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의 힘
이영우 전 경북도교육감
경북도민일보 2020.07.06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주어진 상황에 맞게 표정을 지으며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연기의 핵심이다. 일상생활에서는 행동과 표정보다 말이 중심이 된다. 정감있게 대화를 잘하는 사람, 논리적으로 설득을 잘하는 사람, 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유세나 강연을 잘하는 사람, 유머를 잘하여 분위기를 재미나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말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같은 내용을 말해도 논리 정연하게 표현하면 듣기도 편하고 쉽게 이해가 된다. 한번은 한국 경제에 대해 어느 대학 총장의 강의를 들은 일이 있었다. 우리 경제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여주듯 요약하여 쉽고 간명하게 설명하는 것을 들으며, 나도 학생을 가르칠 때 저와 같이 쉽고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했던가 하는 반성도 해봤다. 어느 수학 교수가 어렵다는 미분과 적분을 초등학교 5학년에게 가르칠 수 있어야 진정한 수학 교사가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상대방이 알아듣도록 설명하지 못한다면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아인슈타인은 지적하고 있다.
말의 힘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옛날 가난한 집에 배가 고파 우는 아이에게 어머니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매를 들고 때리고 있었다. 지나가던 스님이 이 광경을 보고 갑자기 아이를 향해 큰절을 했다. 놀란 어머니는 왜 아이에게 절을 하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이 아이는 앞으로 정승이 될 사람이니 잘 키워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매를 들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아이를 키워 이 아이가 자라서 실제로 영의정이 되었다. 아이 엄마는 예언한 스님을 찾아 감사의 말과 함께 어떻게 그렇게 용한지를 묻자, 스님은 내가 어떻게 아이의 미래를 알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아이를 정승같이 키우면 정승이 되고, 머슴처럼 키우면 머슴이 된다”라고 했다. 말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오래된 얘기다. 젊은 시절 작은 아파트에 여섯 식구가 비좁게 살 때, 하루는 신축한 넓고 아름다운 단독 주택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도 언젠가는 이와 같은 아름답고 마당에 잔디도 심고 강아지도 한 마리 키울 수 있는 넓은 집을 마련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본 일이 있었다. 그로부터 몇 해 되지 않아 정말 생각하고 꿈꾸었던 그런 집을 지어 입주한 일이 있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여러 차례 겪었다.
그 후 무엇이든지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으면 항상 긍정적으로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 재산, 명예, 그 외에 간절히 원하고 바라면 그렇게 이루어지더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피그말리온 효과라고도 하고 자성 예언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자신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바라고 원하는 그림을 자주 그려보자. 나는 무엇이든 잘할 수 있고 유능한 사람이라고 자신에게 말하면서 최면을 걸어보자. 그러면 생각하고 꿈꾸었던 일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말의 힘이다. 희망하지 않고 바라지도 않은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 기회는 준비하고 찾는 사람에게 주어지기 마련이다.
세상에는 말 잘하는 사람도 많고 글 잘 쓰는 사람도 많다. 말과 글의 장점은 따로 있다. 정치와 외교, 인간관계는 말이 중심이 되고, 감동이 오래가고 깊은 맛을 내는 데는 글이 앞선다.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다. 아름다운 여성을 마음에 두고 있지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에 뭔가 쑥스러워서, 일주일에 한 번씩 감성에 호소하는 장문의 편지를 일 년 동안 보낸 후, 그 여인의 마음을 얻어 부부의 인연을 맺어 잘살고 있는 경우를 보았다.
지난날에는 편지로 정을 나누고 그로 인해 인연을 맺은 사람이 많았다. 지금은 교통과 문화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옛날과 비교할 수 없는 환경이다. 수시로 전화하고, 만나고, 편지보다 문자로 주고받는 것이 시류지만, 그래도 가슴 설레는 기다림이 있고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정성이 담긴 편지도 한번 써 보자. 아마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글의 힘을 살펴보자.
치밀한 구성과 지속적인 생명력 등에서는 말보다 글이 앞선다. 유네스코 세계기록 문화유산에 등재된 난중일기는 위대한 충무공의 영웅적 이야기보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전쟁 중에,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부인과 자식을 걱정하는 평범한 인간의 참모습이 더 잘 그려져 있다. 왕 중심의 조선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조선왕조실록은 한류를 일으킨 대장금, 허준과 같은 수많은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소재의 보고가 되고 있으며, 뛰어난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인기를 끌었던 박경리의 토지는 등장인물만 해도 500여 명이 넘으며 집필 기간이 25년이라는 장기에 걸쳐 이루어진 대작이다. 역사와 문학 작품들이 모두 기록의 힘이다.
말은 의사소통의 중심 도구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교양과 인품을 나타내는 데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하루라도 말을 하지 않고 살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생활의 전부가 말로 이루어진다. 글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 위력이 더해지며, 오늘의 지식과 기술을 후대에 전하여 인류를 발전시켜주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이렇게 좋은 환경 속에 잘 사는 것도 모두 기록의 덕분이다.
우리 생활에 말과 글, 이보다 더 가치 있고 힘을 가진 것이 또 있을까?
이영우 전 경북도교육감/경북도민 일보에서 복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