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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심심할 때 뭐해 / 따분할 땐 뭐해 / 어디서 시간 때우나 / 강남 너무 사람 많아 / 홍대 사람 많아 / 신촌은 뭔가 부족해 / 다 알려주겠어 다 말해주겠어 / 새로운 세상 그곳을 말해봐 / 음악이 있어 / 또 사랑도 있어 / 세계가 있어 / 나에게 말해줘 / 배달하는 집배원 / 물건파는 판매원 / 기타치는 김태원 / 모두 모여 이태원 / 이태원 프리덤 저 찬란한 불빛 오 / 이태원 프리덤 젊음이 가득한 세상 / 이태원 프리덤….’
속칭 ‘뼈그맨’으로 불리는 개그맨 유세윤이 결성한 그룹 UV의 신나는 유로풍 댄스곡 <이태원 프리덤>은 이렇게 이태원을 ‘찬양’했다. 이 노래의 인기 때문일까? 요즘 서울의 이태원에 부쩍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지인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노래 가사대로 지금까지 젊은이들의 ‘동네’로는 강남역, 홍대, 신촌 주변이 주도권을 꽉 쥐고 있었다. 예술지역도 주도권이 있기는 마찬가지. 전통의 인사동이 요즈음 사간동, 통의동에게 밀리고 있음을 목도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한군데 더 다크호스가 등장했다. 바로 최근 서울에서 급속도로 뜨거워지고 있는 ‘핫’ 예술지역인 ‘이태원’이다!
바이홍, 이라 불러다오
최근 이태원을 위시한 한남동 지역에 다양한 예술문화 공간이 들어서고 있다. 2004년 개관한 삼성미술관 리움을 한 켠으로 두고 한강진역부터 이태원역까지 예술문화 공간이 ‘점조직’처럼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태원 예술공간과 예술가들을 모아서 다양한 예술활동을 기획하고 있는 돈키호테가 한 명 있으니, ‘이름도 흥미로운’ 바이홍 프로젝트 킹 디렉터다. 그를 이태원의 자그마한 카페 눈에서 만났다. 제일기획 옆 삼거리를 낀 작은 골목길에 위치해 있는 카페 눈은 복잡한 옛날 동네길 사이에서 꽤 운치가 있다. 한때 활동의 중심지였던 홍대 지역을 떠나 반 년 간 그는 주로 이 카페에서 예술과 지역의 결합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구체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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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홍’이라는 이름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약간 트릭이 있는데, 성(姓)이 ‘바’도 아니고(웃음) ‘홍’도 아니다. 본명은 최홍규인데, 바이홍이란 이름은 사실 친구들과 장난삼아 만들었다. 내 주변의 친숙한 사람들에게 ‘나’라는 존재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적인 사람들의 이미지로 종종 비치는데, 누군가가 이를 바이(Bi)라는 말로 옮긴 것이다. 하지만 ‘Bi’의 중성적 이미지 외에도 ‘BY’ ‘BUY’ ‘BYE’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할 수 있는 단어라 여러모로(?) 편리하다. 한때는 ‘BYE’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다. 백남준의 <바이바이 키플링>처럼 최홍규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의 한계를 벗어나 다양한 문화와 세계를 접하고 싶은 의지를 드러낸다고도 하겠다. 좀 거창하지만. 지금은 바이홍이라는 이름에 어떤 의미도 두지 않는다. 나는 나일뿐. 그래서 사람들이 바이홍 님도, 바이홍 씨도 아닌 그냥 바이홍으로 불렀으면 좋겠다. 그러나 여전히 ‘님’이나 ‘씨’가 빠지진 않으니 곤란할 수밖에(웃음).”
다양한 문화와 세계를 접한다는 의미에서 그는 실천가다. 한양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다가 새로운 예술과 미학의 세계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국어국문학과 학생이 그렇듯 시, 소설 등 문학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다른 과 사람들과 연합해 동아리를 조직했다. 동아리 이름이 ‘들끓는 주전자’였는데 좀 없어 보여(웃음) 나중에 ‘마이너리티’로 바꾸었다. 문학과 창작,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로이 풀어내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 동아리 멤버 중에 문학적 감수성이 출중한 한 공대생을 만난 것이다. 갑자기 내가 전공인 문학에 매진해도 그 멤버가 보여주는 능력의 반도 안 될 것이라는 자괴감에 빠졌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는데, 그 때 고야가 그린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보았다. 전율을 느꼈다. 미술이론과 미학이라는 학문에 그때부터 빠졌던 것 같다. 그래서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에 진학했다.”
이태원, 문화와 예술의 ‘도가니탕’ |
▲▲ 카페 눈 ▲ 영화상영회 포스터 |
홍익대 대학원 시절과 이른바 홍대 주변의 문화는 그에게 또 다른 실천을 가능케 했다. 2003년 당시 잘나가던 미술포털 사이트 ‘프리챌’에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 100명을 모아서 미술투어와 감상하는 소그룹을 만들었던 것이다.
“대학원에 들어가자마자 5명 정도가 의기투합해 ‘갤러리 킹’이라는 그룹을 만들었다. 그리고 전시장 투어를 시작했다. 서울의 미술공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광주비엔날레까지 투어를 확대했다. 이런 행사를 조직한 이유는 미술의 대중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내가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미술의 대중화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 미술과 함께 호흡하고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미술전시를 함께 보고 좀 더 다가가기 쉬운 미술행사를 주최하는 것은 다 이 때문이다.”
이런 과정이 그에게 전시기획자로의 길을 열었다. 2004년 개최했던 ‘프레파라트’ 행사는 홍대 갤러리 두 곳과 클럽, 복합문화공간에서 열렸는데, 이 행사를 조직하면서 여러 미술인과의 인적 네트워킹을 만들 수 있었다. 이후 이천의 샘표공장에서는 본격 독립기획자로서 ‘공장미술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오프라인 갤러리 킹을 개관했다본지 41호 특집 ‘변화하는 시장과 젊은미술② 공간’ 보기. 홍대 지역을 기반으로 전시 투어와 전시 기획, 미술 파티 등 대중들과 미술이 만나는 장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꽤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010년 12월까지 유지하던 오프라인 공간은 현재 ‘접은’ 상태다. 현재로서는 공간의 방향성에 대해 더욱 고민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좀 여유를 가지고자 한다.”
이후 곧바로 그는 활동무대를 이태원으로 옮겼다. 홍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존의 대안공간들 틈에서 자신 만의 예술적 정체성을 드러내기가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태원은 전 세계 문화의 ‘도가니탕’이고 다양한 예술이 존재하기 때문에 새로운 예술의 ‘엘도라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정서도 마음에 들었다. 아예 살던 집도 홍대에서 한남동으로 옮겼다.
“개인적으로 올인하는 스타일이라 거주지까지 옮겼다(웃음). 동네주민이 되서 이태원을 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예술가들이 이미 여기서 활동하고 있었다. 공간도 만들어지고 있었고. 이러한 로컬예술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각각 특징을 가진 예술지역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태원은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예술과 사람, 그 ‘사이사이’를 연결하다 |
▲▲ [사 이 사 이] 표지 ▲ [사 이 사 이]에 수록된 지도 |
이를 위해 바이홍은 꽤 많은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그리고 차근차근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 봄 그는 카페 눈에서 낭독회와 영화상영회를 열었다. 알음알음 사람들이 모이자 ‘지역 사생대회’를 열어 좀 더 지역 안으로 미술이 파고들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업실을 지역민들에게 공개하는 ‘오픈 스튜디오’를 열어 사람들이 좀 더 미술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동네 예술이 사람들 속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사 이 사 이](SAISAI)라는 지역 기반의 매거진을 만들었다. 24페이지짜리 잡지로 이태원 주변의 문화예술지역을 소개하고 이들에 대한 지도를 제작했다. 이 동네를 보여주는 터줏대감 주민들도 소개해서 이태원이라는 지역의 정서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와 함께 요즘 준비하고 있는 사업은 ‘아트서비스센터’. 작가가 작품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여러 사항들을 전문가들과 연결해주는 데 목적이 있다. 예를 들면 작품을 촬영하는 데 필요한 사진작가를 이 서비스를 통해 연결해주는 것이다. ‘찾아가는 멘토링’ ‘비평 서비스’ ‘강좌’ ‘사진/영상’ 등 작가들을 위한 원스톱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여기에 또 하나가 있다. 지역 기반을 외치면서 오프라인 공간이 빠질 수는 없는 법. 한남동 골목 안쪽에 문화예술인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살롱, ‘초능력 카페’를 7월 초 연다. 자유로운 예술가들의 분위기를 느껴보고자 한다면 슬쩍 방문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듯.
“궁극적으로는 기획이 중심이 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작가를 인터뷰해 연구하고 담론에 대해 토론하고 정리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이를 통해 다양한 후배 미술인들이 탄생했으면 좋겠다. 나는 예술과 사람을, 예술 선배와 후배를 연결해주는 일종의 ‘허브’가 되기를 바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예술이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숨쉬고, 사람들은 예술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톡톡 튀는 예술 마인드로 진정한 예술의 대중화를 꿈꾸는 바이홍을 보니 새로운 <이태원 ‘예술’ 프리덤>이 흥얼거려진다. ‘…요즘 심심할 때 뭐해 / 따분할 땐 뭐해 / 어디서 시간 때우나 / 다 알려주겠어 다 말해주겠어 / 새로운 ‘예술’ 세상 그곳을 말해봐 / 미술이 있어 / 색다른 예술도 있어 / 세계가 있어 / 나에게 말해줘 / 이태원 ‘예술’ 프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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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류동현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10여 년간 [월간 미술]의 기자로 일했다. 현재 마로니에북스 편집부의 기획팀장이자 미술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인디아나 존스와 고고학』『만지작만지작 DSLR카메라로 사진찍기』『매지컬 미스터리 투어』(공저)『서울 미술산책 가이드』(공저) 등의 저서와 공역서로『고고학의 모든 것』이 있다. 전시《Sculpture spoken here展》《Retro展》을 공동기획했으며, 개인전《미술기자 Y씨의 뽕빨 111번展》을 열었다. indyyu81@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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