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각黃後覺에게 임종시 출현한 현상은 염불하는 사람에게 큰 이익이 있다. 그가 구경에 왕생하였는지 타락하였는지 논할 필요는 없지만, 과연 진정한 염불인이라면 그의 임종시 현상을 알면 생사를 끝마치는 염불법문에 종사하는 일을 감히 얕잡아 볼 리가 없다.
그의 바깥으로 드러난 행적을 살펴보면 지성을 다한 것 같지만, 그의 임종시 나타난 광경을 살펴보면 그는 평소 진지하게 마음으로부터 공부한 적이 없고, 예전부터 금전에 인색하다 남의 목숨을 잃게 하거나, 말에 인색하다 남의 목숨을 잃게 하는 등 이와 같은 죄업이 임종시 이런 현상을 초래하였다고 설명할 수 있다.
「말에 인색하다가 남의 목숨을 잃게 하다」함은 이를테면 자신에게 강도가 왔고, 피할 수 있는 곳을 알고 있지만, 자비심이 없어 남이 화를 당하는 모습을 지켜만 보았을 뿐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런 일에 이런 마음을 써서 천지 귀신들의 노여움을 매우 샀다.
그래서 임종 전까지 말을 하지도 않고 염불소리도 듣기 싫어하는 등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아직 죽지 않은 때부터 조념하는 사람이 떠날 때까지 기다리다 오래지 않아 죽는 광경을 보았다.
재물을 아끼거나 말을 아끼는 것은 남의 목숨에 해를 끼치는 점에서 완전히 같다.
비록 아귀에 떨어지지는 않았을지라도 그가 남긴 자취는 아귀의 자취와 같다!
그러나 그 자신이 마음속으로 참회하거나 조념해 주는 사람과 자녀의 정성으로 죄과가 경감될 수 있어 곧장 아귀에 떨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반드시 그의 자녀 및 권속이 그가 겪을 괴로움을 생각하여 함께 자신을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을 발한 후 그를 위해 염불하여 부처님께서 자비를 드리워 그를 접인. 왕생해주길 기도하면 반드시 왕생한다고 단정할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의 성품이 상관되어 있듯이 부처님의 마음도 중생의 기감이 있으면 곧 응한다. 저 권속들이 만약 한가롭게 그저 흘려보내며 종사한다면 곧 업장을 없애어 부처님의 접인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천근의 무게가 한 올의 실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관계가 지극히 중요하다.
무릇 염불인은 각자 자신을 염격하게 제어하여 나쁜 습기를 극복하고, 남을 도와 이롭게 하여야 한다. 무릇 말할 수 있는 것은 상대방에게 원한이 있더라도 말하여 그가 궂은 일은 피하고 좋은 일로 나아가게 하며,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도록 하여야 한다.
평상시 하는 말은 이유가 충분하여 당당하고 진실하여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남에게 인과응보와 생사윤회, 염불하여 생사를 마치는 도리를 말해주어야 하고, 자식에게 교육을 베풀어 태평함의 기초를 세워야 하고, 마음은 활시위처럼 곧아야 하고 말은 애매함이 없어야 한다. 마음가짐은 귀신도 바로잡을 수 있고, 일을 지음에 결코 천리에 어둡지 않다.
임종에 이르면 이런 가련하고 민망한 현상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으면 황후각은 곧 여러분을 접인하는 스승이다. 여러분이 그로 인해 장래 큰 이익을 얻고, 그도 장차 여러분의 심력에 의지하여 죄를 멸하고 왕생할 것이다. 나의 이 말은 주저하며 앞뒤를 살피는 말이 아니고, 남을 속이지 않는 정론이다.
【역주】 설사 선인일지라도 평상시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다면 진실한 참회라고 말할 수 없다. 평상시 진실로 참회할 수 있으면 이 사람은 결코 위선자가 아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하삼품으로, 임종시 참회하며 염불하여야 왕생하는 줄 안다. 단지 문제는 설사 선인이 임종시에 오로지 염불할 수 있을지라도 습기가 무거운 까닭에 여전히 두려워함도 부끄러워함도 없이 단지 형식적으로 참회하는 척하면 일체 죄업을 참정(계를 받은 후 훼범한 것이 있으면 드러내 참회하는 것)하기 어려워 왕생하기 어렵다.
아미타불의 여러 쓰임은 반드시 자성불의 수덕에 의지해 견불삼력의 본공덕력을 일으켜 증상연과 접하여야 한다. 자심의 수덕이 아직 진실하지 못하면 아미타부처님께서는 저절로 현신하여 접인할 수 없다. 이러한 진실함의 사례는 본원법문이 주장하듯이 단지 믿음을 닦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또한 발보리심 및 참회 등의 자력행을 집어내면 악인이 비록 믿음을 갖출지라도 임종시 지성으로 참회하여 마음을 바꾸지(발보리심은 곧 참회하여 마음을 바꾼다는 뜻이 들어있다) 않으면 근본적으로 왕생할 수 없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본원법문에서는 천성에 따라 염불한다고 주장하니, 천성이 선하면 선을 행함에 방해하지 않고, 천성이 악하면 악을 주어도 무방하니, 왕생은 자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불력에 의지하는 까닭이다. 황후각의 사례는 그 오류를 충분히 반증할 수 있다. 염불. 전심. 참회. 공덕. 멸죄. 수순보리......' 이들은 모두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떼어놓을 수 없다.
염불수행으로 심학의 실증을 중히 여겨 단지 문자의 학술이 아니라, 번잡한 것을 삭제하고 간단하게 연역하여 유도해내면 만능 공식을 얻을 수 있다.
염불하여 왕생하는 품위는 간략히 말하면 구품이지만, 실제로는 무량품으로 품마다 다른 점이 있다. 중품이상은 최소한 세간의 선인이 악도의 죄업을 짓지 않으면 임종시 참회할 필요가 없고 참회하면 또한 걸림없이 자재왕생한다. 발심을 논하면 악인은 천만가지이지만, 선인은 전부 같다. 심지가 선량한 사람은 결코 자신만 이롭게 하지 않고, 반드시 남을 도와 즐겁게 할 수 있다. 대승 염불법문을 접촉하면 설령 권하지 않을지라도 그 발심이 반드시 은밀히 보리에 맞아 자신을 이롭게 하고 타인을 이롭게 합니다.
인광대사께서 말씀하신 대로 선인이 염불하면 결정코 왕생한다. 하삼품은 죄업을 참회하여 왕생함에 속한다. 극락에는 삼악도가 없기에 아미타부처님께서는 악인을 거두시지 않는 까닭에 참회하여 죄를 없애고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관무량수경》에서 말씀하셨듯이 “선남자여, 그대가 부처님의 명호를 불렀기에 갖가지 죄업이 사라졌도다! 그래서 내가 와서 그대를 맞이하노라!” 죄업을 없애어 왕생하는 그 원리는 약간 복잡하지만, 요컨대 바로 지금 이 삼도에 떨어지는 죄의 마음을 보리심으로 바꾸어 혹 보리정도에 수순하거나 은밀히 보리심에 맞는다. 임종시 악도의 여러 경계가 현전하면 이 경계는 모두 죄의 마음으로 일어나기에(삼악도에 떨어지는 현세의 화보), 만약 경계를 바꾸고 싶으면 반드시 마음을 바꾸어야 하고, 마음을 바꿀 수 있으면 악도의 경계가 저절로 그것에 따라 바뀐다.
임종은 금생과 내세의 중간이자 교체되는 매우 중요한 시각으로 업보의 몸이 장차 멸하고, 의생意生의 몸이 점차 일어나며, 겸하여 임종시 특수한 삼매의 경계가 생긴다.
그래서 임종시 마음을 바꾸면 경계가 신속히 바뀌니, 평상시를 멀리 뛰어넘는다.
염불을 연으로 삼으면 마음 바뀜이 실재가 되고 아미타부처님의 타력이 명훈가피하여 증상할 수 있다(아미타부처님은 증상할 뿐 사람을 대신하여 발심하고 생각을 바꿀 수 없다)
마음은 형체도 없도 상도 없어 상에 머물러 바꾸기 가장 쉽다. 그래서 마음을 바꾸면 반드시 보리에 수순하고, 마음이 바뀌면 곧 악을 제거하고 선을 향하여 곧 진실로 참회하며, 심성이 상승하여 공덕이 있다 말할 수 있고, 공덕이 있어야 죄업을 없앨 수 있다.
마음 경계를 바꾸지 않거나 보리정도와 거슬러 아래로 떨어지면 공덕이 생기지 않고 죄업을 없애지 못하며, 염불할 수 있을지라도 참회하지 못하니, 어떻게 왕생한다고 이야기 하겠는가?
어떤 사람은 염불하면 곧 죄업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이 사람은 무엇을 공덕이라 말하는지 모르고, 죄가 사라지는 원리를 모르는 까닭이다. 또 어떤 사람은 왕생에는 보리심이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중품 이상의 사람은 보리심을 발하라고 명백히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이미 은밀히 보리에 계합하기 때문이다. 하배삼품의 경우 만약 빨리 참회하여 일체 죄업을 없애고 싶으면 오히려 무상보리심을 발하라고 강조하니 발보리심이 오히려 아주 중요해 보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진실하여야 한다.
설사 숨김없이 발하지 않았을지라도 반드시 은밀히 보리에 맞아야 한다. 보리심을 발하여 염불하면 인광대사께서 말씀하신대로 “이 마음을 발함은 그릇에게 전기를 받는 것 같고 생고무에 황을 섞어 가열하는 것 같다. 그 힘은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신속하다. 그것은 업장을 없애고 복덕지혜를 증장시키니, 평상시 복덕 선근의 비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리심과 염불, 멸죄간의 내부가 관련되어 있음을 안다면 반드시 보리심을 불필요하다고 말하지 말라. 또한 어떤 사람은 보리심을 발한 자는 눈을 기증하여 다른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어야 보리심을 발한 것이라 말한다. 진실로 터무니없는 말이다.
육즉불에서 명자위 이상의 사람은 모두 보리심을 발하였다 말할 수 있고, 발심 또한 육즉에 비추어 분별. 판정할 수 있다. 천태종 등 교하의 교리에 따라 유순인위의 보살이라야 진실로 발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퇴전하지 않는 까닭에 상사위는 분명히 발심한 위이다.
즉 이 계위의 사람은 보리심을 발하면 퇴전하지 않으니, 그는 이미 사리불이 거지에게 눈을 보시함으로 인해 보살도에서 물러 난 때의 계위(어찌 거지같은 자가 자신에게 눈을 달라고 하는가? 라는 생각에 걸려버린 사리불의 공안이 있으니, 조살할 만하다)를 뛰어넘었다.
정토종에서 발보리심은 이러한 표준으로써 발하였는지 말할 수 없고, 명자위의 사람은 곧 보리심을 발하였다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염불인은 마음속으로 극락에 왕생하여 성불함은 자비의 배를 거꾸로 몰아(倒駕慈航) 수많은 중생을 제도. 교화하기 위함인 줄 안다면 이 사람은 비록 분명히 발하지 않았을지라도 또한 정토종의 특수한 보리심에 이미 은밀히 맞고 이미 갖추었다. 인광대사께서는 《관무량수경》 하하품의 왕생에 대해 법문하실 때 말씀하셨다. “구품 중 하삼품은 임종시 괴로움이 지극하여 부처님 명호를 듣고서 귀명하여 항복하고서 부처님께서 자비를 드리워 구원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용맹분투하고 감격하니, 사형집행 전에 사면을 바라는 마음에 견주어 천만 배나 깊다. 비록 보리심을 언급하지 않았을지라도 그 마음의 절박함과 정성은 실로 보리심을 갖추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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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형체도 없도 상도 없어 상에 머물러 바꾸기 가장 쉽다. 그래서 마음을 바꾸면 반드시 보리에 수순하고, 마음이 바뀌면 곧 악을 제거하고 선을 향하여 곧 진실로 참회하며, 심성이 상승하여 공덕이 있다 말할 수 있고, 공덕이 있어야 죄업을 없앨 수 있다.
마음 경계를 바꾸지 않거나 보리정도와 거슬러 아래로 떨어지면 공덕이 생기지 않고 죄업을 없애지 못하며, 염불할 수 있을지라도 참회하지 못하니, 어떻게 왕생한다고 이야기 하겠는가?....^^♡감사합니다 무량공덕이 되소서 수고하셨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