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 7. 27. 16:40
유홍『柳泓, 1483(성종 14)~1551(명종 6)』은 유순정의 아들로, 아버지를 꽤나 닮았습니다. <유홍 초상>은 전신상과 반신상 각각 1점씩 남아있는데, 이모한 것이지만 고식이 뚜렷하게 남아있습니다. 유홍도 정국공신에 책봉되었지만, 공신상으로 그려진 것은 아니라 추정됩니다.
특기할 점은 흉배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흉배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해 뭐라 쓰기가 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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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정국공신 4등에 책록된 공신.무신으로.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연(子淵). 아버지는 영의정 유순정(柳順汀)이며, 어머니는 별좌(別坐) 권효충(權孝忠)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무예를 익혔으며, 1506년 중종반정을 주도한 아버지를 따라 반정군으로 활동,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에 책록되고 사복시주부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형조정랑과 공조정랑을 역임하였다.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이 일어나 아버지가 남정도원수(南征都元帥)가 되자 막료로서 도왔고, 난이 평정된 뒤 내자시(內資寺)와 군기시(軍器寺)의 첨정을 지냈다.
이듬해 무과에 급제해 사복시부정에 오르고, 이어 훈련원부정을 거쳐 제포첨사(薺浦僉使)로 나갔다. 이 때 역대의 첨사들이 뇌물을 받고 도서(圖書)의 검사를 소홀히 하여, 왜인이 왜관에 무시로 출입하던 폐습을 단호히 뿌리뽑는 한편, 왜선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였다.
이듬해 경상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가 첨지중추부사로 조정에 들어가 오위장을 겸임했고, 1519년 이후 원주와 정주의 목사를 거쳐 훈련원도정, 충청도의 병마사와 수군절도사, 경상우도병마사·전라도수군절도사·회령부사·북병사 등의 변경장수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544년 진산군(晉山君)에 봉해지고 부총관을 겸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 당시 금직제장(禁直諸將)의 한 사람으로서 위사원종공신(衛社原從功臣)에 책록되어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승진하고, 1547년 훈련원도정을 거쳐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무신이면서도 문인·유사(儒士)와 널리 교유하였다. 청렴검소해 공조정랑으로 있을 때에는 선임자들이 관청의 그릇을 함부로 사용하던 폐습을 완전히 근절시키기도 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