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일생
모파상이 쓴 여자의 일생을 힘겹게 읽었다. 최근, 작가 박범신의 고산자, 김훈의 공무도하를 각각 2-3일만에 읽었는데 여자의 일생은 지난 봄에 읽기 시작하여 오늘 끝냈으니 읽는데 반일년이 넘었다. 여자의 일생은 박진감이 부족하고 밋밋한 전개로 재미를 반감시킨 점 등이 읽기를 힘들게 했다. 그러나 읽기를 끝마친후 생각이 달라졌다. 결코 간단하지 않은 문제제기를 소설 여기저기에서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파상은 프랑스 작가로 1850년에 나서 1893년에 죽었다. 43년간 짧은 생을 살면서 300여편의 단편과 6편의 장편을 남겼다고 한다. 여자의 일생(A Woman`s life, 프랑스어로는 잘 모르겠음)은 1882년에 쓰여진 그의 첫 장편소설이다.
한 귀족여자(남작의 외동딸) 성장과 결혼, 남편의 외도와 출산, 아들의 방탕으로 인한 몰락 등이 핵심 줄거리이다.
소설은 당시(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사회를 그대로 투영하여 보여주고 있다. 귀족이지만 남성중심의 사회속에서 여성들의 구속, 차별, 학대에 대해 심리적으로 용납하지 못하고 혐오하면서도 사회적 관습과 편견을 수용하면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여자의 일생을 진행형으로 그리고 있다.
작가는 여자 심리적 갈등과 변화, 자연과의 정서적인 교감을 통한 여자의 내면을 탁월한 문체로 묘사하고 있다. 모파상이 젊은 나이에 우울증을 앓았고 그와 관련된 합병증으로 죽었다고 하는데 주인공이 꿈구었던 아름다운 삶은 결혼후 산산조각나고, 이를 주체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그녀는 늘 우울하고 비참하다.
잔의 남편(줄리앙)은 주인공 잔의 재산을 노리고 정략적으로 결혼하여 하녀와 관계하여 아이를 낳고도 뻔뻔하며 이웃 귀족 부인과 불륜을 서슴없이 저질르지만 가해자라기 보다는 그저 그 사회속에서 통념의 사람을 뿐이다.
잔은 이 사회적 구조에 심리적으로 고통을 당하나 저항하지 못하고 순응한다. 당시 가치관과 관념 속에 속한 교회 신부도, 자신의 부모도 아니 본인도 잘못된 결혼과 모순을 어쩌지 못하고 통념적으로 수용한다.
남편이 불륜귀족 남편으로부터 참혹한 죽음을 당한후에도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이에 대한 집착은 결국 자신의 일생이 자식의 생에 구속되게 만들어 자신의 삶을 황폐화시킨다. 잔은 그런 운명만 한탄할뿐, 이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 운명은 자신의 남편의 애를 낳고 떠났던 젖자매(몸종)가 되돌아 옴으로서 변화를 맞이할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주인과 종이라는 관거의 관계의 복원일 뿐이다. 몸종은 이미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 세상의 운명과 맞서 싸운 여인이 되었지만 자신은 여전히 주인과 종이라는 한계에 갖힌 여인을 뿐이다.
소설에서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귀족들의 타락, 허영과 탐욕, 몰락이 펼쳐지고 귀족과 하인의 관계, 귀족들의 교육과 갈등, 사제들의 현실과 기만, 종교의 아집과 독선을 엿볼 수 있고 몸종이었던 로살리를 통해 변화하는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사회 통념속에 갖힌 여인의 생을 현재 우리사회속에서 여자의 삶과 생을 다시 반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잔)은 자신의 몸종이었던 여자(로잘리)가 자신의 아들의 딸(손녀)을 파리로부터 데려온 후 내뱉는 말을 자신의 마음으로 인입하여 끝낸다.
"보시다시피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얼마나 불행한 말인가? 그러나 얼마나 훌륭한 말인가? 세상은 행복하여도, 불행하여도, 또 의지하든, 하지 않든 그저 계속되는 것을......
** 뒷담화
내가 어찌보면 유치하고 어찌보면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은 한 사회의 수준을 나타내는 것은 그 사회의 물질적 수준이 아니라 정신적 수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시민들의 고통은 당장 끼니 해결을 위한 것보다 정신적 고통이 훨씬 큰 것을 알 수 있다.(물론 물질적 수준도 매우 중요하고 당장 끼니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 정신적 고통은 우리사회의 무지함과 천박함으로부터 왔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영혼의 깊이를 만드는 작업은 문화의 영역이다. 음악도, 미술도, 문학도, 철학도 모두 중요하지만 문학이 이 모든 영역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해왔다. 나도 이제 걸음마 단계의 고전읽기를 시작했다. 틈틈이 신간도 보고 있다. 원한다면 주, 또는 월단위의 읽을 거리를 선정하여 제공할 의사도 있다.
첫댓글 이틀동안 컴퓨터앞에 있질 못해서 이제야 읽었습니다. 지난번에 말씀하신대로 읽을 거리를 선정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불어 독후감도 간단하게라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