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봉화 청량산에 다시 찾아왔던가? 그동안 틈틈이 이곳을 방문하기는 벌써 몇번이나 된다. 대학시절 설악에 빠졌다가 한동안 산을 잊었었다. 그리고 35세때 처음으로 산에 다시 왔던 산은 봉화 청량산, 청량산은 나의 등반에 대한 본능을 다시 일깨웠다. 그때부터 시작하여 나는 지금까지 산에 푹 빠져 있으니 청량은 내 산행 인생의 제 2의 시작이요, 추억의 시작이다.
청량산은 기암괴석이 여러 봉우리를 이루며 최고봉인 장인봉(의상봉 870m)을 비롯해 외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금탑봉, 축융봉 등 12개의 암봉이 총립해 있고, 봉우리마다 대(臺: 어풍대, 밀성대, 풍형대, 학소대, 금가대, 원효대, 반야대, 만월대, 자비대, 청풍대, 송풍대, 의상대)가 앉아 있으며, 산 자락에는 8개 굴과 4개의 약수, 내청량사(유리보전)와 외청량사 (웅진전), 이퇴계 서당인 오산당(청량정사) 등이 있다.
청량산은 우선 산 곳곳에 깎아지른 듯한 층암절벽이 괴상한 모양의 암봉들과 어우러진 모습이 절경이다.둥글둥글하게 생긴 암봉들이 12개나 되고 그 암봉들이 품고 있는 동굴만도 12개에 이른다. 또 동굴 속에는 총명수, 감로수, 원효샘 같은 샘들이 솟아나고 있다. 청량산의 아름다움은 퇴계가 자신의 시조에서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뿐....." 이라고 읊은 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퇴계는 어릴 때부터 청량산에서 글을 읽고 사색을 즐겼으며 말년에도 도산서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이 산을 찾았다고 한다.
청량산 주변에는 신라시대 최치원의 유적지로 알려진 고운대와 명필 김생이 서도를 닦던 김생굴, 김생굴 외에도 암릉을 따라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반야굴, 방장굴, 고운굴, 감생굴 등이 들어서 있다. 이밖에 공민왕이 피란와서 쌓았다는 청량산성, 최치원과 김생이 바둑두던 난가대 등도 더듬어볼 만한 발자취다.자! 청량산으로 들어간다.
우리 산행의 들머리는 여전히 청량산휴게소 바로 아래 입석이다. 입석으로 올라야 청량산 전체의 멋진 풍광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기암과 송진 내음이 어우러진 노송 우거진 등산로를 따라가면 힘든 줄 모르고 바로 보살봉으로 치고 올라간다. 하지만 오늘은 보살봉에서 끝나지 않는다. 길은 폐쇄되었지만 오늘은 반드시 정상인 장인봉에 갈 생각이다.
외청량(응진전)은 경관이 뛰어나지만 역시 청량의 중심은 내청량(청량사)이다. 응진전에서 20분거리에 있는데 풍수지리학상 청량사는 길지중의 길지로 꼽힌다. 청량의 육육봉(12 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다. 소위 말하면 청량사는 연꽃의 「수술」자리인 것이다.
응진전과 함께 지어진 고찰 청량사에는 진귀한 보물 2개가 남아있다. 공민왕의 친필로 쓴 현판 "유리보전"과 지불이다.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라는 뜻이다.지불은 종이로 만든 부처인데 국내에서는 유일하다. 지금은 금칠을 해놓았다.
김생굴 근처를 지나는 운암인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고도를 급격히 높여 또 하나의 정상인 보살봉(자소봉)은 바로 지척이다.
청량사 위로 치솟은 청량의 한 봉우리. 청량은 이렇듯 여러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에 청량사가 조금 보인다.
보살봉(자소봉)으로 오르는 운암인들. 일반 등반객들은 이 자소봉에서 등산을 마치고 하산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폐쇄되었지만 숨어들어가서라도 정상인 장인봉으로 갈 것이다.
청량사 바로 뒤에는 청량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보살봉이 있다. 원래 이름은 자소봉이지만 주세붕선생이 지형을 보고 봉우리 이름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영양의 일월산이 보이는 아주 멋진 전망대지만 정상은 아니다. 그러나 모두들 정상인냥 오르고 내려간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정상인 장인봉으로 갈 것이다.
자소봉을 좀 지나면 12봉 중의 하나인 탁필봉이 나온다.
멀리 정상인 장인봉(의상봉)이 보인다. 이미 우리는 폐쇄된 구역을 몰래 들어왔다. 시끄럽던 산이 갑자기 조용해 졌다. 이 구역에서는 우리 밖에 없다. 왼편에 보이는 구조물은 건설중에 있는 구름다리이다. 구름다리로 건널 수 없다면 정상은 한참 내려갔다가 다시 힘들게 올라가야 할 것이다.
연적봉에서 우리는 급경사로 된 협곡을 내려온다. 이 코스가 산행의 백미였지만 구름다리가 생기면 생략될 코스가 될 것이다. 이렇게 가파르게 내려와서는 다시 힘들게 올라야 한다.
연화봉과 연적봉 사이에 설치되는 구름다리. 아마 저 것이 완공되면 청량의 명물이 될 것이 틀림이 없다. 대둔산, 강천산, 월출산과 같이 저런 구름다리로 명소가 된 산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마지막으로 땀을 흘린다. 이제 이곳을 오르면 정상이다.
드디어 정상 장인봉. 예전에는 의상봉으로 불리웠다. 더 오를 때가 없고 시간도 많이 지나 정상에서 점심을 먹는다. 송산이 가져온 우동 국물을 곁들인 점심 먹는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자칫 너무 먹을까 걱정이다. 바로 하산하여 봉성 소나무향돼지짚불구이를 먹으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점심 먹는 모양으로 봐서 먹거리는 실패할 것 같다.
하산은 장인봉에서 바로 청량폭포로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은 제법 운치가 있다.
하산길은 매우 가파르다. 하지만 1시간 남짓으로 하산을 마칠 수가 있는 다이렉트 코스이다. 하산길이 이렇게 멋지기는 오랜만이다.
하산을 완료한 단미와 네비회장님. 그들은 운암의 핵심이다. 이제 다시 청량에 오려면 또 한 세월이 지나야 겠지.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뿐....이라는 퇴계선생의 말이 새삼 다시 기억이 난다. 우리는 오늘 육육봉을 거의 다 지났다. 청량을 제대로 돌아본 것이다. 자! 이제는 봉성으로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