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착장 앞바다에서 3만원이면 배를 타고 낚시를 즐길 수 있어
▲ 길이550m의 선재대교
광명에서 넉넉잡고 한시간 반이면 대부도와 선재도 영흥도를 모두 볼수 있다. 그만큼 광명은 서해 바다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바다는 자동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다. 언젠가 지인에게 30분내에 바다를 보여 줄 수 있다고 하자 "말도 안 된다며 놀리지 말라"고 핀잔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기가 발동한 나는 그 지인을 이끌고 기어코 소래 포구를 보여 주고 말았다. 이렇게 바다가 가까워 진 것은 제2경인고속도로 덕분이다.
소래포구를 가기 위해 예전에는 인천시 남동구를 통해 한참을 돌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제2경인고속도로를 타고 시흥 IC에서 빠져나가 월곶쪽으로 좌회전해 10분만가면 월곶포구를 통해 소래 포구로 들어갈 수 있다.
▲ 선재도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본격적으로 바다를 보고 싶다면 월곶포구로 들어가지 말고 계속 직진하여 대부도로 가면 된다. 월곶에서 30분이면 넉넉히 대부도에 들어갈 수 있다. 오이도와 대부도를 연결해 주는 11.2km의 시화방조제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만든다.
대부도를 통해 선재도와 영흥도가 연육교로 연결되어 있다. 대부도에서 영흥도까지는 25분 정도 소요된다.
선재대교와 영흥대교에서 보는 바다 풍경도 일품이다. 물이 차 있어도 멋지고 물이 빠져도 괜찮은 그림이 나온다. 해질무렵 선재대교를 건너는 행운을 잡게 된다면 섬사이에 살포시 내려 않는 일몰의 장관을 볼 수도 있다.
▲ 물이 빠지면 바닷길이 열리는 섬, 측도
선재도는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했다고 한다. 고려시대부터 조선후기까지 소우도라고 불러오다가 1871년 전후부터 선재도로 개칭되었다.
선재는 목장지로 조선초기부터 남양도호부에 예속되었으며 대부도에 진이 설치되면 대부진에 속하였고 대부진이 폐지되면 다시 남양도호부와 남양군으로 편입되는등 많은 변천을 겪었다. 1914년에는 영흥도와 함께 부천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 옹진군에 속해 있다가 1995년 인천광역시에 통합되었다.
선재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 측도이다. 측도는 물이 빠지면 길이 열리는 선재도 초입의 섬이다. 목섬(향도라고도 불림)은 손때 묻지 않은 무인도. 선재대교를 건너다 보면 만두 같은 작은 섬이 좌측에 보인다.
양식회 값으로 자연산 회를 즐길 수 있는 곳
▲ 영흥종합어시장 내 친구네 직판장
영흥대교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하면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 우회전하자 마자 대교 아래로 또 우회전하면 넓은 주차장이 나오고 종합어시장이 나온다. 종합 어시장에는 언제나 싱싱한 자연산 물고기가 가득하다. 하루에 두번 배가 들어올 때를 맞춰가면 싱싱한 자연산 회를 먹을 수 있다.
▲ 5kg짜리 대형 광어
영흥종합어시장(영흥수산물직판장)에서는 자연산회를 양식회 값에 즐길 수 있다. 56,57,58호를 차지하고 있는 친구네 직판장은 필자가 자주가는 곳이다. 강경숙사장(016-9820-7505)은 "광명시민신문 소개로 왔다고 하면 누구에게나 값싸고 질좋은 회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한다. 4-5명이 10만원 정도면 자연산 회를 실컷즐길 수 있다. 강사장의 남편인 연인세(010-9920-7505)씨는 고깃배를 운영하고 있다. 선재도에서 낚시배를 대여하는 사업도 한다.
▲ 강경숙 사장과 남편 연인세씨
영흥도 또한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으나, 고구려, 신라가 한강유역을장악하는데 따라 소속이 바뀌었다. 고려 현종9년(1018) 수주(수원)의 속군이 되었다가 인주(인천)로 편입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도호부에 속하였고 1914년 부천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 지금의 옹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옹진군이 인천광역시로 통합됨에 따라 인천으로 편입되었다.
▲ 1,250m 길이의 사장교인 영흥대교
영흥도(靈興島)라는 명칭은 고려 왕족의 후예인 왕씨가 영흥도에 피신 정착하면서 영흥도에서 제일 높은산 국사봉에 올라와 나라를 생각하며 한양을 향하여 고려국이 다시 흥할 것을 신령께 기원한 곳이라 하여 불리어지게 되었다.
▲ 영흥대교에서 바라본 선착장 모습
영흥도라는 지명에 얽힌 전설도 있다.
옛날 중국 상인이 우리나라에 오던 중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표류하던 배는 그만 두례의 암포에 부딪쳐 배밑이 파손되어 침몰하기 직전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커다란 거북이 한 마리가 배밑창으로 기어 들어가 파손된 구멍을 막아주었다고 한다. 거북이 덕에 배는 가라앉지 않고 간신히 육지로 댈 수가 있었다. 육지에 무사히 도착한 상인은 배를 수선하여 목표지였던 인천의 제물포항에 돌아갈 수 가 있게 되었다.
그 후 사람들은 이 섬에서 신령이 도와서 이 배가 무사히 뭍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고 여기어 이 섬을 ‘영흥도(靈興島)’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5. 11. 15 / 이승봉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