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4:1-2, 신랑의 마음에 드는 신부의 아름다움
아가서 4장은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내용입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지극히 사랑한다고 할 때 그 여자가 그 남자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너무나 아름답고. 예뻐서 그녀의 자태 뿐 아니라 하는 행동, 그리고 입술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멋있어서. 생각만 해도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고 그녀의 모든 것을 다 포용합니다. 찬송가 77장에는 스바냐3:17을 노래한 찬송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바로 이러한 사랑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아가서 4장입니다.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구나”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오는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 5절 까지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두 가지를 어여쁘게 보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술람미 여인, 곧 자기의 신부인교회를 뜻하고 성도를 의미하며. 또 하나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어여쁘게 보고 계심입니다. 창1장에서는 매번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기쁨이고 큰 복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성도는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1절새번역 “아름다워라, 나의 사랑! 아름다워라. 너울 속 그대의 눈동자는 비둘기 같고 그대의 머리채는 길르앗 비탈을 내려오는 염소 떼 같구나” 하고 신랑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원문을 보면 “힌나크 야파 라으야티 힌나크 야파” 그대로 번역을 한다면 “너는 예쁘다. 내 사랑 너는 예쁘다”. 이 말은 외모 때문에 아니라 진정 신부를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표현인 것입니다. 이 표현이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는 뭘까요?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표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신부인 성도를 이렇게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보는 외모의 기준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과 페부를 살피시는 주께서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를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라고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 앞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러 올라올 때부터 주님은 참으로 아름답다, 나의 사랑! 하고 바라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든 주님은 최고로 하나뿐인 신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감동이 되시면 아멘.
그러므로 성도는 순결한 마음으로 오직 주님만 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다시 1절에서 “너울 속 그대의 눈동자는 비둘기 같고”에서 너울을 눈 여겨서 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고대에나 지금이나 신부들은 식장에서 너울로 얼굴을 가리는 풍습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서양에서도 면사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너울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묵상이 필요합니다. 너울이란! 그녀는 자신이 받은 계시 안에서 겸손함을 갖고 있다는 것. 그녀는 그녀의 너울 속에 신랑이 말씀하신 것의 어떤 측면들을 감추어 두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자신만의 은밀한 삶을 말합니다, 때로 풍성한 계시는 유혹이 있습니다. 사탄은 바울이 자고하도록 유혹했습니다(고후 12:7-9). 그래서 바울은 지식은 종종 교만으로 인도된다고 가르쳤습니다(고전 8:1).
또 다른 측면에서
창세기에 나오는 리브가도 이삭을 만날 때 너울을 내려서 얼굴을 가렸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신랑에게만 보이겠다는 것과 신랑만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정조를 지키겠다는 서약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오늘 그리스도인도 예수님의 신부로서 신랑되신 그리스도만 섬기고 따르며 믿음과 사랑과 충성을 다하여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적이나 영적이나 이러한 다짐들이 깨어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혼식을 할 때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겠다고 다짐을 해도 그 약속이 무너지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일에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도 그 다짐이 물거품처럼 되어버릴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 언약이 깨어지지 않으려면 늘 성령으로 충만하여야 합니다.
출24:1-7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언약을 체결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이내 그 언약을 깨뜨리고 그 땅에 신들을 음란히 섬겼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겔16:33-34절에서 “네 음란함이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함은 행음하려고 너를 따르는 자가 없음이며 또 네가 값을 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값을 줌이라 그런즉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너 음녀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나님은 이혼의 표로서 그들을 약속의 땅에서 쫓아내어 열방으로 흩으셨습니다.(렘3:8)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역사적인 사실을 경계와 거울로 삼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을 살피고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만 하겠습니다. 약4:4절에서 말씀합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또 골3:5절“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약혼한 신부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된 자들로서 오직 하나님만 높이며 신랑 되신 그리스도만 섬기고 따르는 순결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지파들을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수24:15절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아멘.
믿음의 정조가 있는 신부를 보고 비둘기 같다고 했습니다.
“너울 속 그대의 눈동자는 비둘기 같고” 네 눈이 비둘기 같다.의 ‘비둘기’‘요나’는‘순결과 온유, 평화, 경건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습니다(레 11: 44-45). 술람미 여인처럼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께 온유함과 신앙적 순결함을 인정받아야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 눈은 영적인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또 비둘기의 눈은 순결과 충성의 의미합니다. 비둘기는 두 사물에 초점을 둘수 없고 주변적인 시야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마음(mind)을 뜻합니다. 한 순간에 하나님의 사랑에 거하며 헌신하다가, 정죄감에 사로잡히거나 타협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녀의 눈은 음욕, 실패나 성공이 아니라, 항상 그분에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길르앗 산에서 내려오는 염소 같은 머리털’은 즉 신부의 머리털은 신랑을 향한 그녀의 헌신을 말합니다. 머리털은 또한 신랑에게 순복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뜻합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길르앗’은 넓게는 요단강 동편, 헤르몬산 남쪽 지역(창 37:25)을 가리키며 길르앗(민 32:1)은 거대한 초원으로 목축하기 좋은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르우벤, 갓, 므낫세 반(민 32:1-42) 지파가 탐욕을 품었던 땅이었습니다. 비옥한 이곳 목초지에서 자란 염소는 털이 길고. 당연히 숱도 많았고 진했습니다. 그래서 길르앗 산에서 내려오는 염소떼로 비유한 것 같습니다.
여자의 긴 머리는 아름다움과 도덕적 순종의 덕을 말합니다(고전 11:10. 15; 딤전 2:11; 벧전 3:4). 단정하면서도 아름답고 진한 긴 머리결을 가진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여인의 긴 머리는 그녀의 영광이며, 하나님의 권위에 헌신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1:5, 6, 15).
그래서 단정한 긴 머리는 신앙의 선행과 영광(고전 11:15)을 나타내며. 믿음은 단지 믿음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도덕적 순종과 선행으로 그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고전 11: 2-16). 왜냐하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참 사랑을 알면 반드시 순종과 선행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염소 떼 같구나’ 염소 떼로 나타낸 것은 염소처럼 여인은 위엄 있고 당당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잠 30:29,31절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사냥개와 숫염소와 및 당 할 수 없는 왕이니” 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위엄을 가지고 혹은 하나님의 지혜에서 오는 당당함을 가지고, 헌신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때로 헌신이 자아에 집중하는 육신적인 열정은 부패되기 쉽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절“이는 목욕장에서 나오는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 ‘이’(치아)는 고기를 씹을 수 있고 그래서 양분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나타냅니다. 어린아이는 고기를 씹을 수 있는 이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이들은 말씀의 고기를 받을 수 없습니다(고전 3:1-2; 히 5:12-14). 이는 하나님의 말씀의 단단한 것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그녀의 이에 대한 4가지 묘사는 농부의 관점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녀의 이는 강하고 풍성하고 효과적입니다.
‘털 깎인 암양’이란!
깎지 않은 양의 털은 불규칙(불균형)하게 자랍니다. 불규칙한 털은 육신적인 열정을 말합니다. 제사장은 양털 옷은 스스로 만족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양털 옷 대신 베옷을 입어야 했습니다(겔 44:15-18).이 의미는 우리의 육신적인 열정은 성령님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함을 말합니다.
‘목욕장에서 나왔다’는 것은 더러움으로부터 깨끗해졌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우리의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양과 같아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깨끗하게 합니다(엡 5:26).
“쌍태를 낳았다는 것”은 풍성한 수확을 뜻합니다.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우리는 목욕장에서 나온 양과 같이 우리의 삶을 깨끗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이(치아)의 깨끗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헌신을 뜻합니다(딤전 4:6-16). 아 4:1-2은 아 6:5-6과 같이 그녀의 눈, 머리털, 이 그리고 뺨을 묘사합니다.
또한 쌍태 낳은 양의 희고 가지런한 이는 교회와 성도의 깨끗함과 질서를 칭찬합니다. 양은 순종의 상징으로 제사의 제물용이었습니다(레위기). 양의 이빨은 식물을 섭취할 뿐 남을 해하지 않습니다. 희고 가지런한 이는 사랑스런 미인의 상징이며. 술람미 여인은 건강하고 고른 치아를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질서정연한 이빨은 교회의 균형과 질서정연한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과 질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목욕한 양은 희고 깨끗합니다(사 1:18).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교회와 성도는 희고 정결해야 합니다. 유월절 어린양 제물이 되신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정결케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술람미처럼 우리도 주님을 맞을 때 한 점 흠 없이 거룩함으로 칭찬 듣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을 맞이하는 성화의 삶입니다. 신랑되신 예수님을 기다리며 거룩함과 순결함으로 믿음생활 충실히 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의정부 등대지기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