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9(2007년 1월 25일) “아 ! 칼라파타르 환희와 고통” 02:22 Lobuche(4,930m)출발 05:35 Gorakshep(5,140m)도착 (3.5km 2:35 도보 0:38 휴식) 06:01 Gorakshep(5,140m)출발 08:31 Kalapattar(5,545m)도착 (1.5km 1:57 도보 0:33 휴식) 하산 Kalapattar - Gorakshep - Lobuche - Thukla - Pheriche
새벽 1시45분 바짝 긴장된 탓인지 알람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렸다. 입술이 헐고 다리는 천근인데도 벌떡 일어나졌다. 정신력으로 버텨야 하는 결전의 날, Everest를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벅찬 날이어서 일까? 머릿속은 오로지 올라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할 뿐 다른 어떤 생각도 없었다. 1시50분 오늘도 어김없이 차가 배달되었다. 정신이 혼미하여 맹하게 맛도 음미하지 못하고 그냥 삼켰다. 추위를 대비하여 주섬주섬 두툼한 옷가지를 주워 입고 바라크라바, 고소모자, 고소장갑, 그리고 해드렌탄 등 준비해간 갖가지 문명의 이기들로 온몸을 감쌌다. 거울에 비추어보면 흡사 무장 강도 같은 모습이었으리라. 한잠을 자서인지 지금이 밤인지 새벽인지 혼돈이 온다. 밖으로 나오니 오늘도 어김없이 하늘은 온통 별이다. 사방이 어둠으로 칠흑이니 별들의 세상이 더욱 화려하게 연출되는 모양이다. 4명이 탈락한 일행 5명, 가이드와 포트 4명, 모두 10명이 집단을 이루어 2시 22분 칼라파타르를 향하여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출발을 했다. 캄캄한 어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희미한 렌탄 불에 의지하여 걸었다. 밝은 아침은 분명 오는 것인데, 어둠 속을 걷고 있는 지금, 문득 날이 새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육신이 피폐하여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궁색한 변명 거리를 미리 마련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허기가 진다. 어제 저녁 식욕이 없어 대충 먹었었고 5천m 고산을 오르려니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 모양이다. 속이 메스꺼워 단 것은 먹지 못하고 콩을 씹었다. 침이 말라있어 콩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억지로 삼키려다 구토와 함께 토해 버렸다. 지처서 일어설 기력도 없다. 가이드 “라주”가 내 배낭을 대신 지며 괜찮은지 물었다. 한걸음 뒤에서 쉬고 있던 아내가 심하게 구토를 한다. 허기가 와서 초크렛을 먹었는데 빈속에 단 것이 들어가 속이 몹시 메스꺼운 모양이다. 구토를 하고 한동안 쉬어도 고통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등정을 포기하고 내려가겠단다. 포터와 함께 발걸음을 돌렸다. 얼마나 아쉬웠을까? 눈앞에 칼라파타르를 두고 돌아서 하산하는 심정이,, 이번 트레킹은 시간에 쫓겨 일정이 조금 무리였다. 기상악화로 인한 항공기 결항을 염려하여 예비 일을 하루 두었는데 사용하지 않았다. 만약 예비 일을 사용하여 오늘 일정을 2일로 늘렸으면 로부체에서 하산한 임여사와 아내도 충분히 목표한 정상을 오르는 기쁨을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 그것이 인생인 모양이다. 어둠 속에서 끝없이 계속되는 언덕길을 땅만 바라보며 걸었다. 한발 옮기는 것이 한번의 고통, 숨 한번 쉬는 것도 또 한번의 고통이니, 언제 이 길이 끝날지 고락셉에 도착하는 모습이 간절하게 그려진다. 빙하에 떠밀리고 폭우와 추위에 시달린 너덜은 왜 그렇게도 많은지 지친 육신에 걷는 불편까지 가중시키고 있었다. 5천m의 고산, 새벽의 추위는 참 매서웠다. 방수 등산화와 두꺼운 고소 장갑을 뚫고 들어오는 냉기,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 듯이 시리고 아프다. 마비가 온 것 같이 감각이 없다. 스틱을 잡은 손바닥도 너무 시리다. 스틱을 옆구리에 끼고 손을 우모복 주머니에 넣고 걸어 본다. 손은 조금 따뜻하나 발은 여전히 고통이다. 고락셉의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조금 과장을 한다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쁨이 지금의 상황과 비슷하였으리라, 언 몸을 녹이고 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고된 산행으로 지친 육신에서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것 같다. 야크똥의 따뜻한 화력이 눈앞에서 가물거린다. 빨려 들어가듯 롯지로 들어섰다. 밀크티로 몸을 녹였다. 서울에서 왔다는 젊은 친구들이 라면을 들고 롯지 안으로 들어왔다. 어제 이곳에서 숙박을 하고 칼라파타르 등정을 준비하고 있단다. 먼 타국 히말라야에서 만난 우리 동포들인데, 사무적으로 인사만하고 그들에겐 아무 관심도 없다. 추위와 고된 산행으로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있어 온갖 것이 귀찮았기 때문이다. 희미하게 밝아 오는 어둑새벽이 왔다. 반시간 정도 몸을 녹이고 다리쉼을 한 후 트레킹의 마지막 종착역 칼라파타르를 향했다. 롯지를 나서니 온통 흰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거대한 바위산 Nuptse (7,855m)의 모습이 아주 가까이에서 한 눈 가득 들어왔다. 장엄하고 웅장한 자태, 자연 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살아있는 설산이었다.
어둠 속에 가려있었던 히말라야의 장엄하고 변화무쌍한 풍광들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눈에 바라보이는 것 모두가 설산이다. 찬연한 보석덩어리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있었다. 고산증과 피로로 몸은 괴로워도 주체 할 수 없는 희열감이 가슴 가득 쌓여가고 있었다. 쌓이다 쌓이다 마침내 온 산을 향하여 분출되고 있었다.
에베레스트가 보였다. 발 아래로 굽이치는 파도를 조각한 것 같은 쿰부 빙하가 보였다. 멀리 아마다블람의 산정과 탐세루크의 모습도 보였다. 저 산 아래의 신작로를 걸어 걸어 여기까지 왔는데, 희열과 고통으로 뒤범벅이 된 지난 일정을 머리 속으로 되새겨 보면서 검은 바위 산 칼라파타르를 오르다 쉬고 오르다 또 쉬곤 하였다. 함께 올라오던 포터가 칼라파타르 중간 지점에서 하산을 했다. 고소가 온 모양이다. 고소는 우리뿐 아니라 그들에게도 찾아가는 모양이다. 등반을 안내하던 셀파가 고소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무섭기는 무서운 증상이다. 다행이 아직까지 잘 견디고 있는 나는 히말라야의 신이 보살피는 행운아인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8시 31분 칼라파타르 정상에 섰다. 더 오를 곳이 없다. 나의 두발로 오를 수 있는 하늘 향한 지구의 끝이다. 가까이 보이는 에베레스트 산정을 향해 내 마음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육신은 히말라야의 일부가 되고, 히말라야가 나의 신앙이 되는 귀중한 체험이 완성되었다. 마음은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함으로 빠져들었다.
정상 도착 15분전 일출이 시작되어 정상은 역광이라 에베레스트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 아쉽지만 푸모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곳 정상에도 누가 걸었는지 타르초가 휘날리고 있었다. 촬영을 하니 타르초도 멋진 배경이다. 정상 바위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잠깐 쉬었다. 긴장이 풀리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다시 고락셉에 도착하니 10시 6분, 부지런한 새벽을 열고 무사히 정상을 다녀왔다. 일행 모두는 이루었다는 성취감으로 기분은 좋았으나 극심한 피로에 쌓여있었다. 늦은 아침이 나왔다. 배가 고플 텐데, 입맛이 없어 억지로 삼키는듯했다. 식사 후 텅 빈 다이닝룸에서 한잠으로 피로를 풀기로 하였다. 1시간 30분 동안 깊은 잠을 잤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지친 몸들이 조금은 회복된 것 같았다. 하산하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올라 올 때는 어둠 속에서 자세히 보지 못하였는데, 내려가다 길들을 자세히 보니 굉장히 험하다. 쿰부 빙하 옆으로 나있는 연속된 언덕길인데 온통 너들 길이다. 폭우와 폭설이 오면 흙과 너덜이 밀려 지형이 바뀌는 험한 곳이라고 한다.
고랍셉을 출발하면서부터 조금씩 아프기 시작한 오른쪽 무릎에 심한 통증이 오기 시작하였다. 쉬다 걷다를 반복하면서 일행보다 1시간가량 늦게 로부체에 도착하였다. 늦은 점심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역시 입맛이 없고 삼키기가 고통이었다. 먹는 둥 마는 둥 숟가락을 놓고 일어서려니 통증이 더욱 가중되어 한발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더운물 찜질을 하고 약을 발라도 차도가 없다. 진퇴유곡이다. 이 궁지를 어떻게 헤어나가야 할지 앞이 깜깜하다. 일몰이 염려되어 일행들은 먼저 페리체로 향하였고 함께 남은 산행대장과 머리를 맞대고 묘안을 찾았으나 좋은 방도가 없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죽든 살든 내일 새벽 일찍 출발하겠다는 나의 제의에 대장은 난감한 모양이다. 맥을 놓고 난감해하고 있는데, 마당 앞 신작로에 말이 보였다. 밖으로 나간 대장이 말을 빌렸다고 한다. 마구를 준비하고 있으니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돈 욕심에 말 주인이 승낙을 한 모양인데, 아직 재갈도 물리지 않고 길들이지 않은 말이라고 한다. 고삐가 없어 붙잡을 수도 없었다. 타고 내려가기에 위험하여 결국은 포기를 하였다. 업어 주겠다고했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그들이 제의한 적지 않은 보수를 흔쾌히 수락하였다. 천을 맞대어 엉덩이 받침을 만들고 끈을 이마에 걸치고 도꼬에 짐을 지듯이 나를 업었다. 건장한 고산의 청년들이라 힘도 좋았다. 2명이 교대로 언덕길을 평지같이 날듯이 뛰었다. 먼저 출발한 일행보다도 훨씬 빨리 페리체에 도착하였다.
6.5km의 멀고 험한 길인데, 그렇게 위기는 극복되었다. 선물과 팁까지 두둑이 챙겨 받고 기분 좋게 돌아가는 그들에게 악수로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롯지 난롯가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사히 도착한 기쁨이 참 큰데 그래도 극심한 피로는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역시 저녁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쌓였던 피로에 무리한 일정이 몸을 녹초로 만든 모양이다. 배가 고픈데 밥이 넘어가지 않은 경우를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난생 처음 경험하는 기이한 현상들, 이해가 되지 않았고, 아무튼 밥은 넘어가지 않았다. 피로와 추위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아침 무릎이 괜찮아야 될 텐데, 걱정도 잠시 인사불성으로 잠에 빠졌다. |
출처: 知天命 꿈을 향하여,,, 원문보기 글쓴이: 두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