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엔의 힐데가르트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역사상 가장 매혹적 인물
- 빙엔의 힐데가르트/ 크리스티안 펠트만 지음/ 이종한 옮김/ 분도출판사/ 1만 6000원
12세기 인물인 독일 빙엔의 힐데가르트(1098~1179) 성녀. 성 베네딕도회 수녀인 그의 이름 앞에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2개의 수녀원을 이끈 원장으로, 시인, 음악가, 자연과학자, 약초 채집가, 의사, 저술가, 신비가만으로도 충분치 않다. 최근에는 ‘생태주의자’라는 수식어도 새로이 붙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의 평전으로 저명한 신학자 크리스티안 펠트만은 「빙엔의 힐데가르트」를 저술하면서 그를 ‘수녀요 천재’라고 정의했다. 펠트만은 힐데가르트 수녀의 편지 모음집을 연구하면서 12세기 여성으로서- 특히 수녀로서 상상할 수 없는- 시대를 뛰어넘는 삶을 살다간 그에게 매료됐다. 그러면서 저자는 힐데가르트에 대해 “이 굉장한 인물, 열성과 격정으로 가득 찬 에너지 넘치는 인격, 자의식이 강하며 자주적인 동시에 자기 비판적이며 총명하고 실로 신뢰할 만하며 냉철한 이성과 타오르는 열정이 진지하게 융합된 이 인물을 묘사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손을 들고 만다.
힐데가르트는 12세기 전까지 전대미문의 여성의 삶을 살았다. 그는 교황, 영주, 주교, 영국 국왕 부부, 의지할 데 없는 부인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또 광장에서 군중을 향해 성직자들의 권력욕과 교회 지도자들의 탐욕에 항의하는 설교를 했다. 또 신비가로서 환시를 보고, 전인적 의학과 자연요법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전파했다.
펠트만은 힐데가르트의 신학이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의 우주적 그리스도에 관한 비전과 공통점이 많다고 한다. 특히 창조계에 대한 사랑, 인간들에게 언제까지나 절대적으로 신실하신 하느님께 대한 사랑, 그리고 모든 피조물의 통일성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이 중세 천재 여성에게 배울 수 있다고 한다.
펠트만은 또 2012년에 성인품에 올라 ‘교회 학자’로 선포된 힐데가르트 수녀를 두고 “땅에 대한 충실함을 하늘에 대한 사랑과 결합시킨 역사상 가장 매혹적인 인물”이라고 평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5월 14일, 리길재 기자]
[북카페] 빙엔의 힐데가르트
오랜만에 만난 한 수녀님께서 “우리 집에서 수녀님들이 만든 거예요.”하며 작은 약통을 하나 주셨다. 자주 뵙지 못하지만 만날 때마다 주시는 작은 선물에는 늘 수녀님의 고운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포교베네딕도회 대구수녀원 ‘약초 크림’이라고 적힌 노란 약통과 함께 안내서도 주셨다. 피부와 여러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 꼼꼼하게 쓰인 안내서에서 ‘힐데갈드 약초방’이라는 이름이 눈길을 끌었다. 힐데가르트 성녀에게서 유래한 약초를 이용한 차와 조리법, 자연 치료제가 독일에서 인기가 있다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익숙한 이름에 끌려 『빙엔의 힐데가르트』를 손에 들었다. 책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졌다. 책을 읽으면서 든 첫 생각은 이랬다. ‘아뿔싸! 이렇게 엄청난 여성이었다니.’
힐데가르트 성녀는 고대에서 중세로 막 넘어가던 1098년에 태어났다. 성녀는 어릴 때부터 신비로운 환상을 보았지만 숨기며 지내다 마흔셋의 나이에 환시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분을 한두 마디로 정의할 수가 없다. 동시에 수녀원 두 곳을 이끈 수녀원장, 시인, 음악가, 약초 채집가, 저술가, 신비가로도 충분하지 않다. 특히 독일 최초의 여성 자연과학자이자 처방전을 쓴 여의사로서 이분의 전인적인 의술은 오늘날 그 가치가 재발견되고 있다. 이 책은 힐데가르트 성녀의 일생을 상세히 다룬다. 그 옛날 온갖 약초와 식재료의 효능을 발견하고 정리했으며 이를 이용한 자연 치료법에 대한 내용은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삶은 보리쌀이 피부에 좋다는 것, 아마씨 진액이 화상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 고급 포도주는 빵에 적셔 먹거나 희석해 마시는 것이 더 좋다는 것 등이다.
수녀원을 세운 이야기는 더욱 놀라웠다. 12세기 당시 수녀원은 남성 수도원에 부속되어 있었고, 수녀들이 독자적으로 수녀원을 이끌어 가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힐데가르트 성녀는 독립해 수녀원을 세우기로 한다. 남성 수도자들은 심하게 반발했다. 수녀원과의 재산 분할도 문제였지만, 힐데가르트의 명성이 높아지자 유럽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지체 높은 사람들의 후원도 커졌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성녀는 최초의 독립된 수녀원을 세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성녀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을 끊임없이 의심했고, 수녀원을 세우는 것도 두려워했다. 그러나 두려움을 이기고 하느님께 나아갔다. 하늘로부터 받은 재능과 사명을 거듭해서 묻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강단 있게 이루어나갔다.
짧은 지면에 이 매력적인 인물에 대해 자세히 담지 못해 아쉽다. 책을 통해서라도 많은 이들 이 담대한 여성,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을 사랑하고 아낀 생태학자, 아름다운 노래로 하느님을 찬양한 음악가, 치유하는 의사, 하느님과 교유한 신비가였던 놀라운 여성을 만나기를 바라본다. [2017년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남북통일 기원 미사) 대구주보 4면, 분도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