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8.수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요 18:28~32
*제목; 요한복음강해(38) 빌라도의 관정에 서시다!
1. 지난 수요성령집회 이야기
우리는 다 '베드로'처럼 고집 세고 어리석으며, '말고'처럼 주님의 자녀이면서도 죄의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것에 상관없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이 사실을 믿고, 구하면, 은혜를 주십니다. 그 은혜로 우리는 우리의 죄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멘.
2. 빌라도의 관정에 서시다!
이제 예수님은 불법의 상장인 대제사장 가야바(대제사장이 2명, 밤에 예수님을 체포함, 재판 시 공의회를 소집하지 않음 등) 앞에서 모욕을 당하시고,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려가십니다.
왜 굳이 빌라도의 관정으로 그 “새벽”에 예수님을 끌고 갔는지는 ‘31절’에 보면 정확하게 드러납니다.
“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요 18:31)
예수님을 죽이고 싶었으나, 그들에게는 사랑을 죽일 권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모든 행정과 사법권은 로마정부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부터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욕구가 넘쳐나 ‘빌라도의 관정’으로 달려간 것입니다.
‘28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28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요 18:28)
“새벽”은 하루 중에 가장 어두운 시간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움직인 시간이 죄로 가득했던 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이 “새벽” 죄로 가장 어두운 시간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준비되는 것입니다.
월요일 새벽기도회 시간에 다윗의 시편20편을 묵상하면서, “환란 날”에 대해서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환란 날”은 나의 연약함을 깨닫는 날이요, 그래서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찾을 기회를 얻는 날이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날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자녀에게는 “환란 날”이 “은혜의 날”의 시작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새벽”이 “구원의 역사의 시작점”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새벽에 빌라도의 관정으로 달려간 유대인들의 행동이 참으로 이상합니다. 관정에 예수님만 들여보내고, 자신들은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유월절 앞에서 더럽힘(제의적이고 율법적인 정결을 훼손하는 행위)을 받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우스운 일입니다. 지금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려는 역사상 가장 더러운 죄를 지으면서도, 유월절 앞에 더럽힘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습니다. 신앙의 형식은 있는데, 진정한 고백이 없습니다. 종교적 행위(의례히 해야 하는 신앙적 행동들)는 하지만, 믿음의 행동(주님의 참 뜻을 세우기 위한 결단과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어리석은 유대인들입니다.
예수님을 보고 다시 밖으로 나와 빌라도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29~31절’입니다.
“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30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요 18:29~31)
예수님께 아무런 죄를 찾을 수 없고 말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을 더 소리를 질러 죽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너희 법으로 처리하라고 하는 빌라도에게 자신들은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다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죄가 승리하는 것 같은 상황 가운데에서도 주님은 말씀을 이루어가십니다. ‘32절’입니다.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 18:32)
우리 주님은 믿으십시오. 우리가 세상에 지고 있는 듯 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주님은 승리를 만들어 가고 계시며, 우리가 비록 죄악 가운데 있어도 주님은 우리 구원을 완성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멘.
이제 빌라도와 관정에 서 계신 예수님 사이에 대화가 이어집니다. ‘33~38절’입니다.
“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요 18:33~38)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예수님의 왕이냐?’ 물었고, 예수님은 이 질문이 너의 고백인지 다시 되물으셨습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진정으로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고백이 진짜 여러분의 고백입니까? 그렇다면 고백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고백이 배운 대로 아는 대로만 하는 고백이기 때문에, 삶으로 그 고백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고백이 가짜이니 삶에서의 은혜도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고백합시다. 이렇게 바로 고백하려면, 주님을 향한 바른 경험(살아계신 주님의 역사)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도전이 필요합니다. ‘도전-경험-바른 고백’. 이를 이루어 가시길 기도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38절’에서 빌라도가 한 질문의 너무 중요합니다. “진리가 무엇이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진리,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천국의 영생을 주는 참된 진리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하신 ‘진리’에 대한 말씀은 그 뜻인데, 빌라도는 그 말을 듣고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반문합니다. 이는 사실 비꼬는 소리입니다.
그 진리를 안다면, 당신이 그 진리의 주체라면 왜 이런 꼴을 당하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다른 말로 ‘그 진리가 밥 먹여 주느냐?’는 말과 비슷한 뉘앙스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진리가 밥 먹여 줍니까?”
“네, 진리는 우리에게 밥을 먹여주시고, 진정한 생명을 허락하십니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자녀들도 이 사실에 대해서 바로 알지 못합니다. 실상과 허상을 잘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은 사실 허상입니다. 100여년 남짓 지나면 다 사라져 없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허상입니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빛을 발하고 존재하는 것이 바로 실상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고, 믿음이고,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사실은 허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집중하고 살아야 할 것이 바로 실상인 믿음과 믿음의 삶,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혹은 자기 자신에게)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과 진리(예수님)는 밥 먹여주시고, 밥 뿐만 아니라 더 큰 복과 은혜를 주십니다. 아멘.
이제 상황이 이러니 빌라도는 ‘유월절 규례’(구원과 해방을 기념하는 절기)대로 죄인을 석방하겠다고 말합니다. ‘39~40절’입니다.
“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40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요 18:39~40)
빌라도는 죄 없는 예수님을 풀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풀어주라고 합니다. 그는 “강도”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눅 23:19’에 보면 ‘독립운동가’였습니다.
“19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눅 23:19)
유대인들은 여전히 실상과 허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실제적인 해방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바라바를 풀어달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만이, 믿음만이 영원한 실상입니다.
어리석은 허상에 젖어 진리를 잃어버리지 말고, 항상 진리 가운데 바로 고백하고 바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진리가 밥 먹여주는가?' 아멘입니다. 진리를 우리로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고, 우리 삶을 새롭게 하고,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십니다. 이 진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믿음이 밥 먹여 주는가? 이 질문에 담대하게 대답하십시오. 믿음만이 우리의 밥을 먹여주시고,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