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두에세이
‘시집 사 보기 운동’이 결실을 맺길 바라며
이대의
가끔 중고 서점에 간다. 황학동이나 청계천 중고 서점에 가면 절판된 책을 운 좋게 구할 수 있고 한때 화려하게 조명 받던 책을 구입할 수 있어 좋다. 때로 보고 싶었지만 값이 비싸서 못 샀던 책을 저렴하게 구한 날이면 그 책을 읽을 생각에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중고 서점에 갈 때는 무슨 책을 사야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가는 것보다 가서 얻어 걸리는 책을 산다. 과거 화두가 되었던 책이나 베스트셀러라 무시했던 책들을 새롭게 사보곤 한다. 그들 책을 통해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혹은 가치가 있을까 하면서 보고 배우고 느끼는 시간들이 좋다.
그렇게 중고 서점을 찾아 방황하던 중 우울한 책을 봤다. 필자가 잘 아는 작가들의 책이 중고 서점에 있었다. 책이 중고 서점에 있다는 것이 우울한 것은 아니다. 필자가 보지 못한 책은 반가운 마음에 산다. 헌데 반가운 마음에 책을 펼쳐보았는데 거기에 ‘존경하는 OOO님께’ 라는 인사와 함께 ‘저자 드림’이라는 사인이 버젓이 쓰여 있었다. 심지어는 발간 한 지 서너 달밖에 안 된 시집도 저자의 정성이 담긴 사인이 있는 채 버젓이 돌고 있었다. 이를 본 순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종의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불쾌하기까지 했다. 중고 책으로 팔려거든 사인이 들어 있는 페이지를 찢어 팔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이런 책이 중고 서점에 나온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독자도 있다. 집에 책이 넘쳐나면 처치 곤란할 수 있고, 소장하고 있는 분이 돌아가시면 유족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아쉽지만 그런 사유라면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대부분 보면 버리고 싶은 책으로 전락한 책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혹 이사하면서 짐을 줄이기 위해 고물장수한테 넘긴 것을 팔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결론은 버림받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버림받은 책으로 전락하기까지 작가가 자신의 책을 홍보하기 위해 과대하게 보내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은 인사차 보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귀찮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유명한 작가들의 경우는 꽤 많은 책들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분들의 경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책이 왔을 때 귀찮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는 보지도 않고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서글펐다.
책 한권을 발간하기까지 작가는 자신의 온갖 열정과 노력을 다 쏟아 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등단하기까지의 어려움을 겪고 책 한 권 분량의 작품을 만들어 몇 년씩 절차탁마하면서 공들여 책을 만든다. 거기다 일부 유명 작가 외에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비로 발간을 한다. 돈도 되지 않는, 아니 경제적인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한 권의 책을 발간하는 것은 오로지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오기 때문이다. 그런 책들이 이렇게 버려진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은 무엇일까? 책을 소중히 발간하고 소중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중고 서점에 ‘OOO선생님께, 저자 올림’이란 사인이 담긴 책들이 떠돌지 않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따른 대책으로 시집을 사서 보게 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이는 작가들부터 실천을 해야 한다. 물론 고맙고 소중한 사람에게는 정중히 보내야 하겠지만 그 외에는 동료의식을 가지고 시집을 사서 보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버림받는 책이 줄어들 것이다. 더불어 작가의 경우, 자비출판으로 인한 투자가 부담이 되어 출판을 망설이는 일이 그나마 줄어들 것으로 생각된다.
일반 독자들은 책을 발간했다고 하면 책을 공짜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말만하면 그냥 줄 수 있는 것으로 안다. 지인들 중에도 주변 사람은 주고 자신은 주지 않은 것에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책을 맡겨 놓은 사람처럼 달라는 사람도 있다. 이런 풍토는 작가들부터 의식을 바꿔야 한다. 책을 사서 보는 것이 동료애이다.
최근 《우리詩》에서 ‘시집을 사서 봅시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운동이 점차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운동에 대해 너무 각박한 것 아니냐는 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도 하나의 소중한 제품으로 볼 때 일반 기업에서 만들어내는 생활가전제품 등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일반 기업은 제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할 뿐만 아니라 홍보도 적극적으로 한다. 그들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원가보다도 훨씬 높은 가격에 판매하여 이익을 챙기기도 한다. 이렇게 비교를 하는 것이 맞지 않는다고 할지 모르나 그만 큼 책은 양심적인 가격이며 작가의 순수한 열정이 묻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사서 보자는 캠페인을 각박하다고 바라볼 게 아니다. 작가로 서는 당연한 것이다.
시집 사서 보기 캠페인이 성공을 거둬 작가도 책을 발간하는 부담을 덜어 주었으면 한다. 이와 함께 좋은 책을 많이 발간하여 이 사회에 문화적 수준이 향상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ㅡ 『우리詩』2018년 11월호
첫댓글 이대의 시인 정말 글 잘 쓰시네요 멋지네요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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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다운 사유와 마음이십니다
200프로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