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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의 시 세계>
고고孤高한 균형의 시학
전 형 철(시인, 연성대학교 교수)
1. 들어가며
김종길 시인은 1926년 11월 5일 경북 안동의 명문가이자 문한가(文翰)의 후예로 태어난 시인이자 비평가이며, 시론가이자 영문학자이며 번역가였다. 김종길은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입선해 등단한 이후 70년 동안 고전적 전통에 뿌리박은 절제의 정신과 서구 미학의 현대적 감각의 조화와 균형을 두 축으로 유지해 고전적 안정성과 절제된 페시미즘의 모더니티의 일면을 동시에 성취한 시인이다.
김용직은 김종길의 시의 원천을 첫째 말의 가락과 짜임을 이용하는 것, 둘째 우리 문학사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한시의 전통을 이용하는 것, 셋째 영시와 서구 근대시의 줄기를 수용하는 것이라 보았는데 그를 칭하는 다각적인 삶의 이면은 그 자체로 우리 문학사와 정합적으로 일치하는 하나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일제 말기 그는 외숙과 외종형의 서가에서 문장지와 시학 등의 잡지와 청마시초, 화사집 등의 시집을 섭렵했다. 또한 해방 이후 분단의 현실 속에 등단해 시인으로, 번역가로 유명한 「황무지」를 번역하고 60년대 이론가로서 신비평을 우리 시에 학문적으로 정립시키는 한편 2010년 미래파 이후까지의 문단을 바라본 시인은 한국 시단의 증언자였다고 할 수 있다. 짧게 불타오르는 혁명가적 또는 실험적 시인이 아닌 관조와 은일의 정신으로 한국 현대시의 결절과 이음이라는 흐름 속에서 묵묵하리만큼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헌신한 시인의 모습은 우리 현대 시사에 있어 소중한 자산임에 틀림없다.
그의 시가 그러했던 것처럼 김종길 시인의 삶은 정경교융의 언술 주체와 중심 대상의 물리적 간격에 따른 시적 거리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인의 삶은 그가 걸어왔던 시적 문학적 지도에 주요한 열쇠말이자 왜곡 없는 반영으로 고스란히 배어 있다.
2년 6개월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할머니와 아버지 슬하에서 성장한 그는, 궁벽한 예지 마을의 자연과 가문의 분위기 속에서 한시를 짓고 동양 고전을 익히며 유년기를 보냈으며 이러한 경험은 그의 시에 동양 고전주의의 토대를 형성하였다. 이후 1947년부터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국 셰필드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엘리엇을 비롯한 신비평 이론과 시에 대한 번역 및 연구에 몰두하였고, 이는 그의 시세계가 감각적·형식적 특성을 수립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였다.
그의 시작은 정년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가 구분되는데 정년을 기준으로 과작, 이후는 다작이었으며 시론과 번역, 연구는 반대로 정년 이전에 활발하고 이후에는 전무했다. 지도교수였던 “이인수 교수의 <20세기 영시> 강의를 통해 영시에 대한 개안은 하나의 충격이었고 이 충격은 나에게 시에 대한 자의식을 싹트게 한 것이 사실이다. 내가 그 뒤에 매우 과작하게 된 것은 이렇게 내가 현대 영시를 공부하고 가르쳐온 것과 관계가 있다. <중략> 그 충격으로 말미암아 엘리엇은 나의 주된 학문적, 지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 때문에 나의 시적 체질은 심한 갈등에 부대끼게 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는 시인의 고백은 항시적 진리로서 그의 심성에 깊이 뿌리내린 유교적 메커니즘이 시와 교육자로서의 역할 분담에 대한 선택과 조율의 가늠자로 삶을 추동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가 영미 시인 중에도 에즈라 파운드와 엘리엇 등 신비평에 매료되었던 것도 기본적으로 그들이 한시와 하이쿠의 깊은 영향 아래 발전되었으며 언어의 유기적 연관성에 주목했다는 점 때문이라는 것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지점이라고 할 것이다.
2. 시집 발간의 특이성
김종길 시인의 특이점 중에 하나는 시집 발간 방식과 그 양상에 있다. 1947년 등단한 시인은 무려 22년이 지나 첫 시집 성탄제를 발간한다. 그는 시집의 서문에서 스스로가 자신의 시작이 “너무나 적은 양”이라고 언급한다. 실제로 그가 작품을 쓰기 시작한 지 40년 후인 1986년에 묶은 김종길 시 전집 황사현상에 담긴 작품수는 총 72편이며, 70여 년 시인으로의 생애 전체 이력을 놓고 보더라도 불과 총 309편의 시를 남겼다. 산술적으로 등단 40년 전에는 1년에 2편,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1년에 평균 4편의 시를 발표한 것이라 본다면 그가 얼마나 과작(寡作)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정년 전까지 발표 작품이 86편에 불과하니, 오히려 김종길 시인의 왕성한 창작은 말년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종길의 시집은 창작시를 시기에 맞춰 묶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재수록, 재출간의 방식이 많았다. 이는 우리 시사에 보기 드문 일로 탄생 시편들의 일별을 위해서라도 시집에 대한 정리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김종길 시인은 총 9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1. 성탄제, 삼애사, 1969
2. 하회에서, 민음사, 1977
3. 황사현상, 민음사, 1986
4. 천지현황, 미래사, 1991
5. 달맞이꽃, 민음사, 1997
6. 해가 많이 짧아졌다, 솔, 2004
7. 해거름 이삭줍기, 현대문학, 2008
8. 그것들, 서정시학, 2011
9. 솔개, 시인생각, 2013년
9권의 시집에 큰 분기점이 되는 시집은 5시집인 달맞이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을 경계로 이전에는 기존 작품에 시를 더하는 방식의 증보 형식의 시집이었다면 이후는 타계 전 시선집인 솔개를 제외한다면 모두 순수 신작들이었다. 퇴임 이후 처음 출간한 달맞이꽃을 기점으로 출간 터울이 매우 짧아지며 전반 40년에 비해 대폭적으로 늘어난 총 223편의 시를 발표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달맞이꽃이 발간되면서 그간 크게 조명되지 않았던 시인의 시에 대한 평론이 집중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먼저 1은 첫 시집으로 「성탄제」를 표제로 총 22편을 수록했으며 2시집은 성탄제에서 「노을」을 제외한 21편에 새 시편 8편을 더해 39편을, 3시집은 회갑 기념으로 낸 전집 형태로 새로운 시편 24편을 더한 72편이며, 4시집은 3시집에 실린 시 5편을 제외하고 80년대에 쓴 새로운 시 22편으로 더해 총 88편을 수록했다. 이후 5, 6, 7시집은 모두 새로운 시편들로 각각 70, 52, 40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마지막 9시집은 김종길 시인이 스스로 고른 선집으로 총 50편이 게재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김종길 시인의 시집은 달맞이꽃 이전의 시집은 시집 개별로서의 의미보다는 시 작품으로 파악해야 하며, 시집 출간이 나름의 시적 서사를 안팎으로 완성해 나가는 작업이었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기존의 시편들 위에 새로운 시편들을 덧대고 쌓아올리면서 나름의 시적 전기傳記) 작업을 계속한 것이라고 하겠다. 적어도 1~4시집의 경우에는 새롭게 더해진 시의 창작시기를 면밀히 살펴 시의 변화의 추이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3. 정전이 된 시들
김종길 시인의 시는 범박하게 정리한다면 등단 무렵 전통적 서정시의 면모에서 전쟁과 혼란의 50년대 언술 주체와 거리의 상실과 모색, 60년대 이후 신비평과 영미 시를 연구에 기저한 감각적 이미지의 사용이 빈번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70년대에는 진실과 언어의 유기적 교환과 개입을 세계의 비극적 황홀로 견인하려 하며, 80년대에는 범인류와 사회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시편들을 창작한다. 이후 달맞이꽃 출간 90년대 말부터 작고 전까지 사물에 대한 접근 방법에 대한 깊은 사유와 전회에서 ‘죽음’이라는 자연의 순환과 노년의 일상적 삶으로 깊이를 더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70여 년의 긴 시업을 정리하는 것은 보다 넒은 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김종길 시인의 여러 시 중 공히 정전이라고 불릴 수 있는 시편들을 살펴 시인의 시세계를 일람하고자 한다. 김종길의 시는 적은 편수에도 불구하고 문학교과서, 대학의 강의 대상, 문학 비평의 텍스트로 빈번하게 호출된다. “문학이라는 제도 내에 장기적으로 유통되고 문학을 전달하는 매체에 의해 지속적으로 관리되며 전승되는 문학 작품이나 작자”로 정의될 수 있는 정전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김종길 시는 시간의 시험과 한계를 뛰어넘는 당대 시의 전형과 보편성에 깊이 침윤해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① 전통적 이미지와 자연계
김종길은 1945년 이후 등단하기까지 「소」, 「만발」, 「설야」 등 총 8편을 쓴 것으로 확인되며, 그 중 「문」이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작이 되었다. 등단 무렵의 그의 시는 대체로 주객의 비분리에 기초한 자연과의 화해로운 조화를 추구하며, 동시에 전통적인 견고한 이미지를 구사한다.
흰 벽에는 -
어련히 해들 적마다 나뭇가지가 그림자 되어 떠오를 뿐이었다.
그러한 정밀이 천년이나 머물렀다 한다.
단청은 연년(年年)이 빛을 잃어 두리기둥에는 틈이 생기고, 볕과 바람이 쓰라리게 스며들었다. 그러나 험상궂어 가는 것이 서럽지 않았다.
기왓장마다 푸른 이끼가 앉고 세월은 소리없이 쌓였으나
문은 상기 닫혀진 채 멀리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밤이 있었다.
주춧돌 놓인 자리에 가을풀은 우거졌어도 봄이면 돋아나는 푸른 싹이 살고, 그리고 한 그루 진분홍 꽃이 피는 나무가 자랐다.
유달리도 푸른 높은 하늘을 눈물과 함께 아득히 흘러간 별들이 총총히 돌아오고 사납던 비바람이 걷힌 낡은 처마 끝에 찬란히 빛이 쏟아지는 새벽, 오래 닫혀진 문은 산천을 울리며 열리었다.
-그립던 깃발이 눈뿌리에 사무치는 푸른 하늘이었다.
-「문」 전문
2024년 대학 수학능력시험에 출제되기도 했던 이 작품은 옛 조계사의 산문인 황건문을 시화한 것으로 조탁된 언어를 바탕으로 한 지용의 감각적 산문시의 스타일을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뿐만 아니라 소재적으로는 조지훈의 「봉황수」와도 유사한 어조와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를 시화했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시는 해방 공간에 창작되었다는 점에서 멈췄던 역사의 새로운 지속과 가능성을 예찬한다는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가을풀–푸른 싹-진분홍 꽃이 피는 나무로 이어지는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에 대한 묘파는 흥망성쇠라는 인간 역사의 파고를 넘어 새로운 역사의 생성을 예비한다. “흰”과 반복적인 “푸른”이라는 색채와 더불어 “처마 끝에 찬란히 빛이 쏟아지는 새벽”과 같이 시각적 이미지의 연쇄는 한시로 대표되는 동양적 서경의 이미지의 맥을 잇고 있다. 오랜 인고의 기다림 끝에 열린 “문”의 ‘닫힘’에서 ‘열림’으로의 이행과 “그리운 깃발”로 표상되는 이상에 대한 ‘과거’에서 ‘미래’로의 전환은 절제된 언어와 자연물과의 배치를 통해 자아와 세계의 융합이라는 전통적 시의식과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② 감각적 이미지의 수용과 공간화
김종길 시는 전쟁과 50년대 말 영미 시와 시론의 영향하에 내면적으로는 생명에 대한 경외와 유대를 외형적으로는 청각, 공감각 등의 이미지즘의 수용과 확대를 통해 선명성을 획득한다.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
<중략>
어느 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山茱萸)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성탄제」 부분
첫 시집의 표제작이자 그의 대표시이며 많은 문학 교과서의 텍스트로 실린 이 시는 가족사의 한 단면을 바탕으로 성숙과 절제의 한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의 중심 제재인 ‘산수유 열매’는 흰 눈과 대비되는 색채 이미지로 생명 그 자체를 함의한다. 산수유 열매를 통해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전환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을 통해 생명과 자연의 흐름과 이어짐을 환기시킨다. 1~6연까지의 회상은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의 7연에서 과거의 현재화를 통한 시간의 반복과 순환의 유전을 되뇌게 한다. 상실과 허무의 미묘한 흐름이 촉지 되기도 하지만 “성탄”은 새로운 탄생과 생명의 연속성으로 이어진다. 김종길 시인은 자신의 경험을 자연이라는 공간 안에 구체화 시키고 가족애를 시화한다는 점에서 유가적 전통 고전주의를 한 축으로 하며, 성탄제라는 이국적인 시공간을 호출해 감각적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수수하면서도 모더니티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동양정신과 서양 감각의 교유라는 시적 성취가 이 시를 어떤 고전적 위상으로 격상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③ 고고한 정신과 ‘수묵’의 언어
김종길 시인은 중기 이후 자연과 우주라는 공간 안에 파악되는 고전적 품위와 정신성의 강화에 힘을 싣는다. 그는 이미지의 작위성에서 벗어나 대상에 대한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전통주의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재정의한다.
북한산(北漢山)이
다시 그 높이를 회복하려면
다음 겨울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밤 사이 눈이 내린,
그것도 백운대(白雲臺)나 인수봉(仁壽峰) 같은
높은 봉우리만이 옅은 화장(化粧)을 하듯
가볍게 눈을 쓰고
왼 산은 차가운 수묵(水墨)으로 젖어 있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신록(新綠)이나 단풍(丹楓),
골짜기를 피어오르는 안개로는,
눈이래도 왼 산을 뒤덮는 적설(積雪)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지어는 장밋(薔薇)빛 햇살이 와 닿기만 해도 변질(變質)하는,
그 고고(孤高)한 높이를 회복하려면
백운대(白雲臺)와 인수봉(仁壽峰)만이 가볍게 눈을 쓰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고고(孤高)」 전문
북한산의 “고고한 높이”는 그가 「염결성의 회복」에서 말한 염결성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대학 수능 시험에 출제되기도 했던 이 시에서 “고고한 높이”는 결국 정신의 높이일 것이며 ‘홀로 높다’는 문자적 의미 자체의 선비적 자세와 덕목을 의미한다. 이전의 시에서 보였던 다채로운 시각적 색채 이미지의 구사는 “수묵”의 풍경으로 대체된다. 정신의 감각적 구현이라고 볼 수 있는 “수묵”은 “옅은 화장을 하듯” 내린 눈의 이미지와 ‘차갑게 젖어 있는’ 겨울날 아침으로 집중·간명화 된다. “신록이나 단풍”과 “안개” 등이 보여주는 시간에 갇혀 “변질”되는 가변적인 요소들이 아닌 결핍과 “기다림”의 인내만이 정신의 가치를 “회복”하고 전통을 새롭게 변주하고 계승하는 일임을 이 시는 시사하고 있다 하겠다.
④ 일상과 가을에로의 귀환
후기 시의 시작이자 왕성한 창작의 분기점이 된 달맞이꽃의 시편들은 「솔개」와 같은 작품에서 여전한 정신의 강인함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개의 시들은 어떤 엄숙주의로부터 놓여나 일상적 생활과 생명과 시간의 유한함에 대한 상념이 드러난다.
먼 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선다.
사물의 명암과 윤곽이
더욱 또렷해진다.
가을이다.
아 내 삶이 맞는
또 한 번의 가을!
허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
더욱 엷어지는 내 그림자
해가 많이 짧아졌다
-「가을」 전문
김종길 시인의 후기시에는 유독 가을에 관한 시들이 많다. 계절의 순환성은 이미 초기 시부터 시적 장치와 기율로 작동했음은 주지 사실이나 정신과 염결성에 관련된 시들이 대부분 겨울에 집중했다면 노년의 시들은 마지막을 목전에 둔 가을의 예비적 속성에 주목한 듯하다. 달맞이꽃에 실린 7편의 가을 시편 중 이 시는 다가올 죽음을 앞두고 삶의 행로를 갈무리해야 하는 시인의 노년을 담담하게 그린 시편이라고 할 수 있다. 가을 나뭇잎이 떨어진 산이 “명암과 윤곽” 또렷해져 가깝게 느껴지는 것처럼 노년의 삶을 살고 있는 시인의 삶과 정신도 명명백백 자연스럽게 분별의 지혜를 얻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또 한 번의 가을”을 맞이하게 됐다는 차가운 인식에 이르렀을 때 ‘성글어지는 머리칼’과 함께 “내 그림자”는 소멸이라는 유한함을 환기한다. “고고한” 산정에서 “휘청거리는 다리를 가누면서 다시 산을 내려”(「가을편지3」 부분) 오는 시인의 하산은 “해가 많이 짧아졌다”는 시구처럼 인간의 가장 인간다움을 확인하는 일인지도 모를 것이다.
4. 결론을 대신하여
김종길 시인은 염결한 동양 정신의 돌올한 구축과 서양 이미지즘의 융화를 통해 한국 현대시의 성공적인 모델로 우리 시사에 남아 있다. “풍격(風格)”과 “비극적 황홀”로 설명되는 동서 시의 교차지점을 포착해 탐색한 시인은 보편적 지성으로서 시의 길과 현대적이고 외래적인 것의 융합에 대해 평생을 고민했다.시인으로는 지용, 육사, 지훈의 연장선에서, 시론가로서는 최재서, 김기림을 잇는 신비평 연구자로 우리 시사에 큰 영향을 미친 김종길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몇 가지 사담을 덧붙이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오랜 세월 문단에 계셨던 시인은 시인 한 사람 한 사람을 공경하고 대우했다. 지역, 나이, 학벌 등에 치우지지 않고 모든 시인을 귀한 벗이나 동료로 생각했다. 살아생전 그가 받은 모든 시집에 엽서와 전화로 축하와 사의를 전했다는 것은 그 한 증거라 할 것이다. 또한 그는 시사의 중요한 순간에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7살 연상 동향으로 통교했던 조지훈 시인을 고려대학교에서 초빙할 때 매파 역할을 한 사람이 김종길 시인이었다. 조지훈 시인은 국문과에서 김종길 시인은 영문과에서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한국 시단과 문단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끝으로 엄정한 이론으로 정립해 설명하기 어려우나, 김종길 시인의 시에는 할머니 등을 제외하고는 이성으로서의 여성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유가(儒家)적 가족애의 시는 있으나 사랑과 적극적 모성의 역할을 하는 여성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는 일찍 어머니를 여읜 시인의 개인사에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향년 91세 시력 70년의 시인은 부인이 작고한 후 한 달 후에 영면하였다. 곡기를 끊을 만큼 지고한 사랑이 시의 다른 배면에 작동한 것은 아닐까 내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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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철|충북 옥천 출생. 2007년 현대시학 신인상 당선. 시집 고요가 아니다, 이름 이후의 사람 등. 조지훈문학상, 현대시학작품상 수상. 연성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