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재계약이 한 달 정도 남았는데 집주인한테 전세보증금을 올릴 건지 물어봐야 하나요? 한 달 전까지 아무 얘기 없으면 자동 갱신 된다는데...
그런데 이거 괜히 물어봤다가 집주인은 올릴 생각도 않고 있었는데 보증금만 올려주게 되는 건 아닐까요?”
경기도 부천에 사는 직장동료는 얼마 전 전세 재계약을 남겨두고 이런 고민을 했다고 한다. 집주인에게 전화해서 물어봐야 하는 건지 그냥 있어도 되는 건지 망설여진다면서.
“이거 참 애매하죠~ 잉~”
그 얘기를 들은 필자는 순간 ‘애정남’이 떠올랐다. ‘애정남’에게 사연을 보내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애매한 사항을 정리해 준다는 남자, 일명 ‘애정남’이 딱 정해준다면 속 시원할 텐데.
그냥 넘어 가려나 싶어 잠자코 있던 직장 동료는 결국 집주인에게서 재계약 만기 2주 전에 전세보증금을 1000만원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2주를 남겨두고 보증금을 올려달라는 소식이 황당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주변 전셋값도 오른 데다 이사는 막막하고, 집주인이 원하는 대로 올려달라면 올려 주는 수 밖에.
필자는 또 다른 지인에게서도 전세 재계약 때문에 억울하다는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송파구 문정동에 사는 지인은 이제 첫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다. 예정일인 3월이 전세계약 만기 시점이라 3개월 전인 12월부터 미리 집주인과 상의를 했다.
보증금을 2000만원 올려서 재계약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됐는데 문제는 집주인 마음이 석달 사이 바뀐 것.
“인근에서 재건축 단지들이 이주하면서 전세 시세가 급등해서 그런지 집주인이 재계약 한 달을 남겨두고 원래 올린 2000만원에서 추가로 2000만원을 더 올려 달라며 막무가내로 나오는 거예요.
산달이 얼마 안 남아서 미리 얘기를 했건만 이제 와서 더 올려 달라는 집주인의 횡포 아닌 횡포에 화가 났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사를 갈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집주인과 1500만원으로 조율해 총 3500만원 오른 금액에 재계약을 했다는 지인은 서러운 마음을 감추질 못했다.
전셋값이 오르고 전세난이 심해지면서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전세보증금을 올리려는 집주인과 될 수 있으면 그대로 살고 싶은 세입자 간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전세 재계약 시 계약 종료 1개월 전까지 집주인과 세입자 간 어느 한쪽이라도 재계약 거절의 의사를 통지하지 않으면 이전 계약과 동일한 조건으로 재계약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묵시적 갱신제도.
계약 해지하려면 내용증명 보내야
200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이 묵시적 갱신제도로 인해 애매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던 세입자가 보증금 올리지 않고 눌러 앉으려고 이사 갈 생각을 하지 않아 집주인의 애를 태우는가 하면 추가 대출 사실은 알리지 않은 채 선심 쓰는 척 시세보다 전세보증금을 적게 올릴 테니 계약서를 다시 쓰자는 집주인도 더러 있다.
전세 만기 시점을 앞두고 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세입자건 집주인이건 모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계약을 해지할 경우 구두약정은 법적인 효력이 없기 때문에 계약 만기 1개월 전까지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계약해지에 관한 통보를 내용증명 등을 통해 해야 한다.
전세 재계약 시 세입자는 집주인이 전셋집을 담보로 추가로 받은 대출은 없는지 등기부등본 등을 확인해 보는 꼼꼼함이 필요하다.
보증금이 인상됐을 시에는 인상된 보증금분에 대해 재계약한 후 새로운 계약서에 확정일자까지 받아 놓아야 한다. 만일 경매에 넘어가게 되더라도 세입자는 선순위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낭패를 막을 수 있다.
전셋값 상승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세입자와 세입자가 그냥 눌러앉을까 싶어 전전긍긍인 집주인 간의 안타까운 신경전.
세입자와 집주인 사이는 그저 멀기만 한 당신인 것인가. 다들 나름의 입장과 사정이야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각박한 세상살이가 더 팍팍하게 느껴진다.
‘애정남’의 재치있는 해결책이 간절한 이 애매모호한 신경전이야말로 개그가 아닐까 싶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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