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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시 136:23-26)
할렐루야!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예배를 드립니다.
주의 전에 나온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감사예배를 드리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도시민들에게는, 아무래도 농촌 사람들보다는, 추수에 대한 감격이 덜할 것입니다. 어쩌면, 도시에 살면서, 추수감사는 무슨 추수감사냐고 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10월 셋째 주일,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한 해의 결산과 또 내년을 미리 준비하면서, 풍성한 곡식과 과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한 해를 살아오면서 받은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생각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성과 물질을 온전히 하나님 앞에 드리는 귀한 추수감사예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생각해 보면, 지난 일년 동안, 우리들에게는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기뻐할 일들도 있었고, 원망하거나 불평할만한 일들도 있지만, 우리는 모든 일들을 긍정적인 눈으로 보면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먹을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보면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곡식이 자라서 열매 맺게 되는 것도, 자녀들이 성장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이 돌보시고 키우시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사는 것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백만 번의 감사”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기 위해서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는데, 그 책의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감사”라는 말을, 백만 번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출판을 하지 못했는데, 저자는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감사가 얼마나 큰 가를, 이 책을 통해서 표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의 조건을 따지자면, 얼마나 많은 감사의 조건이 있겠습니까? 지난 일년 동안 몇 번이나 감사하셨습니까?
서부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맛지족들은, “감사합니다”라는 말 대신, “내 머리가 흙 속에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다른 사람의 은혜에 대한 최고의 예의를 표할 때, 자기 머리를 땅에 닿기까지 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머리가 흙 속에 들어갈 만큼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감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 “주둥이를 닦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입을 싹 씻는다.”는 뜻이 됩니다.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시치미를 뗀다든지, 모르는 척 하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인 것입니다.
추수감사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한 해 동안 받은 하나님의 크고 작은 은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모든 날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우리 눈 앞에, 이렇게 물질적으로 풍성한 과일을 주신 것을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육신적으로 복되게 살아가는 것, 육신의 건강을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게 하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저의 가정을 놓고, 한 해를 돌아보니, 금년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받은 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보내면서, 오늘은 일 년 중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요, 가장 즐거운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여름,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크게 다치지 않게 붙들어 주신 것, 어지럼증으로 쓰러졌지만, 그래도 빨리 건강 회복 시켜 주신 것, 저의 아내가 비록 쓸개 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쓸개 제거 수술을 잘 하게 해 주신 것, 두 아이 아무 탈 없이 한 해를 지켜 주신 것,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이것 저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시편 116:12-14절을 보면,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갚을 길이 없습니다. 갚을 길이 없기에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껏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미리 감사드립니다.”
늘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까요?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감사해야 할 이유를 찾고자 합니다.
첫째,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2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멘.
“나는 비천한 사람입니다. 나는 비천한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나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나는 비천한 종이었습니다. 나는 노예였습니다.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비천한 노예였습니다.”
여러분! 정말 나는 비천한 가운데에서 있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를 했습니다. 자유가 없는 노예였습니다. 주인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동물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매일 밤낮으로 일하는 짐승이었습니다. 비참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26-29절에서 말하기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능한 자도 많지 않았고, 문벌 좋은 자도 많지 않았습니다. 미련했고, 약했고, 천하였고, 멸시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들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택하여 불러 주셨습니다. 사랑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들만 그렇게 택하여 불러주셨을까요? 저 자신을 되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하나님께서 비천한 가운데에 있는 저를 기억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저는 이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저를 죄악 가운데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가난 가운데에서 건져주셨고, 질병 가운데에서 건져주셨고, 악한 환경 가운데에서 저를 건져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시편 142:6절에서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도, 변명할 수 없는 부족하고 죄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비천한 중에서 기억해주시고, 이끌어주셨습니다. 건져주셨습니다.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나”라는 곡을 지은 송명희 시인이 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아무리 똑바로 고개를 하고 싶어도, 자꾸 옆으로 기울어지고, 그래서 일곱 살이 될 때까지는 누워만 있었습니다. 열살이 되어서야 간신히 숟가락을 쥘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집안은 너무나 가난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폐결핵을 앓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에게 무슨 희망이 있었겠습니까? 무슨 감사가 있었겠습니까? 부모님과 하나님을 수없이 원망하면서, 자신이 태어난 운명을 저주하기도 했고,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열일곱 살이 되었을 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내가 죽더라도 한번 하나님을 만나서 따져보고 죽어야 되겠다.”
“도대체 나를 왜 이 모양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며, 도대체 이런 몰골로 세상을 살아야 될 의미가 무엇이냐?”
이런 생각이 들어서, 아주 작정을 하고, 하나님께 따지는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송명희 시인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내가 너를 버리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후 기도하는 가운데, 수많은 시를 쓰게 되었고, 전국의 교회를 다니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간증했습니다.
송명희 시인이 지은 “나”라는 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대로 걸을 수가 있습니까? 자유롭게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렇다고 많이 배우기를 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보고, 생각해도, 행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공평하신 것입니까? 공평하지 않습니다. 공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무너무 공평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으로나 세상적으로 볼 때, 어떠한 소망도 가질 수 없는 형편입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을 자신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보다도 절대로 덜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평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외형적인 조건이나 환경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녀의 환경이 바뀐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보는 눈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 것입니다. 믿음의 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송명희 시인은 노래합니다.
“열어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눈을 열어주소서 주님 바라볼 수 있도록. 열어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귀를 열어주소서 주님 말씀 들을 수 있도록. 열어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맘을 열어주소서 주님의 뜻 깨달을 수 있도록. 열어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입을 열어주소서 주님 말씀 전할 수 있도록.”
여러분! 송명희 시인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큰 은혜와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는다면, 원망과 불평의 삶을 산다면,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말한다면, 맛지족에서 말하는 “주둥이를 닦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건지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우리를 대적에게서 건지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2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멘.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여러분! 여러분의 대적이 누구입니까? 남편입니까? 아내입니까? 자식입니까? 아니면 형제입니까?
신명기 28: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대적 중에 가장 큰 대적은 원수 마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져주신다는 것은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주시고, 구원해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구원받은 것을 생각할 때마다, 정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사랑할 사람이, 오직 세상에 나 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하셨습니다. 정말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사랑하셨습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나의 죄악을 위하여,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데,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골로새서 2:6-7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한 몸에 책임지시고, 십자가로서 대속해 주셨습니다.
이사야 53:5절을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의 죽으심 때문에, 우리가 살게 되었고, 우리가 구원을 얻었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슬픔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셨고, 절망 가운데에 있는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으며, 암흑 가운데에 있는 우리에게 광명을 주셨고, 지옥 가운데에 있는 우리를 건지셔서, 천국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지식이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생을 보내 주셨을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업가를 보내 주셨을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건강이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사를 보내 주셨을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오락이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연예인을 보내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세주를 보내 주셨다.
여러분! 죄악 가운데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신 하늘의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2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멘.
하나님은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 사람들에게 먹는 즐거움이란, 정말 귀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먹어야 할 시간에 먹지 못하고, 양식이 없어 굶어야 한다면, 참으로 비참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예수님의 비유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해에 큰 풍년이 들었습니다. 예상 밖으로 많은 곡식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곡식을 그렇게 많이 거두게 되었어도, 하나님께 대한 감사한 생각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저 이 부자에게는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라는 걱정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창고를 더 크게 짓고, 거기에 곡식을 가득하게 쌓아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배를 쓸면서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여러분! 일년 동안 땀 흘리고, 열심히 농사하여, 풍년든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수확을 거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창고를 늘린 것이 잘못이 아닙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쌓을 곳이 없을 정도로 풍성한 수확을 얻어도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내일 당장 먹을 것이 없어도, 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감사할 수 있는 형편일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감사입니다.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한다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아무 것도 못 가진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날마다 새 생명을 주시고,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늘 감사하십시오.
넷째,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2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멘.
“하늘의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는 말이 참으로 좋습니다. 하늘에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나 계시고, 어느 자리에서도 만나주시고,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인들은 사람을 정의할 때에 “위를 바라보는 동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있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높은 하늘에 계시면서 우리를 보시기에, 더 멀리 내다보시고, 우리의 일생을 한 눈에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늘의 하나님,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높이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 기억해주시고, 대적의 손에서 건져주시고, 먹을 양식을 주시고, 건강을 주신 것,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나는 오늘 버스 안에서 금발 머리의 아름다운 소녀를 보았습니다. 그 소녀는 매우 명랑해 보였으며, 내가 만일 그 소녀처럼 예뻐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면서 나는 그 소녀를 부러워했습니다. 소녀가 버스에서 내리려고 갑자기 일어나 섰을 때, 나는 그녀가 통로로 다리를 심히 절면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소녀는 한 쪽 다리밖에 없어서, 목발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녀는 웃음을 잃지 않고, 걸어갔습니다.
“오, 주여! 부질없는 생각을 했던 나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나에게는 튼튼한 두 다리가 있사오니, 주여, 감사합니다.”
그 후 나는 과자를 파는 소년을 보았습니다. 그 소년은 무척 귀여워 보였습니다. 나는 그 소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무엇이든지 볼 수 있지요? 저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맹인입니다.”
“오, 주여 부질없는 행동을 했던 나를 용서해 주옵소서. 나에게 볼 수 없는 두 눈이 있사오니 감사합니다.”
또 나는 파란 눈동자의 어린아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우두커니 혼자 서서 다른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는 마치 운동할 줄 모르는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잠시 동안 지켜보았던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 너는 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지 않니?”
그러나 소년은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그냥 앞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 그 애가 귀머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 주여! 부질없이 행동했던 나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나에게는 들을 수 있는 두 귀가 있사오니, 주여 감사합니다. 오, 주여! 이 몸은 복 받은 자 이오니 주여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감사 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엄청난 은총을 생각하면, 우리의 생애 순간 순간이 모두 감사할 것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 살아가고 있는 사랑하는 이웃들을 바라볼 때마다, 서로가 고마워해야 되고, 감사할 일이, 또한 얼마나 많은 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한번 크게 감사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한꺼번에 크게 감사하기 위해서, 일상생활에, 사소한 일에, 감사의 마음을 나타내지 않게 되면, 감사의 마음 자체가 시들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고마운 마음이 생기면, 그 시간 지체하지 말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때, 감사의 조건이 이어지고, 감사는 자신의 생애와 다른 사람의 생애가 다 같이 부요해지는 경험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어떠한 감사의 노래가 있습니까? 무엇으로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추수 감사드릴 때에 감사의 조건이 무엇입니까?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이끌어 주시고, 나를 살려 주시고, 나를 높은 곳에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며 노래하며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를 택하사 구원의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십자가의 의로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그 모든 시험과 역경에서 이끌어 내셨던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질병과 낙심과 좌절 가운데서 구원하셨던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내 가정에 보배로운 자녀들을 주시고 길러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직업과 사업을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믿음의 터인 우리들의 교회와 성도들을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주님의 봉사자들과 목회자를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비록 지금 세상적으로 감사하기 어려울찌라도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비천한 가운데에 있는 우리를 기억하셔서, 우리를 찾아와주시고, 우리를 죄악에서, 대적의 손에서 건져주시고, 그때그때마다 필요한 먹을 양식을 주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늘 감사함으로, 하늘의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더 풍성한 복을 모두다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늘 동행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모든 인생 여정 가운데에서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사오며, 감사드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