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9, 미재 김원숙
1.
우리가 이번 서유럽미술관아트투어의 여정에서 함께 가 보았던 드퐁드미술관(De Pont museum voor hedendaagse kunst), 크뢸르 뮐러미술관(Rijksmuseum Kröller-Müller)의 7번방, 그리고 파리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에서 만난 동시대 미술들은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고 있으며, 어쩌면 우리가 단번에 다가가 이해하기 어려운 작업세계들일지도 모릅니다.
예술가는 자기가 저항한 것들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냅니다. 우선 예술가는 비창조와 몰개성에 대해 저항합니다. 고정관념과 획일화에 대해 저항하며, 폭력과 비양심, 억압에 대해 저항하며,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태의연함에 저항하며, 또한 시간과 공간에 대해 저항하기도 합니다. 전통을 존중하나 역시 거기에도 도전하고 저항합니다.
미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실상 예술가들은 늘상 저항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저항하는 자들이 예술가들이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저항하는 삶이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2.
어떤 때는 행복이 얼어붙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행이 폭넓게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때입니다. 사실상 불행은 모든 시대에 걸쳐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삶 속에서 행복의 순간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돌연한 떠남, 이별, 추방, 모든 방식의 종말들....
그리고 가끔 그 순간들은 명확한 이유 없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모두 앞세우고 평생토록 가슴에 구멍을 안고 혼자 쓸쓸히 병들고 늙어 갔던 플랑드르 바로크의 대가 렘브란트 반 린(Rembrandt Harmensz. van Rijn, 1606~1669),
델프트라는 네덜란드의 한 작은 마을에서 평생 한발자국도 밖으로 나가본 적 없었던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는 자신의 마을과 집안 실내에서 묵묵한 일상의 신성함을 놀랍도록 아름다운 색채로 그려 내었습니다.
플랑드르 화가 베르메르의 잔잔히 빛나는 그림들 앞에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일상의 아름다움과 소박한 삶의 진실을 만나 보았습니다.
또 브뤼셀왕립미술관(Musées Royaux des Beaux Arts de Belgique)에서는 16세기의 북구 르네상스의 대가 피터르 브뢰헬(Pieter Bruegel, 1525년경~1569)을 만났습니다. 그는 서양미술역사에서 최고의 인문주의 화가였습니다. 큰 스케일의 화면 위에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조화로운 구성과 깊이있는 색채, 밀도있는 형상에 담았지요.
브뢰헬은 대게 인간의 어리석고, 이기적이고 부도덕한 면을 자신만의 독특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렸습니다. 브뢰헬의 작품 앞에서 인간의 탐욕과 실수를, 그리고 바보같게만 보이는 세상을 한걸음 떨어져 볼 수 있는 유머와 해학의 시각을 또한 배워 보았습니다.
다음은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글 중 한 구절입니다. “신이여,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까요? 언제까지 이래야 합니까? 영원히 지속되는 것가요?” “고통과 슬픔은 영원하다.(La tristesse durera toujours.)”고 말하며 죽어갔던 고흐! 신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이 사랑하는 일뿐이라고 말했던 고흐는 비좁고 어둔 다락방에서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세상 모든 것을 가슴에 껴안으려 했습니다.
목사가 되길 원했으나 광인으로 죽어간 고흐의 무덤 앞에서 이제는 그가 그토록 원하던 평화와 해방을 얻었기를 마음으로 빌어 보았습니다.
3.
렘브란트 반 린((Rembrandt van Rijn),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피터르 브뢰헬(Pieter Bruege),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이들 예술가의 존재방식은 지독히 외롭고 거칠고 가난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결코 그들이 그러한 삶을 원해서 선택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다만 주어진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기의 길을 끝까지 걸어갔던 사람들이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숨이 차게 지치고 힘들고 한없이 외롭고 쓸쓸하여 마음 둘 곳 없는 그 때에도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노동하는 것은 물론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 사회를 위해 쉼없이 일해야 합니다.
시간과 여유, 건강 및 모든 주변 여건이 우리에게 허락되어 이렇게 여행을 와서 함께 웃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지만, 이 세상의 그림자 부분에서는 여전히 아프고 힘겨운 사람들이 더불어 살고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4.
오늘은 오랑주리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에 전시된 끌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수련을 만나러 갑니다. 이 수련연작은 우리가 바로 어제 함께 다녀온 지베르니에서 작업한 모네의 마지막 작업입니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약 70km 떨어진 지베르니에 연못을 파고 일본식 다리를 만들어 달고, 온갖 꽃들이 가득한 정원을 만들었던 모네, 바로 그 지베르니의 정원에서 평생토록 빛을 쫒다 이제는 눈이 멀어버린 노화가가 가난한 젊은 시절 곁을 지켜주며 고생만하다 죽어간 가엾은 아내를 추억하며 희미한 시력으로 떨리는 팔을 들어 마지막 붓질을 하고, 하고, 또 거듭했던 모네 일생의 대작입니다.
평생토록 붓과 물감으로 순간의 반짝이는 빛의 효과를 잡으려 쫒아 다녔던 끌로드 모네는 말년에는 결국 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모네는 왜 그토록 반짝이는 빛의 아름다움에 집착하였을까요? 어쩌면 모네는 우리 삶이 한순간 반짝이다 사라지는 빛과 그림자 같다고 느꼈던 것은 아닐까요? 모네의 인상주의 화폭은 한마디로 찰나의 미학에 있다 할 것입니다. 유한의 생을 사는 인간에게 이 세상에 찰나 아닌 것이 없습니다. 빛도 찰나고, 사랑도 찰나고, 영광도 찰나고, 젊음도 찰나며, 우리네 인생도, 지금 이 순간도 다 찰나입니다.
비록 떨리지만 여전히 강력한 화가의 붓터치에 연못 위에 핀 수련들이 대기 속으로 분해되어 흩어져 갑니다. 그의 거대한 수련 그림들에서 여름날 강렬한 태양빛에 말라가며 뿜어내는 마른 꽃의 향기가 풍겨 납니다. 오랑주리 미술관의 자연광이 떨어지는 둥그런 전시실에 배치된 모네의 수련연작에서 젊은 날의 예술가로서의 성공에 대한 열망과 지나가 버린 사랑, 눈먼 노화가의 깊은 회환의 냄새를 맡아 보시기 바랍니다.
5.
어찌 보면 일견 이 꿈같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들 가시겠지요. 또 앞으로 살다보면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을 겁니다.
살다가 외롭고 힘들다 느껴지는 어느 날 문득, 이번 여행에서 만난 그림 한 편, 브뤼셀 광장(Grand Place in Brussels) 어느 골목길을 돌아서다 마주친 햇살 한 줌, 고흐마을 오베르(Auvers-Sur-Oise)의 황금빛 밀밭을 건너 불어오던 바람 한 자락을 떠올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함께 한 여행, 행복했습니다. 모두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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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뜨거운 브뤼셀 아침, 스페인광장에 서 있던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 앞을 지나며 제 마음 속에 떠올린 다음의 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정작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정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정작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정작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정작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으려 한다.
...멈추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가겠다."
Miguel de Cervantes(1547~1616)의 Don Quixote 중에서
첫댓글 도반님들 덕분에 서유럽미술관아트투어를 별 사고없이 무사히 잘 다녀왔답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멋진 미재님

워요.서유럽미술관투어 잘 다녀오셨군요.
힘드실텐데 이리 공유하게 올려주셔서 기쁘게 공부합니다...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_()_
그리운 수형부처님....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미재(渼縡) 여행지에서의 글이라 거칠고 다소 격한 감정이 들어 있습니다. 송구합니다. ㅠㅠ
서미부처님... 잘 지내고 계시지요? 많이 그립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미재님 말씀을 들으며 투어하신 분들 너무나도 행복하셨겠습니다. 배경을 알고 그림을 연상하니 정말 뭉클하네요..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보원부처님...이 여름 어찌 지내고 계시는지요? 늘 깊고 맑으신 분....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 유한의 생을 사는 인간에게 이 세상에 찰나 아닌 것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보명화부처님... 유한의 존재는 매순간 그 사멸을 생각하며 깨달음의 깊이를 더해 갑니다. 늘 크게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아미타불!_()_
도안부처님... 늘 항상 정진하시는 그 모습에서 수행자의 참얼굴을 찾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멋진 여행하셨네요.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미타불_()_
명관부처님... 잘 지내고 계시지요? 소식을 내내 궁금해 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