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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김 문 수
1
최민섭은 건장한 젊은이였다. 1미터 80센티의 훤칠한 키에 90 킬로나 되는 몸집이었다. 어깨는 떡 벌어져 있었고 혈색 또한 아주 좋았다. 그야말로 건장한 사내였다. 게다가 얼굴까지도 웬만한 배우 뺨치게 잘생긴 미남 총각이었다. 나이도 스물일곱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무직자였다. 사람들은 그가 빈둥빈둥 놀고 먹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렇게 훌미끈하고 젊고 건강한 사람이 어째서 빈둥빈둥 놀고 먹는지 그 속을 모르겠다구.”
이웃사람들은 대개 이런 생각들을 품고 있었다.
“큰 그릇이 되려면 그만큼 세월이 걸리는 법이지. 언젠가는 크게 성공할 사람이야.”
또 이렇게 말하는 축들도 있었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그의 집을 드나들며 색시감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5년 전, 그러니까 그가 스물두 살 나던 해부터 중신이 들어왔다. 지금까지 꼭 열일곱 명의 처녀가 소개되었다. 그 열일곱 명의 처녀 중, 열네 명은 최민섭이 딱지를 놓았고 나머지 세 명으로부터는 그가 퇴짜를 맞았다.
그가 딱지를 놓은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여자가 너무나 몸이 약하다는 이유도 있었고 키가 작아 자기와는 걸맞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었다. 얼굴이 너무 아무렇게나 생겼다고 하기도 했고 너무 뚱뚱하다는 이유를 달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유를 달기 위한 이유에 지나지 않았다. 최민섭이 그의 가슴속에 뜰뜰 뭉쳐넣은 채 입밖에 내지 않는 한결같은 이유는 엉뚱한 것이었다. 여자들의 집이 부유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부유하지 않으면 권세라도 부리는 집안이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자기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매번 중신 서는 사람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잘생 긴 총각 중신하기가 똑 떨어지게 예쁜 처녀 중신하기보다 더 어렵구먼.”
“총각 눈이 다락같이 높아서 어떻게 그 눈에다 색시감을 맞출지 알 수가 없다구.”
중신을 서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한결같이 혀를 내둘러댔다.
사실, 키가 작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은 색시는 결코 작은 키가 아닌 중키였으며 아무렇게나 생겼다는 색시도 그녀가 다니는 직장에서 미녀로 선발되어 한껏 콧대가 높아 있는 실정이었다. 몸이 약하다고 딱지를 맞은 아가씨도 날씬한 자기 몸매에 취해 있었고 뚱뚱하다고 퇴짜맞은 아가씨는 또 그 아가씨대로 자기는 부잣집 맏며느리감이라고 은근히 뽐내고 있는 처지였다.
최민섭의 어머니는 아들이 색시감을 퇴짜놓을 때마다 궁한 말로 중매 선 사람을 달래야만 했다.
“다 연줄이 닿지 않아서 그런 걸 어쩝니까, 다른 색시 좀 소개하세요.”
이렇게 달래듯 말하기도 했고,
“나도 그 처녀 인물에 반했다구요. 하지만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당자가 곱게 보지 않는 데야 난들 어쩌겠어요. 그러니 참한 다른 색시 하나 더 소개하세요.”
라고 사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번 중매섰던 사람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최민섭은 바로 그 일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공격을 받게 되었다.
“넌 도대체 어떤 색시를 원하는 거냐? 네 속 좀 알자꾸나.”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서 속시원하게 대답 좀 해봐.”
어머니도 아버지를 거들어 아들의 대답을 재촉했다.
“제 맘에 드는 색시를 원하죠.”
최민섭은 아무렇게나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여댔다.
“글쎄, 내가 알고 싶은 게 바로 그거야. 어떤 색시라야 네 맘에 들겠느냐 이거야!”
아버지의 언성이 높아졌다.
“부잣집 딸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권세라도 부리는 집 딸이든지요.”
“…….”
아버지는 아들의 대답에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틈을 타서 어머니가 잰입을 놀렸다.
“그건 네 말이 옳다.”
“옳지 않구요. 집안이 부유치 못하면 여봐라 하고 방귀라도 크게 뀌는 그런 집안이어야지·…·이건 하나같이 썩은 걸레처럼 빌빌거리는 집구석에서 태어난 것들이니 그런 걸 데려와서 뭘 하느냐 이겁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얘기에 또다시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백 번 옳은 얘기야. 이제야 네 깊은 속을 알았다. 이 미련한 에미가 아들 하나 있는 거 혼기 놓칠세라 거기에만 정신을 팔다보니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지 뭐냐.”
“얼씨구, 절씨구.”
아버지는 어머니의 수다에 기가 막혀 얼굴까지 외로 꼬았다.
“아니, 당신 왜 그러우? 뭐가 못마땅해서 소태 씹은 얼굴이냐구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굳어버린 입술을 풀어놓는 데 성공했다.
“재벌이나 세도가의 집안 색시가 아니면 장가갈 생각이 없다는 얘기잖소?”
“아직 귀 하나는 성하구려.”
어머니가 비아냥댔다. 그 바람에 화가 난 아버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돈있고 권력있는 집안 색시가 뭐이 답답해 우리 집안으로 시집을 오냔 말이야!”
“왜, 우리 민섭 이가 어때서요? 미남에다 건강하겠다, 남들도 다들 침이 마르도록 신랑감 좋다고 탐을 내는데 당신은 어째서 남의 자식 얘기하듯 하는 거예요?”
어머니의 목소리도 거칠어졌다.
“내 자식이니까 하는 말이야. 남의 자식 같으면 얘기할 건덕지도 못 되는 일이라구!”
“애비라는 작자가 아들 하나 있는 거 잘 되길 바라지는 않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낯빛은 똑같이 변해 있었다. 비가 오려면 구름이 끼어야 되듯 그것은 부부싸움의 전조였다. 최민섭은 그 싸움을 예방할 궁리를 짰다. 싸움이 시작됐다 하면 별의별 케케묵은 옛날 얘기가 다 동원이 되고 또 그것들이 새끼를 치고 그 새끼들이 또 새끼를 치는 바람에 밤을 새기가 예사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밤을 새워 싸우건 밤낮없이 며칠을 두고 싸우건 최민섭은 그런 것엔 아랑곳도 없었다. 다만 그 싸움으로 인하여 끼니를 거르게 된다든지 잠을 설치게 되는 따위의 피해를 받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애비라는 작자?”
“왜, 내가 뭐 틀린 말 했수?”
일촉즉발의 상태였다. 최민섭은 마치 위험수위를 조정하는 수문의 핸들을 조정하듯 앞뒤를 재가며 신중하게 입을 놀렸다.
“제 얘기는 말이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얘기예요.”
어머니가 무릎을 쳤다.
“그렇구말구. 이왕이면 다홍치마지.”
아버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자알들 논다. 왜, 다홍치마보다 이왕이면 순금치마가 더 좋잖구?”
이번에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향해 비아냥거리며 혀까지 찼다. 그리고는 휙 밖으로 나가버 렸다.
“어머니, 우리 집안은 돈이 많든지 세도를 부리든지 하는 집에서 며느리를 데려와야만 합니다. 그렇잖으면 도저히 집안을 일으킬 수가 없어요. 어머니는 늙어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계속 남의 삯바느질만 해야 되구요.”
“누가 아니라니, 누가 아니래. 네 얘기가 천만 번 옳은 얘기야.”
“그러니 집안 시원찮으면 얘기도 못 꺼내게 하세요.”
“알았다, 알았어. 중신 서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이제 그것부터 털어놔야겠어.”
최민섭의 집에 다른 중매쟁이가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그런 일이 있고서도 한 달쯤 지난 뒤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계속 최민섭이 퇴짜를 맞았다. 그는 세 처녀로부터 연달아 퇴짜를 맞고 나자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신랑 인물은 그만하면 괜찮은데요, 외아들에다 가문도 별 볼 일 없구……어쨌든 나하고는 아무런 얘기도 없었던 걸로 해주세요.”
첫번째 아가씨가 중매쟁이에게 한 얘기였다. 다른 두 아가씨도 신랑이 직장도 없고 그렇다고 돈이 있어 사업을 할 처지도 못 되는 사람이니 싫다는 얘기와 집안이 너무 기운다는 이유로 최민섭과의 혼담을 두 번 다시 꺼내지를 못하게 했다.
“성사가 된 연후에 뺨을 때리든 볼기를 치든 할 일이지. 이건 겨우 선 한 번 보구서 날더러 사기꾼이니 뭐니 하고 욕들을 해대니 어디 억울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죠.”
“사기꾼이라뇨?”
“내가 댁의 집안과 댁의 아드님에 대해 튀밥 좀 튀겨 얘기했지 뭐유.”
“튀밥을 튀기다뇨?”
“어머나, 다 아시면서·…·어쨌든 난 더 이상 헛걸음질 않겠어요. 그러니 댁의 입에 맞는 꿀떡을 얻으시려거든 우선 아드님 직장부터 구해주시든지 아니 면 사업을 하게시리 뭘 하나 차려주시든지 하셔야겠수.”
“아따, 그러게 내가 뭐랬수? 신랑감 하나는 나무랄 데가 없으니 부잣집 딸이거나 가문 좋은 집 딸과 짝만 채워 달라잖았수. 그렇게만 되면야 두둑하게 주머닐 채워드린댔잖우. 그게 큰 거 한 장일 수두 있구 경우에 따라서는 그 배가 될 수두 있다잖았어요!”
어머니는 중매쟁이를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졌다.
“짚신도 제 날이 좋은 법이에요. 그런데 세상 답답하게 두더지 혼인만을 생 각하시냐구요.”
“두더지 혼인이라뇨?”
“옛날에 한 두더지가 자기 딸 잘 둔 생각만 하고……. 어쨌든 자꾸만 긴 얘기 늘어놓을 게 없다구요. 아드님 장가 잘 보내시려면 우선 일자리부터 구해주셔야 하겠더라구요.”
그 중매쟁이는 그날 이후로 코끝도 비치지 않았다. 어머니는 은근히 몸이 달았다. 불길한 예감이 찬바람처럼 가슴속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어머니는 아들에게 의논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직장이 있어야겠다. 그렇잖구야 어디 좋은 색시감이 나서야 말이지.”
“날더러 취직을 하라 이런 얘깁니까? 돈 몇 푼 만져보자고 이놈 저놈 밑에 가서 매일같이 굽신거려라 그런 얘깁니까?”
“직장이 없다구 색시들이 널 마다니까 하는 소리야.”
“그 맹추 같은 것들이 눈이 삐어서 그런 거예요. 두구 보세요.”
최민섭이 호기있게 떠들어댔다. 그러한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의 얼굴에 갑작스런 그늘 같은 것이 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넌 네 아범을 그렇게도 빼다박은 듯이 닮았니 ? 두고 보기는 월 두고 보란 얘기냐? 느 아범한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길 또 네 녀석한테까지도 듣게 되다니. 느 아범이 평생토록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잖고 놀고 먹으면서도 매일같이 두고 보라고 큰소리만 쳤단 말야. 어쩌면 그렇게도 꼭 느 아범을 빼다박은 듯 닮았느냐.”
어머니의 탄식은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어머니는 내가 빈둥빈둥 놀고 먹으며 큰소리를 땅땅 치는 게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고 하시지만 아버지는 또 아버지대로 내가 어머니를 닮아서 분수가 없다는 거예요.”
최민섭은 실실 헛웃음을 치며 어머니의 부아를 질렀다.
“뭐야? 날 닮아서 뭐가 어쨌다구?”
“괜스리 팔자에도 없는 돈이나 탐내고 평생토록 이때나 저때나 하고 어디서 횡재가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분수없는 마음은 꼭 어머니를 닮았다고 하더란 말입니다.”
“뭐야? 이놈의 영감탱이 평생토록 처가 재산이나 축내놓고, 처가 신세도 질 수 없게 되자 이제는 여편네 등에 업혀 살아가는 주제에…….”
어머니는 혈압이 오르는지 이마에 손을 얹으며 하던 말을 중동무이로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동안 가쁜 숨을 몰아쉬던 끝에 노기가 등등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이놈의 영감탱이 어디 들어오기만 해봐라!”
최민섭은 재빨리 밖으로 빠져나왔다. 공연히 집 안에서 얼쩡대다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싸움에 말려들어 이런저런 피해를 입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
최민섭이 결혼한 지도 만 2년이 지났다. 이제 그는 서른 살이었다. 그러나 그를 나이대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구나 그를 30대 중반으로 보았다.
“저 친구가 왜 갑자기 저렇게 겉늙었지?”
“그러게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 뭐야. 돈 많은 과불 물었으니 호강이 이 만저 만 아닐 텐데…….”
모두들 최민섭의 얼굴을 보며 이상하다고 수근거렸다.
“그 과부가 말야, 잔뜩 굶주린 걸 그 친구한테서 한꺼번에 채우는 모양이지?”
“돈푼깨나 만지게 됐다고 온통 제 세상처럼 거드름을 피워대더니만 싸다구 싸!”
듣기 거북할 정도의 심한 말로 최민섭을 몰아붙이는 축도 있었다.
최민섭의 아내는 그보다 꼭 열다섯 살이 많았다. 때문에 그들의 결혼식 때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축복하기보다는 야유하기에 바빴다.
“과연 돈이 좋긴 좋군. 돈만 있으면 저렇게 홀미끈하고도 팔팔한 신랑을 살 수가 있으니·…·.”
“제엔장, 나 같으면 억만금을 준대도 저런 할망구한테 청춘을 바치진 않겠네.”
한구석에서 이렇게 수근거리자 다른 쪽에서도 히히덕거리며 떠들어댔다.
“재수가 좋은 과부는 앉을 자리가 생겨도 요강 뚜껑 위에 생긴다는 속담이 있지. 말하자면 복불복이라는 얘기야.”
“재수 좋은 쪽은 과부가 아니라 사내 쪽인지도 몰라. 혈혈단신에 사고무친한 과부라니까 과부가 죽으면 그 재산이 몽땅 사내 것이 될 게 뻔하잖나.”
“그러니까 나이 많은 과부가 재산을 남겨놓고 먼저 죽으면 사내는 그 재산을 물쓰듯 하면서 재미를 누릴 수 있다는 얘긴가?”
“그렇게 얘기할 수 없는 것은 아니나 내 생각은 좀 달라.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해서 만났다아 이런 얘기지. 과부는 젊은 사내를 사는데 있어 재산이 아깝지 않았던 것이고 젊은 사내는 또 그 사내대로 과부의 돈을 노리기 위해서 아낌없이 자기 청춘을 던진 것이니까. 말하자면 썩 잘 맞는 궁합이다아 이거야.”
그들에 관한 험담과 야유와 폭언의 꽃은 끊임없이 피었다. 마치 무수한 꽃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정원처럼 사시사철 여러 가지의 색깔로 피고지고 했다.
결국 최민섭은 아내를 설득시켜 낯선 동네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더 이상 동네사람들의 험담과 야유의 제물이 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혼 2개월 만이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그곳의 낯선 사람들은 그들에게 무관심했다. 그러나 마냥 안심하고 지낼 수만은 없다는 것이 최민섭의 생각이었다. 지금 당장은 무관심한 사람들이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그들의 눈이 의혹으로 가득 찰 것이고 또 그 의혹의 눈길은 비난과 야유의 눈길로 바뀔 것이 어김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최민섭은 모 재벌로부터 파티에 참석해달라는 초청을 받게 되었다. 물론 아내와 함께 참석해야 하는 자리였다.
“또 그날 만나는 작자들이 입방아깨나 찧겠군.”
최민섭이 초청장을 들여다보며 걱정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꼴이로군.”
아내가 깔깔깔 허리를 잡았다.
“구더기 생기잖게 장 담그는 방법도 있거든.”
“그거 재밌네. 한데 그게 뭐지?”
“분장술.”
“영화배우들이 하는?”
최민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참, 정말로 재밌군그래. 어디 한 번 해보드라고.”
최민섭의 아내가 여느 때는 전혀 쓰지 않는 그녀 고향의 사투리까지 말꼬리에 붙이고 호들갑스럽게 깔깔댔다.
다행하게도 최민섭에게는 연극배우 지망생이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단역일망정 무대에까지 올랐던 경험도 있었다. 그때 분장에 관해 어깨너머로 배운 바가 있었다.
그는 우선 도수 없는 금테 안경을 하나 구했다. 노색이 나는 천으로 양복도 맞췄다. 머리가 센 것처럼 희끗희끗하게 칠하고 이마며 눈가에 정성들여 주름을 그려넣었다.
“이만하면 어때?”
최민섭의 물음에 아내는 그의 모습을 이러저리 살펴본 다음 비교적 정확한 평을 했다。
“글쎄에, 감쪽같다곤 할 수 없지만 그런대로 속아주겠구먼.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사람이 모두 한 살이라도 젊게 뵈려고 옷 색깔이나 넥타이까지 신경을 쓰는 판인데, 나이가 들어보이게 변장했다고 누가 의심할라구?”
아내의 말대로 그가 나이를 많게 속이기 위해 변장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의 파티에 참석하고 온 후로 최민섭은 외출 때마다 거울 앞에 앉는 버릇이 생겼다. 그가 거울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아내의 그것보다도 훨씬 길었다. 늙은 얼굴을 조금이라도 젊고 예쁘게 뵈도록 꾸미는 일보다 어떻게든 한 살이라도 더 나이가 들어 뵈게 꾸미는 일이 훨씬 더 힘드는 모양이었다. 그토록 양쪽에서 동갑이라는 나이를 만들기 위해 무진 애를 다 쓰건만 그들의 얼굴은 늘 아내가 남편보다 다섯 살쯤은 연상으로 보이곤 했다. 원래 열다섯 살 차이니까 최민섭의 변장술과 그의 아내 화장술이 합하여 10년이란 세월을 속여먹은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나머지 5년의 흔적 때문에 그들 부부와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들은 으레 그들의 나이를 알고 싶어했다. 실례가 되는 질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모두들 빙빙 돌려서 묻곤 했다. 그러면 최민섭은 기탄없는 대답을 보냈다.
“금년으로 사십 줄은 넘어섰습니다. 이 사람과는 동갑이지요.”
아내를 턱짓으로 가리키는 최민섭의 목소리는 굵고 느릿느릿했다. 자기가 주장하는 나이와 걸맞는 목소리를 꾸미는 것이었다. 그러면 상대방은 별 의심 없이 그의 말을 받곤 했다.
“혼자서만 늙잖는 비결을 쓰시지 말고 부인께도 좀 가르쳐주셔야겠소.”
또 어떤 사람은 그의 아내에게 은근한 말로 속삭이기도 했다.
“사모님께서도 분발하세요. 바깥어른만 늙지 않게 보살피면 결국 사모님께서 화를 당하신다아 이런 말씀이에요. 오히려 사모님께서 자꾸 젊어지셔야 바깥어른이 한눈을 팔지 않게 되거든요.”
최민섭의 아내는 저런 얘기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그녀는 남편이 외모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쉬 늙을 수 있을까 하고 온갖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최민섭은 자기가 쉬 늙을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나 주저하지 않고 했다. 그는 하룻밤에도 몇 차례씩 아내의 몸을 요구했었다.
아내와의 잠자리 횟수가 많을수록 쉬 늙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그의 속마음을 안 아내가 말했다.
“그 짓 때문에 당신이 쉬 늙는다면 나도 마찬가지로 쉬 늙을 게 아냐? 그러니 다른 방법을 찾아봐.”
아내는 최민섭에게 자상한 누님처럼 여러 가지를 덧붙여 말했다.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여자와는 그 행위를 해도 눈감아주겠다는 얘기도 했다. 다만 외박은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때 그는 아내가 자기의 성적 요구를 충분하게 받아줄 수 없을 만큼 몸에 어떤 이상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그 생각을 잊어버렸다. 오직 그는 자기 얼굴이 아내와 같은 늙은 얼굴이 되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 또 그는 어떤 외국의 의학자에 의해 밝혀졌다는 한 신문기사를 읽은 다음부터 줄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담배연기의 소입자에서 나오는 방사능이 조로증(早老症)을 유발시 킨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그는 결혼 전 아내로부터 들었던 한마디의 말을 영 잊을 수가 없었다.
“우선 당장은 나도 젊은 당신과 결혼해서 사는 게 좋지요. 하지만 세월이 흘러봐요. 젊은 당신은 장년이 되지만 인생의 비탈길로 접어든 나는 사정없이 늙어버려요. 그렇게 되어 당신의 팽팽한 얼굴 옆에 있는 내 추한 얼굴을 볼 때, 내 마음이 어떻겠느냔 말예요? 그때 나는 늙어 추하게 된 내 얼굴을 돋보이게 하는 당신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을 거예요. 그래서 그때 만약 내가 이혼을 해달라면 이혼을 해주겠어요?”
그때 최민섭은 그러마고 쾌히 대답을 했지만 속으로는 결코 그런 날이 와서는 안 된다고 마음속에 깊이 새겨놓고 있었다.
어쨌든 그는 결혼 후 지금까지 자기 아내가 늙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여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듯 그렇게 온갖 정성을 다 쏟아가며 조금이라도 더 빨리 늙으려고 애를 써댔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최민섭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여보, 이리 좀 와봐요. 와서 내 얼굴 좀 보라 !”
간절하게 원했던 장난감을 가지게 된 어린애처럼 겅중겅중 뛰기까지 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녀는 지금 과부의 노화방지에 특효가 있다는 외제 화장품을 얼굴 전체에 덕지덕지 발라놓고 있는 중이었다.
“여보, 드디어 내 얼굴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어!”
최민섭은 아내애게로 달려가서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거울에 비친 남편의 얼굴을 흘낏 쳐다볼 뿐 계속 입을 봉하고 있었다.
“이거 보라구. 확실히 늙기 시작한 얼굴이야.”
최민섭은 눈꼬리 부근에 잡힌 잔주름이며 이마의 주름까지도 손가락으로 일일이 짚어보였다. 그래도 아내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
“아하, 내가 거짓말을 시키는 줄 아는구려. 이것 보라구. 절대로 거짓말이 아니라니까!”
그는 아내의 화장수건을 집어들고 이마며 눈언저리를 싹싹 문질러 닦았다.
“시끄러워요, 저리 비켜요.”
아내가 화장수건을 채뜨려 뺏으며 볼멘소리를 내질렀기 때문에 최민섭은 주춤 물러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왜 그래 ? 내 얼굴에 당신 얼굴과 어울리는 주름이 잡히고 있다는데 당신은 반갑지도 않아?”
최민섭은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빌붙듯 말했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늙은 얼굴이 되어서 좋겠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얼굴에 주름살이 없어지지 않아서 신경질이 난다구요.”
“당신 얼굴에 주름살이 없어지지 않아도 내 얼굴이 자꾸만 늙어지면 되잖소? 앞으로 1년만 더 있어봐요. 그때는 내 얼굴도 당신과 똑같이 늙어보일 거요.”
“비켜요! 모든 게 다 귀찮아요. 모든 게 끝장이라구요!”
“진정하래두, 그 대신에 내 얼굴의 이렇게 빨리 늙고 있잖소. 적어도 내년쯤이면 내 얼굴 때문에 당신 얼귤이 주름살이 돋보이는 일은 없을 거요.”
최민섭은 아내가 더 이상 기분 상해서는 곤란하므로 계속 그녀를 위로해야만 했다. 아내의 기분이 상해 있어서 자기에게 이득이 될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아내는 몹시 상해 있는 기분 때문에 느닷없이 이혼 문제를 꺼낼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런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는 근 네 시간 동안이나 아내 옆에 붙어앉아서 위로를 해야만 했다.
“우리 밖에 나가 외식이나 합시다.”
아내는 기분이 누그러졌는지 먼저 이렇게 제의했다. 최민섭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싶어 재빨리 운전수를 불렀다.
최민섭은 아내의 뒤를 따라 차에 오르며 운전수에게 지시했다.
“이보게, 이 군. 우리 명동에 좀 데려다주게.”
“네, 사장님.”
군대물이 채 가시지 않은 운전수가 박력 있게 대답하며 차를 몰았다. 그런데 운전수는 틈이 생 길 때마다 최민섭의 얼굴을 백미러로 살펴댔다.
아하, 이 녀석도 내가 갑작스레 늙어 있는 것을 눈치챘구나. 최민섭은 이렇게 생각하며 농담처럼 한마디 던졌다.
“이 사람아, 내 얼굴에 뭐가 묻기라도 했나?”
“아닙니다, 사장님.”
운전수가 절도있게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계속 입을 열었다.
“사장님께서 많이 젊어지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크, 이 녀석이 산통을 깨는구나. 최민섭은 재빨리 아내의 얼굴 표정부터 살폈다. 그리고 나서 입을 열었다.
“젊어지다니?”
운전수는 최민섭이 내뱉는 화난 목소리에 영문을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알 수가 없는 인생도 있는데 젊어졌다는 얘기가 뭐 나빠서 화를 내우?”
아내가 운전수를 역성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 있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최민섭은 의아한 눈길로 아내를 빠안히 쳐다보았다.
“인생은 뜬구름 같은 거라는 얘기도 못 들었수? 어서 내리기나 해요.”
차는 어느새 그들의 단골 식당에 닿아 있었다. 차에서 내린 그의 앞을 고둥학교 동창생이 지나치려 했다. 동창생은 식당에서 나오는 길이었고 최민섭은 식당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디려는 순간이었다.
“여 어, 오랜만일세.”
최민섭이 자기 앞을 지나치려는 동창생의 팔뚝을 나꿔채듯 잡았다.
“누구신지요?”
팔뚝을 잡힌 사내가 어정쩡한 자세로 선 채 최민섭을 살펴보았다.
“날쎄, 나 최민섭이야.”
“최민섭 씨라뇨?”
“이 사람아. 자네 김장호 아닌가. 고등학교 동창을 이렇게 몰라보다니.”
“네, 제가 김장홉니다만…….”
사나이는 최민섭의 얼굴에 박은 눈을 자꾸만 꿈벅 거렸다. 그리고 계속해 입을 열었다.
“……혹시 제 선배 되십니까?”
“이 친구야, 선배가 아니라 동기동창생이야!”
“동기동창 최민섭?”
“그렇다니까!”
“아니, 그런데 어째 이렇게 늙었나? 아니 정말 몰라보게 얼굴이 변했다구. 냉큼 알아보지 못했다구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말게.”
“천만에!”
최민섭의 목소리는 더없이 명랑했다. 동기생조차도 냉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늙어보인다는 점이 그를 즐겁게 했다. 더구나 분장을 한 얼굴도 아니니 더욱 그럴 수밖에. 최민섭이 동기생과 헤어졌을 때는 운전수 때문에 상했던 기분이 완전히 가셔져 있었다. 그의 기분은 근래에 없이 유쾌했다. 그래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식당을 향해 걸으며, 앞에 들어와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을 아내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3
최민섭이 아내를 잃은 것은 그가 서른 두 살 나던 해 가을의 일이었다. 그녀는 위암에 걸려 있었다. 위암이라는 진단이 내린 것은 결혼한 지 3년이 되던 해였다. 그리나 그때는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게 악화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그 회복할 수 없는 병을 남편에게 알리지 않았다.
최민섭은 아내가 죽고 나서야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니 ‘인생은 뜬구름 같은 것’이니 하고 언젠가 말했던 그 말들이 아내 자신을 가리킨 말임을 알게 되었다. 그 무렵의 공연한 짜증이나 우울증의 발작도 불치의 병, 바로 그 때문이었음이라고 이해되었다.
“요즘처럼 의학이 발달한 세상에 돈 많은 여자가 쉰 살도 못 살고 병으로 세상을 떴다는 건 확실히 억울한 노릇이야,”
“그 동안 호의호식에다 새파란 젊은이를 남편으로 데리고 살았으니 별로 억울할 것도 없지 뭐. 게다가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피붙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유산 때문에 쌈박질을 할 일가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니 눈을 감을 때는 아주 홀가분한 기분이었을 게 아냐? 죽을 때 홀가분한 마음으로 죽는 것도 큰 복이라구!”
장례식장 한 귀퉁이에서 이런 얘기가 오고갔다. 먼저 사람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남편이 있는 여자잖아.”
뒷사람이 다시 받았다.
“그들 두 사람은 남편과 아내 사이라기보다는 공서(公棲) 관계 였다고 말해야 될 것 같애. 예를 들면 악어와 악어새 같은 사이 말야. 여자는 생리적으로 젊고 건장한 사내가 필요했고 또 사내는 사내대로 언젠가는 남기고 갈 그 여자의 많은 재산이 탐났던 거야. 놀라지 말게. 그들 부부의 나이 차이는 자그마치 15 년이야. 그것도 여자 쪽이 많은 거라구.”
“도대체 그 여자는 무슨 재주로 그 많은 재산을 모았지?”
“여자의 전남편이 모은 재산이래. 전남편은 젊은 여자에게서 아들이라도 하나 얻고 싶어 서른다섯 살짜리 요정 접대부를 후처로 맞았다는군. 그러나 전처에게서처럼 대를 이을 자손을 얻지 못했던 거야. 그리고 그런 채로 그 남자는 죽은 거야. 교통사고였대나봐. 호박이 덩굴째로 그 젊은 여자에게 굴러떨어졌던 거지. 지금 저쪽에서 상복을 입고 있는 지 젊은 홀아비처럼.”
얘기를 마친 사람은 아까부터 망인의 영정 앞에 망연한 자세로 앉아 줄담배를 태우고 있는 최민섭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자네 이 집안 내력을 어찌 그리 훤하게 아나?”
“여기저기서 귀동냥한 얘기일 뿐이야.”
문상객들이 이러쿵 지러쿵 떠들어대는 얘기가 최민섭의 귀에까지 들어갈 리도 없었지만 또 들어갔다손쳐도 그는 이제 그런 험담이나 야유 따위에 기분이 좌우될 그런 처지가 아니었다.
장례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아주 검소하게 치러졌다. 고인의 유언이 없었더라도 최민섭은 절대 장례비로 많은 돈을 지출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원래 자기 돈을 함부로 쓰는 성격이 아니었다. 액수의 고하, 출처나 성걱의 여하를 막론하고 일단 자기 주먹에 들어온 돈은 여간해서 되내놓지 않기로 유명했다. 아내가 남긴 유산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아내에게 유산을 받을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직 자기 한 사람뿐이었다. 이렇듯 자기의 소유가 될 재산을 아무렇게나 낭비할 리가 없는 최민섭이었다. 더구나 그 유산이 자기 소유가 되기까지 그의 노고가 어떠했는가. 결코 짧다고만 말할 수 없는 4년 동안 그는 자신의 청춘을 송두리째 바쳐오지 않았던가. 그는 아내가 남긴 유산이 그 모든 것의 대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기막힌 돈을 어찌 한푼이라도 헛되이 낭비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는 자신의 속마음을 아무에게나 까보일 필요가 없었다.
“돈을 아낄 생각이 아니오. 다만 죽은 아내의 간곡한 유언을 어길 수가 없어서 그래요. 그러니 아까 댁에서 말씀하신 예산 중에서 경비가 제일 적게 드는 쪽으로 모든 일을 처리토록 하시오. 거기에서 한푼도 더 초과해서 지불할 수가 없소. 나는 죽은 내 아내의 유언을 도저히 어길 수가 없소.”
최민섭은 장의사에서 나온 사람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아내의 유언을 강조했다. 그리고 수시(收屍)에서부터 봉분이 이루어지기까지, 아낄대로 아낀 최소의 비용만을 장의사에 지불했다. 장의사에서 나온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그의 인색함을 욕했으나 그는 눈도 꿈뻑하는 법이 없었다.
묘지에서 돌아온 최민섭이 만사를 젖혀놓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면도와 목욕이었다. 욕실에서 나온 그의 발길이 무의식중에 멈춘 곳은 아내의 화장대 앞이었다.
그는 거울 속에 담긴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때 그는 자기의 얼굴과 비교할 아내의 얼굴이 없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아내의 죽음을 새삼 실감하면서도 슿프다거나 외롭다거나 하는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쓸쓸하지도 않았거니와 허전한 기분도 들지 않았다.
최민섭은 그런 덤덤한 기분으로 계속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마치 게으른 하인을 감시하듯 끊임없이 자신의 얼굴에서 늙음만을 찾던 그 따가운 눈길이 이제는 없었다. 그는 거울 앞에 서서 서서히 밀려오는 야릇한 해방감을 맛보게 되었다. 그렇게 일기 시작한 해방감으로 가슴이 충만되었을 때 그는 문득 자신의 나이를 생가하게 되었다.
“서른둘!”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자신의 그 한마디에 최민섭은 소스라칠 듯 놀라고 말았다. 마치 인적없는 밤길에서 자신의 그림자에 놀란 꼴이었다.
최민섭은 거울 속에서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서른둘이라는 젊은 나이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시들기 시작한 풀기없는 얼굴이 크고도 뚜럿하게 그를 마주보고 있었다.
“저게, 내 얼굴이라니. 이제 겨우 서른둘인 내 얼굴이 저토록 늙어 버렸다니!”
이렇게 중얼거리던 최민섭의 눈길에 어면 용기 하나가 잡혔다. 아내가 피부의 노화방지를 위해 매일같이 아침 저녁으로 애용했던 화장품이었다. 그는 아내를 흉내낸 동작으로 그것을 듬뿍 찍어내어 이마와 코와 양쪽 볼에 횐 꽃잎처럼 붙여놓았다. 그리고는 양검지 끝으로 조그만 원을 그리듯 하며 꼼꼼하게 얼굴을 덮어씌웠다.
그때였다. 가정부가 전화왔다는 전갈을 하기 위해 들어왔다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어마! 사장님. 면도하시고 그걸 바르시면 어떻게 해요?”
“괜찮다.”
“그게 무슨 화장품인지 아시기나 하세요? 사모님이 그러셨는데 잔주름 없애는 아주 값비싼 외제 화장품이 랬어요.”
“나도 이제 잔주름 좀 없앨 작정이다.”
“어머나! 정말이세요? 그러나저러나 어서 전화부터 받아보세요.”
“어디라던?”
“그런 얘기는 안 했어요. 그러나 젊은 여자 목소리예요.”
“젊은 여자?”
“네, 사장님께서 어쩐지 이상하시다 했더니·…·.”
가정부가 잰입을 놀린 끝에 의미있는 웃음을 흘리며 사라졌다.
전화를 걸어온 것은 미스 김이었다.
“웬일이야?”
최민섭은 퉁명스레 물었다. 달갑잖은 전화였다. 그가 미스 김을 달갑잖게 여기는 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미스 김은 살릉 ‘백마(白馬)’ 의 호스테스였다. 최민섭이 그녀를 알게 된 것은 1년 남짓 되는 일이었다. 그 무렵 어느 날, 아내는 그의 잠자리 요구를 거절했다. 까닭인즉, 잠자리를 같이하는 횟수가 너무 잦기 때문에 자기는 몸이 고단하고 그뿐만 아니라 하루하루가 다르게 쉬 늙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어떻게든지 빨리 15년 연상인 아내의 얼굴에 걸맞는 늙은 얼굴을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는 그로서는 아내가 일방적으로 줄인 잠자리의 횟수를 다른 어자로부터 보충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구한 ˙다른 여자가 바로 미스 김이었다.
“웬일이냐고요? 사모님께서 돌아가셨으니까 앞으로는 더욱 내가 필요하실 텐데요.”
“무슨 소리야?”
“어머머. 최 사장님, 정말 사람 달라지셨네. 뭐 한 가지 물어볼까요?”
“어서 말해. 나 지금 바쁘다구.”
“사모님 돌아가신 날 말예요. 정말 변소 가서 웃으셨어요?”
“나 지금 바쁘댔잖아!”
최민섭이 짜증을 터뜨리자 미스 김은 유리창이 박살나는 듯한 요란한 웃음을 내뿜었다. 그녀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있잖아요. 남자들은 누구나 다 그렇다면서요? 마누라가 죽으면 신이 나서 아무도 안 보는 변소간에 들어가 씨익 웃고 나온다면서요!”
“쓸데없이 까불지 마!”
최민섭은 위엄 있게 한마디 내뱉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말았다. 그리고는 계속 투덜거렸다. 망할 계집애, 마누라가 죽었다니까 제년이 내 집 안방을 차지하게 되는 줄로 아는 모양이지 ? 미친년 같으니라구.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따라 이 계집애가 왜 이리 재수없게 굴지?
최민섭은 전화기를 내려다볼 뿐 수화기를 떼어들지는 않았다. 전화벨은 고집스럽게 계속 울어댔다. 주방에서 가정부가 뛰어왔다.
“어머나, 사장님이 계셨군요.”
전화기 옆에 있는 사람이 전화 좀 받으면 안 되느냐는 불만이 포함된 얘기였다.
“조금 전에 전화 건 그 여자면 없다고 해.”
최민섭은 가정부에게 미리 일렀다. 그러나 가정부는 그의 얘기를 듣지 못했다는 듯 떼어든 수화기를 그에게로 내밀었다. 송화구가 그녀의 손바닥에 단단히 막혀 있었다.
“누구래?”
“아까 그 여자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들으면 다른 목소리 같기도 해요. 어쨌든 젊은 아가씨예요.”
“없다고 하랬잖았어!”
“저쪽에서도 뻔히 다 알 텐데 어떻게 거짓말을 하느냐구요.”
가정부는 계속 송화구를 막고 있었다. 듣고 보니 그녀의 말이 옳았으므로 최민섭은 자기가 부린 퉁명을 후회했다. 그는 가정부로부터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상대를 경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화바꿨습니다.”
“여긴 황 변호사 사무실인데요, 전화 바꿔드리겠어요:”
“황 변호사 사무실?”
최민섭의 얼굴에 문득 긴장의 빛이 감돌았다. 미스 김의 장난 전화로 잘못 넘겨짚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엉뚱한 사람으로부터 느닷없는 전화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황 변호사라면 아내가 생전에 자주 만나던 바로 그녀의 개인변호사였다. 최민섭도 아내와 함께 서너 번 자리를 같이한 적이 있었다.
“최 사장이시오? 나 황이오.”
“웬일이십니까? 선생님.”
“그래, 고인은 편안히 모셨소?”
“네, 덕분에 무사히 마쳤습니다.”
“지금쯤 최 사장도 상당히 지쳐 있을 줄 내 다 아오. 허나 내가 내일 오후에 일본엘 갈 일이 있어서 말이오. 한 보름쯤 걸리는 여행이 되어놔서 가기 전에 일을 보고 가려고 이렇게 연락을 했소이다.”
최민섭의 얼굴은 한층 더 굳게 긴장되어 있었다.
“제게 볼일이 있으시다구요? 무슨 일이신가요?”
“전화로 얘기할 성질이 아니오. 최 사장께선 오늘 주욱 댁에 계시겠소?”
“네, 달리 외출 계획은 없습니다만.”
“그럼 댁에 계시오. 내 곧 찾아가리다. 실은 돌아가신 부인께서 나를 통해 유언장을 작성한 게 있는데…….”
“유언장이라뇨?”
최민섭은 순간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명치 끝을 호되게 얻어맞았을 때처럼 숨이 탁 막혔다. 아내가 죽기 전에 황 변호사를 시켜 유언장을 작성 했다면?
마치 짐승이 어둠 속에서 무언가 알아차리듯 최민섭도 그런 본능적인 힘으로 자신의 불행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는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유언장의 골자가 뭡니까?”
“내 곧 댁으로 가리다.”
“까맣게 모르고 있던 일이라…… 우선 말씀해주십시오.”
최민섭의 목소리는 크게 떨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황 변호사의 다음 말을 기다릴 수 없이 최민섭의 마음은 조급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뭡니까?”
“부인께서는 자기의 전재산을 사회에 바친다고 했소. 장하신 결단이었소.”
황 변호사의 얘기를 듣는 동안 최민섭은 빈 자루처럼 스르르 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
황 변호사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우리 나라의 윤락여성들에게 갱생 의 길을 찾아주기 위한 목적이라면 어떻게 쓰여지든 상관없다는 유언이었소.”
“…….”
“전화로 할 수 있는 얘기는 대충 이렇소만……그러면 지금 곧 찾아가서 여러 가지 사무를 보면서 자세한 얘기를 나누도록 하십시다.”
수화기는 이미 오래 전에 최민섭의 손에서 떨어져나가 있었다.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그의 얼굴은 완전히 실신해 있는 사람의 바로 그것이었다.
― l982년
2016년 12월 28일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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