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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며 이용하는 의약을 우리 몸은 적으로 인식하여, 받아들이기보다는 재빨리 배출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약의 대부분은 목표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채 몸 속에서 대사되어 배출된다. 기능을 수행한 일부 역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몸 밖으로 배출되어 의약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재투여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그런데 우리 몸이 이러한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기능을 가지는 것은 신체의 안전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 이유는 어떠한 의약도 부작용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적정 수준 이상으로 복용하거나 지나치게 오랜 기간 체내에 존재하여 축적되면 반드시 그로 인한 독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의약 개발에서 의약의 기본이 되는 생물학적 효능 이외에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이 바로 안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심각한 부작용 때문에 미국에서 의약 허가가 취소되어 자진 회수하고 있는 머크(Merck)사의 진통소염제 바이옥스(Vioxx)는 의약의 안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대부분의 진통소염제는 염증을 일으키는 과정에 참여하는 효소인 COX-2의 활동을 막는 일을 한다. 그런데 기존의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소염제(NSAID)인 아스피린·이부로펜·나프록센 등은 COX-2는 물론 위장벽을 형성하는 COX-1마저도 모두 공격해서 장기적으로 복용했을 때 속쓰림과 위출혈 등의 부작용을 일으킨다.이에 반해 바이옥스는 염증 생성에 관여하는 COX-2 효소만을 선택적으로 억제해서 속쓰림 부작용을 절반 가량으로 줄이고, 궤양으로 위장에 구멍이 뚫리는 심각한 부작용을 여덟 배나 감소시켜 아스피린 발명 이후 가장 획기적인 진통소염제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바이옥스를 복용한 약 2만 7천 명의 환자들이 심장 질환을 일으켜 사망한 사실이 보고 되면서 순식간에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처럼 막대한 자본과 시간, 연구력을 투자하여 개발된 의약이나 후보 물질들이 임상실험 후, 혹은 의약으로 허가를 받고 시장에 나온 다음에 예상치 못한 의약 독성이 나타나, 복용한 환자에게는 물론이고 개발자에게도 치명적 손상을 입히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개발하려는 의약의 약효와 더불어 의약의 안전성에 대한 폭넓은 고려가 더욱 더 강조되고 있다. 관절염을 치료하기 위해 심장마비를 감수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약은 특정한 질환 현상에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순수한 단일 화합물이어야 한다. 인삼과 같은 건강 기능성 식품은 의약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비록 인삼에 들어 있는 사포닌이 인삼의 주요 약효 성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인삼은 수만 가지 화합물들의 혼합물이며 그 성분 하나하나의 기능에 대해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인삼과 마찬가지로 예전에는 식물이나 다른 천연물들이 주된 의약의 소재 였으며, 이것은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이 페니실린을 발견하던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생존을 위협하던 질병에 대처해온 인류의 유일한 선택이었다. 예를 들어 폭스글로브(foxglove)라는 식물이 예로부터 울혈성 심부전증 치료제로 사용된 약효는 디기탈리스(digitalis)를 비롯한 강심성 배당체(cardiotonic glycoside)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현대 의약화학이 발전하고 나서야 뒤늦게 밝혀졌다.

신약 개발 연구에서 차지하는 천연 화합물의 중요성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20세기를 거치면서 화학, 생물학, 유전학 등 인접 학문이 발달하고 의약의 안전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천연 화합물은 폭스글로브처럼 그 자체로 이용하기보다는 분리·정제하여 유효성분만을 뽑아내 활성을 극대화하고 독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화학적으로 변형되어 쓰인다.
천연물의 구조를 화학적으로 변형하여 효능과 독성, 인체 안에서의 흡수·분배·대사·배출 등의 기작에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의약으로 개발하려는 시도는 화학의 발전과 함께 지속해 왔다. 대표적인 예가 이미 1백여 년 전에 개발된 아스피린이다. 아스피린은 살리실산의 아세트산 에스테르로서 진통소염은 물론 응혈작용에도 효과가 있어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애용되어온 의약일 것이다. 그러나 아스피린이 페놀에서 발전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페놀의 유독성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사체의 방부처리제나 하수의 악취제거제 등으로 이용되던 페놀은 항균성을 인정받아 환자를 치료하는 데도 사용되었으나, 부식성이 강해 의과학자들은 대용품을 찾는 연구에 매달렸다. 당시에는 페놀을 화학적으로 변형해 에스테르를 합성하는 데 연구를 집중하였으나, 헤르만 콜베(Hermann Kolbe)가 만든 살리실산은 페놀의 에스테르가 아닌 페놀의 방향족 고리에 카르복실기를 도입한 새로운 화합물이었다.
본래 콜베의 의도는 살리실산이 인체 안에서 카르복실기를 잃고 서서히 페놀로 전환되게 하여 페놀의 항균성은 유지하면서 독성을 완화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살리실산은 결코 페놀로 전환되지 않았다. 그러다 놀랍게도 항균성은 물론 페놀보다 감소된 부식성, 해열제로서의 기능, 장티푸스 등의 치료에 적합한 내복용 항균제로서의 기능 등이 밝혀지면서 빠르게 페놀을 대체해 나갔다.

그러나 당시 나트륨염의 형태로 처방되던 살리실산은 역겨운 맛과 위장 장애를 일으키는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살리실산과 페놀의 유도체들을 더욱 활발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1896년 독일 바이엘(Bayer)사의 펠릭스 호프만(Felix Hoffman)은 에스테르 결합이 위의 산성 조건에서는 살아남지만 장에서는 카르복실산과 알코올로 분해된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살리실산의 에스테르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세트산 에스테르가 살리실산 유도체 중 가장 효능이 탁월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마침내 아스피린을 개발하였다. 아스피린이라는 이름은 아세틸살리실산과, 살리실산을 추출할 수 있는 조팝나무의 학명인 스파이리어(Spiraea)를 합쳐 만들었다.
인류의 위대한 발견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는 아스피린의 개발 과정은 안타깝게도 그다지 체계적이지 않았다. 지금의 기준에서 볼 때 더욱 섬뜩한 사실은 페놀이 인체에 사용된 후에야 그 유해성을 비로소 인지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현대 신약 개발의 주요 과제는 신약의 효능과 더불어 안전성을 최대한 입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질병을 일으키는 특정 생물학적 타깃(효소, 단백질, 펩티드, 수용체, 핵산 등)에 신약이 높은 선택성을 가지며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따라서 이러한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신약 개발 연구에는 질병을 일으키는 생물학적 기작을 이해하고 그를 바탕으로 한 생물학적 타깃 설정, 타깃의 기능을 저해하거나 활성화할 수 있는 화합물의 발견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화합물의 화학적, 생물학적, 약물 동력학적 특성을 개선하여 의약 후보 물질로 발전시키는 과정 등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이처럼 복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화학,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 유전학, 생물정보학, 컴퓨터공학 등 여러 학제 간의 융합과 원활한 소통이 요구되며, 의약화학은 그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로서 빠르게 발전해 왔다.신약 개발은 특정 질병에 알맞은 화합물을 여러 복잡한 과정을 거쳐 찾아내는 과정인데, 이렇게 찾아낸 화합물을 선도물질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수백만 개에 달하는 화합물 하나하나의 효능을 일일이 알아내어 꼭 맞는 선도물질을 찾아내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여러 가지 생물학적 타깃에 대한 수많은 화합물들의 생물학적 활성을 짧은 시간 안에 알아내는 것이야말로 현대 신약 개발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 : NCI)에서 항암제 개발을 위해 지금까지 연구해온 수십만 개의 화합물들을 축적하여 구축한 라이브러리를 비롯하여 여러 회사에서 상업적인 목적으로 구축한 라이브러리까지 그 종류와 수가 매우 다양하다. 특히 요즘에는 조합화학이라는 합성 기술의 발달로 우리가 원하는 구조를 갖는 다양한 화합물의 라이브러리를직접 구축할 수도 있다. 고효능 검색 시스템에서 타깃과의 상호작용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 화합물들을 흔히‘Hits’라고 부르며, 이 화합물들의 생물학적 효능을 2차적으로 검증한 후에 비로소 선택하는 것이 바로 선도 물질이다.

만약 우리가 타깃의 3차원 구조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면, 컴퓨터와 계산화학, 분자모델링의 힘을 빌려 좀더 논리적으로 선도물질에 이르는 지름길을 찾아낼 수도 있다. 계산화학과 분자모델링은 생물학적 타깃과 화합물 간의 상호작용을 가상공간에서 재현함으로써 화합물의 효능, 독성, 약물동력학적 특성 등을 예측할 수 있는 도구로서 약 10여 년 전부터 신약 개발 연구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실제 생물학적 환경과 유사한 가상공간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연구가 끊임없이 진행중인 분야이다. 이 가운데 어윈 쿤츠(Irwin Kuntz)가 개발한 도크(Dock) 같은 가상검색(virtual screening) 프로그램은 타깃의 3차원 구조에 가상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차례로 도킹하여 타깃의 구조에 가장 적합한 화합물을 선별함으로써 실제 생물학적 효능을 검색할 때 필요한 화합물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선도물질을 도출하면 생물학적 효능을 조절하기 위한 조작이 필요한데, 이 단계를‘선도물질의 최적화’라고 부른다. 선도물질은 타깃에 대한 효능을 보이는 물질일 뿐 신약으로 발전되기 위한 전제조건들을 갖추고 있지 않은 상태이므로, 여러 가지 유기 화학적 변형을 통하여 합성적 용이성, 용해성, 대사 안정성 등을 높이기 위한 작업을 거쳐 비로소 의약 후보 물질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화합물의 구조와 활성 간의 상관관계(Structure-Activity Relationship : SAR)에 대한 연구가 함께 이루어지는데, 화합물의 구조를 조금씩 변화시킬 때 활성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여 긍정적인 변화는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변화는 버림으로써 화합물이 최적의 효능을 갖도록 변형시킬 수 있다.신약 개발 연구는 단순히 약용식물이나 미생물 대사산물 등에서 추출된 생리활성 물질들을 질병 치료에 이용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나아가 질병을 일으키는 생물학적 과정을 분자, 세포, 조직 수준에서 정확히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필요한 생물학적 타깃을 규명하여, 그 기능을 적절하게 저해하거나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구조에 기반을 둔 의약의 논리적 디자인(structure-based rational drug design)’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화학을 비롯한 인접 학문의 발전 덕분에 가능했다. 특히 의약화학, 조합화학, 계산화학, 분자모델링 등은 현대의 신약 개발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