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의 문턱에서
-동파 이영만 미주 여행기-
-I am seventy nine years and plus one day old.-
우리 나이로 80이라는 것은 서양사람들 방식이라면 [(365일x79)+1일]인 셈이다. 내 생일이
음력으로 9월19일이니 양력으로 환산한 나의 금년 생일은 11월 9일이다.
금년 내 생일은 여느해의 생일과는 조금 다른 뜻이 있다면서 둘째가 만약의 경우를 위하여 미국
샌디애이고 근교, 산 크레멘테에 11월 5일부터 11월 12일까지 콘도미니엄 하나를 예약해 두었
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한번 어떤 방향으로 기울어지면 자꾸만 그것을 합리화 할려는 습성이 있는가보다.
얼마전 재혼한 큰 아이의 신혼여행(?) 흉내를 이런 기회에 마련하여 주고 싶기도 했다.
또 살아오면서 큰딸 둘째 딸과 함께 지낸 시간들이 너무 짧았기에 이런 기회에 한참이라도 같이
생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행히 나에게는 16만km가 넘는 꽤나 많은 KAL의 보너스 마일리지가 남아 있기도 했다.
그래서 내 직계자녀 중 생업이나 학업에 지장이 있는 식구를 빼고나니 총 8명은 가도 될 것 같았다.
우리 내외, 수환 내외, 혜경 혜옥, 그리고 외손자(형준) 외손녀(경아)가 우리 일행이다. 대 부대라면
대 부대다. 차는 모르긴 몰라도 9인승이나 10인승을 렌트(rent)하여야만 할 것 같다. 만약의 경우를
위해 국제 운전먼허도 따 두었다. 수환이도 이런 저런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인천 출발 2006년 11월 05일 15 : 00시, KE0017편으로 영종도를 떠서 장장 11시간을 날아 LA에
도착한 것이 현지 시간으로 11월 05일 아침 아홉시였다. 1953년이나 59년에 느꼈던 그런 여행이
주는 흥분이나 호기심은 별로 없는 나들이었다. 태평양 횡단이었다.
LA공항에는 내가 짐작한대로 한우씨가 나와서 반가히 맞아주었다. 그의 백만불짜리 미소는 이럴
때 사람 마음을 푹 녹여준다.
2006년 11월 5일 (일)
우리는 L형이 몰고온 최신의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곧 바로 허리우드의 유니버셜 스튜디오로 달렸다.
시간이 있을 때 미리 미리 하나라도 더 봐두어야 한다는 터주대감의 권고이자 명령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여행중 내가 관광에 동참한 것은 이 날 하루뿐이었다.
이 마이크로버스는 L형이 앞으로 1주일간 우리를 몰고 다니기 위해 특별히 부탁해서 구한 렌트카이다. 우리는 이 차로 8일 동안에 최소한 3000마일은 달렸을게다. 그런데 L형은 얼마에 빌렸는지 기름을 얼마나 썼는지 나에게는 입도 뻥끗 못하게 한다.
유니버셜 스튜디오.... 산골짜기 하나를 몽땅 차지한 방대한 스튜디오이다.
이곳 저곳에 눈에 설지 않는 풍물들이 있다. 크라크 케이불이 있고, 제임스 스츄어드가 있고 그리고
서부의 주막집이 있고.... 투어 도중에 간간이 시범하는 물과 불의 위력은 사람 놀라게 한다.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둥치가 큰 친구들이 되어서 장난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기는 매한가지이다.
경아와 형준이가 낯 선 이국땅에 와서 마치 저의 집 뒷마당에서 놀 듯 신바람이 났다.
나는 ‘저 나이 무렵에 우리집 4방 60리를 벗어나 보지 못했는데’하고 생각하니 격세지감이 있다.
저녁엔 LA 다운타운에 있는 진주곰탕집에서 한국에서보다 더 맛있는 곰탕을 먹었다. 은경이
내외가 아이들 대리고 합류했다. 저녁값은 은경이가 밥먹다말고 슬그머니 살아지더니 어느새
지불했단다.
식당에 오는 길에 도서관 뒷마당에서 문파옹 조손을 만났다. 반갑고 말고이다. 말로 하자면 밑도 끝도 없다. 은경이하고는 11월 9일(음력 9월19일-내 생일날) 다시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Murrieta에 있는 L형 집을 향했다.
우리가 예약해둔 콘도에는 절대로 보낼 수 없단다. ‘취소하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왜 말을 듣지 않느냐’ 면서 마치 내가 자기의 동생벌이나 되는듯 불호령이다.
장장 한시간 여를 프리웨이 낯선 밤길을 달렸다. L형이 집으로 예정 도착시간을 알리는듯 하더니 잠시후 그가 ‘여기가 우리 집 입니다.’ 하고 차를 멈추는 저택 앞에는 맑은 밤하늘 아래 등불이 휘황찬란하다. 나는 언젠가 북구사람 집에 초대받았을 때 경험한바 있어 그것이 우리를 환영한다는 뜻이라는 것을 즉각 알았다.
대저택이다. 안팎으로 잘 다듬어진 자이안트한 맨션이다.
늦은 시간인데도 아주머니는 정성것 우리를 접대한다. 순간 순간마다 ‘나는 아무 것도 해 드린 것이 없는데’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이날 밤 먹은 청포도와 망고등 과일은 ?纓㈆琯? 돈황에서 먹은 그 포도보다 났으면 났지 결코 뒤지지 않았다.
오늘이 음력으로 9월 15일이다. 영롱한 달빛이 하도 정겨워 사진 몇장 찍었는데 사진은 생각보다 잘 나오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2006년 11월 6일 (월)
이날부터 나에게는 자유란 별로 없는 몸이 되었다. 바보라면 바보가 되었다.
이곳에 있는 동안 나는 단 한번의 밥값도 못 내 보았을뿐 아니라 골프장 입장료조차도 내 보지를 못했다.
아침 7시반에 기상 명령이 내렸다. 아침 식단은 한식이었다. 빵 한두조각이면 넉넉하다고 수없이 말씀드렸는데도 관광 돌아다닐려면 배가 든든하여야 한다는 아주머니의 고집 센 배려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배려하는 그런 배려가 아닌 배려임을 나는 안다.
오늘은 식구들이 디즈니렌드를 관광하는 날이란다. 가는 길 오는길은 많은 손질을 거쳐서인지 전에
와 봤다는 느낌은 전여 들지 않는다.
매표소 앞에 권태동이 연락이 되어 나와 있었다. 건강한 모습이 반갑고 기특하기만 하다. 나종에 들은 이야기이다마는 태동이가 관람중 군것질하라면서 용돈까지 주고 갔단다.
고마워!
오후 다섯시에 바로 그 자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L형과 나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Costamesa C.C.에서 영호와 김옥석이 합류했다. 영호는 나의 삼종숙이며 김옥석은 L형의 골프 친구이다. 맑은 공기와 짙은 초록의 훼어웨이, 알맞게 따끈한 햇살. 이렇게 해서 우리의 7일연짱 골프의 첫날은 시작되었다.
저녁은 식구들과 합류해서 디즈니렌드 근처의 코코 레스트런트에서 양식으로 했다. 메뉴는 바다가제와 비프스테이크. 아주 아주 일품이었다. 오랜만에 싱싱한 생선과 연한 소고기를 포식했다. 저녁값은 태동이가 제가 꼭 내어야 한단다. 식후 L형이 주문한 애플파이 또한 일품이었다. 일조량이 많아서 사과의 당도가 높은 까닭일게다.
잘 놀고 잘 먹은 다음 몸을 몽땅 일등 운전수에게 의지하고 시원한 밤길을 달려서 Murrieta의 대저택을 향하햐 달리면서 이역만리 남의 나라에 와서 좋은 친구 만나 이런 호강을 하는 것이 새삼 고맙게만 생각되었다.
자기전에 어제 먹다 남은 과일 챙겨 먹는 것 잊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2006년 11월 7 (화)
아침 일찍 서둘러서 식구들을 관광회사 편으로 2박3일간의 라스베가스와 그렌드케논 투어를 떠나
보냈다.
그리고 L형과 나는 후루파 힐스에 있는 Jurupa Hills C.C.의 7일연장 2일째 골프로 떠났다. 일행은
동홍욱과 천영성님. 미국 가면 꼭 만나봐야겠다고 다짐하고 온 분들이다. 두 사람은 아파트 아래 윗집에 산단다.
골프 끝나고 동 총장댁을 방문했다. 불과 10여평밖에 안되는 좁은 공간이지마는 있을 것은 다 있다.
공부하는 노병의 삶의 모습을 한눈에 다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불만이 왜 없겠냐마는 불만이 없어
보여서 좋다. 딸들이 아빠를 잘 보살펴준다는 설명이다.
한동안 화려했다면 화려한 군생활, 공무원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이역만리에 와서 다른 욕심없이 책과 골프에 인생의 태반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 그것은 인과이기 보다는 삶의 선택이었다.
국내의 일반 기준으로 본다면 지극히 호화로운 선택이다. 국내에 있었다면 혹 있을 수 있는 불만,
울분, 초조, 그리고 상대적 빈곤감에서 일탈 될 수 있는 지극히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하긴 선택도 인과이기는 하다마는.....
노병은 죽지 않고 바로 그곳에 살아 있었다.
저녁은 Diamond Bar에 있는 황제식당에서 동총장과 천영성 두분 내외분과 함께 LA갈비로 잘 먹었다. 밥값은 언제나 L형의 몫이되어 내심 안쓰럽다.
늦은 시간 L형내외와 함께 Murrieta로 돌아가는 길에 수퍼마?R에 들려 아이스크림 과일등을 샀다.
오랜 미국생활에 젖은 아주머니의 쇼핑 손길은 과연 명수중의 명수이다.
식구들은 네바다주 코로라도 강변 어딘가에서 이 밤을 보내고 있다는 전갈이다.
밤늦게 스웨덴의 Sundelof에게 전화 했다. 지금 나는 산 크레멘테가 아닌 LA 근교 무리에타 친구
집에 납치되어 있다고. 그래서 11월 9일밤에 예정했던 콘도로 갈 것이라고......
2006년 11월 8일 (수)
집 떠나고 나흘째 되는 날이다. 이제 제법 주변 환경에도 익숙해졌다.
신경 써야할 식구들이 옆에 없으니 아주 홀가분하다. 아무 것도 서둘러야할 것이 없다. 나는 다만 7일 연짱 3일째 골프만 하면 된다.
오늘의 골프장은 Temecula에 있는 Temecula Creek Inn C.C., L형의 멘버쉽 골프장이다. 일행은
L형 내외와 권태동. 좋은 골프장이다.
골프를 치면서 L형은 부인에게 콩나라 팥나라 별의 별 주문을 다한다.
대부분의 경우의 골프 코치는 ‘나는 바담풍하더라도 너는 바담풍 하지말라’는 격이다.
지나 잘하지!
저녁은 골프장 근처의 L형의 단골 일식집. 돈은 물론 L형이 내고.....
권태동이 함께 Murrieta를 다녀갔다. 대저택에 근들 놀래지 않을 수 없지.
2006년 11월 9일 (목)
오늘은 식구들이 2박3일의 네바다여행을 마치고 L.A.로 돌아오는 날이다.
음력 내 생일이기도 하고.....
7일연짱 4일째 골프의 스폰서는 이영호. 딸 내외가 회원으로 되어있는 Glendale 소재의 Oakmont C.C., 명문중의 명문이다. 일행은 이영호, 권태동, 이한우 그리고 나.
Murrieta의 안주인은 치과 수술 예약일이 되어서 LA 시내에서 내렸다.
시간이 어중간해서 L형이 ??엎하려 갈 때까지 진통과 출혈로 꾀나 고생을 했을 것 같다. 내가 인플
란트를 해봐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잘 안다.
안쓰럽다.
미국와서 처음으로 영호의 안내로 사우나를 했다. 뜨거운 물에 푹 담그고 있으니 피로가 가시는 것 같다.
저녁 6시에 LA 한인타운 소재 중국집 용궁에서 가족과 합류했다.
사흘만의 가족과의 만남이 세삼 반갑다.
저녁 모임은 우리식구 8명에다 영호부처, 그리고 은경이 내외와 두 아들, 모두 합해서 14명이다.
아주 아주 푸짐한 저녁이었다. 생일상이었다.
"Happy birthday to you!"
은경이가 눈물을 글성이면서 말한다.
“엄마가 전화해서 외삼촌 다시 가고 또 다시 가고 할 것 아니니 잘 모시라고 했어요” 고 한다. 가슴
뭉쿨한 사연이다. 아마도 1000불 가까이 깨어졌을게다. 기특한 것!
이날 저녁 저녁 먹으면서 주접 떨다가 그만 카메라를 망가뜨렸다. 그래서 이 시간 이후의 골프투어
사진은 아쉽게도 내 카메라속에는 없다. 실수는 식당 종업원에게 있었으나 잘 해 보겠다고 하다가
저지른 실수였기에 나무라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돌아와서 A/S받아 정상이 됐다.
저녁 먹고 영호 내외와 하직하고 은경이 차편으로 San Clemente Resort로
밤길을 달렸다. 영호 사위란 놈, 분명이 부모 국적은 한국이고 잘 난 놈인데 한국말을 못한다. 마음에 덜 드나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게다. 늦게, 그것도 아주 늦게 본 사위이니 그에게는 그저 소중하기만 할 것 같다.
식구들 짐은 아침에 L형 차에 싣고 나와서 저녁 먹기전에 은경이 차로 옮겨 놓았다.
은경이의 능란한 운전 솜씨로 장장 80km를 남으로 달려 와서 꾀나 늦은 시간에 San Clemente Inn
에 check in 했다. 은경이의 능숙한 영어가 있었기에 우리는 조금도 힘들지 않게 장차 3일간 신세를 질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다. 쌀이랑, 반찬이랑, 과일이랑 넉넉한 양식을 은경이가 주도면밀하게 준비하여 왔기에 이역만리에서 천하에 무서울 것 없는 팔부자가 되었다.
은경이는 내일 아침에 아이들 학교 때문에 그 늦은 밤에 저의 집으로 돌아 갔다. 생질녀 하나는
제대로 뒀다는 생각이다.
어제 그저께는 L형으로부터 눈물이 찔끔 나도록 호통을 들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 못 했어요? 그렇게까지 취소하라고 당부했던 콘도를 아직도 취소하지 않고 꼭
내려갸야 하겠어요? 섭섭합니다!”
근들 왜 내 마음을 몰랐겠어요. 알면서도 짐짓 호통을 쳐야만 하는 그의 우정을 난들 또한 왜 모르겠어요.
2006년 11월 10일 (금)
콘도의 방을 세(3)구역으로 나누어 정침에 우리 내외, 옆방에 혜경 혜옥 식구들, 그리고 거실에 수환 내외가 자리 잡았다. 전망 좋고 lay out가 아주 잘 된 편리한 콘도이다.
이역만리에서 식구들끼리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아침 한끼 잘 해 먹었다.
이른 아침에 전화 벨이 울린다.
“Happy Birthday to You, Mr. Lee~~~~~~~"
스웨덴에서 걸려온 Sundelof 부처의 합창이다. 참으로 인정 많은 사람들이다. 감격 감격이다.
흥분이 채 갈아 안기도 전에 도어벨이 울린다. L형이었다.
우리 걱정 때문에 모르긴 몰라도 지난밤엔 잠을 설쳤을게다. 얼굴에 노여운 기색이 전혀 없는 것으로 봐서 이미 나를 용서한 모양이다.
그는 극성스럽게 재촉하여 우리 식구를 차에 태워 San Diego의 Sea World로 달린다.
물론 L형과 나는 식구들을 수족관에 몰아넣어 놓고는 저녁 6시에 ??엎하기로하고 7일연짱 5일째
골프를 떠났다.
San Diego 근교의 Balboa Park C.C.. 코스는 나른대로 짭짤하다. 지세가 좋고 자연 조건이 좋으니
좋을 수 밖에...
코스에 비하면 찾아오는 프리어에게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한인들이 많으면서도 멕시칸이나 이런
저런 잡놈들도 적지 않다.
우리와 합류한 백인종 한놈은 잘 치지도 못하면서 건방을 떨더니 지 성질에 못 이겨서 중도에 떠나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인사도 없이...
노상 하는 말이지마는 저런 놈들이 여러 사람들에게 반미감정을 갖게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고 오는 길의 주변 풍경은 두어차례 지나다닌 곳이 되어서 아주 생소하지는 않다.
저녁은 이곳 명물의 하나인 월남 국수로 때었다. 물론 저녁값은 L형이 내고.... 좋다! 배도 부르고 알맞게 피곤하기도 하고.... L형은 우리를 콘도에 내려주고 집에 갈려면 아직도 한참을 더 달려야 하는데.......
2006년 11월 11일(토)
왕 빼빼로데이이다. 경아와 형준이가 신나게 잘 놀아줘서 기특하기만 하다.
L형의 memo장에 의하면 오늘은 식구들이 동물원 가는 날이다.
물론 L형은 어김없이 제시간에 나타났다. 장장 두시간을 차를 몰고....
L형은 늦어도 오후 세(3)시까지는 동물원 입구에 나와 있으라고 식구들에게 당부하고는 나보고 얼른 나가잔다. 물론 나는 그것이 7일연짱 6일째 골프장으로 가는 길임을 안다.
어제 갔던 Balbor Park C.C.의 길 건너 nine hole 코스이다. 우리와 합류한 사람은 이 지역주민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사람이라면서 아들을 소개시킨다.
이놈들은 어제 그놈들과는 사뭇 다르다. 다행히도 제대로 된 놈과 짝꿍이 되어 라운드를 하니 한결
기분이 좋다. 시간으로나 체력으로나 아홉홀이 딱 맞는 7일연짱 6일째 골프였다.
3시 정각에 식구들을 동물원 정문에서 pick-up. Carlsbad에 있는 outletd에 와서 내려놓고는 쇼핑을 권한다. 선물이던 자신이나 가정용품이던 물건이 풍부하고 값이 우리네와 알맞은 곳이란다.
가려운데 샅샅이 긁어주는 L형의 배려가 눈물이 나도록 고맙다. 콘도에 돌아온 것은 상당히 늦은 시간이었다.
아마 L형이 집에 도착한 것은 오늘이 아니고 내일이었을게다.
2006년 11월 12일(일)
새벽 일찍 check out 수속을 마쳤다. 춘환이가 7일간의 숙박료를 완불한 상태여서 우리는 한푼도 더 낼 필요가 없었다.
예정대로 은경이 내외가 각기 다른 차를 가지고 마중을 왔다.
상진군은 우리를 태우고 7일연짱 마지막날 골프장으로 가야하고 은경이는 나머지 식구들을 태우고 LA 시내 관광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녁에 LA 청기와집 한식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오늘은 골프장은 Royal Vista CC.. 코스 주선은 권태동이 하고 player는 나, 한우, 태동, 그리고
모처럼 수환이와 상진군. 5인팀이다. 수환이에게는 이번 여행 기간중 처음이자 마지막 골프였다.
상진군은 아직은 초보자였으나 힘을 무기로하여 가끔 나오는 장타는 실로 호쾌하였다.
골프가 끝나자 L형이 슬그머니 지난 7일간 줄곳 내가 썼던 드라이버를 나보고 가지고 가란다. 명색
골프 치는 사람 치고 이럴 때 이런 것 마다하는 사람 없다. 감지덕지이다. 이렇게 끝에서 끝까지 챙겨주는 찬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친구에 관한한 나는 팔부자이다.
장장 7일간을 우리 식구들의 오줌 똥까지도 챙겨주던 한우형과 이별하고 그에 뒤질세라 알뜰살뜰히 챙겨주던 태동과도 골프장에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식구들은 이미 약속 장소에 와 있었다. 알뜰하고 민첩하고 재간있는 내 생질녀가 앞장 선 관광이었
으니 어련하였으랴? 온식구들의 얼굴에는 만족감이 철철 넘처 흘렀다.
문파옹도 큰아들과 함께 나와 계셨다. 물론 옹이 도미한 후 그를 찾은 첫 체신인이 나이다. 우리의 소회담은 길고 또 길기에 후일에 미룬다. 헤어질 무렵의 그의 눈의 눈물, 나의 눈의 눈물은, 말은 하지 않지
만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아주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저녁값은 문파옹의 큰
자제분이 챙겼다.
휘날레(finale)
LA 출 발 일시 : 2006년 11월 13일 00 : 10분
인천 도착 일시 : 2006년 11월 14일 07 : 10분
항 공 편 : KE 0012
비행 시간 : 12 시간
비행 거리 : 5980 KM
밤 10시가 훨씬 넘어서야 LA공항에 도착했다.
언제나 그랬듯 이별은 아쉬웠다.
동홍욱선생 내외와 한번 더 못 만난것,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한우형, 고마웠습니다. 어느 피부치의 인정이 이에 더 하오리까!
영호삼종숙 내외, 반가웠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늦게 본 맡사위 그만하면 일품 입니다.
태동재종존고종, 짭짤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을 확인했어요. 고마워요.
내 사랑하는 생질녀 내외, 너희들이 있어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 것 같다.
떠나면서 은경이에게 “근태, 근일이 두아이 잘 키워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박상진군 불쑥 한다는
말이 “아이는 셋(3)입니다” 한다. 아마 자기를 포함 해서 하는 말인듯. 부부의 금실을 이야기 하는듯 참으로 듣기가 좋았다.
미국 와서 굶지 않고 사는 사람에게는 우리와는 다른 아주 아주 훌륭한 공통된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이야기는 하자면 길어질 것 같아서 후일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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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는 코인의 한쪽면이다.
나는 내 이야기만 했다.
내 골프인생의 peak를 이야기하려 했고, 친구가 피붙이에 우선한다는 것을 말하려
했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이야기 하려했다.
코인의 또 하나의 면은 나를 뺀 나머지 식구들의 가슴속에 있다.
아주 아주 잘 정리하여 오레 기억하면서 후일의 삶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한가지 얻은 것을 확인 한다면 그것은 이번 여행을 통해 경아와 형준이와 좀 더 친해진 것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나를 딸아 이번 여행에 나선 가족들이나 서울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아비의 팔순을 맞아 ‘어제’ 를 어떻게 반성하기를 바라고,‘오늘’을 어떻게 다짐하기를 희망하며, “내일”을 어떻게 준비하여 주었으면 좋을가를 꾀나 긴 시간을 두고 생각 해 본 것이라고나 할까?
우선 일행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와 줘서 무엇보다 고맙다.
귀찮을 정도로 알뜰히 챙겨주는 L형의 치밀한 보살핌 때문에 한국에서 만들어간 국제 운전면허증은 한번도 못 써먹었다. 이실직고하자면 그 색색기판에서 나같은 사람 은 설혹 기회가 주어졌더라도 도저히 운전할 수있을 것 같지 않았다.
서울에 도착하여 로비에 내려와서야 내 복장이 어제 골프 치려 갈 때의 그 복장 그대로임을 발견했다. 나는 혼자서 빙그레 웃었다. 7일 연짱 골프는 완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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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배님 안녕하셨습니까? 선배님의 미주 여행기 완독했습니다. 해가 바뀌기전에 발길 멈추었던 동창카페에 들려봐야겠다고 왔지만 어쩌면 선배님이 올려놓으신 미주 여행기를 보게될 텔레파시였나봅니다. 올해가 八旬선배님께 의미深長하신 해임을 알고는 있었기에, 이 곳 후배 삼총사가 은근히 모의한적도 있었답니다. 하지만 늦게나마 선배님께 한 줄 글로나마 "팔순을 축하드리며 만수무강하십시요"라고
안부 여쭙겠습니다. 많은 양해를 부탁드리는바입니다. 이국만리 여행에 지치신 기색도 없으신 건강미가 참 뵙기에 좋습니다. 저도 1999년 2월 26일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서 프레스노, 라프틴, 라스베가스, 로스안젤레스를 거치며, 요새미티 국립공원과 그랜드캐년이며 후불댐 미드호수 유니버셜스튜디오 콜로라도강, 그러고 보니까 거의 선배님과 같은 코스를 다녀왔나봅니다. 여행기를 읽으면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선배님 사랑하는 가족과 건강하게 여행하시고 오셨다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춘자 친구하고 미국 이야기 하니까 샘통이 나네요 언제 한번 갈 기회가 있을까 귀밥만 만저볼까요 하나님의 은촣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