟁의 주체로서 ‘지식노동자’(knowledge worker)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러한 드러커의 설명 방식은 분명 1990년대에 급속하게 증대한 미국 정보산업의 경쟁력을 설명해 주는 측면이 있다.
드러커는 정보와 지식에 기반한 탈자본주의 사회를 지식사회라 부른다. 자본이나 천연자원 또는 노동은 이제 더이상 기본적인 경제적 자원-생산수단-이 아니라는 드러커의 주장은 물질의 폐기에 주목하는 조지 길더(Gilder)의 주장과 일치한다. 드러커가 보기에 앞으로 새로운 생산수단은 지식이 될 것이고 부를 창조하는 중심적인 활동 또한 지식을 작업에 적용하는 것이 된다. 이런 경우 지식노동자가 지식사회의 주도적 사회집단으로 떠오른다.
드러커는 마치 생산적인 곳에 자본을 배분할 줄 아는 자본가처럼 생산성 있는 곳에 지식을 배분할 줄 아는 지식경영자 곧 지식전문가들이 지식사회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러한 지식사회와 지식노동자에 대한 논의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네트 사용이 일반화되는 한편 디지털 경제가 활발하게 전개되자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디지털 경제론, 혹은 신경제론은 최근의 미국 경제 활황에 힘입어 주목받게 되었다.
그런데 지식기반사회론과 지식노동자론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모습은 다소 희화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식사회론과 지식노동자론 혹은 전문지식인론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른바 신지식인론이 그것이다. IMF를 맞기 전에는 거대 언론사마다 ‘정보화’를 부르짖었다. 그들은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자’는 허황된 구호를 스스럼없이 부르짖다 초등학교에 컴퓨터를 보급하자는 물질주의적 발상으로 건너뛰면서 중구난방으로 정보화운동을 펼쳤다. 그러다가 IMF체제 하에서 실업이 늘어나고 사회가 양극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자 ‘신지식인’이라는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인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뒤처지는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디지털 정보화시대에 적응하려면 자기 분야에 창조적으로 지식을 적용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새로운 상이 필요하다는 발상이다. 지식기반경제에 필요한 하부구조와 문화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출발한 것이 급기야 ‘신지식인’이라는 새로운 주체를 만들어내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최근에 이루어지고 있는 국내의 지식사회 논의나 신지식인 캠페인은 드러커류의 경영학적 논의를 매우 통속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만들어지게 되었다. 수행성과 그 효용성을 중시하는 지식관이 정책당국자의 이상한 상상력과 만나면 자장면 배달부를 바람직한 지식인상으로 제시하는 데로 이어진다.
정보사회론에서 지식사회론으로 건너뛰기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정보사회라는 막연한 논의보다 지식사회라는 주장이 지식이라면 일단 한풀 접고 들어가는 한국적 문화풍토에서 훨씬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통속적 ‘신지식인론’에서는 지식을 수행성으로 연결하는 연구개발자나, 지식 수행성을 최대로 발휘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효율성을 증대하는 노동자가 새로운 지식인으로 칭송받게 된다. 물론 자기 분야에서 창의력을 발휘하여 최고의 경지에 오르는 것 자체를 탓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중산층이 몰락한다고 호들갑떨다 갑자기 누구나 다 ‘신지식인’이 되어야 한다고 국민대회까지 여는 행태는 잘못된 것이다.
앞으로 도래할 사회가 ‘지식기반사회’인데 그렇게 되면 지식이 중요하니 신지식인이 필요하다는 발상일 것이다. 중산층 육성에서 신지식인으로의 전환 전략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먹힐지’는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거의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를 추진하는 사람들이 지식기반경제 혹은 디지털경제의 구조와 특징에 너무 무지하기 때문이다.
10. 정보와 지식(information and knowledge)
디지털 시대는 우리에게 정보와 지식에 대해 밑바닥부터 다시 생각해 보도록 촉구한다. 일반적으로 정보를 지식의 하위단위로 설정하지만 정보와 지식의 관계는 위계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순환적, 혹은 병렬적인 것이다. 통상 ‘정보의 지식화’라는 방향에서 지식을 정보보다 높은 위상으로 설정하지만, 이는 틀린 것이다. ‘정보의 지식화’와 ‘지식의 정보화’가 순환적으로 이루어진다. 데이터와 정보간에는 분명 위계적인 관계가 이루어진다. 사실과 지식 사이에도 마찬가지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정보와 지식은 위계적 관계가 아니다.
‘지식의 정보화’는 지식의 외화에 의하여 가속화된다. 지식의 외화는 지식의 상품화와 상업화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상품화된 지식은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정보화 된다. 예를 들어 학술 논문은 그것이 미디어의 형태로 가공되어 소비자에게 전달될 경우 지식보다 정보의 형태에 더 가깝다. 지식의 정보화는 통상 미디어라는 매개를 통해 형태 변화를 거치면서 이루어진다. ‘지식의 정보화’는 인식 주체의 지적 노동과 작업이 객관화되어 특정 형태의 미디어로 고착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곧 주체적 인식의 객관화가 ‘지식의 정보화’인 것이다.
‘정보의 지식화’는 ‘지식의 정보화’와는 반대의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객관화된 지식이 다시 주체화되는 과정이다. 지식의 소비는 그 자체가 재생산 과정인 동시에 생산과정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특성이 지식의 부가가치와 관련하여 상업주의가 눈독을 들이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식기반산업의 확장이 새로운 국가경쟁력의 주요한 실마리로 강조되지만 정보와 지식간의 관련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이 없는 실정이다.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은 일률적이고 표준화된 지식이었다. 산업사회의 표준화된 생산공정은 표준화된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시골에서 막 올라온 어린 처녀도 곧바로 생산에 투입될 수 있었다.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자는 국민교육헌장의 노동 지침은 산업사회에 필요한 산업역군을 대량으로 생산해내기 위한 강령이자 지침이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가난과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지식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없었지만 경제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누구나 학교를 선망했고, 그 결과 교육열은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나라가 되었다.
그 결과 대학 입학률이나 대학 졸업자의 비율도 매우 높은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경쟁력은 여전히 뒤진다. 대학의 국제경쟁력은 아시아에서도 하위권이라는 기사가 종종 신문에 실린다. 교육개혁에 대한 계획과 지침이 연례행사처럼 치러지지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육 내용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 이래서는 다가오는 새로운 사회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대학에도 자본주의적 경영방식을 도입하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각종 조치가 취해졌다. 그리고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 혹은 지식기반사회로 전환하는 세기말의 변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자는 갖가지 사회 캠페인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제 네트는 새로운 지식관과 교육을 요구하기에 이르렀음이 분명하다. 학교라는 제한된 장소, 가르치고 배우는 일방적이고 제한된 관계는 조만간 쇠퇴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디지털 시대가 오면 지식과 배움의 틀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디지털 혁명은 지식의 활용과 나눔이라는 차원에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요구한다. 분명히 지식의 나눔이란 대단히 실용적인 저의를 지니고 있다. 음식 나눠먹듯 앎도 함께 나누자는 말이다. 그런데 음식을 나누는 것은 같이 먹고살자는 단순한 차원이지만 지식을 나누는 것은 지속적인 소통, 대화, 관계를 추구한다. 지식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지식의 쓰임새라는 실용적인 수준이 아니라 관계의 차원이 깊어진다.
저급한 지식은 팔 수 있다. 그리고 팔려야 된다. 하지만 관계로 맺어지는 지식은 팔고사는 것이 아니라 물물교환, 혹은 사랑처럼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럴 경우 화폐를 매개로 물상화되는 ‘지식상품’이 아니라 ‘지식관계’로 형성되는 새로운 존재가 될 것이다. 지식이 권력의 시녀인 시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이제 지식은 자본의 시녀로 뒤바뀌고 있다. 그러한 정황에서 지식과 문화가 꽃피는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려면 구태의연한 발상을 던져버리고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우리는 신지식인 캠페인에서 송두리째 빠져 있는 공동체와 문화를 중심에 세우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11. 디지털 리터라시(digital literacy)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지식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지식기반사회에서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문해력을 갖추어야 한다. 문해력이란 기본적으로 남의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런데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인쇄매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매체가 활용된다. 특히 컴퓨터와 네트워크의 결합으로 인하여 디지털을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문해력이 지식기반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소통 능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정보 문해력’(information literacy), ‘네트 문해력’(Net literacy) 등으로 불리는 새로운 문해력의 구성요소와 내용은 무엇일까?
디지털 문해력은 ‘일상생활과 정보기술을 통합하려는 지속적 학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디지털 문해는 특정한 정보기술을 활용하는 1차적인 능력에 그치지 않고 비판적으로 정보를 고르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디지털 시대의 정보는 자기 혼자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글이나 말처럼 남과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문해력)이 남과 의사를 나누기 위한 것이라면 디지털 시대의 정보 읽기와 정보 전달 능력도 이와 다를 바 없다. 곧 남과 소통하기 위한 기술, 지식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기본적 방법과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디지털 문해력의 핵심적 구성 부분이 된다.
디지털 문해력은 1)기술적 액세스 2)컨텐츠 활용 능력 3)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세 층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디지털 문해를 구성하는 첫째 층위는 네트워크 및 컴퓨터에 대한 접근 능력으로 구성된다. 이것을 기술적 액세스(technical access) 혹은 하드웨어에 대한 접근능력이라 부를 수 있겠다. 보통 정보 문해력이라 할 때는 주로 이 부분에 대한 접근능력을 의미했다. 그래서 성인들에게 컴퓨터 활용법을 교육하고 컴퓨터 네트워크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와 방법을 제공해 주는 것이 정보 문해 교육의 주요 영역이었다.
이러한 하드웨어 활용 능력은 정보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아직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점차 하드웨어에 대한 접근능력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문제는 성인들이 정보 하드웨어에 접근하는 데 어떤 장벽이 존재하는가를 밝혀내고 이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을 투여하는 데 달려 있다 하겠다.
정보 문해의 두번째 층위는 정보 내용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으로 구성된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이고, 그것이 어디에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에 대한 노하우(knowhow)가 디지털 문해력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간 우리의 경우 퍼블릭 액세스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마치 망 보급과 하부 설비만 갖추어지면 디지털 문해가 자동으로 이루어지리라는 환상을 갖기도 했다. 정보 활용 능력에 대응하는 방식 또한 사설학원식 문제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감이 있다.
그래서 개인적 차원에서 컴퓨터 사용법이나 몇가지 주요 소프트웨어 사용법을 학습하는 것이 디지털 문해의 전부인 것처럼 오인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차원의 대응방식은 직장이나 학원의 요구에 따라 성인 학습자가 사적으로 강요된 학습 틀을 따르는 강압적 교육의 틀을 지니게 된다. 그런데 디지털 문해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 액세스나 컴퓨터 소프트웨어, 그리고 인터넷을 활용하여 무엇을 해야 하고, 정보를 어떻게 수집하며, 그것을 자신의 생활에 어떻게 응용할 것인가를 아는 능력이다.
디지털 문해의 세번째 층위는 네트워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공동체 형성이라는 차원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이 영역은 디지털 문해에서 거의 배제되어 있는 실정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서로 돕고 공유하는 정신이 매우 중요하다. 디지털 정보 문해력은 결국 남의 생각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남과 함께하는 능력, 그리고 남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 동시에 자신의 창의성을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이 진정한 디지털 문해를 갖추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12. 네트사회운동(net social movement)
인터넷과 시민운동은 새천년 벽두를 장식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화두다. 부정하고 부패한 정치권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인터넷과 시민운동의 결합이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들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사회운동은 인터넷이란 새로운 매체와 결합될 때 더욱 큰 위력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이번 총선에서는 4년 전 선거 당시에는 미미했던 인터넷의 위력이 유감없이 전개될 것이다. 인터넷이 막 도입되던 시절과 인터넷 사용자가 1,000만명에 이르는 시대의 선거 양상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거대언론의 편파보도나 왜곡보도가 이제 더이상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터넷은 거대언론의 일방적 여론몰이를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수동적 소비자를 적극적인 정보 사용자로 바꾸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다. 인터넷 사용자는 자신이 전달할 정보의 내용과 전달 대상에 대해 전면적인 권한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전달받을 정보도 적극적으로 선별할 수 있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인터넷은 시민 참여를 확대하고 연대를 회복하는 민주주의의 초석이 될 수 있다.
젊은 유권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인터넷 곳곳에 올려놓을 것이다. 인터넷 대자보에는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폭로가 사방에서 올라올 것이고 누가 부정부패를 조장했고 누가 지역감정을 먹고사는지 낱낱이 공개될 것이다.
인터넷은 여러 가지 방식과 의도로 사용될 수 있는 기술적 도구인 동시에 새로운 미디어이자 그 자체가 하나의 공동체다. 인터넷은 아직까지 그 전체적 모양이 완성되지 않았다. 앞으로 다양한 사회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인터넷의 얼굴도 달라질 것이다. 그것은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일수도 있고, 다양한 생각과 아이디어가 오가는 광장일 수도 있으며, 자본과 노동이 서로 다투는 싸움터도 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시민운동의 영역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지만 변화하는 사회적 환경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얼마 가지 않아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사회적 적대의 지형과 적대에 대항하는 운동력의 결집 방식이 인터넷의 도입으로 아주 빨리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2000년 총선을 계기로 전개되고 있는 시민운동은 인터넷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좌우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과연 인터넷에서도 참여와 연대가 이루어질까? 물론 가능하다. 그것도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네트의 사회운동은 현실사회운동과의 연관성을 유지하면서, 서로 다른 집단간의 연대를 매개하는 ‘다리’(bridge) 역할을 해야 한다. 네트는 지리적 제한과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어 상호 지지와 연대의 폭을 넓힌다. 또한 네트는 지속적인 논쟁과 폭로를 전개할 수 있으며 개별적 주체의 작은 이해도 이슈화할 수 있다는 유연성을 지닌다. 시민운동은 인터넷의 이런 특성을 잘 활용하면서 시민들의 참여와 연대를 끌어내고 이를 지속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네트만의 실천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네트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긍정적인 가능성을 열어 주지만 네트만의 실천이 공허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최종적인 권력은 결국 현실세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이버 스페이스를 통해 퍼져나가는 여론의 영향력 확대 그 자체는 권력이 아니다. 네트 안에서 전개되는 운동이 현실세계의 구체적인 실천과 조직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그 운동은 지속성과 현실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디지털 연대가 갖는 또 하나의 단점은 일시성과 체질적 허약성이다. 네트 안에서 전개되는 운동이 현실세계의 구체적인 실천과 조직으로 이어지지 못할 때 그 운동은 지속성과 현실성을 확보할 수 없다. 네트워크에 입각한 디지털 연대는 일시적으로 결집하는 기동성은 높지만 지속적인 연대와 활동이 어렵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백욱인 <서울산업대학교 교수 : 사회학>
출처: 중앙일보/2000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