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선민교회 교우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창조절 둘째 주일입니다. 교회력에 의하면 창조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비롯한 모든 만물을 창조해 내신 것을 찬양하고 우리를 지으시고 당신의 자손을 삼아 주심을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특별히 사람을 당신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지어내시고 숨을 불어 넣어 생명을 주심으로 우리로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살게 하셨습니다. 오늘 창조절을 사는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들이 평화롭게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까, 나아가 더불어 살아갈까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길을 찾고, 우리 삶에서 함께 실천함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소명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때입니다. 이를 위해 담임 목사님께서 대림절 전 주까지 13주간에 걸쳐 그에 필요한 말씀들과 가르침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예배 후에 이진 목사님의 칠순 축하잔치가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이 기장총회에서 일하실 때 저는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총회에서 총무로 일하면서 만났습니다. 사무실이 붙어 있었고, 총회와 신도회 간의 일들이 많이 겹치기에 함께 하는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친절하시고 또 영민하게 일을 잘하셔서 제가 도움도 받았고, 친하게 지내면서 저보다 훨씬 젊은 분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칠순 축하를 한다니,,,
놀랐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순서가 제게 돌아왔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칠순을 넘겨 살고 있는 제 삶을 이리 저리 돌아보았습니다. 그래다가 ‘아오늘은 그냥 제 이야기를 해야겠다’ 고 작정하였습니다.
이제는 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사람이 100세 혹은 120세를 산다고 합니다. 거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칠십은 회고의 시점이 아니라 아직도 전진하는 시간이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칠십 시점은 되돌아보고 다시 서고, 다시 시작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제 삶을 돌아다보다가 ‘아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두 가지 선물을 받았다’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첫 번째 선물은 하늘나라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었어도, 혹은 있어도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에 혹은 있기에 하나님을 믿고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 소망이 없었다면 이미 포기하고 절망하고 쓰러졌을 것인데 이제껏 제가 살아있는 것은 하늘나라가 우리에게 임하신다는 그 소망이 있기 때문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는 죽은 뒤에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나, 지금 여기에 하늘나라가 임할 것이라고 믿는 분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둘째 선물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확실하게 주신 우리의 삶입니다. 그 삶이 어때야 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위하는 삶이 어디서부터 왔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이 분명하다고 깨달아 지는 것입니다.
첫 번째 하늘나라(천국) 소망
제 어릴 적 다니던 교회에서 하늘나라에 대해서 목사님께 어떤 곳인가 설명해 주십시고 여쭈어 본적이 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설명해 주신 하늘나라의 모습은 온통 보석으로 가득 찬 것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이 하늘나라라고 하셨는데 ‘그 성벽은 벽옥으로 쌓았고, 도성은 맑은 수정과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습니다.’로 시작되어 사파이어, 옥수, 비취옥, 홍마노, 홍옥수, 황보석, 녹주석, 황옥, 녹옥수, 청옥, 자수정, 진주 등 제가 듣도 보도 못한 보석들로 가득한 곳(계 21:18-21)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하늘나라는 가고 싶지 않다고 혼자서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앉을 곳도 없는 곳이 무슨 하늘나라야.’
그러다 마태복음 13장 31-33절 에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늘나라는 또 너무 시시해 보였습니다. 작은 겨자씨와 같고, 누룩과 같은 하늘나라? 그게 뭐야! 그리고 또 한가지는 하나님이 하늘나라를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만들어진 하늘나라 정형은 없다는데 대한 실망이 컸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또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되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그런데 점차로 깨달아 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천국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천국은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 겨자씨, 누룩
천국은 누군가 있어야 시작된다 / 사람, 여자( 어떤 사람, 어떤 여자)
천국은 행동이 있어야 시작된다 / 심다, 가져다 넣는다
천국은 변화가 있어야 이루어진다 / 자란다, 부풀게 한다
천국은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다 / 공중의 새 깃들고, 빵이 되고 술이 되고
결론 : 천국은 어떤 사람 어떤 여자가, 자기 것을 내어 놓고, 심고 섞어 넣고,
그것들이 변화를 거쳐 모두가 함께 생명을 영위하게 만들어 가는 곳이 곧 천국
그것을 만들어 가는 것이 네 소명이다!!
내가 가진 작은 겨자씨를 꺼내어 그것을 땅에 심는 일, 내 손에 쥐고 있는 누룩을 손을 펴서 가루 서 말 속에 넣는 일 – 여기까지가 우리의 영역입니다.
그러면 다음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키우고, 부풀리고 이 영역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나면 새들도 와서 깃들고, 함께 먹을 빵도 만들어 집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를 함께 불러 하늘나라 천국을 함께 만들어 가십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천국)의 신비입니다.
저는 이것을 삶으로 깨닫는데 한참 걸렸습니다. (병원 경험)
하나님은 우리를 하늘나라의 일꾼으로 삼으셨습니다.
둘째 내 앞의 삶 – 하나님이 주신 것, 하나님의 선물
“사람에게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것,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알고 보니 이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 그 분께서 주시지 않고서야 누가 먹을 수 있으며, 누가 즐길 수 있겠는가?(전도 2:24-25)”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먹고 마시는 것, 일과 자기긍정 자존감으로 나타나는 수고와 보람이 내 삶의 전부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최소한으로 필요한 이것, 바로 이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전도서 기자는 나아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전도 3:12-13)”
이 말씀은 전도서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사실 저는 전도서를 그리 즐겨 읽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로 시작되는 말씀을 읽다보면 “그래서 어쩌란 말씀이시오”하고 입이 쑥 나올 때도 있고, 왜 이런 말씀이 성서 속에 들어 있는지 의심한 때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헛되고 헛되니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손 놓고 앉아서 허무주의에 빠지라는 것인지, 아니면 ‘발버둥질 쳐봐야 소용없어. 적당히 살아’라고 처세술을 가르치는 것인지 어리둥절할 때도 있었습니다.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보면, ‘잘 났다고 뻐기며 사는 우리들에게 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고 인생을 다시 살아보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이룬 것도 없고 실패와 좌절에 빠진 이들에게 그래봐야 모두 헛것이니 공연히 주눅 들지 말고 살아’라고 위로하는 말인지 구분이 안 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선뜻 즐겨 읽는 말씀 속에 끼어놓지 않고 있었지요.
그런데 전도사를 내 삶속에서 다시 읽으며 위의 말씀이 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저는 9년 전, 바로 이때쯤 바울 사도의 발길을 따라서 그리스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 여행지에서 저는 6,000년의 세월을 경험했습니다. BC4세기부터 오늘날까지...
6천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성읍들과 그들의 삶의 자리를 돌아보고, 2,000년 전 바울이 예수를 전하기 위해 동분서주 했던 도시들과 사람들의 삶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지금 내 삶의 경험을 가지고 보았으니 6,000년의 시간을 오르내린 것이지요.
그 6,000년의 시간, 그 시간 동안 ‘해 아래 새것은 없다’는 전도서 기자의 말씀이 슬그머니 제게 와 닿았습니다. 모든 것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고, 우리보다 앞서 있었던 것들의 되풀었을 뿐이라는 느낌을 가는 곳마다 받았습니다. 신전이 있던 자리는 계속 이름이 다른 신들이 모셔지는 신전으로 이어져 오고, 사람들의 생활 터는 여전히 밥 먹고 애 낳고, 애 기르고 세대를 이어 살아가는 터로 이어져 왔습니다. 바람은 여전히 제가 불고 싶은 곳으로 불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모든 것이 순환의 과정 속에 지금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보아라. 이것이 바로 새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라고 누군가 제게 물어 온다면, 제 대답은 아니 이미 있어온 것, 우리보다 앞서 있었던 것들의 반복일 뿐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음을 그 때 깨달았습니다. 그 옛적의 어마어마한 신전들, 광대한 스케일과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 기술들. 이미 있었고, 사라졌고, 다시 시작하고...
“돌 위에 돌 하나도 얹히지 못하고 무너지리라‘던 예수님의 말씀을 증명이라도 하듯 부서진 신전 터 앞에 서면 우선은 와- 하는 감탄사가,(바알벡) 다음에는 신음하듯 나오는 말. 이 모든 것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수고하고, 노력했는가? 그 위용은 얼마나 대단했을까?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될 뿐이라는 전도자의 말이 실감나게 다가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 속의 한 흔적으로 남을 뿐, 그 흔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요?
우리가 솔로몬 왕이라고 생각하는 전도서 기자는 눈에 보이는 것 뿐 아니라,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 지혜도, 즐거움도, 슬기로움과 어리석음도, 승진과 성공도, 돈도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모두 헛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왕인들 무엇 하며, 부자가 된들 무엇 하며, 악한 사람도 선한 사람도 모두 겪을 일을 겪고 나야 인생이 끝난다고 합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자기 앞에 겪을 일을 모두 겪고 나야 인생이 끝난다고 합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일을 알지 못하고(전도 9:1하), 그런 때가 언제 닥칠지도 알지 못하며, 제 앞일을 모르는 존재가 사람(전도 7:14상)이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보면 전도자는 궁극적으로 ‘그 모든 것이 오로지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에게는 아주 단순한 것, 단순한 삶이 주어져 있을 뿐이라는 것을 “허무”를 통해 가르시고 싶은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전도 3:12-13)”
이런 것들을 젊어서 깨닫고 실천에 빨리 옮기고 내 삶이 온전히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는 다면 우리 삶이 예수안에서 얼마나 기쁠까요!!!
저는 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야 몸에 와 닿으니... 이 나이에라도 깨닫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칠순 축하를 받으실 이진 목사님은 이미 이런 것들을 잘 알아서 하늘나라의 일꾼으로 몸소 나서서 일하시고,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하시며 지금까지 살아왔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기쁘게 살면서 좋은 일 하는데 앞장서 오시면서 주님이 주신 은총으로 살아오셨기에 저는 두팔 가득 벌려 목사님의 칠순을 축하합니다.
저도 칠순을 지난 사람이지만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 중 / 이미 칠순을 넘기신 분들도 계시고 다들 칠순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하늘나라를 시작하는 일꾼으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은총으로 받아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