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과 의인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5:18-19).
본문 18-19절은, 12절부터 시작한 두 대표성에 대한 논증의 요약(要約)입니다. 사도는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14하)이라 함으로, “아담과, 그리스도”가 인류를 대표한다는 대표(代表)성에서는 같고,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15) 하고, 그 끼친 영향력(影響力)은 다르다는 점을 여러 측면에서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이제 본문에서 이를 요약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①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18) 합니다.
㉠ 18절은 “그런즉” 하고 시작이 됩니다. 이는 이제까지의 논증(論證)을 통해서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음을 시사하는 말입니다. 18절에서도,
㉮ “한 범죄와 의의 한 행동”,
㉯ “정죄와 의롭다하심”이 대조가 되어 있습니다.
㉡ 그런데 다시 한번 본문을 보면, 저쪽 편에는 “한 범죄”로 인한 “정죄”(定罪)만 있는 반면, 이쪽 편에는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은 “의롭다 하심과, 생명”이라는 축복 두 개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는 계속적으로 범죄의 영향력에 비해서 은혜의 영향력이 더욱 넘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② 그리하여 도달하게 된 결론이 무엇인가?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19) 합니다.
㉠ 19절에는 두 가지 대조가 나타나는데,
㉮ “한 사람의 순종(順從)치 아니함과, 한 사람의 순종(順從)하심”이 대조되어 있고,
㉯ “죄인(罪人)됨과, 의인(義人)이 되리라”는 점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 그런데 19절은 이제까지의 논조(論調)하고는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정죄와, 의롭다하심”(18) 하고 해설적이었는데, 19절에 이르러서는 “죄인(罪人)이 되고, 의인(義人)이 되리라” 하고 단정(斷定)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확정판결을 하듯이 이제까지의 논증에 대한 결론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③ 이제까지 말씀한 12-18절을 요약을 하면 네 가지 주제(主題)입니다.
㉠ 첫째는, 원죄(原罪)교리입니다. 아담의 범죄는 개인 자격으로가 아니라 온 인류의 대표자로서의 범죄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대표자의 범죄의 영향력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12-14절입니다.
㉡ 둘째는,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模型)이라(14)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유사성과 상이성이 있는데, 대표성에 있어서는 같고, 미친 영향력에 있어서는 정반대의 모형이라는 것입니다.
㉢ 셋째는, 아담이 범한 죄의 영향력은 침투(浸透)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은혜의 영향력은 “더욱 넘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 넷째는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사망(死亡)”이 왔듯이, 또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생명”(17, 18, 21)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죄인된 것같이, 의인이 되리라”(19) 하는 것입니다.
④ 사도는 이제까지 로마서의 대 주제(主題)인 “이신칭의”(以信稱義)를 증거했습니다.
㉠ 왜냐하면 죄로 인하여 하나님 존전에서 추방(追放)을 당한 아담의 후예들의 가장 절박한 숙원(宿願)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는 것이요, 돌아가기 위해서는 의롭다함을 얻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것이 복음이요,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만 받는다는 것이 “이신칭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가 있느냐 없느냐?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오직 칭의(稱義)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⑤ 이처럼 중요한 진리이기에 3장에서 원리적인 말씀을 하고, 4장에서 아브라함을 들어서 예증한 사도는,
㉠ 5장에 이르러서도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이 진리를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 1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말씀하고,
㉯ 9절에서,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합니다.
㉰ 16절에서,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하고,
㉱ 17절에서도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 18절에서는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하고, 역설하던 사도는,
㉳ 19절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義人)이 되리라” 하는 결론에 도달을 합니다. “의롭다 하심”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이 되리라” 하고 단정을 한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이렇듯 사도 바울의 의중에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가에 총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⑥ 결론에 이르게 된 말씀이 무엇인가?
㉠ 아담 한 사람의 범죄, 그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면,
㉡ 같은 원리로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한 행동과,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어, 생명에 이르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⑦ 사도는 이 점을 확신시키고 싶은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일어난 일이 사실이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일도 동일하게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한 쪽이 확실하다면 다른 쪽도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더욱 확실합니다. 우리가 죄인된 것이 아담의 불순종 때문이었듯이, 우리가 의인이 된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하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 크리소스톰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만일 유대인들이 너에게 묻기를 어찌하여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 하거든, 너는 반문하기를 어찌하여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이 온 인류를 정죄할 수 있느냐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