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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다. 힐데가르트 시대에는 수많은 이들이 승자였지만 소수의 패배자들 또한 관심을 받지 못했을 뿐 명백히 존재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체제와 민심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것에 있으며 그 원인에는 그들 자신의 행적에 있었다는 점으로 그렇기에 아무도 이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관심도 동정도 도움도 받지 못하는 이들의 처지는 매우 비참하다. 그래도 일코에 성공한다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고 그들에게도 예외없이 시대의 혜택을 보겠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남몰래 자신들의 찬란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비통해한다는 점에서 그들 역시도 비참하다.
그들은 누구인가, 지난 160년간의 전쟁은 인류사회를 병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이용해, 그 상황 속에서 자국에서 벌어진 부조리를 활용해 제 이익만을 탐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 전쟁의 시대라는 특수 상황과 자국의 정치상황을 철저하게 활용하며 이익을 탐해왔고 그랬기에 반대로 새 시대에 탑승하기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그들 중 하나는 몰락한 문벌귀족이었다. 500년 전, 그들의 조상은 루돌프에게 붙어 그가 황제가 되도록 도왔고 제국의 건국 후 얼마 안 되어 그들은 귀족이라는 특별 계급에 서임되어 부와 권력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렇게 획득한 부와 권력은 대대로 이어지며 끝없이 커져갔고 골덴바움 왕조 말기에 이르면 그 해악을 도저히 일일이 말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문벌귀족들은 자신들의 부귀영화가 영원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라인하르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립슈타트 전역을 승리로 마무리지은 라인하르트는 패배한 귀족들의 재산을 모두 압류하였고 그 액수는 돈으로만 10조 마르크에 달했다. 프리드리히 4세 시기, 간신히 재정고갈을 면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재정수준을 유지하던 제국재정은 단숨에 흑자로 전환하였고 이는 제국이 개혁되고 우주를 통일하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
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으로 돌아왔지만 반대로 재산을 잃은 귀족들에게는 재앙이었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기본적인 경제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노동 없이 영지에서 나오는 막대한 부를 탕진하는 것 외에 달리 하는 경제활동이 없었다. 때문에 갑작스러운 재산의 상실은 그들을 다시는 올라올 수 없는 사회의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지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도 이전 시대에는 재산만이 아닌 목숨까지 앗아간다는 점에서 이전 시대보다는 자비로운 처분이었으나 그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목숨보다 귀족으로서의 체면이었고 이것을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빵은 없을지라도 고급 와인은 꼭 챙겨 마셔야 뿌듯할 그들인데 돈이 없다면 빵은 더러 누군가가 가엾게 여겨 줄 수 있고 자존심을 조금 굽힌다면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한 빈민구제를 위한 무료 급식소 같은 곳에서라도 받을 수 있지 고급 와인은 누가 준단 말인가?
때문에 어떤 귀족은 재산이 압류당하기 전, 허겁지겁 재산을 챙길 수 있을 만큼 챙겨 페잔이나 동맹 등지로 망명하고 또 어떤 귀족은 재산을 잃는다는 절망감에 자포자기한 채 자살하는 등 어떻게든 재산을 잃지 않고자 했고 그래도 제국에 남아있으며 동시에 재산은 지키고 싶은 귀족들은 그제서야 고개를 숙이고 여기저기 도움을 구하고자 하였다.
그중에서 한 가문은 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가 라인하르트에게 스카웃 제의를 받은 경력과 자신들이 그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으니 이를 믿고 한번 동앗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구한 것인데 라인하르트는 슈트라이트를 등용하는 조건으로 그의 청을 들어주어 다행히 이 가문은 재산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 가문과 같은 행운을 누릴 수 없는 법. 이 가문은 도움을 구한 사람이 라인하르트가 원하는 인재였다는 크나큰 행운을 얻어 어쩌다가 재산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지 대부분의 가문들은 얄짤없이 재산이 압류당했고 그들은 그렇게 사회의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 와중에도 진심으로 자신들의 부와 권력이 정당하다고 믿는 이들은 떠나는 재산과 가신, 하인들을 향해 꽥꽥 소리질렀고 끝까지 저택에서 나가지 않으려 했으나 라인하르트는 봐주지 않고 철저히 집행했다.
모든 것을 잃은 그들은 비통한 심정에 잠겼다. 제국이 개혁되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소식은 그들에게 딴세상 이야기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잘 되어야지 좋아지는 것이지 국가나 '천한 것'이 좋아지는 것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이러다 보니 구귀족 사이에서 라인하르트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아졌으나 귀족이라면 치를 떠는 민중들이 자발적인 감시자가 되어 그들이 무슨 수상쩍은 행동만 하면 고발하였기에 그들은 그저 신체제를 비난하는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분노를 다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드리웠으니 은하제국 정통정부의 등장이었다. 귀족들 중에서 동맹으로 망명한 이들 중 일부가 황제를 떠받들어 결성했다는 망명정부는 그들이 반란군이라고 멸시하던 땅에 세워졌으나 이들은 이 때만은 동맹을 칭송하였으며 그들이 제국으로 쳐들어와 근본도 없는 금발 애송이의 머리를 날려주고 자신들의 세상이 다시 도래하기를 바랬다. 어차피 1세기 전에도 국내의 정치적 상황에 휘말려 동맹에 망명갔다 돌아온 황자가 즉위한 전례가 있었기에 그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정통정부의 수립조차 라인하르트의 작품이었으니 정통정부는 라인하르트의 의사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귀족 잔당들은 혹시라도 민중들이 황제를 향해 지지를 보내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지만 민중들은 오히려 귀족정치를 부활시키려는 정통정부와 그에 협력하는 동맹에 분노하며 이들을 타도하기 위해 라인하르트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입대를 꺼리지 않아 그들의 망상을 완전히 산산조각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가 아무렇지도 않게 황제를 폐위하고 새 꼭두각시 황제를 앉힘과 동맹령 침공에 나섬으로서 이들의 마지막 희망마저 앗아갔다. 결국 제1차 라그나로크 작전에서 제국이 승리하고 은하제국 정통정부가 완전히 해산함으로서 그들의 꿈은 완전히 헛된 것임을 증명하였고 심지어 골덴바움 왕조가 멸망하여 자신들의 마지막 희망마저 빼앗기자 그들은 완벽한 허무감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자 그들 중에서는 복수를 기도한 이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엘프리데 폰 콜라우슈 처럼 말이다. 하지만 파편화된 개인으로서의 시도는 늘 성공하지 못했고 이들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이 상황 속에서 이들 대부분은 끝까지 자신들은 억울하다고 믿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당한 권리'를 위해 싸웠을 뿐이고 자신들은 단지 패배했기에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이라 믿었다. 실제로는 그들의 부와 특권은 불공평하며 평민들의 피땀을 쥐어짜낸 결과이건만 그에 지나치게 젖어 그것을 알지 못한 것이었다.
물론 이 때쯤 되어서 뭔가의 깨달음을 얻은 이들도 없는건 아니었고 그들은 현실을 자각하고 타협하였다. 라인하르트가 말했듯이 굶어죽기 싫다면 지난 500년간 평민들이 그래왔듯 일을 하면 되었다. 현실에 타협한 귀족들은 일자리를 구하고자 하였다. 허나 그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일을 배워본적도 해본적도 없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았다.
여기다가 당시 제국은 귀족과 귀족의 이미지가 사회적으로 배척되는 분위기였기에 그나마 귀족들의 상류층 생활을 모방하거나 귀족을 부린다는 자아도취가 강한 이들도 귀족을 고용했다는 것이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귀족의 가신이나 집사 출신들이라면 모를까 귀족 자체는 고용을 꺼렸다. 그나마 운 좋게 친척중에 무사한 사람이 있어도 친척들도 대부분 이들을 꺼렸다. 어차피 문벌귀족간에도 친척이라고 해서 사이가 좋은건 아니었고 그나마 인망이 정말 좋은 사람은 친척인 잔존 귀족에게 의탁하거나 옛 영지민들에게 동정을 사 조금의 땅을 얻거나 그들의 도움을 받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나마도 결국 일은 해야 했지만.
그나마 사람 좋은 마린도르프 백작은 이들 귀족들에게 도움을 주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백작은 자신에게 도움을 구하는 귀족들을 외면하지 않고 한동안 먹고 살만한 돈을 주어 도움을 주고자 했지만 이들은 돈이 생기자 옛 버릇이 다시 튀어나와 낭비에 전념하였고 백작에게 계속 돈을 요구하여 결국 백작 또한 더는 그들을 도울 수 없었다.
그나마 정말 운 좋게 안정적인 직업을 구한 이가 있긴 했다. 귀족들은 아무 노동도 하지 않았지만 권력에 있어 핵심인 정치나 군사등에는 관심이 많았고 또 많은 이들이 예술에도 관심이 있었으므로 그들 중 드물게 제대로 재능이 있는 이들이 드물게 대성(?)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도 결국 실력주의가 자리잡은데다 이전과는 달리 귀족에 대한 특권이 사라진 신 체제에서 하급 직책부터 시작해야 했다. 이들 자리는 거의 평민 출신이었으므로 그들과 같은 대우를 감내해야 조직생활이 가능했고 그나마도 승진은 이 시대에는 많은 인재들이 빛을 보게 되었으므로 고위직에 올라가는 이는 거의 없었다.
예술가들 역시도 마찬가지로 재능은 있었으나 귀족적 색체가 묻어날 수 밖에 없었기에 재능이 있더라도 귀족들의 문화에 관심있는 이들이 아닌 이상 관심가지지 않았고 결국 이들 모두 먹고는 살만큼 버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한 이들이야말로 가장 덜 비참한. 아니, 유일하게 비참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거기다가 아무리 현실에 굽혔다고 해도 평생을 귀족으로 살아오며 익힌 버릇이 있다보니 이들은 어딜가나 쉽게 살기 힘들었다. 그나마 성공한 이들은 평민 출신들에게 왕따당하고 그나마 이들은 제국정부라는 뺵이라도 있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한 이들은 빽이 없어 생계가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위태로운 경우도 많았다. 이들에 의한 평민들의 원한은 상상 이상으로 깊었고 때마침 귀족들이 몰락하자 평민들은 복수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랬기에 귀족들의 고충은 심했다. 성공한 이들도 늘상 불안에 떨어야 했고 성공하지 못한 이들은 보복을 피해 늘 제도 오딘 전역을 떠돌아다니며 살아야 했고 성공한 이들은 그래도 집안을 어느정도 유지하는데 성공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이들은 집안이 완전히 몰락해버렸고 어쩌다 돈을 손에 넣더라도 의미없이 탕진하여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라인하르트는 빈민들이 굶어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러 정책을 마련했고 이 혜택에는 굳이 신분의 차이를 두지 않았으며 때문에 여기에 의존하여 살아간다면 다소 질은 낮지만 먹을 것은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귀족들은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이 혜택을 받기를 거부했다.
귀족들의 가정도 불우했다. 그나마 성공한 귀족들은 이전보다 빈궁하지만 먹고살만한 가정은 유지하였기에 가정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드물었다. 단지 사회적으로 귀족출신들을 따돌림하는 것과 그것에 대한 하소연을 할 곳이 막막하다는 것이 문제로 평민과 이들간에 분쟁이 벌어지면 정말 심한 사건이 아니면 평민에게 유리하게 결론내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성공하지 못한 귀족들의 가정은 개판 그 자체였다. 가난이 반복되다보니 어느새 귀족집 가정에서는 먹을게 생겨도 남에게 안 주고 내가 혼자 먹는 풍조가 퍼져나갔으며 심지어는 부모가 어린 자식의, 자식이 늙은 부모의, 남편이 아내의 먹을 것을 뺏어먹는 일까지 벌어졌다.
세대갈등도 심하여 젊은 자식들도 어린 자식들도 선택을 잘못하여 가족을 비참하게 만든 부모를 원망하며 부모의 귀족주의를 혐오하였고 부모는 자식의 존경을 받지 못했으며 늙은 부모는 방구석에 방치된 채 쓸쓸히 살아가야 했다. 어린 자식들 중에는 부모와의 갈등 끝에 가출하는 일도 많았는데 그래도 부모가 워낙 비정상적이었던지라 오히려 가출한 아이들이 부모에게 남아있는 아이들보다 사회에 합류하는 비율이 높았다.
라인하르트의 재위는 매우 짧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마치 실제 재위의 10배마냥 길게 느껴졌다. 거기다가 그들은 희망고문까지 겪었다. 예를 들어 라인하르트 생전에는 은하제국 정통정부의 건도 그러했지만 힐데가르트가 황후가 된 것도 그러했다. 힐데가르트가 황후가 된다는 것에 문벌귀족들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였다. 그래도 같은 귀족인데 뭔가 챙겨주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후가 된 힐데가르트는 아무런 정치적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국무상서인 마린도르프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쨌든 힐데가르트가 황후이니 언젠가 좋은 날 올거라고 믿으며 그것 하나만 기대하며 온갖 수모와 멸시(?)를 헤쳐나갔다. 그리고 라인하르트가 죽자 그들은 모두 기뻐했다. 자신들의 원수가 죽은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쩌면 로엔그람 왕조가 끝날 수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황후였던 힐데가르트가 섭정이 된 만큼 틀림없이 자신들에게 기회가 온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망상일 뿐이었다. 힐데가르트는 결코 골덴바움 왕조의 체제로 회귀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설령 그녀가 그걸 원했더라도 라인하르트가 생전에 뽑아놓은 인재들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로엔그람 왕조의 수뇌부는 모두 한 목소리로 Nein!(나인!)을 외쳤고 그렇게 그들의 마지막 헛된 망상은 끝나고 말았다.
이에 배신감을 느낀 귀족 중에선 로엔그람 왕조에 해를 입히고자 했으나 제대로 이뤄낼 리 없었다. 심지어 같은 몰락귀족 출신으로서 겨우 출세한 이들은 오히려 다른 누구보다도 이들을 때려잡는데 적극적이었으니 이를 통해 자신의 실적을 쌓고 또 충성심을 인정받고자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같은 사건은 일부 몰락귀족 출신들에게는 도움이 되었을지언정 그들 자신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나면서 그들에게서 골덴바움 왕조 시절의 흔적은 많이 사라졌다. 여전히 귀족으로서의 자존심은 남아있었지만 그러면서 먹을 것만 보이면 손대려고 하고 생기면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려고 하는 등 사고와 행위의 괴리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사람들은 더는 이들을 무서워하지도 경계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들을 향해 '문벌거지'라는 멸칭을 붙여주며 철저히 무시하고 비웃었다. 오딘에서 적선을 바라는 몰락귀족들을 목격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고 특히 이들은 그래도 자존심은 남아있는건지 이제는 박물관이 된 노이에 상수시에서 많이 목격되었다.
특히 노이에 상수시는 서원과 남원에 거주시설이 많아서 몰락귀족들은 이곳에서 아얘 살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귀족이 '옛 시대의 특이한 문화'를 간직한 사람 취급되어 박물관의 일거리를 얻으며 아얘 정식 거주하기도 했지만 이런 운 좋은 사람 또한 극히 일부였다. 물론 당연하겠지만 이 노이에 상수시를 두고도 몰락귀족들은 저희들끼리의 암투를 벌였다. 누가 더 구걸하기 좋은 위치에 자리잡는지, 누가 더 좋아보이는 잠자리를 차지하는지 다투어댔고 이 싸움 또한 관광객들의 재미있는볼거리였다.
하지만 이렇게 마지막 자존심 때문인지 노이에 상수시에 남은 몰락귀족들도 행복하지는 않았다. 옛날이라면 아무나 출입할 수 없던 노이에 상수시에 평민이 출입하고 자신들은 거지가 되어 평민에게 적선을 바라며 평민들은 자신들을 매우 우습게 여기며 푼돈을 던져주는 것을 매우 수치스러워했다.
그러다 보니 노이에 상수시에서는 간혹 몰락귀족에 의한 범죄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이 때 범인들은 몸을 숨기기 위해 전설처럼 전해지는 '비밀통로'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밀통로는 어느 누구도 완전한 실체를 몰랐던 만큼 몸을 피한 이들 중 다시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온 이들은 언젠가 체포되었고 다시는 노이에 상수시로 돌아갈 수 없었고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이들은 영영 행방불명이 되었다.
이렇게 몰락귀족들은 철저히 시대의 패배자였다. 그래도 잔존귀족들은 특권은 잃어도 정도에 따라선 재산을 온전히, 적어도 먹고 살 만큼은 건졌기에 사정이 나았지만 이들만은 정말 처참하게 비참한 처지로 굴러떨어졌다. 그래서 언젠가 이들 중 누군가는 자신들이 억울하다고 외쳤지만 돌아온 것은 주변에 있던 평민들의 분노섞인 말과 가혹한 린치 뿐이었다. 평민들은 500년동안 억울했으므로 단지 자신의 대가를 치뤘을 뿐인 몰락귀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들은 패배자라도 그간 부정행위로 승리해온 승리자들이었기에 전혀 동정받을 수 없는 패배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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