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 도를 닦는다는 것 - 8 ( 都不要求覓)
云
若如此則 都不要求覓也(약여차즉 도불요구멱야)
닛가
배휴가 묻기를,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구하고 찾을 것이 없는
것입니까?
수행을 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참선을 하고, 경전ㆍ어록을 공부하고,
염불ㆍ기도하는 것은 결국은 도를 통하고 지혜를
갖추는 견성성불을 위한 것이잖아요.
수행을 하는 이유는 목적이 있는 것이고,
그 목적을 찾고 구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스님의 말씀을 듣고 배휴거사가 의문이
생긴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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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 도를 닦는다는 것 - 9
師云
若與麼則省心力(약여마즉성심력)이니라
대사께서 대답하시기를,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마음의 힘을 더는 것이다.
만약 찾고 구할 것이 없다는 이치만 알게 되면
마음이 깃털처럼 아주 가뿐해집니다.
불교를 통해서 뭔가를 얻으려는 마음과는
반대의 길이지요.
우리의 깜량대로 불교를 이해하려고 해서 그렇지,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깨달은 사람의
가르침은 정반대입니다.
깨달은 사람의 눈에는 모든 현상이
환상ㆍ환영ㆍ그림자일 뿐인데,
우리는 자꾸 끌어 모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깨어있는 사람이 꿈 깨라고
자꾸 이야기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길몽을 꾸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비는 것이지요.
그런데 깨달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악몽이나 길몽이나 똑 같은 겁니다.
길몽이나 악몽이나 그 꿈에서 깨라는 것이지요.
자식이 공부 잘해서 좋은 학교 가는 것은 길몽이고,
공부 못해서 대학에 떨어지는 것은 악몽이니,
길몽을 꾸게 해달라는 것이거든요.
꿈 깨기를 바라고, 꿈 깨기를 가르치는 부처님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습니까?
길몽 꾼 사람이 왜 악몽은 꾸지 않겠어요?
길몽 꾸면 악몽도 꾸게 되어 있고,
그렇다고 악몽만 꾸는 것도 아닙니다.
인생은 악몽을 한참 꾸다보면
간혹 길몽도 있는 법입니다.
그 재미로 안 죽고 계속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살만하면 죽는 것이 인생이지요.
與麼 = 都不要求覓(八-8)과 같은 뜻입니다.
아무것도 구하고 찾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마음의 힘을 들여 구할 것이 없다는 뜻이지요.
道도 구할 바 없는데 부귀공명은 말하여
무엇하겠습니까?
배휴거사는 지금으로 말하면 국무총리와 같은
지위에 올랐던 사람입니다.
평생 부귀영화만을 누리고 살았으며,
재상까지 했으니 해볼 것은 모두 해본 사람이지요.
세상사 이것저것 다 해보고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道에 대한 관심뿐인 사람입니다.
그런 배휴이기에 처음 묻는 것이 도란 무엇이고
어떻게 수행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지요.
거사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생각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도를 구하려 하지 말라.
도를 구하지 않으면 마음의 힘을 들지 않아
가뿐해 질것이다. 라는 답을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