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연
김 경 숙
카톡 알림 소리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이른 아침 누구일지 궁금한 마음에 재빨리 휴대폰을 열어 본다. 단발머리 여자가 초록색 머플러를 두르고 있다. 무엇인가에 열중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그림 한 장이다.
‘어제 마음에 든다고 해서 조금 고쳤어요. 굿모닝이오.’ 문자도 있다. 뜻밖의 선물에 눈과 입이 싱긋벙긋 한다. 이모가 수업하는 모습을 그렸다며 보여주길래 좋아했더니 학교 가기 전에 보내준 것이다. 저도 바쁠 텐데 시간 내준 마음이 고맙다. 마침 라디오에서 이선희의 ‘인연’이라는 노래가 흐르고, 고달픈 삶의 길에 당신은 선물이라는 가사가 마음을 적신다. 이제껏 만난 많은 인연 중에서 이 아이도 나에게는 선물 같은 존재다.
책 활동을 하는 단체에서 알게 된 아이의 엄마가 우리 아파트로 이사 온다며 연락이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다음 학기부터 복직하려는데 출근 시간이 빨라 아이의 유치원 등원이 걱정이라고 한다. “내가 아침 먹여서 보내줄게요.” 선뜻 대답하고 우리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풀어헤친 머리, 콧물 자국 선명한 하얀 얼굴, 부끄러움은 많지만 걸걸한 매력이 넘치는 다섯 살 여자아이였다. 남자아이 둘만 키웠던 내게는 참 예쁘고 신기했다. 처음 와본 우리 집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는 모습이 귀엽기만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 동안은 눈물과 콧물 범벅의 심란한 등원 시간이었다. 엄마의 출근 시간에 데려온 아이는 3시간 정도 머물다 유치원에 간다. 아침을 먹이고, 달래 가며 씻기고 같이 놀다가 집을 나선다. 유치원이 보이는 길목에 들어서면 목소리부터 잠긴다. 유치원 앞에서 대성통곡하며 주저앉는다. 선생님들 품에 안겨 들어가기까지 한참 동안 달래고 어르고 나면 힘이 빠진다. 가슴팍에 눈물, 콧물 자국이 묻어 있고, 짠한 마음에 나도 울었다.
유치원에 차츰 적응해 가면서 우리의 시간도 쌓여 갔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도 알게 되었고, 무던한 듯 정 깊은 아이의 마음에 같이 물들어갔다. 소파는 배가 되고 이불은 텐트가 되어 매일 물고기를 잡았다. 태권 소녀가 되어 언제나 지는 시합을 해야 했고, 씨름 선수가 되면 먼저 넘어져야 했다. 베란다에 늘어놓은 찻잔마다 담긴 물맛을 각각 다르게 감탄하는 연기를 해야 했다. 매일 빠뜨리지 않고 그림책도 읽고 재미있게 놀았다. 동영상으로 배운 머리 묶기가 성공한 날 선생님들의 칭찬에 어깨는 춤을 추었다.
매일 걸어가는 유치원 길은 우리만의 규칙이 있었다. 색깔 있는 보도블록은 뛰어가고, 초록색 기둥과 노란색 기둥은 두드리며 세 바퀴 돌기, 대추나무와 감나무는 맛있게 익으라는 인사를 해야 한다. 비 오는 날은 배수관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 장단에 노래하고, 눈 오는 날은 발자국을 찍으러 돌아다니기도 했다. 삼 년 동안 우리의 유치원 가는 길은 한결같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매일 볼 수는 없었지만 어쩌다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자라면서 마음 표현도 더 잘하고 애교도 늘었다. 가까이서 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고맙고도 감사했다. 코로나가 맹렬하던 초기에 엄마, 아빠가 격리되자 망설임 없이 그 집에 갔다. 혼자 남은 아이가 얼마나 무섭고 불안할지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다. 매일 소독하고, 식사와 간식을 챙겨주는 바쁜 날들이었지만 옆에서 지켜주고 싶었다. 베란다 창문에서 안부를 나누던 일도 이제는 웃으며 말하는 추억이 되었다.
어느 날 아이가 “이모는 누가 좋아요?” 묻는다.
“당연히 너지. 이모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야. 항상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 되라고 매일 기도하지.”
“에이! 이모부는 어쩌고?”
“이모부도 좋지만, 너랑 다르게 좋아하는 거야. 너는 특별한 사람이야.” 아이는 슬그머니 몸을 기대며 앉는다. 나는 아이의 등을 토닥인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전해지는 따뜻한 순간이다.
참 좋은 인연이 있어 삶의 기쁨이 더해진다. 딸아이가 가진 부드러운 감성을 맛볼 수 있어 기쁘고, 어른들은 좋은 이웃이 되어 기쁘다. 그 시절 아이와 함께 읽었던 책들과 놀이는 좋은 자료가 되어 그림책 강사로 활동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살아오며 만난 많은 사람 중에는 쉽게 마음 주었던 것이 후회로 남는 사람들도 있고, 상처 때문에 울게 만든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프고 힘들 때 위로해 주는 사람들과 선한 영향력으로 이끌어 주는 사람들이 있어 어우러져 살아갈 힘을 얻는다. 언제나 편들어 주는 가족이 있고, 서로 보고 싶어 하면 만나주는 벗들이 있다. 좁은 마음 깨뜨려 주는 충고가 밉지 않고, 허물도 보듬어 주는 배려가 고맙다. 스스로 ‘인복 많은 사람’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
코흘리개 아이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소녀가 되었다. 가끔씩 나를 번쩍 안아주기도 하고, 의젓한 말 상대가 되어 줄 때도 있다. 이름보다 별명을 더 많이 부르며 장난을 주고받는다. 언제나 사랑스러운 아이다. 삶의 기쁨이 되는 이 귀한 인연이 있어 잘 살아가고 있다는 위안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