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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9시 50여 분,
오늘도 어김없이 산책길에 나서려는 데, 집사람이 앞을 막아선다.
"오늘은 못 가니대이."
"왜?"
"일할끼 있다니까요!"
"나갈려고 하매 옷 다 입었다아이가. 일은 갔다와서 하만 될끼 아이가."
"알았어요. 다녀와서 하든지 말든지. 당신 맘은 하매 콩밭에 가 있는 걸."
뉘 집을 막론하고 바깥사람이 건달이면 안사람은 속이 터지기 마련이다. 무슨 일을 시켜먹을 요량인지는 모르겠지만 속이 터지기는 우리 집사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작년말, 아파트경비원을 그만 둔 뒤부터 난 완전 백수가 되어버렸다. 말 그대로 백수는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 사람을 일음이다.
백수는 의존명사다. 혼자서는 구실을 못하는 불완전 명사이기도 하다. 그밥에 그나물인 건달하고 만나 짝을 이루어야만 비로소 일어서서 걸어나닐 수 있는 곰배팔이 뻐덕다리 명사가 백수라는 것이다. 뻐덕다리는 벋정다리의 경상도 문경사투리다. 한글학자가 듣는다면 그 무슨 궤변이냐고 하겠지만 내 주장은 그렇다는 얘기다. 어떻던 백수가 건달에게 장가들어 태어난 복합명사가 백수건달이다.
남편이 백수건달이면 가족들의 생계 걱정은 안사람 몫으로 떨어진다. 가장의 몫, 가족을 먹여살려야하는 의무를 아내에게 넘겨버리는 남자, 그런 남자가 백수건달이다. 물론 홀몸짜리 백수건달도 더러는 있다.
석달 열흘 땡땡 가물어도, 온 세상을 다 날려버릴 듯 광풍이 휘몰아쳐도, 겨울철 폭설에 갇혀 사람도 차도 오도가도 못하게 갇혀버려도, 눈도 꿈쩍않고 느긋하고 태연하게 유유자적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백수건달이다. 그래서 팔자한 번 좋은 상팔자에 속하는 남자다.
백수의 한자표기는 '白手'다. 하얀 손, 일하지 않으니 손이 하얄 수 밖에, 참으로 멋스런 표현이다.
건달의 한자표기는 '乾達'이다.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건달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다.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려는 의욕이 없이 일정한 생업을 가지려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게으름쟁이'
'백수'와 '건달'은 자석에 쇳조각 달라붙듯 둘이 서로 착 달라붙어 멋들으지게 폼나는 말 '백수건달'로 재탄생했다
하는 일 없이 놀고 먹으니 나도 분명, 백수건달이다. 백수건달은 상팔자라고 하지만 난 상팔자는 못 된다. 식구라곤 달랑 집사람 하나밖에 없지만 건사해야하고 먹여살려야하기 때문이다. 먹여살려야 하는 가족을 걱정하는 그래도 양심을 조금 가진, 반쪽짜리 백수건달이 바로 나라는 사람이다.
아파트경비원을 그만 둔 뒤,그런 형편이 되어버린지가 벌써 6개월째다. 그래서 요즘 우리 가족은 실업급여로 생활하고 있다. 내가 받는 실업급여는 1백5십여 만 원이다. 현직에 있을 때와 거의 같은 액수다. 실업급여수급기간에는 다른 일을 하면 법에 저촉된다고 한다. '억지춘양'이라는 말이 있다. 실업급여 받아가며 놀고 먹으며 탱자탱자 하고 살아가니 팔자 한 번 좋다.
올 한해는 억지춘양되어 그렇게 보낸다해도 내년부터가 문제다.우리 두 내외 입에 풀칠이라도 할라치면 일을 해야하고, 일을 하려면 일거리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실업급여수급이 끝나는 9월 하순쯤엔 동사무소나 시니어클럽에 한 번 다녀올 일이다.
내년에 맞춤한 일자리가 있는지 알아볼 일이다. 혹시 13년 7개월이나 해먹어 이골이 난 아파트경비원 자리, 나에게 돌아올 눈먼자리라도 있는지 알아볼 일이다. 그러나 이곳, 저곳에서 나이 많다고 축객 당한다면 할 수 없이 살아오면서 조금쯤 갈무리한 구렁이알같은 그 귀중한 돈 축내가며 남은 여생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일이렸다.
돈 쪼개쓰고, 죽지않을 만큼만 숨쉬고 긴축가계 꾸려가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에라 모르느겠다. 내일 걱정은 내일하라고 했다. 살다보면 무슨 방도가 나서겠지. 설마 산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는가!
집사람이야 잔소리를 하건말건 자전거를 끌고 대문을 나선다. 걷는 것에 비하면 자전거는 빠르기 그지없다. 나를 태운 자전거는 어느 새 휴천동성당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성당에서 서쪽으로 이십여 미터쯤 떨어진 뉘집 담장아래 석류꽃이 피었다. 곱다. 참 곱다.
석류나무는 논보리를 베어내고, 모심기철이 되어야만 꽃을 피우는 게으런 나무다. 대추나무도, 밤나무도 그렇다. 그 나무나 그 나무나 다 피장파장이다. 게으르기로 친다면 석류나무나 밤나무, 대추나무는 그 나무가 그 나무다. 촌수로 치면 건달과 백수처럼 사촌지간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느님이 하신 일이지만 말인즉선 그렇다는 얘기다.
"삐걱!"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댁 주인장인 듯한 또래쯤 될성싶은 노인네가 나왔다.
"석류꽃이 참 곱니더!"
그렇게 운韻을 떼자 그 양반이 맞장구를 쳤다.
"예, 몇 년 전에 장에서 사다 심었는데, 꽤 마이 컸니더."
"조 아래 어느 집엔 지나간 오월 어느 날 보았더니 토종 으아리가 꽃을 피웠디더. 해맑은 상아빛깔 꽃이 참 곱디더."
"그래요오, 그라만 우리 집 담벼락에도 몇 포기 구해다 심어놔야겠네요!"
"개량종 말고 토종 으아리를 심가 놓으면 좋겠니더만."
소나무와 전나무, 낙엽송이 우거져 숲을 이룬 도심지 외곽도로 갓길은 꽤나 운치롭고 한적하다. 숲을 따라 두 줄기 철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마주보고 달려가는 저 두 줄기 철길은 그 어드메에서 만나 회포를 풀런지는 그대도 나도 모른다.
아니다. 멀리도 가까이도 아니게 적당히 떨어져서 속살속살 얘기나누며 끝없이 나아가는 저 두줄기 레일은 그렇게 친구로 남아있고 싶어 한줄기 레일로 포개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군데군데 놓여있는 벤취엔 여든을 넘긴듯한 노인네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얘기삼매경에 빠져있다. 나보다 일곱 여덟은 위인 듯한 연배로 보이는 인생선배들이다.
저 양반들은 방안에 죽치고 앉았다가, 저저리하고 거추장스럽다고 안사람들에게 쫓겨나왔을 것이다. 아님, 이웃들과 얘기 나누고 솔바람 쐬이며 바깥공기 마시는 게, 방안에 죽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에 저렇게 바깥으로 뛰쳐 나왔을지도 모른다.
안사람에게 큰소리 펑펑치며 살아가는 바깥노인네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한 집안의 가장으로, 시집 장가간 아들 딸의 아버지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바깥노인네가 과연 얼마쯤 될까?
젊은 시절엔 가족들 먹여살리느라고 뼈빠지게 일한 노인들이다. 사는 게 팍팍해서 노년의 설계는 뒷전이었다. 아니 생각해볼 겨를조차 없었다.노동력 상실한 노인네로 전락된 지금, 허허로운 바람만이 저네들의 가슴을 스쳐가고 있을 것이다.
나이들면 힘의 군형이 안사람쪽으로 기울어진다. 모계사회로 회귀한다.안사람의 목소리가 걸핏하면 높아진다. 시대가 바뀌고부터 삶의 형태가 그렇게 변화되기 시작했다.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것이 노인세계의 법칙이다. 전통적 유교가치관이 무너진 요즘은 갈수록 더해간다. 호주제가 폐지된 지는 이미 오래다. 시대가 바뀌면 인간의 삶의 형태도 변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정도程度를 넘어서면, 보다못한 남정네가 "깩!" 고함을 질러대면 대부분의 안사람은 찔끔하고 뒤로 물러선다. 그러기는 우리 집사람도 마찬가지다. 뒤로 한 발쯤 물러서야할 아름다운 선線, 부덕婦德의 선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세상 살아가다보니 내나이 어느새 일흔을 훌쩍 넘겨버렸다. 일흔 셋, 시쳇말로 7학년 3반이다. 큰아들 나이가 마흔 여덟이니 아버지로 살아온 세월이 47년, 큰 손녀딸이 열세 살이니 할아버지로 살아온 세월이 어언 12년을 넘어섰다.
우리 집엔 애물단지 딸내미가 하나 있다. 딸아인 애물단지답게 나이 마흔이 넘어 시집갔다.
그것도 그냥 지성으로 간 것이 아니라, '니가 죽던지 내가 죽던지 양단간에 결판을 내보자!'라는 지 어미의 협박을 견디다못해 우리 내외 몰래 가만히 사귀어 오던 언놈 찾아가 버렸다.
딸아인 예식 같은 형식적인 것은 별의미가 없다며 혼례식도 올리지 않고 박서방인가 뭔가 하는 그 녀석 찾아 가버렸다. 딸아이의 그 고약스런 성정머리 때문에 혼례식날 딸아이 팔짱끼고 잔잔하게 흐르는 웨딩마취 속으로 너펄너펄 걸어가서 신랑에게 딸아아이를 넘겨주는 그 가슴짠한 장면을 난 연출하지 못했다.
그 애비에 그 딸이라 그 것도 하늘이 정해주신 타고난 팔자인 것 같았다. 이래저래 나는 사돈에게 죄인이 되어야만했다.
박서방은 희한한 녀석이었다. 박서방은 ㅇㅇ공군부대에 근무하는 군무원이다. 직장에서라고 했다. 기르는 개를 찾아 어느 날, 떠돌이 개가 흘러들어왔다고 한다.두 마리의 개는 만나자마자 뒤엉켜 싸움이 붙었다고 한다. 막상막하의 쌈이 아니라 한쪽이 일방적으로 몰리는 그런 불공적한 싸움이었다고 했다.
예부터 쌈구경은 물구경 불구경과 함께 구경 중의 상구경上求景으로 쳤다. 그러나 한쪽이 어느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는 불공정한 싸움은 예외로 쳤다.
그냥두면 한마리가 물려죽을 것만같았다고 박서방이 말했다. 해서,개싸움을 말리려고 박서방이 뛰어들었다고 한다. 집에서 기르는 개라도 먹을 때 집적거리거나, 싸울 때 뜯어말리면 개는 야성野性이 발동한다. 성이 난 개는 앞 뒤 재지 않고 무조건 물어버린다.
박서방이 싸움을 말리려고 중간에 끼어들자 일방적으로 상대방 개를 몰아부치던 개가 박서방 무릎을 암팡지게 물어버렸다고 했다. 박서방은 그렇게 개싸움을 말리려다가 무릎을 물려 꽤 고생을 했다.
'멍청한 녀석, 지가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개쌈움을 말려.' 그렇게 핀잔을 주면서도 빙그레 웃으며 박서방의 그 기개높은 의협심을 높게 평가했다. 우리 집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애지중지 길러온 고명딸은 우리 내외의 가슴 속에 생채기를 남겨놓고 그렇게 박서방 찾아 가버렸다.
딸아이가 가버리자 앓던이 빠지듯 시원섭섭했으나 바람빠진 풍선처럼 가슴이 텅 빈 것 같았다. 딸아이가 박서방을 찾아간지 5년이 넘었건만 비어있는 가슴은 좀체로 채워지지 않는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피는 핏줄따라 흐른다. 흐르는 핏속엔 유전인자, 서양말로는 DNA라는 별 희한한 물질이 녹아있다.
딸아이는 애비인 날 빼다꼽았다. 경상도사투리인 '빼다꼽았다'를 표준말로 직역하면 '빼닮았다'이다. 우리 집 애물단지, 딸아이가 날 빼닮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딸아이의 핏속에 그 고약한 물질 유전인자가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딸아이는 하얀 북극곰 어린 새끼가 어미곰과 판박이 듯, 급한 성정머리하며, 정에 한없이 약한 것 하며, 한 번 아니라고 맘먹으면 끝까지 번복하지 않는 그 고약스런 성정머리하며 애비인 날 거의 빼닮았다.
딸아이가 중학을 다닐 때였다. 우연한 기회에 딸아이가 낮잠자는 모습을 봤다. 순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자는 모습이 애비인 나를 꼭 빼닮았기 때문이었다. 딸아이는 애비처럼 양 손을 깍지끼어 가슴위에 얹어놓고 자고 있었던 것이었다.
난, 잠잘때 양손을 깍지끼어 가슴위에 얹어놓거나 아님 뒷퉁수를 괴이고 잘때가 있다. 피는 못 속이는 법이다. 나는 속으로 궁시랑 거렸다. '잠자는 꼬락서니가 꼭 애비 닮았대이!'
언젠가 집사람이 들려줬다. 딸아이와 한판 붙고난 뒤 물어보았단다.
"니는 성깔머리가 누굴 닮아 그리 못됐노!"
딸아이는 이렇게 대답하더라고 했다.
"아빠 닮아서 그렇지 뭐."
도심지를 완전히 빠져나오자 자전거는 삼거리에 들어섰다.
"뻐꾹뻐꾹 뻑뻑꾹! 어디선가 뻐꾸기가 울었다.
그 옛날 이맘때쯤이면 고향마을 앞산 사모봉 중턱에서는 뻐꾸기는 울었다. 뻐꾹뻐꾹 뻑뻑꾹 뻑뻑꾹...... 구성진 울음소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이 길을 앞으로 곧장 가면 삽재 너머 봉화 문단이고, 왼쪽으로 핸들을 꺾어버리면 영광고등학교를 지나고 진우를 지나 부석방면으로 간다.
삽재는 남간재, 앳고개, 나뭇고개, 남산고개와 더불어 영주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다섯 고개 중의 한 고개다. 재와 고개는 동의어同義語로 봐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40여 년 전 일이었다. 대힉에 다니는 서울사는 처이질녀가 놀러왔는지라 데리고 부석사를 돌아보고 오던 길이었다. 나와 집사람, 처이질녀를 태운 버스는 영광고등학교 앞을 지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집사람 얼굴이 노랗게 변하더니 차멀미를 해대기 시작했다. 집사람은 멀미만 시작했다하면 인사불성이 된다. 할 수 없이 차를 세우고 온 가족이 내렸다.
"웩웩!"토하는 집사람을 진정시킨 후 한참을 쉬었다가 셋이는 영광고등학교 앞에서 꽃동산까지 근 십여 리 길을 차들이 지날 때마다 피어오르는 뽀얀 먼지 뒤집어써가며 타박타박 걸어와야했다. 그 당시는 택시가 참 귀하던 시절이었다.
"뻐꾹뻐꾹 뻑뻑꾹!"
뻐꾸기울음소리는 잠시 끊어졌다가 다시 들리곤했다. 숨이차서 호흡고르고 다시 우는 모양이었다. 두견이과에 속하는 뻐꾸기는 오월초순에 남쪽나라에서 날아와 구월중순에 남쪽나라로 날아가는 여름철새다.
둥지를 틀지 않고 개개비나 오목눈이 둥지에 탁란과 탁아託兒를 하는 뻐꾸기는 아주 얌체족이다. 가시나무고기의 똥도 주어먹으면 안 될 아주 양통머리 톡까진 새다.
십여 년 전 어느 여름날 아침이었다. 철야를 하고난 뒤 퇴근을 했다. 아침밥을 대충 먹고 간밤에 못잔 잠을 보충하려고 자리를 펴고 누웠다. 그때만해도 아파트경비원은 밤 열시나 열한시, 열두시에 퇴근을 하지않고 철야근무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엔 뻐꾸기시계가 유행이었다. 웬만한 집이면 벽 한가운데 뻐꾸기시계가 걸려있었다.
시계안에 숨어있는 뻐꾸기가 푸드득 날개짓을 하며 시계안에서 나와서 시간의 숫자만큼 울고 시계안으로 쏙 들어가는 이상야릇한 시계였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그만 뻐꾸기시계가 보란듯이 거실벽 한가운데 걸려있었다. 잠결이었다. "뻐꾹뻐꾹 뻑뻑꾹!" 뻐꾸기가 울었다. 구성지게 울었다. "뻐꾹뻐꾹 뻑뻑꾹, 뻐꾹뻐꾹 뻐뻑꾹!" 뻐꾸기는 쉼없이 울어댔다."
고향마을 앞산 중턱에서 뻐꾸기는 줄기차게 울어대고 있었다. 숨넘어갈 듯 울어대던 뻐구기울음소리가 뚝 그치더니 대문에서 벼락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쾅쾅쾅쾅" 언놈이 주먹으로 대문을 사정없이 두드려대는 것도 같았고, 술 처먹고 발로 마구 차대는 것도 같았다.
벌떡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대문 앞에 서서 고함을 질렀다.
"*팔 언놈이야!"
그랬더니 대문밖에서는 더 큰 소리가 들려왔다.
"땡양달에 머리 다 꾸이는구만 뭐해요. 빨리 대문열지 안코."
대문을 열어주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집사람은 아까보다 더 큰소릴 질러댔다.
"아니이, 지금이 몇시인데 무슨 노무 잠을 여태껏 자요!"
뻐꾸기시계 속에서 푸드덕하고 뻐꾸기가 날아오더니 "뻐꾹뻐꾹 뻐뻑꾹, 뻐꾹뻐꾹 뻑뻑꾹!" 열두번을 울어대더니 제집속으로 쏙들어간다.
구월 중순에 접어들자 뻐꾸기 울음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여름철새인 뻐꾸기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겨울을 나고, 내년 오월쯤에야 이땅 코리아의 산으로 날아올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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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전적 글입니다.
독자님들, 그러려니 하고 읽어주십시오.
그래요. 엊그제, 삽재 조금 못미쳐까지 자전거를 타고 산책길에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강문희 시인댁에 들려 커피 한잔 대접받고 왔습니다.
돌아올 때는 사모님이 싸주시는 시레기 삶아 무친 것과, 싱싱한 상추랑 케일을 한보따리 얻어 왔습니다.
뻐꾸기가 울었습니다. 구성지게 울었습니다.
그 옛날, 고향마을 앞산에서 들려오던 뻐꾸기 울음소리와 꼭 같았습니다.
이웃님들, 늘 고맙습니다.
김범선 선생님께서는 강단에 서실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한 글을 없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해야 된다!"
해서 문경아제는 이따금 카페나 블로그에 올려놓은 글을 점검합니다. 불완전한 문장과 내용을 수정하여 좀 더 완전한 글을 만들려고요.
아버지가 걸어가셨던 족적을 따라 자식이 걸어갑니다.
그렇게 걸어간다는 걸, 젊은 시절에 몰랐습니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기고서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그 누구나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간다는 것을,
불효의 세월을 다 보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세월이 가장 큰 스승이다!'라는 진리를.
한건해볼까 싶어 자전거를 끌고 시내 한바퀴를 빙 돌아왔습니다.
소도보고 스님도 만나뵙고 왔습니다. 한건 단단히 한 셈이지요.
오늘 아침은 꽤 소득이 있었습니다.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비는 새벽부터 내렸습니다. 집사람이 투덜됩니다.
"웬 비가 이렇게 퍼부어 대노. 아침부터."
집사람은 무심결에 그렇게 말했겠지요.
"지금 많이 가물어. 농촌에서는 비안온다고 난리여."
집사람은 면구스럽던지,
"갑자기 오니까 그렇지....."
"당신이 일기예보를 안 들어서 그래."
빗줄기가 거세지면서
부지런히 하늘을 날아다니던 제비 두 마리가 날개를 접었습니다.
배고플 텐데요.
김범선 선생님 말씀이 떠올라서
오늘도 작품을 들여다봤습니다.
수없이 읽고 읽었는데 헛점은 여전했습니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청하늘이 보입니다.
제비들은 보이지 안네요.
아침부터 설쳐대더니 배가 불렀나 봅니다.
어젠 안동에 다녀왔습니다.
시집간 애물단지 딸아이가 복막염으로 안동병원에 입원해서요.
'망할노무자슥!맹장이 터져 복막염이 되도록 뭘했단 말이고'
시집을 가고나서도 딸아인 역시 애물단지였습니다.
요즘은 뻐꾸기울음소리가 들려지 않습니다.
월동하려고 따뜻한 남국으로 갔겠지요.
뻐꾸기울음소리를 들으려면 내년 오월까지 기다려야 겠지요.
부영아파트에 살고 있는 시집간 딸아이 다녀가길 기다리듯, 내년 오월까지 기다려야 겠지요.
남의 둥지에 탁란하는 밉상스런 새지만 우리 집 누구 마냥 생억지는 쓰지 않습니다.
벽에 걸린 벽시계가 "똑딱똑딱" 장단 맞추며 잘도 갑니다.
작년 6월 9일 초고를 썼으니 이 글을 올린지도 일년이 다 되어갑니다. 바람과 구름과 비가 서로 등떠밀고 잡아당겨 가면서 세월의 축을 돌리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