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중에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로 시작되는 동요가 있다. 바로 '꽃밭에서'란 동요다. 어린 시절 배운 동요 중에 아직까지 가사를 외우고 있는 몇 안되는 동요 중 하나인데 동요의 가사에보면 채송화, 봉숭아, 나팔꽃 등 꽃이름이 나온다. 여름을 대표하는 꽃들이다. 채송화의 꽃말은 순진, 천진난만 등이며 나팔꽃의 꽃말은 결속, 허무한 사랑이다.
어제 뇌경색에 치매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를 외출시켜 부모님 댁을 다녀왔다. 매 주 한 번씩 시켜드리는 외출이지만 주중에 광복절이 끼어 있어서 병원 생활을 힘들어 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한 번 더 외출을 신청했다. 외출이 쉽지는 않다. 뇌경색으로 잘 걷지 못해서 화장실 가는 것도 보통문제가 아니다. 집에 가면 우선 조금 쉬시고 드시고 싶은 음식을 배달시켜 함께 점심을 먹는다. 그제는 쌀국수가 드시고 싶다고 하여 시켜드렸더니 엄청 잘드셨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좋아하는 전통 가요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 낮의 더위를 피하고 그 다음은 산책이다. 그때는 휠체어 대신 워커를 끌고 보행을 하는데 아들과 나 둘이 달라붙는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기 일수이기에 엄청 신경이 쓰인다. 화장실에 모시고 가는 것도 엄청 곤욕이다. 기저귀를 차고 있지만 되도록 화장실을 가서 볼일을 보려하시기에 화장실 들어가서 나오기까지 어머니 스스로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다. 한바탕 씨름을 한 후 변기에 앉히고 입히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겨우 볼일을 보고 나온다.
부모님 댁은 아파트 1층이다. 베란다 쪽에 작은 화단을 꾸며 놓았는데 오늘은 그쪽을 가보고 싶단다. 화단이래봐야 이사가는 사람이 버리고간 돌하루방 두 개, 그리고 내가 가셔다 놓은 수석 몇 점, 조개껍데기 등이 전부신데 꽃이라도 피면 조금 낫지만 아주 조그맣고 볼품없다. 그래도어머니는 그곳을 좋아하신다.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곳이기도 하고 내가 어렸을 때 살던 고향집의 커다란 뜰을 상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고향집 뜰에는 해마다 여름이면 채송화와 나팔꽃이 만발했었다. 아버지는 손수 시멘트 블럭을 만들어 대문까지 길을 내셨고 어머니는 정원에 꽃씨를 심었다. 난 부모님이 만들어준 꽃의 정원에서 뛰어놀았고 동요를 부르며 꽃향기를 맡고 지냈다.
보행기에 의지해 겨우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지금의 어머니 얼굴과 머리에 수건을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정원을 가꾸던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젊은 시절의 모습은 사라지고 내가 초등학교 시절 엄마 얼굴 그리기 미술 대회에서 상을 탔을 때 그렸던 탱탱하고 예뻤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젠 병마에 지쳐 점점 시들어가는 아픈 모습만 남았다. 그래도 어머니의 얼굴은 꽃이다. 아무리 쭈글쭈글하고 늙어간 얼굴이라도 내게는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정원에 가득 핀 빨강, 초록, 분홍과 노란, 총 천연색의 향기나는 꽃보다 아름다운 꽃이다.
"엄마 이제 들어가요. 너무 더워서 힘들테니 들어가서 좀 쉬세요."
"토요일 또 외출하니까 병원에서 잠 잘 주무시고 입맛 없으면 과일하고 야채 드세요."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 간병인과 나누어 드실 오이 몇개, 아삭이 고추 몇 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천도 복숭아, 참외를 사가지고 간다. 요양병원에 도착했다. 아들과 손자에게 잘가라고 손을 흔드는 어머니의 모습이 마치 채송화의 꽃말처럼 천진 난만한 어린 아이같다. 때론 아이같은 고집에 화가 나고 짜증도 나지만 어머니는 나의 꽃이다. 어린 시절 고향집에서 보았던 채송화, 봉숭아 나팔꽃보다 더 예쁘고 향기로운 꽃이다.
첫댓글 ● 정철 / 훈민가 中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엇지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지극한 효심에 가슴이 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