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청마 유치환을 소개합니다.
한 마리의 푸른 말처럼 살다간 시인, 이전에 한 인간, 하나의 남자.
아니 본인은 시인의 칭호를 거북해 하였습니다.
유치진의 동생으로서, 사진관, 농장경영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타계할 때까지 교사(교장)로서 지냈습니다.
그의 정열적이면서도 담백하고, 물질에 초연한 정한한 생활,
그에 관한 에피소드는 후일로 기약합니다.
우선 필자가 제일 처음 읽은 청마의 시.
국어교과서에 실린 "깃발"이었습니다.
아마 대부분 알고 있을 겝니다.
깃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 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필자가 중학교시절 도서실에서
청마의 초기 시집(시집 제목은 기억나지 않음)을 읽으면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아래 "생명의 서(1장)"이 그 중 하나입니다.
허무주의적이면서도 준열한 그의 남성적인 표현을 감상하시지요.
(원문의 일부 漢字가 이상하여 수정하였습니다.)
생명의 서(1장)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 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아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또한 청마는 시조시인 정운 이영도와의 사랑(?)으로 유명하지요.
통영우체국에서 일주일에 5번씩 편지(연애편지?)를
쓴 일화로 유명합니다.
(이미 유부남이었던 그가 어째 집에서 안 쫓겨 났을까요?)
아래의 시 "행복"은 그 때의 감정을 노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청마의 또 다른 일면입니다.
그러나 청마는 이영도라는 특정의 현실에서의 여인보다는
자신의 이상형으로 정한 어떤 이미지를 사랑한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그것은, 그러한 여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알면서도...
행복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참고로 그의 시집을 연대별로 소개합니다.
청마시초(1939)
생명의 서(1947)
울릉도(1948)
청령일기(1949)
보병과 더불어(1951)
청마시집(1954)
제9시집(1957)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1960)
미루나무와 남풍(1964)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