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아찌아 글자, 한글문화 청람(靑藍)의 싹일까
심의섭(명지대 명예교수)
한글과 한국어는 엄연히 다르다. 한글은 글자를 말하고 한국어는 말이다. 한글의 국제화는 여러 나라에서 한글을 문자로 사용하는 것이다. 마치 영어나 외국어의 발음을 한글로 쓰는 것과 같다. 한국어의 세계화는 한국말이 많은 나라에서 말하고, 듣고, 쓰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국운의 융성기를 맞아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관심이 치솟고 있다. 따라서 한국말을 배우고 한글을 사용하고, 심지어 한글을 자기 고유의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로 사용하는 곳도 있다. 어는 종족은 고유 언어를 정확히 표시할 수 없어서 그들의 언어와 역사, 문화가 사라질 위기에 있는 곳도 있다. 한글의 우수성을 알고 한글로 종족어를 보존하려는 현지의 움직임도 있고, 한글의 수요개발을 위해 인도네시아나 솔로몬 군도 같은 곳에서 협력하고 지원하는 사업도 있다.
인도네시아의 바우바우시에 사는 찌아찌아족(Cia-Cia族)은 2009년에 한글을 도입하여 부족어 표기에 사용하기도 한지 15년에 접어들고 있다. 7만 명의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은 고유 언어는 있지만 문자가 없어 모두 로마자로 표기하고 있어서 자신의 언어와 문화가 사라져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로마자로 정확한 표기가 어렵던 것을 소리글자인 한글로는 쉽게 표기 할 수 있게 되었다. 한글의 국제화 사업은 찌아지아족 외에도 2012년 남태평양 섬나라 솔로몬제도의 중심지역인 과달카날주와 말라이타주가 한글을 표기문자로 도입하고자 했다. 인도네시아 부톤섬의 찌이찌아족에 이어 두 번째 한글 보급 사업을 했다가 자금 부족으로 1년 만에 중단된 바 있다.
인도네시아의 공용어는 인도네시아어 이고 문자는 로마자(라틴자)다. 찌아찌아족은 이미 공용어인 로마자에 익숙한데 더 정확한 표기를 위해 한글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한글을 배우면서 더불어 한국어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찌아찌아족에게 찌아찌아어를 한글로 적으라고 하는 것은 아주 딴 문제다. 로마자 대신 한글로 적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배우기 쉬운 한글이라도 배워야하고 사용해야 한다. 한글이 정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단일 언어 정책과의 조율도 필요할 것이다.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것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표기문자를 바꾸는 것은 종족언어를 보존하려는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로마자 표기를 포기하고 한글표기를 스스로 택한 것이라면 우리도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신중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우리말을 로마자로 바꾸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종족의 구성원이나 자발적으로 생경한 글자를 도입하여 토착화 되려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한글 수출과 같은 수요개발로 추진하는 것은 단기적인 애로 뿐 만 아니라 장기적인 문화효과(문화충돌)와 국제관계까지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찌아지아족에 대한 한글사업은 15년이라는 기간이 길 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데 그동안 사업 운영에 대한 잡음과 오해, 기대보다 낮은 성과는 사업에 관한 쟁론의 빌미가 된 것 같다.
그래도 찌아찌아족에 대한 한글사업은 비단 한글 부문 뿐만 아니라 한국어 열풍, 문화교류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인 부수효과를 누리고 있다. 한국과 바우바우시와의 관계증진을 넘어 비슷한 처지의 인접국가로까지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새로운 인식을 흔들어 주고 있다. 찌아찌아족 말을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쓰며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 쓰였던 순경음 비읍(ㅸ) 같은 문자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의 28자 중에서 첫소리(초성) 17자 가운데 ㅿ,ㆁ,ㆆ은 사라졌고 중성 11자 중에서 아래아(·)도 사라졌다. 자음 병서가 많이 사라졌고 연서의 순경음(ㅸ,ㅹ,ㆄ,ㅱ)도 사라졌다. 현재 세계화 시대에 다양한 외국어를 접하며 살아야하는 우리는 달라진 언어 환경에서 훈민정음의 사라진 글자들을 아쉬워하고 있다. 각종 외래어가 일상으로 되었는데 원음에 가까운 것을 표기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한글도 고정된 게 아니라 시대에 맞춰 변화 내지는 발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찌아찌아족어 순경음(ㅸ) 사용은 훈민정음에서 사라진 글자의 부활에 타산지석으로 고려해야할 것이다. 찌아찌아 문화에서 한글이 정착되어 한글의 국제화에 앞장서고 한글 문화의 청람(靑藍)이 되는 싹으로 틔어지길 바란다.
찌아지아어의 한글표기
자음 | ㄱ | ㄲ | ㄴ | ㄷ | ㅌ | ㄸ | ㄹ | ᄙ | ㅁ | ㅂ | ㅸ | ㅍ | ㅃ | ㅅ | ㅇ | ㅈ | ㅉ | ㅎ |
IPA | ɡ | k | n | ɗ | d | t | r ~ ʁ | l | m | ɓ | v | b | p | s | -, ʔ, ŋ | dʒ | tʃ | h |
모음 | ㅏ | ㅔ | ㅗ | ㅜ | ㅣ | 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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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A | a | e | o | u | i | 없음 |
주: IPA(국제 표음 문자 International Phonetic Alphabet)
자료: 찌아찌아어/위키백과
[2024.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