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광 보호구역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 종일 전쟁놀음에 미쳐 진흙으로 대포를 만들고
도토리로 대포알을 만드는 전쟁광들이 사는 마을
줄줄이 새끼줄에 묶인 흙인형 포로들을
자동콩소총으로 쏘아 진흙밭에 빠트리면 무참히 녹아 사라지고
다시 그 흙으로 빚은 전투기들이
우타타타 해바라기씨 폭탄을 투하하고
민들레, 박주가리 낙하산 부대를 침투시키면 온 마을이
어쩔 수 없이 노랗게 피는 전쟁터
논두렁 밭두렁마다 줄맞춰 매설한 콩깍지 지뢰들이 픽픽 터지고
철모르는 아이들 콩알 줍다가 미끄러지는 곳
아서라, 맨발로 달려간 할미꽃들 백기를 들면
흐뭇한 얼굴로 흙전차 타고 시가행진을 하는
무서운 전쟁광들이 서너 너댓 명 사는,
작은 전쟁광 보호구역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 {문학사상}(2002. 8)
* 사람의 성품은 본래부터 타고나는 것일까. 그리하여 광적으로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태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런 사람들을 위해 시인은 "전쟁광 보호구역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루 종일 전쟁놀음에 미쳐 진흙으로 대포를 만들고/도토리로 대포알을 만드는 전쟁광" "서너 너댓 명"이 살아가는 마을 말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 전쟁광들이 단지 서너 너덧 명 뿐에 불과할까. 미국의 백인들이 인디언 보호구역을 만들었듯이 전쟁광들을 위한 보호구역을 만들면 그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하루 종일 전쟁놀음을 즐기며 살아갈 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이 지구상에는 저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 아닌가. 시인은 이처럼 여기서 전혀 실현이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몽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