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 7월 월례토론회 발제문

[장대비]

7월 월례토론회 발제문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읽기

유영종

평화로운 듯 보이는 미시시피 강가 한 마을에 사는 두 소년,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이야기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은 주로 아동문학 작가, 유머 작가, 사실주의 작가, 그리고 미국의 개척정신을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왔다. 모두 맞기는 하다. 그렇게 간단, 명료하게 마크 트웨인을 규정하는 것은 그에게 공정하지 않다. 마크 트웨인, 이것은 필명이다.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Samuel Langhorne Clemens)가 본명이다. 미시시피 강을 항해하는 증기선에서 수로를 살피는 선원이 물의 깊이를 알려주며 지르는 소리가 “마크 트웨인”이다. 트웨인(twain)은 두 길 정도의 물 깊이를 말하고,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배가 겨우 강바닥을 긁어 침몰하지 않을 정도의 깊이이니 조심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즉, 마크 트웨인은 위험과 안전의 “경계”를 알려주는 외침인 것이다. “경계,” 이것이야말로 작가로서 마크 트웨인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은유라 할 수 있다. 마크 트웨인의 전기 중 가장 유명한 저스틴 캐플란(Justin Kaplan)의 󰡔마크 트웨인과 클레멘스 씨󰡕(Mark Twain and Mr. Clemens, 1968)는 작가의 이런 양면성을 상징하는 제목을 달고 있다. 그래서 오늘 발표에서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마크 트웨인의 모습과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대해 소개하고, 아동문학의 고전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1885)을 같이 읽어 보려고 한다.

I.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마크 트웨인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마크 트웨인은 미시시피 강변의 목가적인 생활을 묘사한 어린이책 작가이다. 󰡔톰 소여의 모험󰡕(The Adventures of Tom Sawyer, 1876)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 말고도 아동문학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작품들을 몇 편 더 발표했는데, 그 중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 1881) 그리고 󰡔아서왕 궁전에 온 커네티컷 양키󰡕(A Connecticut Yankee in King Arthur's Court, 1889)가 특히 유명하다. 󰡔왕자와 거지󰡕는 헨리 8세 당시의 영국을 배경으로 같은 날 태어나고 생김새도 비슷한 톰 캔티라는 가난한 아이와 에드워드 왕자가 옷을 바꾸어 입음으로 생겨나는 여러 오해와 사건을 그리고 있다. 󰡔아서왕 궁전에 온 커네티컷 양키󰡕는 19세기 미국 커네티컷 주에 사는 행크 모건이라는 무기 공장 감독관이 한 노동자와 다툼 끝에 쇠지렛대로 머리를 얻어맞고 아서왕이 다스리는 6세기 영국에 깨어나서 19세기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중세 영국을 현대화시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옷을 바꾸어 입음으로써 생기는 오해, 기절했다가 깨어나니 시간과 공간이 바뀐 이야기는 아동문학에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마크 트웨인은 풍자를 사용하여 19세기 미국사회의 문제점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즉, 두 작품 모두 아동문학의 틀을 빌렸지만 단순히 어린이만을 주 독자층으로 상정하고 쓰여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사실 그것은 󰡔톰 소여의 모험󰡕 그리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도 마찬가지다. 인종차별과 종교 등 당시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 이 두 소설에서도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과연 마크 트웨인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이 작품을 썼는지, 그리고 마크 트웨인을 아동문학가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게다가 마크 트웨인은 여행기부터 철학 에세이, 남서부 유머 단편소설부터 드라마 그리고 SF환상소설까지 오랜 작가 생애를 통해 실로 다양한 장르의 문학작품을 발표했다. 아직까지도 발굴되고 있는 후기 미발표 원고들까지 포함한 그의 방대한 문학세계를 감안할 때 마크 트웨인을 아동문학작가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차라리 요즘 아동문학계의 한 추세를 형성하고 있는 크로스오버 문학(crossover literature) 작가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유년 시절을 보낸 중부의 작은 마을, 작가와 기자 생활을 시작한 서부, 결혼 후 정착해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 주요 작품을 집필한 동부, 미국 전역에 걸쳐 자취를 남기고 인쇄공, 신문기자, 수로 안내원, 작가, 사업가로 다양한 미국 사회를 경험하고 작품에 반영한 마크 트웨인은 미국의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찬양했던 국민작가라고 받아들여진다. 특히, 전후 세계적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던 1940년대와 1950년대 미국의 시대적 상황은 마크 트웨인을 개척정신과 서부팽창을 상징하는 미국의 대표작가로 만들었다. 하지만, 마크 트웨인은 미국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작가이다. 특히 19세기말 이후 쓰여진 마크 트웨인의 후기 작품들에는 반인종주의적, 반제국주의적, 혁명적인 내용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마크 트웨인 자신도 이 원고들을 출판을 목적으로 쓰지 않았고, 또 작가의 이미지에 흠이 갈 것을 우려한 출판사의 자체 검열로 인해 마크 트웨인의 급진적인 면모는 의도적으로 축소된 면이 있다. 하지만, 마크 트웨인의 급진적이고 사회비판적인 생각은 후기 작품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발표하기 20여 년 전인 1860년대부터도 마크 트웨인은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중국계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대해, 그리고 부자에게 관대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혹한 법률의 이중성에 대해 비판하는 일련의 에세이를 발표하였다. 또, 자신의 서부이주와 동부정착과정을 그린 경험담 󰡔유랑󰡕(Roughing It, 1872)에서도 인디언 보호 구역, 정부의 부패와 폭력, 금광열풍과 노동력 착취 그리고 사기 사건에 나타난 사람들의 탐욕과 사회 하층민의 고통 등 낭만적으로 그려졌던 미국 서부개척사의 어두운 부분을 조명한다.

마크 트웨인은 1870년 동부의 석탄업자이자 적극적인 노예폐지론자의 딸인 올리비아 랭든(Olivia Langdon)과 결혼했고, 이 결혼을 통해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 1852)을 쓴 해리엇 비쳐 스토우, 노예제에서 탈출한 후 자서전을 써 노예해방운동에 불을 지핀 프레드릭 더글라스, 이상적 사회주의자인 윌리엄 딘 하월스 같은 당대의 급진적인 사상가 그리고 사회운동가들과 교류하였다. 트웨인이 주요 작품들을 발표한 1865년부터 1890년사이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이 끝나고 북부를 중심으로 산업자본주의 사회로 급격히 재편성되었다. 빠르게 산업화한 미국은 세계 최강의 산업국가로 성장하였지만, 동시에 물질주의의 만연으로 인해 부의 편중, 인종차별, 정치부패 같은 사회적 문제들이 심화되었다. 부패한 정치권의 비호와 자유방임적 경제정책 아래서 부패한 자본가들은 독점을 통해 부를 축적해 ‘강탈귀족들’(robber barons)라고 불리게 되었다. 마크 트웨인은 남북전쟁 후 이 시기를 ‘도금시대’라고 부르고 꾸준히 시대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자신을 가난하고 억압 받는 사람들과 동일시하였다. 찰스 더들리 워너와 공저로 쓴 󰡔도금시대󰡕(The Gilded Age, 1873)는 바로 겉만 화려한 19세기 말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 책이다.

1865년 미국 남북전쟁의 종전은 진정한 자유와 평등의 나라를 약속할 것처럼 보였으나, 현실은 독점적 자본주의와 또 다른 형태의 인종차별주의, 빈부의 격차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따라서 문화적 다원주의를 소중히 생각하고 미국의 필리핀 침탈 같은 제국주의적 횡포에 대해 비판하였다. 여행기 󰡔적도를 따라서󰡕(Following the Equator, 1887), 그리고 우화 단편소설 ｢어둠 속에 앉아서｣(“Sitting in the Darkness,” 1901)나 ｢리어폴드 왕의 독백｣(“King Leopold's Soliloquy,” 1905) 같은 후기 작품들은 마크 트웨인의 반제국주의적인 시각을 전면에 드러낸다. 세기말에는 노동운동과 미국 사회당이 활발히 세력을 넓혀갔으며, 마크 트웨인은 이런 움직임을 옹호하며 1910년 죽음에 이르기까지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마크 트웨인을 규정하는 또 다른 틀은 유머작가라는 것이다. 남서부 유머작가들에게서 커다란 영향을 받은 마크 트웨인에게 유머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처음 이름을 알리게 된 단편소설 ｢캘러베라스 군의 유명한 높이뛰기 개구리｣(“The Celebrated Jumping Frog of Calaveras County,” 1867)는 남서부 유머 전통을 그대로 따른 작품이다. 기회만 되면 내기를 거는 서부의 한 사내와 그가 데리고 있었던 특이한 동물들의 이야기는 남서부에서 유행하던 과장된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또, 사후 28년 후인 1938년이나 되어서 출판된 󰡔지구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the Earth)에서는 방주 속에서 날아다니는 파리와 모기에 시달리면서도 모든 생명을 보존하라는 하느님의 명령 때문에 이들을 차마 죽이지 못하고 고생하고 있는 노아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초기 작품부터 말년에 쓴 작품까지 유머는 빠지지 않고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마크 트웨인의 유머는 결코 재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높이뛰기 개구리 이야기에서는 유머를 통해 미국의 지역주의를 비판하고 있으며, 󰡔지구에서 온 편지󰡕에서는 기독교의 편협함을 비판하며 모든 생명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인간중심의 고정관념을 깨트린다.

후반부로 갈수록 마크 트웨인의 작품에서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진다. 󰡔마크 트웨인: 신의 어릿광대󰡕(Mark Twain: God's Fool, 1973)를 쓴 햄린 힐(Hamlin Hill)은 어두운 그림자의 원인을 마크 트웨인의 말년에 불어 닥친 일련의 불행에서 찾는다. 마크 트웨인은 결혼과 문학적 성공으로 모은 재산을 자동식자기 발명가에 투자하였다가, 󰡔멍청이 윌슨󰡕(Pudd'nhead Wilson, 1894)이 출판된 해이자 자신이 60세가 된 1894년 결국 파산을 하게 된다. 부채를 갚기 위해 강연회를 하며 세계일주 여행을 하게 되고, 그 일로 가족을 떠나 있던 중 그가 가장 사랑하던 맏딸 수지가 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빚을 다 갚고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그 전부터 건강에 문제가 있었던 아내를 신경쇠약으로, 그리고 그 몇 년 후엔 막내 딸 진을 간질병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1894년 이후 연달아 비극적인 경험을 하고 75세로 세상을 떠난 1910년까지 쓴 마크 트웨인의 후기 작품들은 비극적인 세계관과 인류관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그가 빚을 다 청산한 1898년 이후 쓰인 단편 ｢해들리버그를 타락시킨 사내｣(“The Man That Corrupted Hadleyburg,” 1900), 철학적 에세이 󰡔인간이란 무엇인가?󰡕(What is Man? 1906), 소설 󰡔신비한 이방인󰡕(The Mysterious Stranger, 1916년 유고집 출판) 등은 생전에 출판되지 않은 다른 미완성 원고들과 더불어 이 시기의 어두운 세계관을 대표한다.

유고작이 된 미완성 원고 ｢44번, 신비한 이방인｣(“No. 44, The Mysterious Stranger,” 1982년 유고집 출간)에서 마크 트웨인은 웃음의 힘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젊은 사탄은 웃음이 절망에 대항할 수 있는 인간의 가장 크고, 가장 효과적인 무기라며, 세상의 모든 어둠을 깨트릴 수 있는 카니발적 웃음의 힘을 강조한다. 즉, 마크 트웨인의 작품에 나타난 유머는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인간으로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절망과 고통을 이겨내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이런 마크 트웨인의 유머를 단순히 해학의 의미로 해석하여 유머작가, 만담꾼이라고 부르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마크 트웨인은 지방색 문학 전통을 이어받아 사실주의 문학을 미국에 토착화시킨 작가로 평가받는다. ｢페니모어 쿠퍼의 문학적 오류｣(“Literary Offences of Fenimore Cooper," 1895)라는 에세이를 통해 낭만주의 문학경향을 비판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작품에서도 각 지역 사람들이 사용하는 사투리를 꼼꼼하게 관찰해 작품에 그대로 반영하고, 미국 각 계층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마크 트웨인의 작품은 판타지 문학의 경향을 드러낸다. 잔다르크의 생애와 모험을 상상해서 쓴 󰡔잔다르크의 개인적인 회상󰡕(Personal Recollections of Joan of Arc, 1886)과 󰡔아서왕 궁전의 커네티컷 양키󰡕는 역사소설과 판타지를 결합한 것이고, 1904년과 1906년에 발표된 󰡔아담과 이브의 일기󰡕(Diaries of Adam and Eve)는 에덴동산에 대한, 󰡔스톰필드 선장의 천국방문기󰡕(Captain Stormfield's Visit to Heaven, 1909)는 우주와 천국에 대한 공상 판타지이다. 이렇듯 마크 트웨인은 아동문학가였고, 유머작가였고, 사실주의자였고,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경계를 전복시키고 뛰어넘는 작가이다.

II.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읽기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미국문학에서 가장 빈번하게 읽히는 책 중 하나이고, 미국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톰 소여의 모험󰡕의 후속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평화로운 목가적 모험 이야기와 아름다운 인종간의 우정 이야기로 주로 읽히고 있다. 하지만, 헤밍웨이가 “모든 현대 미국문학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고 하는 이 한 권의 책으로부터 유래한다”라고 칭찬했던 이유는 이 소설의 형식과 주제가 19세기 당시에 동부의 상류층을 중심으로 유행하던 “점잖은 전통”(the genteel tradition)을 넘어서 미국인의 각 계층을 대변할 수 있는 대표성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이 작가로 활동하던 당시엔 미국의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을 중심으로 “점잖은 전통”이 문학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이런 전통을 완전히 무시했다. 다양한 남서부의 사투리와 구어적이고 토속적 표현을 사용하며, 부랑자 술주정뱅이의 아들 헉과 도망친 흑인 노예 짐과 같은 사회 주변부의 인물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음으로써 미국의 다양한 계층과 언어를 문학의 소재와 주제에 적절한 것으로 격상시켰다. 또, 미시시피 강을 유유히 떠내려가는 뗏목을 통해 자연의 나라라고 불리던 미국을 대표하는 대자연의 힘, 그리고 다양한 인종간의 조화의 가능성 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짐 아저씨의 가면

이런 찬사와 장점에도 불구하고 첫 출판 이래 현재까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금서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금서논쟁의 시발점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보여주는 비윤리적인 면과 종교 비판 때문이었다. 이 소설이 미국에서 처음 출판된 1885년,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 시 공립도서관은 이 소설이 완전히 쓰레기 같고 슬럼가에나 알맞은 비윤리적인 책이라고 폄하하며 금서로 지정하였다. 뉴욕 주 브루클린 시 공립도서관도 주인공 헉이 더럽고, 거짓말을 식은 죽 먹 듯하며, 문법에 맞지도 않는데다가 저속한 언어를 사용하며 수박이나 닭 같은 남의 집 음식을 자주 “빌려” 온다며 어린이 도서실에서 없애 버렸다. 1907년에는 덴버, 오마하, 매사추세츠 주의 많은 도서관이 헉과 톰이 어린이들에게 나쁜 역할 모델을 제공한다며 도서관 책장에서 꺼냈고, 1930년대에는 많은 도서관들이 마크 트웨인이 쓴 원작보다 부분 부분이 생략되거나 언어를 순화시킨 삭제판본이나 어린이용 수정판본을 대신 구입, 독자들에게 제공하였다.

윤리적인 문제와 더불어 종교에 대한 시각도 독자들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마크 트웨인은 헉을 통해 미국 사회를 지탱하던 한 축인 기독교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조롱한다. 마크 트웨인은 남부의 귀족집안 사람들이 형제애를 설교하는 교회까지 총을 들고 가며 복수극을 벌이고, 사기꾼들이 부흥회에서 작은 마을 사람들을 등쳐먹으며, 기독교 신자 중 아무도 비인간적인 노예 제도에 대해 의문을 던지지 않는 것을 통해 기독교 신자들의 위선을 꼬집는다. 또한 헉을 통해 더글라스 부인과 왓슨 부인이 가르치는 기독교 교리를 현실적인 관점에서 점검하여 그 교리들이 비실용적이고 불필요한 구속을 가지고 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톰이 천국을 못 갈 테니 자신도 재미없는 천국엔 가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짐을 배반하느니 차라리 지옥에 떨어지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보면 이 소설이 기독교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드러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0세기에 중반 이후에도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어린이에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은 일각에서 계속되었는데. 특히 1957년 미국흑인인권협의회(NAACP)의 비난으로 인해 이 소설은 인종차별소설이라고 낙인찍히게 되었다. 미국흑인인권협의회가 지적한 사항은 크게 두 가지로 “깜둥이”(nigger)라는 단어의 사용과 상투적이고 모역적인 흑인 묘사였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는 “깜둥이”라는 단어가 200번 이상 나온다. 물론 19세기 미국 남부에선 흑인을 지칭할 때 이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였으나, 그 당시에도 “깜둥이”는 부정적인 의미를 띄고 있었다. 사실주의 작가로서의 마크 트웨인을 말하며 “깜둥이”라는 단어 사용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랭스턴 휴즈라는 20세기 유명한 흑인 시인은 제대로 썼건 잘못 썼건, 진심으로 썼건 반어법적으로 썼건, 사실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썼건 해학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 썼건 상관없이 흑인들에게 “깜둥이”는 그들이 견뎌야 했던 오랜 쓰라린 기간을 기억시켜 주기에 책에서 보고 싶지 않은 단어라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전국의 도서관들은 계속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장서 목록에서 없애라고 요구 받게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전국에 걸쳐, 마크 트웨인이 다녔던 중학교에서조차, 학교의 권장도서 목록에서도 빠지게 되는 등 이 소설이 수업시간에 같이 읽기에 적합한 소설인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반대하였던 교육자 중에는 “깜둥이”라는 단어를 빼서 소설을 다시 쓴 사람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런 개정판을 펴낸 존 월러스(John Wallace)는 1982년 󰡔워싱턴 포스트󰡕의 사설란을 통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수업 시간에 소리 내 읽는 것은 흑인 학생들에게 굴욕적이고 모욕적이며, 이런 경험은 흑인 학생들의 자신감을 떨어트리고 백인 학생들이 무례한 행동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깜둥이”라는 단어와 더불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인종차별주의 소설이라고 비판 받는 이유는 짐의 묘사 때문이다. 짐은 백인들이 흑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종 선입관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독자들이 짐을 통해 흑인들이 전반적으로 바보스럽고, 미신적이고, 복종적이고, 수동적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게 만든다. 마크 트웨인이 특별이 의뢰해 그림을 그린 에드워드 켐블(Edward Windsor Kemble)의 삽화를 보면 이런 우려는 더욱 커진다. 소설 처음에 나타나는 짐은 멍청한 노예 샘보(Sambo)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짐은 미신적이고 멍청해 보인다. 깜깜한 어둠 속이라 하더라도 바로 앞에 있는 헉과 톰을 찾지 못하고 그 앞에서 잠들어 버린다든지, 톰의 장난을 마녀가 자신을 홀렸다고 동네방네에 소문을 내고, 헉이 아버지에 대해 물을 때는 말도 안 되는 점괘를 내려준다.

하지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이런 전형적인 흑인 노예의 모습 뒤에 감춰진 흑인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며, 겉에 쓰고 있는 마스크는 단지 백인 사회에 효과적으로 저항하는 방법중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소설 처음의 미신적이고 바보스러운 짐의 모습은 후에 헉과 함께 미시시피 강을 내려가며 보여주는 짐의 모습과 괴리가 있다. 자유에 가까워진다고 느낄수록 짐은 점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횟수가 많아진다. 그리고 그 말들은 소설의 첫 부분에서 나왔던 것처럼 멍청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영민함을 보여준다. 폭풍 중 장난을 쳐 자신을 걱정시킨 헉에게 짐은 걱정하는 사람을 그렇게 놀래키는 것은 “쓰레기”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꾸짖는다. 반박할 말이 없어진 헉은 자신의 행동에 부끄럼을 느끼고 결국 흑인 노예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한다. 가면을 벗은 짐의 모습은 미시시피 강을 따라가며 자유 주에 있는 케이로에 가까워지면서 더욱 명확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짐은 곧 자유인이 된다는 생각에 여태껏 쓰고 있던 노예의 가면을 벗고 그의 인간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딸 엘리자베스가 듣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때렸다고 눈물 흘리는 모습, 자유를 얻으면 자신의 아내와 딸들을 훔쳐서라도 데려오겠다는 생각 등을 헉에게 들려줄 때 헉은 이런 감정이 노예한테는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헉의 놀라움에 미루어 짐작해 보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던 흑인 노예의 멍청한 가면 밑에 피와 살과 감정을 가진 인간의 모습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짐의 숨겨진 본 모습을 생각하고 다시 소설의 첫 부분을 읽어보면 그의 가면 쓴 모습이 더욱 확실히 보인다. 숨어 있는 톰과 헉 앞에서 잠들어 버리는 것은 두 백인 아이를 놀리는 장난일 수도 있으며, 톰의 장난을 마녀의 저주로 선전하고 다니는 것은 노예의 노동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한 것일 수 있다. 또, 헉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을 자기가 자유를 얻을 때까지 알려주지 않는 것, 헉에게 그가 자신의 유일한 친구임을 반복해서 들려주는 것,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은 다음에야 자신이 도망쳤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짐이 영민한 사람이었음을 드러내는 예이다. 단지 생존을 위해 다른 흑인 노예들같이 자신의 본 모습을 숨겨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읽기의 전통적인 방식은 헉의 윤리적 성장을 조명하는 데 주된 강조점을 둔다. 열네 살의 부랑아 헉이 아버지의 폭행을 피해서 달아나다가 탈주노예 짐을 만나고 둘이 같이 자유를 위한 여행을 한다는 구성에는 헉이 중심에 서 있고, 짐은 헉의 정신적, 윤리적 성장을 위한 보조역할에 머무른다는 전제를 하고 있다. 헉 핀은 비록 부랑아지만 순수하고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로 커다란 내적 갈등을 극복하고 짐이 자유를 찾는 걸 도우며 윤리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잠시 제목을 잊어버리고, 헉이 아니라 짐을 중심에 놓고 본다면 노예이자 흑인인 짐이 헉을 인간화시키며 윤리적인 성숙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짐이 헉에게 부재하는 아버지 팹을 대신하여 인간적이고 영웅적인 삶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반인종주의적인 면은 팹 핀을 비롯한 대부분의 백인 모습에서도 또 찾아볼 수 있다. 흰 피부가 강조되고 편견에 가득 차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일삼는 팹 핀이 자신이 전혀 돌봐주지 않은 아들 헉을 학대하는 것은 흑인 노예를 학대하는 백인 노예주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그런 팹 핀을 통해 마크 트웨인은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색깔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며 백인우월주의에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짐은 위에서 잠시 이야기했듯이 팹 핀과 대비되는 인물로 그려진다. 아버지같이 고아가 된 헉을 돌보며, 동시에 자신의 가족을 그리워하며 밤새 몰래 눈물짓는다. 그리고 자신을 데리고 장난 놀던 톰이 부상을 입자 그를 간호하기 위해 그토록 원했던 자유까지도 포기한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나오는 악당들은 모두 백인이다. 고아가 된 아이들을 속여 유산을 가로채려는 왕과 공작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백인 사기꾼들은 헉이 말하듯 우리가 인간임을 수치스럽게 한다. 이 백인 악당들의 모습에는 정치, 교회 권력의 억압을 피해 신대륙으로 건너온 후 스스로 유럽의 왕과 귀족의 흉내를 내며 약자를 속이고 흑인을 착취했던 남부의 백인들에 대한 경멸에 찬 풍자가 들어 있는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금서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작품이 풍자소설이며 노예제도를 묵인하는 미국 사회의 위선과 편견을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크 트웨인 학자들은 이 작품이 미국 작가가 쓴 가장 훌륭한 반인종주의 소설이라고까지 극찬한다. 마크 트웨인은 자신이 인종, 계급, 신조에 대해 편견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인간이 다 같다고 믿는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주장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도 이런 인종평등주의를 일깨우는 소설이다.

“도피 결말”과 그 불만족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구성면에서도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소설의 첫 부분은 󰡔톰 소여의 모험󰡕의 속편처럼 보인다. 특히, 1장부터 16장까지는 󰡔톰 소여의 모험󰡕과 같은 배경과 주인공을 통해 톰 소여의 모험에서와 같이 주로 희극적이고 목가적인 모험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안개 속에서 뗏목이 목적지였던 오하이오 주 케이로를 지나친 17장부터는 중요한 인물이었던 짐의 이야기에서 사라지고 백인 사기꾼 두 명이 전면에 등장한다. 그리고 소설의 내용도 미시시피 강 위를 천천히 떠내려가는 뗏목이 아니라 남부의 마을이 중심이 된다. 결국 이 사기꾼들에 의해 짐이 다시 노예로 팔리게 되고 헉이 그런 짐을 구하겠다고 결심을 하는 31장 이후엔 다시 톰이 등장해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음으로써 소설의 처음 부분에 진행되었던 어린이들의 모험 이야기로 회귀하는 듯하다. 이런 구성상의 결점은 작품이 집필된 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톰 소여의 모험󰡕을 끝마친 후 그 성공에 고무되어 마크 트웨인은 1876년부터 곧 바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는 16장까지 쉼 없이 원고를 써 나갔으나 그 후 3년간 원고를 더 이상 쓰지 못했다. 미시시피 강 하류의 남부 사회를 묘사한 17장 이후는 1879년이나 1880년이 되어서야 쓰였다. 그리고 또 다시 몇 년간의 공백 후 1883년 후반에 와서야 짐을 구하러 펠프스 농장에 들어가는 32장 이후 마지막 부분이 쓰여졌다. 이 세 부분 중 특히 마지막 부분은 “도피 결말”이라고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도피 결말”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 전까지 작가가 이끌어 왔던 주제의 흐름이 완전히 변해버렸다는 생각 때문이다. 많은 독자들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클라이맥스는 헉이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짐을 돕겠다고 결심하는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31장 끝에서 사기꾼인 왕과 공작이 짐을 노예로 팔아버리자, 헉은 그를 구하기 위해 미스 왓슨에게 짐의 위치를 알려주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홀가분한 마음에 기도를 드리려하다 뗏목에서 짐과 함께 했던 경험을 기억하고 결국 그 편지를 찢어버리며 차라리 지옥에 가버리겠다고 외친다. 이것은 사회와 종교가 가르치는 가치체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슴이 가르쳐주는 것에 따라 행동하겠다는 양심 선언이며 헉의 완전한 윤리적 성숙을 드러내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부분에서 톰의 재등장함으로써 헉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의 구조가 바뀌어 버렸다. 윤리적 성장을 이룬 헉의 모습은 톰의 그림자에 가리어지고, 짐을 구하겠다는 결심도 톰의 장난기어린 계획에 파묻혀 버린다. 그리고 짐도 가면을 다시 걸치고 수동적인 노예가 되어 자신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묵묵히 감내한다. 이미 자유의 몸이었지만 톰이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감옥놀이 장난의 대상이 되고 마지막에 목숨을 건 탈출 소동까지 벌이게 된 짐은 톰이 해방의 사실을 밝혀주자 자신을 바보로 만든 그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감사한 마음을 표시한다. 거기다가 자유를 얻게 되는 과정조차 짐과 헉의 자유를 위한 모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인인 미스 왓슨이 세상을 떠나며 자비를 베풀어 그를 노예 신분에서 풀어줌으로써 얻게 된 것이다. 즉, 앞에서 이끌어오고 있던 흐름, 흑인 노예였던 짐이 인간성을 드러내는 과정, 위험을 무릅쓰고 자유를 향해 나아가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도피 결말”은 마크 트웨인이 주 독자층이었던 백인들을 위해 급진적인 메시지를 완화시키고 일종의 타협을 한 결과라고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 “도피 결말”은 단순한 타협을 넘어 짐 같은 흑인이 해방 후에도 왜 전형적인 “깜둥이”의 가면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침묵 속에서 지내야만 했는가에 대한 대답을 해 준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남북전쟁이 끝나 노예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후 20여 년 후에 출간되었다. 마크 트웨인이 이미 폐지된 노예제도를 공격하는 것은 시대착오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크 트웨인은 노예제도를 공격함으로써 해방된 흑인 노예들을 백인들이 잔혹하게 다룬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톰은 짐이 이미 자유의 몸인 줄 알면서도 그 사실을 숨기며 벌레와 뱀을 거처에 집어넣고 화분을 눈물로 키우라는 등 책에서 읽은 다양한 요구를 해가며 짐을 괴롭게 한다. 이런 학대는 재건시대 남부사회에서 전형적인 흑인 노예의 가면을 벗어버리는 것은 여전히 위험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은연중에 알려주어 법률적인 해방 이후에도 계속된 인종차별에 대한 자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제도가 공식적으로 없어지기는 했지만 인종간의 갈등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해방된 흑인이나 이민자들에 대한 불만은 계속 커졌고 폭동과 린치도 종종 일어났다. 노예해방 전쟁을 이끌었던 링컨 대통령마저도 두 인종이 동등하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았고 흑인들이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며 이주를 제안했다는 것도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결국 법률적 해방은 남북전쟁 후에 이룩하였지만 실질적 해방은 아직도 요원했고, 마크 트웨인은 그런 상황을 알리기 위해 이미 20년 전에 있었던 노예제를 비판한 것이다.

III.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21세기 한국

2009년 5월 󰡔어린이와 문학󰡕에는 어렸을 적 읽은 동화 중 가장 기억나는 작품들을 묻는 꼭지가 있었다. 많은 분들이 외국문학 작품을 언급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 당시 읽을 만 한 아동문학이라고는 몇몇 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명작 아동문학 전집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세계명작 아동문학은 근래에 들어오면서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국가 이데올로기 등 몇 가지 점에서 우리나라의 사정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많은 지탄을 받고 있고 재검토되고 있다. 그렇다면, 노예제도와 인종차별문제를 비판하여 미국의 국가 정체성과 국가 형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한국의 독자인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미국 이야기, 노예제도와 인종차별 반대를 넘어 국가의 법과 개인의 신념이 충돌하는, 현 시대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긴장과 갈등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다.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자이나 국가와 사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학습한 헉은 케이로에 가까워지며 짐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흑인 노예를 도피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헉의 “양심”과 인정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깨어 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많은 소시민들이 느끼는 갈등과 다르지 않다. 이런 갈등은 우리가 오랫동안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것들의 중립성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기제가 된다. 즉, 우리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으며 옳고 그름에 대해,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며, 여태껏 그 기준을 제시하였던 역사, 전통, 교육, 언어 등에 내재된 이데올로기를 돌아보게 된다. 샐리 이모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등장하는 다른 많은 백인들과 다르게 멍청하거나 나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조차도 증기선 사고로 인해 흑인이 죽었다는 것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으며 노예제도의 비인간성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이것은 바로 그녀가 살고 있는 환경의 영향 때문이며, 바로 이런 사실은 우리 역시 알게 모르게 역사, 전통, 교육, 언어 등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사회 이데올로기를 주입받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부랑아지만 예리한 관찰력을 가지고 있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주인공 헉을 통해 독자들은 사회의 악과 부조리를 넘어서는 용기의 필요함에 대해 배우게 된다.

19세기 미국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던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의 문제는 얼핏 보기에 21세기를 맞고 있는 한국의 상황과 별 상관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21세기는 국경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초국가, 탈국가 시대다. 한국 사회도 이주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의 급증 등을 통해 단일 민족 공동체가 해체되며 급격히 초국가, 탈국가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문화가정과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는 노동시장의 잠식이나 사회 통합이라는 면에서 내부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외국인에 대한 공공연한 반감이 미디어를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다문화사회는 문화적 토양을 풍부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상상적 민족 공동체 이데올로기에 갇혀 지냈던 한국 같은 나라에게는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맞아 그동안 특정 인종 및 계층을 정형화, 타자화시키고 경제적 노예상태로 만든 암묵적 정치, 사회 구조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조화와 공존을 위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다문화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다.

다문화교육은 다양한 문화와 생활양식, 세계관 사이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이해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태도와 지식을 배울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다. 결국 다문화교육의 목적은 타 문화에 대해 개방적이고 편견 없는 태도와 가치를 기르는 것이지만, 이주 노동자, 국제결혼가정에 초점을 맞춘 한국의 다문화교육은 아직도 인종적 우월감을 기초로 하는 경향이 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다문화사회를 향해 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동등함에 대해 알려준다. 미국 남부 노예제도도 한국사회와 같이 순혈주의와 타자에 대한 두려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조금의 흑인 피라도 섞여 있으면 흑인으로 분류되어 노예가 되어 버리는 “피 한 방울의 법칙”은 수많은 혼혈 노예를 양산해냈고, 다른 인종간의 결합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은 남부의 비극을 더욱 심화시켰다. 하지만 피와 피부색에 상관없이 200년 넘게 타자화되었던 흑인 노예의 인간성을 받아들여 뗏목 위에서의 우정을 나누며 공생의 길을 찾는 헉의 모습은 우리에게 다문화교육의 방향을 설정하고 검토하는 데 좋은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유영종 : 퍼듀대학교에서 마크 트웨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인하대에서 영미아동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창비어린이> 등에 영미아동청소년문학에 대한 글을 발표하고, 평화, 인권, 환경 문제를 다룬 청소년문학 작품들을 소개, 번역하기 위해 번역 공동체 <해와달>을 만들어 린다 수 박의 <<매기의 야구노트>>(Keeping Score)를 번역했다. 현재《인디고잉(Indigo+ing)》에 청소년을 위한 영미시 해설을 연재하고 있으며, 어린이문학 고전명작 다시 읽기에도 관심을 갖고 글을 준비하고 있다.

[장대비]

발제문은 7월호에 실립니다. 미리 읽고 토론회에 참석하세요^^

[지구별]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