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이끄는 참여정부 첫 각료에 4명의 여성장관이 기용되면서 역대 정권들 중 조각에서 최다 여성장관 기록을 가지게 됐다.
이로써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30명 여성인사의 참정사를 기록하게 됐다.
1948년 제헌국회가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한 이래 30명의 여성장관 입성은 상징적이든 실질적이든 여성에 대해 배타적이었던 정치권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 참정사에서 성의 장벽을 뛰어넘은 선두주자는 임영신(작고)씨였다.
그는 미군정기 최초의 여성정당이었던 조선여자국민당 후보로 1948년 경북 안동 보궐선거에 출마해 제헌국회
홍일점 의원이 됐고, 그 해 8월부터 제헌국회 초대 상공부 장관으로 활약했다. 취임 첫날인데도 인사하러 오는 관리가 없는 등 취임 초 ‘수모’를
겪은 임씨였지만 타고난 당당함과 추진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어 52년 10월부터 20개월 간 박현숙씨가
무임소장관(정무제2장관)으로 입각했지만, 2·3 공화국 시절에는 단 한 명의 여성 장관도 나오지 못했다. 마침내 79년 10월 25년 간이란 긴
공백을 깨고 김옥길씨가 문교부 장관에 올랐다. 그 후 82년 김정례씨가 보사부 장관으로 입각했으나 재임 중 의료보험 일원화 문제와 관련,
국회에서 추궁을 받다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임명 시기를 자세히 보면 정부 수립 초기에 3명이 집중돼 있고, 윤보선·박정희·전두환
정권을 거치는 34년 동안 여성장관은 단 2명뿐이었다. 군사정권 아래서 여성의 정치 참여는 후퇴를 거듭했으며 이 시기에 우리 사회에는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주의가 더욱 공공해 졌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5년 동안 여성장관은 4명이나 탄생했다. 그러나
조경희·김영정·이계순·김갑현씨는 모두 여성발전기본법에 의거한 여성정책 정담부서인 정무2장관이라는 제한된 자리에 머물렀다. 다만 정부조직에
여성관련기구(정무2장관)를 별도로 마련하고, 여성의 몫을 주장하는 시대가 시작됐다는 데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 여성장관은 8명으로 늘어나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눈에 띄게 활발해져 본격적인 ‘여성장관 시대’가 시작됐다. 김 대통령은
권영자·김장숙·김윤덕·이연숙씨 등 4명의 정무2장관과 황산성 환경처, 김숙희 교육부, 박양실·송정숙 보사부 장관을
탄생시켰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헌정 사상 가장 많은 9명의 여성장관을 기용해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왕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범 1차 내각 때에 신낙균 문화관광부, 주양자·김모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재임했고, 2차 내각에는 손숙·김명자 환경부 장관과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장관급)에 윤후정·강기원·백경남씨 등이 입각했다. 또 지난 2001년 1월 여성부가 출범하면서 한명숙 장관이
임명됐다.
특히 2002년 7월 최초의 여성 총리 탄생을 예고했던 장상 총리서리는 아들의 미국 국적 취득 문제와 출신대학 시비,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제기돼 국회 인준이 부결되기는 했지만, 헌정 사상 가장 높은 정부직에 오른 여성으로 기록됐다.
또 김명자
환경부 장관은 지난 2월 24일 김 대통령 퇴임 때까지 3년8개월 동안 재임해 최장수 여성장관을 기록, 주목을
받았다.
첫댓글휴머니스트이자 페미니스트이기도 했던 김대중을 잘 설명해주는 자료입니다...김대중 대통령 임기 동안에 건국 후 첫 여성 장군 탄생과 한나라당 반대로 부결되긴 했지만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성 국무총리를 지명한 것도 여성의 지위향상에 도움이 되었던 업적이라 하겠습니다..
첫댓글 휴머니스트이자 페미니스트이기도 했던 김대중을 잘 설명해주는 자료입니다...김대중 대통령 임기 동안에 건국 후 첫 여성 장군 탄생과 한나라당 반대로 부결되긴 했지만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성 국무총리를 지명한 것도 여성의 지위향상에 도움이 되었던 업적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