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 팥죽
땡볕과 가뭄과 장마를 이겨낸 강낭콩
밭고랑에 파아란 움이 틔었다
흰색의 꽃이 피고 지고
꼬투리엔 강낭콩 씨앗
잎 사이엔 하늘이 보인다
두루마리구름, 비늘구름, 면사포구름
자주 빛 채두菜豆
이슬 맺혀진 밭고랑을 돌며
바짓가랑이를 흠뻑 적시다
황토밭고랑 고슬고슬 물기 빠지면
강낭콩 대를 뽑는다
나도 라도 전라도의 청춘을 뽑는다
아버지 말씀 한 마디는 법보다 무서웠던 그때
장마에 썩어 싹이 난다고 채근하시던 아버지
냇가의 물놀이, 고무줄놀이 돌 주워 먹기 놀이
토방을 굴러도
강낭콩 대를 뽑아야한다
팥죽이 먹고 싶으면
할머니와 엄마가 생각나는 마당가
방학이면 강낭콩과 씨름을 해도
장작불 피워 할머니가 끓여주신
강낭콩 팥죽
쑥 모깃불이 그리워라
우리가족 두레밥상에 둘러앉아
단단하고 굳은 내장을 호호 불며
뜨거운 강낭콩 팥죽으로 녹인다
핏빛 강낭콩 팥죽
나를 키웠다, 우리 가족을 키웠다
내 영혼의 회복기
창밖엔 초록초록 봄이 기어오르고
철쭉꽃들 방굿방긋 꽃 나팔 불 때
서재로 돌아오니 울긋불긋
저마다 자존감을 뽐내며
잘난 사람들이 방안가득이다
무언지 모르면서
무조건 활자란 활자는
눈물이 날 때까지
먹었다
돈만 생기면
즐비한 책방으로 달려가
한보따리 책을 사던 그때
책이 밥 먹여 주더냐
잠 없이 잠을 자던 그때
가족들에게 지청구 듣던 그때
파랗게 나동그라질 때까지
내일을 후벼 파던 그때
나는 너를 끊고
책을 읽었다
나는 사랑을 끊고
너를 샀다
카페 게시글
내 마음의 묵정밭
강낭콩 팥죽
김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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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30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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