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숨은 명산을 찾아서
양산 염수봉(816m)
영남알프스 막내, 간간하니 딱 좋아!
대밖동에서 황계계곡으로 이어지는 수수한 산길
들머리가 갸우뚱거린다. 지도에는 대밖동인데 마을 표지석에는 용호마을이다. 이유가 궁금하지만 물어보는 것은 좀 멋쩍다. 마을이 몽땅 펜션인 탓에 휴식을 즐기는 타지인들만 눈에 띈다. 저들도 잘 모를 것 같다. 마을 사람을 찾아 물어볼까, 망설이다가 다리 힘만 빼는 것 같아 그만둔다. 토박이보다 타지인이 더 많은 시골 풍경이 낯선 듯 하면서도 낯익다. 마을 이름이 두 개는 있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산으로 들어선다. 땅을 디디고 일어선 것들은 다 푸르다. 풀과 풀 사이가 푸르고 나무와 나무 사이가 푸르다. 길은 푸름에 묻히지 않으려고 등성이를 치고 오르며 가팔라진다. 길을 따라 가는 걸음이 휘청거리고 등줄기에는 더운 땀이 줄줄 흐른다. 마침 바람이 분다. 그러나 겹겹이 쌓인 푸름에 막혀 길까지 내려오지 못한다. 쏴아 쏴아~~ 바람 소리만 귓가를 스친다. 멈춰 서서 나무를 올려다보니 우듬지에 매달린 나뭇잎만 흔들린다.
산으로 파고드는 먹구름 속에서 천둥이 운다. 나무 뒤에 숨어 으르렁거리는 산짐승 소리처럼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다.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곧 장대비가 되어 쏟아질 것 같다. 힐끔, 먹구름 눈치를 본다. 번개까지 치면 산을 내려가라는 고함처럼 빗소리가 요란할 것 같다.
비 걱정에 사로잡힌 틈을 타 길이 산등성이를 벗어나 계곡 쪽으로 바싹 붙는다. 비로소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만난다. 찬물에 얼굴을 씻고 발을 담근
것처럼 시원하다. 길옆에선 아름드리 홍송 줄기가 잔가지 없이 쭉쭉 뻗었다. 생김새가 힘이 넘치고 시원하다. 소나무 밑에 서서 땀에 젖은 몸을 말린다. 두 팔을 들어 올리니 능선으로 날아오를 듯 가뿐하다.
724봉은 숲길이다. 지나쳐 걸으니 바위전망대가 나오고 805봉이 나온다. 곧 정상도 나오겠지만, 산은 구름과 안개 범벅이다. 그 속에 나뭇잎이 희뿌옇게 떠 있고 나무줄기가 말뚝처럼 박혀 있다. 눈앞에 있지만 잊혀지는 것처럼 어렴풋하다. 어디쯤인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꿈속 같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바위가 젖어 미끄럽다. 나뭇잎에도 물방울이 맺혀 대롱거린다. 풀섶은 물을 머금은 스펀지 같다. 헤치고 나갈 때마다 물을 짜내는 것처럼 질퍽하다. 앞장서서 걷던 일행이 길옆으로 비켜선다. 비를 맞은 것처럼 바지와 등산화가 다 젖었다고 하소연을 한다. 뒤따라 걷던 이들은 제자리에 멈춘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미 젖은 사람이 계속 앞서라는 눈웃음만 풀풀 날린다.
옛날 이 산에는 산불이 자주 났다. 산 밑에서 초가집을 짓고 살던 사람들은 늘상 산불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을 지나가던 도인이, 이 산봉우리에 소금물을 묻어두면 산불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사람들을 서둘러 소금물을 독에 담아 이 산봉우리에 묻었다. 그 후에는 도인의 말대로 산불이 나지 않았고 이 산은 소금물을 묻어둔 봉우리, 염수봉이 되었다.
자욱하게 짙어가는 안개와 구름... 장마가 아니라 산에 뿌리를 내린 염수 때문인 것 같다. 정상에 서도 가까스로 정상만 보인다. 정상 오른쪽 길로 내려가니 이내 임도가 나온다. 영남알프스의 막내라 불리는 이 산이 장난치듯 마구 닦은 걸까. 임도는 정상 왼쪽에도 나있다. 비록 정상 오른쪽으로 내려섰지만 그 왼쪽 임도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임도는 끝없이 오른쪽으로 굽이돈다. 정상에서 방향을 잃었구나 하고 헛웃음이 나올 무렵엔 내석고개가 가깝다.
맑은 날 다시 산에 오른다. 정상에서 왼쪽 길로 내려서서 산행을 이어간다. 가끔 새소리만 들릴 뿐 고요한 길가에 산나리가 피고 싸리꽃이 진다. 햇살이 내리쬐지만 허공은 젖었는지 습기가 가득차 희뿌옇다. 길이 훤한 것만 해도 다행이다. 산행을 무사히 마치는 것만 해도 고맙다고 마음을 달랜다.
산을 타면서 욕심을 버리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산행길잡이
풍호일교(다리)-(1시간20분)-724봉-(25분)-805봉-(15분)-정상-(15분)-임도 옆 돌탑-(45분)-오세암 주말농장-(20분)-내석마을회관
소금물을 묻어둔 봉우리 '염수봉(鹽水峰)'
풍호마을 이정석 앞에서 풍호다리를 건넌다. 풀하우스와 둥지펜션을 지나면 펜션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있다. 안내판 맨 밑에 있는 고은하우스 방향인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고은하우스에서도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마당 끝에 등산로가 있다. 풍호다리에서 5분쯤 걸린다. 등산로는 울창한 숲길이다. 꽤 가파른 길을 45분 정도 올라가면 쓰러진 거목이 나온다. 그 앞에는 고사목 한 그루가 서있고 연이어 아름드리 소나무가 늘어선다. 쓰러진 거목에서 724봉까지는 30여분 걸린다.
724봉에서 내려서면 갈림길이다. 왼쪽 길(직진)로 간다. 곳곳에 바위지대가 나타나지만 위험한 곳은 없다. 25분쯤 가면 805봉이 나오고 805봉 밑에는 넓은 바위 전망대가 있다. 바위전망대를 지나 풀밭 같은 숲길을 10분쯤 걸으면 컨테이너박스가 놓여 있다. 컨테이너박스 양쪽에는 임도가 나있다. 왼쪽으로 난 임도는 도태정골로 가고 오른쪽으로 난 임도는 내석고개로 연결된다. 두 임도 사이로 난 등산로를 따른다. 천천히 걸어 5분쯤 가면 정상이다.
정상에는 정상석을 사이에 두고 길이 두 갈래다. 왼쪽 길로 내려선다. 임도를 두번 만나고 한번은 지나치며 15분 정도 가면 임도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에 다다른다. 이 지점 오른쪽 숲에 돌탑이 하나 서있다. 등산로는 이 돌탑 옆으로 이어진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45분쯤 가면 오세암 주말농장이 나온다. 농장 입구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만 계곡을 건너가면 된다. 넓은 길로 나선 후에는 오른족으로 간다. 구불사를 지나 내석마을회관이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20분 정도 걸린다.
*교통
부산역에서 원동행 무궁화호 열차(07:50, 09:15)가 다닌다. 부전역에서는 06:50, 10:00에 출발한다. 소요시간 약 30분, 요금 2,500원.
원동역에서 배내골행 버스(07:35, 09:55, 10:45)를 타고 대밖동 펜션단지(풍호마을) 입구에서 하차한다. 소요시간 약 30분. 요금 1,000원.
날머리 내석마을에서 양산터미널행 버스(15:00, 16:20, 17:10, 19:50)가 있다. 소요시간 약 40분. 요금 1,000원.
양산터미널에서 부산 명륜동행 12-1번 버스(휴일)가 14:55, 18:10, 20:05에 있다. 요금 1,300원. 양산터미널에서 한 정류소 거리에 있는 도시철도 양산역 앞에서 부산 구포행 24번 버스(15:30, 16:10, 16:40, 17:15, 17:40, 18:10, 18:55)가 있다. 요금 1,300원.
도시철도 양산역에서 부산행 열차가 15분 간격으로 있다.
승용차는 경부고속국도를 타고 양산요금소로 나간다. 어곡터널, 신불산공원묘지를 차례로 지나면 배내골이다. 부산 덕천교차로에서 호포, 물금을 지나 1022번 지방도를 타고 원동으로 가도 된다. 원동에서 69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배내골이 나온다.
*잘 데와 먹을 데
들머리가 펜션단지다. 풀하우스(011-2284-2988), 고은하우스(011-4566-2311), 산골의하루(017-843-0632) 등 펜션이 많다.
날머리 내석마을에 오리불고기, 닭백숙을 하는 내석산장(055-375-2621), 비빔밥, 파전을 하는 이름없는 가게(375-7295)가 있다.
*볼거리
배내골 양산시 원동면 대리, 선리, 장선리와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을 잇는 긴 골짜기다. 가지산, 신불산, 사자봉, 재약산 등 영남알프스의 준봉들을 끼고 있어 골이 깊고 경관이 수려하다. 여러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계곡물이 모여 흐르는 곳으로 눈이 시릴 만큼 물빛이 맑다. 이처럼 맑은 물가에는 야생 배나무가 많이 자란다. 이천, 곧 배내골이다. 밀양댐이 건설된 후에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물놀이, 취사행위는 할 수 없다. 원동쪽 들머리에 원동자연휴양림과 불암폭포, 영포 매화마을, 신흥사가 있어 둘러볼 만하다.
글쓴이:박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