舞鶴 登高會
경주 남산 산행
1. 등반 개요
1) 대상지 : 경주 남산 금오봉(468m),고위봉(494m)
2) 기 간 : 2024년 6월2일 일요일 , 맑음
3) 참가자 : 신상철,자연과더불어 산악회
4) 산행코스 : 서남산주차장~상선암~금오봉~이영재~칠불암~고위봉~천우사~용장주차장
5) 산행 인증 및 인기순위 : 블랙야크 명산100 [84좌] 인증 및 한국의 산하 인기명산 100 [88위]
2. 산행지정보
금오산(金鰲山)이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는 북쪽의 금오산과 남쪽의 고위산(高位山)의
두 봉우리 사이를 잇는 산들과 계곡 전체를 통칭해서 남산이라고 한다.
금오산의 정상의 높이는 466m이고, 남북의 길이는 약 8㎞, 동서의 너비는 약 4㎞이다.
지형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내린 타원형이면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정상을 이룬 직삼각형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북으로 뻗어내린 산맥에는 상사암(想思巖)·해목령(蟹目嶺)·도당산(都堂山) 등의 봉우리가 있고,
남으로 뻗은 산맥에는 높이 495m의 고위산이 있다.
남산의 지세는 크게 동남산과 서남산으로 나뉜다.
동남산쪽은 가파르고 짧은 반면에, 서남산쪽은 경사가 완만하고 긴 편이다.
서남산의 계곡은 2.5㎞ 내외이고, 동남산은 가장 긴 봉화골[烽火谷]이 1.5㎞ 정도이다.
동남산과 서남산에는 각각 16개의 계곡이 있고, 남쪽의 2개와 합하여 모두 34개의 계곡이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유물·유적의 숫자로 보면 서남산쪽이 동남산보다 월등히 많다.
이 계곡들에는 석탑·마애불·석불·절터 등이 산재해 있으며, 각 계곡별 유물·유적 현황은[표]와 같다.
또한 남산은 신라 사령지(四靈地) 가운데 한 곳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곳에서 모임을 갖고 나랏일을 의논하면 반드시 성공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남산에 얽힌 전설과 영험의 사례가 풍부하고 다양하다.
박혁거세(朴赫居世)가 태어난 곳이 남산 기슭의 나정(蘿井)이며, 불교가 공인된 528년(법흥왕 15) 이후
남산은 부처님이 상주하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존숭되었다.
헌강왕 때 남산의 산신이 현신해 나라가 멸망할 것을 경고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헌강왕이 포석정에 행차한 어느 날, 남산의 신이 왕 앞에 나타나서 춤을 추었는데,
좌우 사람들은 보지 못하였으나 왕만이 홀로 이것을 보았다.
왕은 스스로 춤을 추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그 형상을 보였던 것이다.
산신은 나라가 장차 멸망할 줄 알았으므로 춤을 추어 그것을 경고했던 것이나,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상서(祥瑞)가 나타났다고 하여
방탕한 생활이 더욱 심해졌던 까닭에 나라는 마침내 멸망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전설은 신라인의 산악숭배에 있어서 남산이 특히 호국의 보루로서
존숭되었음을 알려주는 자료 가운데 하나이다.
3.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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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상세설명
5.삼릉 역사문화탐방로
*배동 삼릉
신라8대 아달라왕(154~184),53대 신덕왕(912~917),54대 경명왕(917~924)의 왕릉으로
1936년에 이루어진 조사에서 횡혈식 석실분으로 밝혀졌습니다.
무덤 내부의 북.동.서 벽면에 붉은색,노란색,하얀색,군청색,감청색이 채색되어 있으며 채색된 벽면이 확인된
유일한 신라 시대의 무덤입니다.
*삼릉곡 제1사지 탑재 및 불상
계곡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 지금의 위치에 옮겨두었습니다.
가운데 앉아 있는 모습의 불상은 약사여래로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알수 없습니다.
허리와 무릎 부분만 남아 있는 불상은 여래 입상입니다.
탑의 석재는 모양이 각기 다른 것으로 보아 2기로 추정됩니다.
여래입상과 탑의 석재는 통일 신라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삼릉곡 제2사지 석조여래좌상
높이 1.6m,너비 1.56m의 큰 좌상으로 1964년 계곡에서 발견되어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머리와 수인이 없어 어떤 부처인지 알수 없으나 편안히 앉은 자세,힘 있게 주름 잡힌 삼도,활짝 핀 가슴
넓은 어깨,입체적으로 조각된 몸,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보아 신라 전성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풍만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한손에는 정병을 들고 다른 한손은 설법인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보관에는 화불이 있는 관세음보살 입니다.
화불이 그려진 보관을 쓰고 있는 이 불상은 관세음보살인데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불상이 서 있는 자리에 전각을 지을 만한 장소가 없고,주변에서 기와 조각도 발견되지 않아 처음부터 노천불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방금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모습이며 가을 석양이 질때 본 모습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동쪽에는 설법하고 있는 석가모니 삼존불이 서쪽에는 아미타 삼존불이 새겨져 있으며
이는 각각 현생과 내생을 의미 합니다.좌우 보살상은 한쪽 무릎을 꿇고 연꽃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이며
바위에 그림을 그리듯이 새겨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
바위 윗면에 나무를 짜 만든 흔적과 배수구가 있어 원래는 목조 전실이 있었음을 알수 있으며
9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남산 화강암으로 조성된 여래상이 화려한 연꽃 대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연꽃대좌는 팔각으로 깎은 하대석,안상을 새긴 중대석,연꽃무닉를 새긴 상대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히 하대석은 팔각으로 거칠게 깎아 불상이 땅속에서 솟아 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조성 되어 있습니다.
광배의 불꽃과 입체적으로 조각된 몸 등으로 보아 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삼릉곡 제9사지 선각마애불
바위절벽에 부처의 머리와 어깨선까지만 선각으로 새겨진 불상으로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절벽 중턱에는 1915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석조약사여래 좌상이 있었던 터가 있으며
그곳에느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어 작은 건물이 있었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거대한 바위 절벽에 조성된 6M높이의 불상으로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적으로 조각하여 돋보이게 한 반면
몸체는 아주 얕게 새겼습니다.
불상의 오른손은 설법인이고,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올려 놓고 있습니다.
대좌는 중대석 없이 위로 핀 연꽃과 엎어 놓은 연꽃을 붙인 모양이며 연잎에 꽃무닉를 장식 했습니다.
입체감이 부족하고 힘이 없는 옷 주름 등으로 볼때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됩니다.
*금오봉
금오봉은 해발468m이며 이곳을 기준으로 냉골,포석계,지바위골,비파골,약수골 등이 나누어 집니다.
*용장계 연화대곡 대연화대
용장골 꼭대기에 있는 큰 바위에 거대한 연꽃 대좌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바위에 올라서면 남쪽으로는 고위산,동쪽으로는 토함산,서쪽으로는 단석산이 보입니다.
선덕여왕때 생의 스님이 찾고,경덕왕때 충담 스님이 차 공양을 올리고 안민가를 불렸다는 삼화령이
이곳으로 추정 됩니다.
*칠불암 마애불상군
사방불과 삼존불이 새겨진 바위가 있는 곳에 칠불암을 지었습니다.
거대한 바위 절벽에 새겨진 불상군이 압도적인 장엄한을 자랑합니다.
바위절벽 중턱에 축대를 이단으로 쌓아 불단을 만들고 사방불을 모셨습니다.
사방불 뒤에 있는 병풍방위에 삼존불을 높은 돋을새김으로 새겼습니다.
사방불 중 동쪽에 있는 보살은 동방 유리광 세계 약사여래고,
서쪽에 있는 보살은 서방 정토 극락세계 아미타불 입니다.
8세기 초 불상의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칠불암 뒤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이 보살상은 보리수 잎모양의 감실 안에 있습니다.
구름 위에 의자를 놓고 편안히 앉아 오른손에 꽃가지를 들고,
왼손은 설법인을 한 채 도솔천 하늘을 유유히 노니는 모습 입니다.
표정 또한 미소를 머금은듯,아닌듯 초연 합니다.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이며,높은 낭떠러지 위에 놓인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남산에 있는 불상들이 어떻게 자연과 어우러져 있는지 잘 보여 줍니다.
6.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