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2만6천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 비너스'상. |
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은 과거 학자들이 간과했던 부분들을 지적해 준다. 현존하는 몇 안되는 수렵민족들에 대한 주의깊은 관찰과 과거 기록들의 세밀한 재검토를 통해 인류학자들은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의 역할이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 열쇠가 됐는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덫을 만들거나 사냥감을 추적하고 포위하는 데 참여했고 그런 사냥방법은 여성들에게도 크게 위험하지 않았다. 그들은 생존에 필수적인 전분을 얻을 수 있는 식물뿌리를 캐고 탄수화물 식물을 찾아다녔다. 그들은 때로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무기들을 이용해 직접 사냥을 하기도 했다. 독일 튀빙겐대학의 고고학자 린다 오웬은 “무기소지는 이뉴이트족 여성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새 등을 사냥할 때 쓰는 활과 화살을 갖고다니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이같은 발견은 수많은 새로운 연구를 촉발시켰다. 유럽에서는 고생물학자들이 여성과 아이들이 채집했던 식물의 흔적을 찾아 후기 구석기시대 주거지대를 연구했다. 한편 암석 학자들은 석기의 사용범위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찾기 위해 고심했다. 그 결과들은 차츰 빙하기 사회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재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새 경향의 인류학자들은 문제의 비너스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제공했다. 비너스상은 남성들의 노리개용이 아니라 여성들에게 집중된 구석기시대의 종교의식에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봤다.
소퍼는 “당시는 농경사회에 비해 훨씬 평등한 사회였다. 당시 여성들은 생존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용감한 남성 수렵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의 시각을 제공한 것이다. “고고학자 중에는 사냥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는 뿔을 가진 거대한 동물을 사냥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과거의 해석을 받아들인 탓이다”라고 소퍼는 덧붙였다.
소퍼는 약 10년 전 고대 부족이 어떤 방법으로 맘모스를 사냥했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러시아와 동유럽 지역의 후기 구석기 유적지를 탐사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 유적지에서는 2백20파운드나 되는 거대한 맘모스의 두개골 등 사냥터에 버려두었어야 마땅할 부위까지 발견됐다.
유적지에서 발견된 뼈들의 마모 정도에도 차이가 컸다. 이는 동물들의 잔해가 같은 자리에 서로 다른 기간동안 놓여져 있었다는 또다른 의문을 주는 발견이었다.
소퍼는 그 유적지들에 대한 기존기록을 근거로 현장에서 발견된 맘모스들의 성별과 나이를 추정했다. 그 결과 뼈로 발견된 맘모스의 대다수는 새끼들이었고, 몸집이 큰 경우는 암컷이 대부분이었다. 수컷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양상은 아프리카의 물웅덩이 근처에서 발견되는 것과 동일했다. 약한 동물일수록 물웅덩이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죽기 때문이다.
소퍼는 그러한 발견이 암시하는 것은 단 한가지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후기 구석기 부족들은 돌소금이나 물웅덩이와 같은 중요한 자원이 있는 곳을 찾아 주거지를 꾸렸으리라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남성들은 6천6백파운드가 넘는 맘모스 사냥에 목숨을 거는 대신 맘모스 시체에서 뼈나 상아를 채집했다는 것이다. 소퍼는 만약 남성들이 어쩌다 진짜 맘모스를 사냥했을 땐 아마 그 무용담을 십수년간 반복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사냥했던 대상과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돌니 베스토니체 바로 옆의 파블로프라는 또다른 후기구석기 유적지에서 발견된 점토 조각들을 관찰하던 소퍼는 지난 91년 이러한 의문을 풀 수 있는 단서를 발견했다. 돋보기로 비춰본 몇몇 조각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점토 조각표면에 있는 여러 줄의 평행선이 눈에 띈 것이었다.
이러한 일정한 평행선을 남기게 한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갖고 소퍼는 점토 조각의 사진을 찍어뒀다. 조각이 발견된 장소는 연대측정 결과 2만7천년 전에서 2만5천년 전 유적지로 추정됐다.
미국으로 돌아온 소퍼는 펜실베이니아주 머시허스트대학의 고고학자 짐 아드바지오에게 점토조각을 촬영한 슬라이드를 보여줬다. 아드바지오는 곧 그 평행선 패턴은 식물줄기에서 나온 것이라 확신했다. 몇장의 사진에서는 서로 교차하는 패턴을 보고 ‘엮은’ 흔적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들은 ‘엮는 흔적’은 의심할 것도 없이 천이나 바구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적어도 7천년이 넘은 이 줄무늬는 가장 오래된 바구니나 천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물로 여우·토끼 사냥
소퍼와 아드바지오는 급히 체코로 되돌아갔다. 소퍼는 8천4백개의 구워진 점토조각을 더 찾아냈다. 아드바지오는 그중 90개의 모형을 떠서 펜실베이니아로 돌아와 동료 데이비드 힐런드와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43개의 모형에서 천 또는 바구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은 그중 4개의 샘플에서 그물을 만들 때 사용하는 방법인 두개의 줄을 연결해 묶은 흔적도 발견했다. 두 사람은 이것을 그물가방의 한부분이거나 사냥용 그물일 것으로 추정했다.
소퍼는 연구를 확대하기로 결정하고 다시 브르노의 모라비언 박물관에서 돌니 베스토니체의 나머지 점토조각을 관찰하는데 6개월을 쏟아부었다. 아드바지오는 지난해 가을 새 모형에서 또다른 그물패턴을 찾아냈다.
그 그물은 약 5cm 간격으로, 사슴이나 그보다 더 큰 동물을 사냥할 때 쓰기에는 너무 약해 보였다. 그러나 빙하기의 토끼나 여우류를 잡기엔 무난해 보였다. 돌니 베스토니체 유적지에서 발견된 동물뼈 중 약 46%는 다름아닌 여우와 토끼류의 것이었다.
소퍼는 돌니 베스토니체와 파블로프 이외의 다른 유럽지역에도 그물을 이용했던 부족이 더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증거는 학계에서 믿어왔던 후기 구석기시대의 사회에 대한 인식이 크게 왜곡돼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소퍼와 아드바지오는 주장한다.
독일 뮌헨에서는 미국 출신 암석학자 린다 오웬이 또다른 증거를 찾고 있었다. 오웬은 1만8천년 전에서 1만2천년 전에 이르는 후기 구석기시대 석기들을 연구하면서 식량을 찧는데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도구와 재배용구 등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그 발견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으며 독일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 식생활의 90%가 육식에 의존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오웬은 영양학 자료를 연구한 결과 그런 식생활은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인간은 소화나 신진대사 기능이 육식동물과는 다르기 때문에 칼로리의 절반 이상을 고기로부터 섭취하면 단백질 중독으로 죽게 된다.
오웬은 북극지방에 대한 인류학 연구자료들과 역사자료를 통해 그곳 환경이 빙하기 유럽지방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북아메리카의 추운 지방에 살았던 부족들이 재배한 식물과 독일 남부의 빙하기 유적지에서 발견된 꽃가루 성분을 비교한 결과 약 70%가 서로 일치했다.
거의 대부분의 부족사회에서 식물 채집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그렇다면 후기 구석기시대 여성들도 식물을 채집했을까. 이 부분에 대한 고고학 관련자료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오웬은 런던대학에서 만난 고대식물학자 사라 메이슨을 만나게 됐다. 메이슨은 돌니 베스토니체의 2만6천3백90년된 집터에서 발굴해 낸 재를 분석하고 있었다.
빙하기 여성들 높은 사회적 역할 담당
전자현미경 관찰 결과 메이슨 연구팀은 그 속에서 데이지 또는 해국과(科) 식물뿌리의 일부분을 발견했다. 이들 식물의 뿌리는 대부분 식용으로 쓸 수 있는 종류로 돌니 베스토니체의 여성들이 아마도 이를 캐내고 먹을 수 있게 요리했을 것이란 추측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같은 발견들을 토대로 오웬은 후기 구석기시대에는 식량을 제공한 쪽은 남성이 아닌 여성들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여성들은 채집과 그물사냥 등을 통해 70%의 식량을 제공했을 것이라 추측했다.
일부 여성들은 권력도 소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단서는 비너스 조형물들이 보여준다. 지금까지 2만9천년 전에서 2만3천년 전 사이의 것으로 보이는 상아·돌·동물뼈·점토 등으로 만들어진 1백여개의 비너스 조형들은 사실주의와 추상주의가 복합된 듯한 모습을 띤다.
과장된 유방엔 유두가 없고 어떤 신체부위는 살이 겹치는 부분까지 정교하게 표현된 반면 눈과 입이 없고 표정도 발견할 수 없다. 오랫동안 학계에서는 이 예술품이 남성들에 의해 주도됐다고 믿어왔다. 남자들의 에로틱한 관심이 여성의 신체를 그토록 정교하게 그려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아직도 그런 해석은 일부 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은 다른 설명을 믿게 됐다. 예를 들어 검은 비너스는 성적 목적과는 거리가 먼 종교적 의식을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 형상들은 아마도 종교적 의식에서 일부러 금이 가도록 사용된 것으로, 가마가 집터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설명이다. 이런 의식의 목적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로마대학의 마가레타 무씨는 여성들이 이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후기 구석기시대 여성들의 역할을 완벽히 이해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그러나 빙하기 여성들이 높은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담당했으리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연구를 통해 차츰 밝혀지듯이 식물을 채집하고 그물을 짜며 때론 사냥도 하고 종교적 역할까지 도맡았던 여성들의 이미지는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다.
■ 사진설명
구석기시대 여성들이 토끼와 여우를 사냥하기 위해 그물을 엮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