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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주일 예배
본문;<눅>5;4~5
제목; 깊은 데로 가라
오늘은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주의 말씀에 의지한 순종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오늘도
베드로와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 또한 깊은 데로 가라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깊은 데가 어디입니까?
여러분 베드로 그는
평생을 바다에서 그물을 내리며 어부로 살았던 전문가입니다.
그는 바다도 잘 알고 물때를 잘 알며
언제 어느 곳에
고기가 많이 모이고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는 시간 등을 예측하는 데는
베드로를 따라갈 수 없다 할 정도로
그는 전문가입니다...그런데 오늘 그가 고기를
못 잡았습니다.
즉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가 고기를 많이 잡았더라면
그물 씻기도
신이 났을 것이고
내일의 또 다른 만선을 위한 기대로 비록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가벼웠을 텐데
그러나 그는 지금 실패했기에
그래서 기분이 다운되어있고, 밤이 늦도록 고생함으로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어
피곤해 있는 그는 이제 쉬어야 할 시간이기도 한데
그는 군말 없이 순종했음을 알게 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의 삶도
처지도 형편도 환경도 이 베드로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께 배를 내어 드린 것도
하기 힘든 귀한 일인데
더군다나 갈릴리 호수 주변의 한 낮은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와
그 내리 쪼이는 햇살의 정도가 한창 뜨거운 때라
그래서 그물을 내릴만한 그런 시간도
더욱 아니었고
더욱이 고기가 모여도 해안가에 많이 모이는 것을 잘 아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절입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그러나 베드로의 입장에서의 이 말씀은
바다의 때와
그물을 내려야 할 시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방입니다
게다가 깊은 데로 가서라는 말은 더욱더 혼란스럽게 합니다
여러분 깊은 데가 어디입니까?
그러나 그는 잘 못된 진단이요 처방이라고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았고
그냥 말씀 그대로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순종이 능력입니다..따라하기; [순종이 능력이다]
그렇습니다...여러분
평생을 내 고집 내 지식과 내 경험, 내 뜻대로 살았는데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해안가가 아닌 깊은 데로 가라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구체적인 지명이나 목적과 방향도 없이
떠나, 가라 했던 것처럼..오늘 베드로에게도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내면에는 네가 순종하여 따르면
내가 책임지마
내가 인도하고 내가 해결하겠다는
주권자의 의지가 드러난 명령으로 들립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예]만 있지 [아니오]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군말 없이 순종했다고 5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투덜거리는 불평과 군소리를 했다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니 나는 따르오리다..아멘
그런데 여러분...다시 묻습니다 깊은 데가 어디입니까?
이 깊은 데라는 말은 사실
적용하기가 아주 애매모호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여러분이 생각하는 깊은 곳은
어디입니까?
깊은 곳을 적용하라는데 여러분은 어찌 적용하시겠습니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일까요
큰 건물이 있고 사통발달로 교통 순환이 좋은 곳일까요
뭔가 있어 보이고 보임직하며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한 곳
그렇습니다..참으로 풀기 힘들고 난해한 곳이 [깊은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하나 풀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먼저
깊은 데로 가서라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적용은
주님은 먼저 가르쳤고 베드로는 말씀을 듣는 일에서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4절 처음에 말씀을 마치시고
깊은 데로
가라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관점, 편견,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길이 잘 보입니다.
내가 세운 룰과 틀에 집착하면 눈을 혼잡하게 하여
판단도 잘 안 되고 잘 보이지도 않는 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깊게
높고 넓게 보라하시는 데
우리는 땅의 것과 낮은 곳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저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나를 붙들고 있는 룰과 틀
세속적인 잣대나
인본주의적 속성을 과감하게 벗어던져 버리면
더 넓은 더 멀리, 더 깊게, 더 높은 세계를 향해
내 눈이 열려
더 많이 더 넓고 깊고 높게 보게 됨을 믿어야 합니다.
즉 우리의 눈높이가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에는
베드로가 깊은 곳에 대해 고민한 흔적은 없습니다
우리만이 깊은 곳이 어디냐고 떠들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깊은 곳을 고민하던 중에
문득 주님이 주신 지혜는
따라할까요...
하나님의 은혜가 깃든 곳이 가장 깊은 곳이다...아멘
특히 롬11;33~36은 [좀 길기 때문에 제가 읽어드립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
그래서 저는 이 깊은 곳을 말씀으로 적용합니다.
여러분..더 어렵나요?
그럼 더 기도할까요...그렇다고 기도한다고 가르쳐 주실까요
본문 말씀에 그 깊은 곳이 제시되어 있나요?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 구합니다...
이를 잘 적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지혜를 달라고
그랬더니 성령님은
깊은 데라는 문자에, 즉 문자주의에 빠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할 때...문자나 숫자에
너무 치우치고
깊이 빠지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은 깊은 데라는 말을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깊은 데라는 말에 매몰되니 다른 것을 못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오늘
우리가 바르게 보아야 할 것은 베드로의 말씀에 의한 순종이지
깊은 데가 어디일까를 놓고 고민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문자나 숫자 모두 소중합니다
그러나 문자 주의에 빠지면 엉뚱한 곳에 매이게 되고
좌로나 우로
치우칠 염려와 위험도 있으며
덧입혀지거나 색칠하여 진리가 왜곡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말씀을 사사로이 풀지 말고 성령의 감동으로 풀어야 합니다
볼 수 있는 것만, 보여 지는 것만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성경을
세상의 잣대로 보아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영의 보고인 성경을
믿음으로 바라보면 영적인 눈이 떠지고 열립니다
그래서 신앙은 믿음의 그릇이지 이해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 세계를 바라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천국과 지옥을 말하고
하나님과 천사와 사단과 귀신을 말하는 것은
육의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의 세계도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보여 달라고
만나게 해 달라고 깨달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깊은 데로라는 말을 이렇게 적용합니다
들려진 말씀 앞에서
우리의 생각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깊은 곳이 어디냐 하면 발상의 전환으로 뛰어 넘는 그곳
한 번도 안 가본 곳
한 번도 안 해본 도전의 세계가 깊은 곳이요
내 상식을 뛰어넘는 도전이 바로 깊은 곳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태의연한 삶의 자세를 버립시다
나태하고 게으른 생각도 버립시다..
설마 될까가 아니라
나는 할 수 없지만 내게 능력주시는 주님의 은혜로 하면
주께서 이루게 하신다는 의식이 바로 깊은 곳입니다
<깊은 곳으로 가라>는
주님의 말씀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말씀에서 비전을 발견하고
길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그 길을 물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입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여러분 본문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보세요
여러분 본문 그대로
잡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본문을 잘 보세요...여러분 아시겠어요...
4절에서 주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하셨지만
5절의 베드로는 [깊은 곳이란 말은 빼고] 다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다고 본문이 말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깊은 곳이 어딘가를
고심해하거나
고민하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그냥 말씀만을 의지하고, 말씀 하시는 주님만을 신뢰하며
그물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이 계신 곳..즉 말씀이 계신 곳에서
말씀에 의지..
즉 주님께 의지하며 맡기고 그물을 내렸다는 것으로 들립니다
이제 조금 이해가 됩니까?
여러분 베드로는 지금 주님이 말씀하신
깊은 곳이 이해 안 된다고 무시하여 빼 버린 것이 아니라
주님이 계신 곳을..
주님의 말씀이 선포된 곳을 깊은 곳으로 적용하여
말씀에 의지한 순종을 했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 뜻 내 생각이 아닌 주의 뜻으로 순종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베드로의 진가는 순종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깊은 곳을 고민하며
논문도 쓰고 깊게 연구하는데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주님은 베드로의 이런 순종에 화답하여 응답하셨습니다
여러분 쉽게 알아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깊은 곳에 빠져 있었지만 베드로는 그냥 순종했습니다
세상말로 하면 주님이 계신 곳이 가장 좋은 명당입니다
주님이 계신 곳이 깊은 데이고
주님이 책임져 주실 것이니 믿고 맡기고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보아야 할 것은 주님을 대하는 베드로의 태도가
바뀌었음을 발견합니다
아직은 주여..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랍비여..라고 말합니다
랍비여ㅡ 선생이여- 이 말은 존경의 의미가 묻어 있습니다
최고의 존대입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밤이 새도록, 몇 날 며칠을 밤을 지새며
연구하고 고민하고 도전했으나
잡은 것도 없고 열매도 없다고 솔직한 고백을 합니다
수험생이 열심히 공부했으나 성적은 안 나오더라
여러분 왜요
열심히 했는데 왜 성적이 안 나왔을까요..
금식도 하며
열심히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습니까?
이유는 자명합니다..여러분 방법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늘 하던 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일했으나 삶은 늘 고달프고 주머니는 늘 비었다는
불평도 합니다
여러분 왜요..늘 하던 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내 방식으로 하지 말고 세상의 방법으로도 하지 말고
그러니까 나부터 바꾸고 생각과 관념과 태도도 바꾸고
인생관도 세계관도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라고 누가 그랬듯이
성경적 가치로 싹 바꾸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속과
세상 방식을 다 버리고 주님의 주권에만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것이 믿는 자의 변화된 자세입니다
우리 변화합시다
말씀에 길이 있고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음을 믿는다면
그리고 말씀이 곧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믿는 다면 그 분께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그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는 내 생각, 내 지식, 내 경험과 내 상식으로
세상의 그물을 내렸지만 이제는 말씀에 의지하여
도전하고
그물을 내리겠다는 순종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내가 잘 못 판단한 깊은 곳이라 할지라도
주님이 내 순종을 보시고
우리에게 주 앞에서의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우리가 들은 말씀을 마음으로 믿어
입술로 선포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적용하여 기도하면
반드시 나을 것이고
고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구하면 치유되고
회복된다는 말씀입니다
주여..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으로 하옵소서
여러분..이렇게 선포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렇습니다...믿음이 중요한 단서이고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알고 적용하여 결단하게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묵시는 정한 때가 있고 비록 더딜지라도
속히 이룰 것이니
너는 기다리라 내가 반드시 응하리라..아멘
베드로는 밤이 늦도록 수고했으나
잡은 것이 없다고 했는데
저와 여러분은 밤이 새도록 무엇을 붙잡고 수고했습니까?
내 뜻 내 생각대로, 예전에 살았던 방법을 고수하고
여전히 깊은 곳을 찾으며
이전의 생각과 예전의 방식으로 했습니까?
외모와 가방끈, 스펙으로 내 지식과 내 상식의 경험으로 했습니까?
그런데 베드로도
그와 같은 방법을 가지고 밤이 늦도록 수고 했으나
얻은 것이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믿음의 단서를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얻은 것이 많아 배부르고 등 따시면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얻은 것이 없어야 잡은 것이 전무해야 순종하게 된다는 역설에
우리는 귀 기울여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살이가 무척이나 많은 열심과
특심으로 살아왔는데도 불구하고 별로 잡은 것이 없고
별로 이루어놓은 것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그 기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 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패한 베드로,
잡은 것이 없는 베드로가 순종하기 위해
그가 붙잡은 것이 있는 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베드로도 순종을 하기 위해 말씀을 붙잡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도 말씀을 붙잡는 순종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면 깊은 곳이 보일 것입니다..아멘
베드로는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온갖 노력을 다했다는 고백이요 그랬는데도 실패했다는 고백입니다.
얻은 것이 전무했고 따라서 결과물이 하나도 없다는
솔직한 고백입니다.
실패의 환경은 자신의 한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고백이 소중한 것입니다.
실패를 내 탓으로 돌리는
이런 고백은 이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것이요
내 인생의 주권을
하나님께 이전시키겠다는 고백이요
이제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 만 의지하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는 또 말합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아멘
그렇습니다.
이 고백은 베드로의 적용이고 결단이요 순종입니다.
베드로는 실패했기에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실패는
즉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와 사건과 고난은
말씀이 들려지게 하기 위한 주님의 크신 배려임을
아셔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우리도 이렇게
우리 앞에 처한
실수나 실패, 혹은 시행착오들을
말씀 듣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 모두가
그날 그날 주신 말씀대로 한 번 살아 보시기를 권면으로 드립니다
그 일이 바로 말씀에 의지한 순종입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되려면
선포된 로고스를 레마로 듣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일에 익숙해 지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어야 하고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도 자라고 신앙도 성숙해져야 합니다
광야의 연단이나 고난도 피하지 말고
말씀과 기도로
견디고 이겨내는 훈련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열심히 하고
주께 의지하며
성령님과 소통을 자주 하는 성도는 영안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새벽도 열심히 붙잡고 각종 공 예배에 참여하고
양육도 받아야 합니다
세상일만큼이나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신앙생활은 믿음으로 살아내는 일입니다.
따라하기;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살아내는 일이다
여러분..황무지가, 가시덤불과 잡풀로 우거진 땅이
돌짝밭이요
아스팔트와 같은 땅인 저와 여러분의 심령이 옥토가 되려면
기경하여 갈무리하며 오랜 시간 땀 흘리며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온전히 구비된
인내의 그 시간이 다 흐른 후에 마침내 옥토가 되면
그곳에 100배 60배 30배의 열매가 주렁 주렁 하듯이
말씀에 의지한 순종으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릴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대박을
견인해 내는데
그 대박은 다음 주에 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오늘은 말씀에 의지한 순종으로 적용하고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권면하며 축복하고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