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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Chapter 4. 서정시와 서사시(2)
소년 가브로슈
파리의 봄날에는 살을 에는 듯한 북풍이 가끔 불어온다. 단순히 추운 것이 아니라 얼어붙을 듯이 추운 것이다. 1832년 봄에는 그 북풍이 더욱 심했다. 이 북풍에는 강력한 전압이 동반된다는 특징이 있었다. 번게와 우레가 섞인 폭우가 이때 많이 쏟아졌다.
이러한 북풍이 몹시 불어와 이러다가는 다시 1월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시민들이 다시 외투를 꺼내 입게 된 어느 날 저녁, 소년 사브로슈는 누더기를 입고 떨고 있었다. 그런데도 쾌활함은 잃지 않고 있었다. 소년은 오름생 제르베 부근의 이발소 앞에서 마치 황홀경에 빠져 있는 듯이 서 있었다. 어디서 났는지 여성용 숄을 목에 두르고 있었다. 이발소 앞에는 밀랍으로 만든 신부 차림의 인형이 두 개의 등불 밑에서 빙빙 돌며 행인들에게 미소를 던지고 있었다. 그 인형은 가슴 위쪽과 어깨를 드러내고 머리에는 오렌지 꽃을 꽂고 있었다. 소년은 이 인형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은 이발소 앞에 있는 비누 한 개를 ‘슬쩍’해다가 교회에 있는 이발소에 1수에 팔 수 없을까 하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흔히 이런 수단으로 아침을 해결하곤 했다. 가브로슈는 이런 일에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가리켜 ‘이발사의 수염을 깎는다’고 표현했다.
그는 신부 인형을 바라보고 한편으로는 비누를 곁눈질하면서 뭔가를 열심히 바라보았다.
“화요일, 화요일이 아니야. 화요일일가? 아마도 화요일일 것이다. 분명히 화용일이다.”
이러한 혼잣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 혼잣말이 가브로슈가 사흘 전에 먹은 마지막 저녁 식사와 관계가 있는지도 몰랐다. 이날은 금요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발사는 난롯불로 따뜻해진 가게 안에서 손님의 수염을 깎으며 가끔 바깥에 있는 적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두 손은 주머니에 넣었지만 마음만은 분명히 칼을 뽑아 든, 동창에 걸린 건방진 부랑아를 보고 있었다.
가브로슈가 신부 차림의 인형과 진열장의 윈저 비누를 번갈아 노려보고 있는 동안, 두 아이가 머뭇거리며 이발소 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그들은 적선을 바라는지 애원보다는 오히려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키는 달랐으나 모두 바싹 마른 아이들이었다. 나이는 가브로슈보다 어린 듯 하나는 7살 또 하나는 5살쯤 되어 보였다. 그들은 함께 무어라 지껄였으나 말의 뜻은 알 수 없었다. 작은 아이의 말소리는 흐느낌으로 끊기고 큰 아이는 추위에 입을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발사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돌아서더니 면도칼을 한 손에 쥔 채 왼손으로는 큰 아이를, 무릎으로는 작은 아이를 문밖으로 내몰며 말했다.
“쓸데없는 것들이 들어와 사람만 춥게 만드는군.”
그는 문을 닫았다.
두 아이는 울면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하늘이 보였으나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브로슈는 그 뒤를 따라가 말을 건넸다.
“너희들, 도대체 왜 그러니?”
큰 아이가 대답했다.
“잘 곳이 없어.”
“그래? 거참 큰일이군. 그렇다고 우니? 바보로구나!”
그러고는 몇 살 더 먹었다는 우월감에, 가브로슈는 위엄과 다정함을 섞어 가며 말했다.
“꼬마야, 나를 따라와!”
큰 아이가 말했다.
“응, 그래.”
두 아이는 마치 대주교라도 따라가듯이 그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울기를 그치고 있었다. 가브로슈는 두 아이를 데리고 바스티유 쪽을 향해 생탕투안가로 올라갔다.
가브로슈는 걸어가면서 이발소를 돌아보고 분노의 눈길을 보냈다. 소년이 중얼거렸다.
“인정이 없어, 그 이발쟁이는! 지독한 놈이야!”
세 아이가 가브로슈를 선두로 일렬로 서서 걸어가는 것을 보고 한 매춘부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 웃음은 이들에 대한 모독이었다. 가브로슈가 비꼬았다.
“안녕하세요, 승합마차 아가씨!”
소년은 도랑을 건너다가 문지기 여자 하나를 보고 시비를 걸었다. 그녀는 브로켄 산에서 파우스트라도 만남직한 여자로, 수염이 나 있고 손에는 비를 들고 있었다. 소년이 말했다.
“아주머니. 그걸 타고 하늘로 나들이 가시나요?”
이렇게 말하면서 소년은 지나가던 사내의 에나멜 구두에 흙탕물을 튕겨주었다. 사내가 소리쳤다.
“이놈이!”
가브로슈는 숄 밖으로 코를 내밀고 말햇다.
“아저씨, 뭐 불만이라도 있나요?”
“네놈에게 할 말이 있다.”
“관청은 문을 닫았어요. 이젠 고발을 받지 않아요.”
계속 길을 걸어가다가 이번에는 어느 대문 밑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13-14세쯤 되어 보이는 소녀 거지를 발견했다. 너무 짧은 치마를 입어서 무릎이 드러나 보였다. 그 옷을 입기에는 소녀의 키가 너무 컸던 것이다. 성장이란 이런 장난도 하는 모양이다. 나체가 품위를 잃을 때면 치마가 짧아지는 법이다.
“불쌍한 아이로군! 속옷도 없구나. 자, 이거라도 가져.”
가브로슈는 목에 두르고 있던 숄을 벗어 소녀 거지의 야윈 어깨에 던져 주었다. 소녀는 깜짝 놀라는 모습으로 그를 쳐다보고는 잠자코 숄을 받아들었다. 어느 정도 곤궁에 빠지면 사람은 멍청해지고 말아, 나쁜 일에도 입을 벌리지 못하고 착한 일에도 감사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부르르!”
가브로슈가 떠는 소리를 냈다. 적어도 자기 외투의 절반은 확보하고 있는 성마르탱보다 더 떨면서, 이 부르르 하는 소리가 신호라도 되는 듯이 소나기가 더욱 극성을 부렸다. 이런 악천후는 착한 일에 벌을 주는 셈이었다.
“제기랄! 어떻게 된 거야? 또 오기 시작하는군! 비가 더 계속된다면 하느님과 절교하겠어.”
그들은 계속 걸었다.
“이젠 됐어. 그만하면 고급 옷을 입은 셈이야.”
이어 가브로슈는 구름을 노려보며 외쳤다.
“잘못 건드렸는걸!”
두 아이는 소년을 바싹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두꺼운 쇠창살이 달려 있는 창문 곁을 지나갔다. 이것은 빵집이라는 표시였다. 빵집에서는 황금이나 되는 듯이 빵을 쇠창살 뒤이ㅔ 숨겨 두는 것이었다.
가브로슈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꼬마들아, 저녁은 먹었니?”
큰아이가 대답했다.
“아니. 우린 아침부터 먹지 못했어. “
가브로슈가 의젓하게 물었다.
“그럼, 아빠도 엄마도 없는 모양이구나?”
“아니야. 아빠도 엄마도 있지만 어디 있는지 몰라.”
“때로는 어디 있는지 모르는 편이 알고 있는 것보다 나을 때도 있지. “
소년이 사상가나 되는 듯이 말했다. 큰아이가 계속 말햇다.
“벌써 두 시간이나 걸었어. 길에 무엇이 떨어졌나 하고 찾았지만 아무것도 없었어. “
“물론이지. 개가 모두 집어먹었을 테니까. “
소년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했다.
“아아! 우리는 모두 부모를 잃었군.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어른들이 미아가 되다니. 말도 안 돼, 제기랄! 어쨌든 배를 채워야 해!”
소년은 걸음을 멈추고 자기가 입고 있던 누더기를 구석구석가지 뒤졌다. 드디어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으나 사실은 뿌듯했던 것이다.
“걱정하지 마, 꼬마들아. 세 사람의 저녁값은 있어. “
그러면서 가브로슈는 주머니에서 1수짜리 동전을 꺼냈다. 소년은 두 아이가 깜짝 놀랄 사이도 없이 아이들을 앞세우고 빵집에 들어가 동전을 판매대 위에 놓으며 소리쳤다.
“이봐, 빵을 5상팀어치만 줘!”
빵집 주인이 직접 빵과 식칼을 집었다. 가브로슈가 이어 말했다.
“세 조각으로 잘라 줘.”
소년이 의기양양하게 덧붙였다.
“우리는 세 사람이니까.”
빵집 주인은 아이들의 차림새를 보고는 흑빵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가브로슈는 콧구멍에 깊숙이 손가락을 찔러 넣고, 마치 엄지손가락에 프리드리히 대왕의 코담배라도 갖고 있는 듯이 당당하게 숨을 들이쉬더니 빵집 주인에게 고함을 질렀다.
“뭐야?”
빵집 주인은 이 말을 완전히 이해하고는 대답했다.
“뭐냐고? 빵이지 뭐야. 2등품 가운데서는 고급 빵이란다.”
가브로슈는 점잖고도 냉정하게 그러나 경멸하는 투를 섞어 가며 말했다.
“걸레 조각 아냐, 이건? 흰 빵을 줘. 번쩍번쩍 빛나는 걸로.”
빵집 주인은 비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흰 빵을 자르면서 가엾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가브로슈의 비위를 건드렸다.
“여보슈! 도대체 어쩌자고 우릴 노려보는 거요?”
그러나 아이들의 키를 다 합쳐도 2미터가 되지 않았다. 빵을 잘라준 주인은 동전을 돈궤에 집어넣었다. 가브로슈가 두 아이에게 말했다.
“해치워!”
어린아이들은 영문을 몰라 소년을 쳐다보았다. 가브로슈가 웃었다.
“아, 그렇군! 아직 모르는 모양이로구나, 너무 어리니까. “
소년이 고쳐 말했다.
“먹어라. “
소년은 두 아이에게 각각 빵을 한 조각씩 나누어 주었다. 가브로슈는 큰아이 쪽이 좀 더 이야기가 통할 것 같아 특별히 용기를 불어넣어 줌으로써 식욕을 만족시켜 주어야겠다고 여겨, 제일 큰 빵을 그 아이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건 네가 먹어.”
그리고 나머지 두 조각 가운데서 작은 것을 자기 몫으로 집었다. 가브로슈를 포함하여 이 가련한 아이들은 굶주리고 있었다. 이들은 빵집 문을 막아선 채 마구 뜯어먹었다. 이미 빵값을 받아 쥔 주인은 못마땅한 듯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가브로슈가 말했다.
“거리로 돌아가자.”
그들은 도로 바스티유 쪽으로 향했다.
20년 전만 해도 바스티유 광장의 동남쪽 모퉁이, 즉 이 성채 감옥 바깥쪽 팬 운하의 선창 가가이에 기묘한 기념물이 있었다. 그것은 이미 파리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졌으나 거기에 있던 흔적은 기억에 남겨 둘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학사원 회원, 이집트 원정군 총사령관(나폴레옹)의 발상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높이가 약 40자 정도나 되는 코끼리인데, 나무와 돌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등에는 집모양 비슷한 탑이 세워져 있었다. 예전에는 어느 페인트공이 녹색으로 칠했으나 세월과 비로 말미암아 검게 변해 있었다. 이 체구가 거대한 코끼리는 광장의 적막한 한구석에서 넓은 이마, 긴 코, 어금니, 탑, 육중한 궁둥이, 기둥 같은 네 다리의 그림자를 밤하늘에다 무섭게 던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민중의 힘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검고 수수께끼 같았으며 거대햇다. 바스티유 감옥의 보이지 않는 유령 곁에 서 있는 눈에 보이는 강력한 일종의 요괴였다.
부랑아가 두 꼬마를 데리고 간 곳은 먼 데에 있는 가로등 불빛이 겨우 비칠까 말까 하는 이 광장의 한구석이었다. 가브로슈는 이 거대한 코끼리 옆에 도착했을 때, 무한대의 것이 무한히 작은 것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을 이해하고 이렇게 말했다.
“꼬마들아, 걱정하지 마!”
소년은 목책이 망가진 틈으로 코끼리 있는 곳에 들어가 아이들이 따라 들어오는 것을 도와주었다. 두 아이는 약간 겁을 먹으면서도 아무 소리 없이 가브로슈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빵을 주고 잠자리까지 약속해 준 그 누더기 소년을 구세주처럼 의지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근처 공사장 인부들이 낮에 사용하던 사다리가 있었다. 가브로슈는 무서운 힘으로 그것을 쳐들어 코끼리의 앞발에 걸쳐 놓았다. 사다리 끝에 해당하는 곳이 코끼리의 배로 거기에는 커다란 구멍 같은 것이 있었다. 가브로슈는 사다리와 구멍을 가리키며 말햇다.
“사다리를 올라서 저 구멍으로 들어가.”
두 아이는 무서워하며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가브로슈가 말했다.
“무서운 모양이군, 꼬마들이. 그럼 보고 있어.”
가브로슈는 거칠거칠한 코끼리 다리를 붙잡더니 사다리도 사용하지 않고 순식간에 기어 올라갔다. 이어서 구멍으로 들어가는 구렁이처럼 그 안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잠시 후에는 시커먼 구멍 언저리에서 소년의 창백한 얼굴이 고개를 내미는 것이 보였다. 소년이 말했다.
“자아. 꼬마들아, 올라와! 아주 기분이 좋아! 올라와, 너부터!”
그러면서 큰아이에게 말했다.
“손을 잡아 줄 테니.”
이이들은 서로 어깨를 밀며 망설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 부랑아 소년은 무섭기도 하고 정답기도 했다. 게다가 비가 상당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형이 먼저 용기를 내었다. 동생은 형이 올라가고 자기만이 커다란 짐승의 다리 밑에 남게 되자 울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차마 울지는 못했다.
큰아이는 비틀거리면서 사다리 층계를 올라갔다. 가브로슈는 펜싱 사범이 제자에게 하듯이 또 마부가 말을 대하듯이 소리를 지르며 격려했다.
“무서워할 것 없어!”
“옳지!”
“그대로 해!”
“거기를 딛고!”
“손은 그걸 잡아!”
“힘을 내!”
아이가 손이 닿는 떼까지 오자 가브로슈는 팔을 내밀어 힘껏 잡아끌었다. 소년이 말했다.
“이제 됐다.”
큰아이는 구멍 가장자리를 넘었다. 가브로슈가 말했다.
“그러면 여기 앉아서 잠깐 기다려.”
소년은 들어왔을 때처럼 구멍 밖으로 나가더니, 원숭이 같이 날래게 코끼리 다리를 미끄러져 내려가 풀 위에 섰다. 이어서 5살짜리 꼬마의 허리를 끌어안고 사다리 한가운데 갖다 세운 다음 밑에서 밀어 올리며 큰아이에게 소리쳤다.
“내가 아래서 밀 테니 너는 잡아당겨.”
순식간에 꼬마는 밀리고 끌리고 쳐들리고 당겨지고 하며 구멍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가브로슈는 제일 나중에 들어가면서 사다리를 발로 차 풀 위에 넘어뜨렸다. 그러고는 손을 털며 말했다.
“이젠 됐어! 라파예트 장군 만세!”
흥분이 가시자 소년이 말했다.
“꼬마들아, 이것이 우리 집이다!”
아닌 게 아니라 가브로슈는 자기 집에 돌아온 것이다.
“우선, 문지기에게 우리가 없다는 것을 일러두자.”
소년은 자기 방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자신 있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 널빤지 하나를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구멍을 막았다.
가브로슈는 한 번 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이들은 유황병에 꽂은 성냥개비에 불을 켜는 소리를 들었다. 가브로슈가 기름 안에 담근 심지에 불을 붙였던 것이다. 불빛보다 연기를 더 많이 내는 이 등잔으로 코끼리 내부가 희미하게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