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김해공항 2019.7.30일 10시 출발 2시간 30분 소요 중국 河北省(허베이성) 성도 石家莊(스자촹)공항에 한국시간 12시 30분 중국시간 11시 30분도착(이후부터 중국시간으로 기술함: 한국은 동경 135도 도쿄 표준시를 적용하고 중국은 동경 120도 북경(北京) 표준시를 적용함으로서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늦다.
가이드미팅, 고속열차(우리의 KTX급)로 3시 56분 석가장을 출발 1시간 30분을 달려 산서성(山西省:산시성의 省都인 太原(타이위안)에 도착(요금 68元 2등칸)다시 버스를 타고, 180km거리에 있는 첫째날 목적지인 綿山(미엔산) 운봉서원호텔(雲峰墅苑: 4성급)에 도착 4박 5일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중국은 북경이 8시 아침식사시간이면, 엔벤은 아침을 이미 마친 상태이고 서쪽인 시짱은 시간차가 4시간 늦어 캄캄한 밤이다. 북경단일시를 적용하므로 인한 지역간의 시차 불일치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의문?)
중국 석가장(石家莊 하북성:河北省의 省都) 국제공항
밤에 도착한 운봉서원호텔
늦은 시간 한국식을 가미한 중국식 저녁 밥(중국은 주로 밥보다는 면류나 빵 종류를 먹는다)
2019.7.31일 (수요일)아침 숙소인 운봉서원호텔 앞 전경
綿山(면산: 미엔산)은 산시성(山西省)의 종축인 타이웨이산(太岳山 : 최고높이 2,566.6m)의 한갈래로 介休市(지에시후시)동남으로 약 20km에 위치한 석회암과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협곡으로 해발평균 2,000여m의 산중턱에 약 16km에 걸쳐 도교, 불교 사원이 별처럼 박혀 빛나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중국내 경치관광구 별5개의 최상급 관광지로서 여름에도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하다.
저 앞에 보이는 신식건물은 엘리베이트 와 직원들 사무용이며 10층에서 내려 다시 엘리베이트를 갈아타면 기와로 덮은 숙박건물 5층으로 되어있는데 나는 다시 4층을 눌러 4층에서 지난 밤에 숙박했다. 시설은 낡아서 4성급(요금은 680元정도: 비싼방도 있음) 네개인데도 샤워기도 잘 작동하지 않았다.
절벽에 세워진 호텔
호텔앞 계곡
저 길이 어제밤 캄캄해서 수백길 낭떠리지인줄도 모르로 들어왔던 길인데 아침에 보니 정말 아찔하게 오금이 저립니다.
綿山(면산:미엔산) 최고의 특징은 바로 절벽에 열려있는 한 줄기 길인데 겨우 차 두대가 비껴지나갈수 있는 길인데 위험하지 않는 길이란 없다. 만약 기사가 빨리 운전하다가 실수라도 하면 차와 사람이 모두 뒤집혀 죽을 수 밖에 없다.
운봉사(云峰寺) 전경 포복사(옛이름 : 抱腹寺)
깍아지른 절벽위에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을 중심으로 불교 가람을 배치하였으며, 포복이라는 이름은 동굴을 배꼽으로 보고 두손으로 배를 감싸 안은 형상이라고 생각하여 보복암이라고 불렀다.
동굴 놓이는 약 60m, 길이는 약 180m, 깊이는 약 50m이며, 불전가람은 약 200여개에 달한다. 위(魏) 명제(明帝: 조조의 손자 조예 재위기간은 226-239)년간 건축하여 현재 1,700여년에 이른다.
절벽에 박아놓은 鈴鐺(쇠사슬로 엮어 놓은 종) : 간절하게 소원을 빌고 기다리면서(等:deng 기다린다와 발음이 같은 燈을 달고 뜻한 바를 열심히하여 소원을 이룬 이후 이곳에 영험다다는 영(靈 중국발음 ling)과 같은 발음의 방울 즉 鈴(종)을 달았다. 전문적인 공인이 철새끼줄에 매달려 기어올라가 핀을 박고 종을 매단 것이다.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이 貞觀15년(614년) 가뭄을 해소하고자 여기서 기우제를 지냈고, 비가내려 고승에게 감사와 은혜의 표시로 친히 면산 포복암에서 백성들의 번영을 기리고자 암벽정상에 종을 달은 것이 종을 다는 시초가 되었다.
가을 저녁 노을지는데 단풍이 휘날리는 아스라한 달빛 속에 들려오는 풍경소리에 잠들지 못하는 객이 있었으리
중국사람들은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는 사랑의 표시로 쇠통을 채우고 열쇠를 영원히 찾지 못하게 버려버림으로서 영원히 떨어지지 않고 영원히 함께한다는 뜻. 관광지 마다 다 그렇다.
정과사(正果寺) 바른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하늘다리(天橋) : 절벽상의 잔도(棧道)로서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길이 300m, 넓이 약1m 높낮이는 약 80m : 죄 많이 지은 사람은 오금이 저려 발을 떼기가 어렵다.
상방원(上方院)은 옛날 포복사(抱腹寺)위, 상방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방원은 정과사 위쪽에 있어 이름을 상방원이라 하였고 역사적으로 고승, 높은 도인들이 수행하는 곳이다. 구역 내에 3개의 큰 토전(土殿)이 있는데 송자낭낭전, 오용전, 오루사 등 경관이 있다.
이 구역에서 가장 높은 곳은 해발 1,800m로서 늘 구름이 감돈다. 금나라 주앙이 대정년간에 면산 상방원에서 유람하다가 시를 다음과 같이 읇었다.
"위험한 난간이 있는 산 중턱의 높은 하늘에서 비밀스러운 경관 가운데 하늘을 받들고 땅을 감추는 구나!"
乾坤塔(건곤탑)
적취정(滴翠亭) : 암석으로부터 물방울이 떨어져 비파소리를 즐긴다는 정자
고대 역대 고승이 수행 양성 좌선삼매하여 열반하시매 진골 육체는 1,000년이 지났건만 열반당시자세인 가부좌 상태로 근골은 부서지지 않고, 육체는 부패하지 않아 석고등으로 감싸 안치한 절이다.
정과사(正果寺) 불교성인 8인, 도교선인 4인 등의 등신불(等身佛)이 안치되어 있다. "千古 名刹" 曰 "正果"다. "空中古佛"이라 벽면에 새계져 있다.
윗길로 갈것인가? 아랫길로 갈 것인가?
乾坤塔(건곤탑)
적취정(滴翠亭)
서현곡 엘리베이트 동굴 벽화 설명
제사(祭祀)는 "국가 지 대사(國家之大事)" 제사문화는 중국전통문화의 발원점이다. 면산은 한식(寒食) 청명(淸明)의 발원지이다.
2,600년 이래 한식 청명절 제사는 개자추(介子推)의 행사다. 진(晉) 문공(文公), 한무제(漢武帝),당현종(唐玄宗), 송신종(宋神宗) 명진왕(明晉王)등 역사적 인물들이 제사행사를 행하던 곳이다
忠. 孝. 仁. 信
우리의 전통 세시풍속에 4대 명절인 설, 한식, 단오, 추석 중 한식(寒食)은 24절기인 5번째인 청명(淸明)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비슷한 날이다. 옛 속담에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매 일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동지로 부터 105일째가 되는 날 양력으로는 4월 5일 경이다. 2019.4.5일이 청명(하늘이 차츰 맑아짐)이었고, 4월6일이 한식이었다.
청명,한식 때 묘를 이장하거나 개보수 등 무엇을 하더라도 탈이 나지 않는다고 하며, 농가에서는 논, 밭둑을 손질하는 등 가래질을 시작한다.
춘추 5패(覇) 중 하나인 晉(진)나라 문공(文公 : 기원전 638-628)이 일찌기 공자(公子: 당시 이름은 重耳)로 19년 동안 망명생활을 할 때 먹을 것이 없어 배가고파 죽음에 직면했을 때 대부 개자추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국을 끓여 문공에게 바쳤고, 문공은 이로 인하여 굶어죽지 않고 곤난을 극복하고 함께 망명생활에서 귀국하여 문공은 왕(지금으로부터 2,655년 전)이 되었다. 신하들은 논공행상으로 싸웠고, 개자추는 찬밥신세로 잊혀지게 되었다.(당시 중국에는 사람고기도 즐겨 먹었고, 충성의 표시로 자신의 아이를 삶아서 왕에게 진상도 했다. 사마천의 사기에 있는 진실된 기록이다)
개자추는 모친을 모시고 이 곳 면산에 은거하여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문공은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조정으로 불렀으나 끝내 나오지 않음으로, 면산에 불을 지르면 타 죽기 싫어서 나오겠지 하고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기어이 나오지 않고 타죽었다. (일설에는 타죽지 않고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운 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로 밥을 만들지 않고 찬밥을 먹는 풍습이 생겨났다.
개자추가 죽고난 후 사람들은 면산을 칭하여 개산(介山)이라 칭하며 개자추를 기린다.
중국에서 사람의 이름으로 산이름을 지은 유일한 큰 산이다.
禮, 義, 廉, 恥
서현곡(棲賢谷) : 현명함이 깃든 골짜기
鳳雨亭(봉우정) : 北宋 元豊 원년(1078년)에 宋 神宗은 도성에 가뭄이 들자 하늘에 비를 구하였는데 介公이 나타나 중원대지에 비를 내려 윤택하게 하였다.
神宗은 介子推를 길혜후로 추가 봉하였고, 재상 文彦博을 면산에 파견하여 책봉하게 하였으며 이를 기려 이 정자를 지었다.
사령태궁(獅岭太宮) - 대라궁(大罗宮)
대라궁은 모양이 혼원사자와 같이 절벽위에 건설되었고, 위풍당당, 장중하여 위엄이 있다.
건물은 산의 절벽을 의지하여 건축되었는데, 총 13층으로 되어있고, 높이가 110m이며, 총면적은 약 3만㎡이며, 모두 24채의 요사체가 있다. 건축년대는 분명하지 않다.
당현종이 확장 건축하고 역대 왕후장상, 문인, 고아한 선비들이 끊임없이 자금을 기부하여 대라궁을 수리하고 확장하였다.
도교의 여러신령들을 포함하여 거대한 신들을 모신 제전이 되었다. 대라궁 내부에는 300개의 조각상, 채색 흙인형, 목각, 금불상, 당나라 시기 돌에새긴 금강경, 홍목조각(백가서 도덕경) 및 특수가공된 대형벽화, 장경각, 수행동, 관성대 등 문화유적이 있다.
보물이 집중되어 있는 곳으로서 면산에서 조각 문화물을 가장 많이 간직한 명승지 중의 한 곳이다.
붉은 기둥모양은 직원들이 드나드는 엘리베이터 건물이다.
면산은 넓고 넓은 평원에서 갑자기 불쑥 솟은 모양의 산세
평요고성(平遙古城: 핑야오꾸청)
여의도 면적의 5배크기. 중국의 4대 고성중 하나. 서주 선왕(기원전 827—782년)시기에 처음으로 건설된 평요는 이미 27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에는 명, 청대의 사합원이 3,000여채 있는데 여기 평요고성에 약 400채가 있다.
지금까지 명청시기 현성의 풍모를 완정하고 보류하고 있는 평요는 중국 한족지역에 보존되어 있는 가장 완정한 옛 도시이다.
이 옛 도시의 담벽의 길이는 약 6킬로미터이고, 담벽에 3천개의 총안과, 성 동남모퉁이에는 또한 옛 도시 문화 운수의 흥성을 상징하는 괴성각이 있었다.
봉페된 이 성은 [시루]를 중심으로 4개의 큰 거리와 8개의 작은거리, 72갈래의 꼬불꼬불한 골목이 있다.
성내의 3797개의 옛 주민 주택은 일색 청색 기와로 된 사합원으로서 농후한 지방특색과 향토맛이 풍긴다. 그중 400여곳은 아직도 상당히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다.
성내에는 또한 크고 작은 절간과 구식 점포들이 있는데 옛스러운 이러한 건축물은 명청시기 시가지의 번화한 풍모를 옛모습 그대로 전시해 주고 있다.
평요는 진나라와 상나라의 발원지의 하나이자 중국의 첫 현대은행의 추형인 [일승창]은행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옛도시 밖의 진국사와 쌍림사는 오래된 건축과 정교롭고 아름다운 채색 진흙조각으로 사람들에게 박대하고 정심한 중화문화를 과시하고 있다.
오늘날 이 옛도시 평요는 의연히 매력으로 넘친다.
1997년 12월 3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전체회의에서는 옛 도시 평요를<세계문화유산명록>에 수록시킬데 대해 일치하게 동의했다.
산에 하얀 부분은 작은 나무묘목을 심어놓은 곳인데 비닐등으로 감싸놓았다.
중국의 산촌사람들은 산뼘의 산이라도 더 개간해서 농사를 지었나보다 산 8부 능선까지 다랑이 밭을 개간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