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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강 제5편 이자,신용 및 금융 [자본]제3권 제21장~제26장
이 편은 맑스의 완성된 초고에 의해 편집될 수 없었기에 읽는 데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 편은 경제의 현실적 동향과 상대적으로 더욱 밀접히 관련된 개념과 관계(예-이윤과 이자의 관계, 신용과 자본축적의 관계)를 취급하고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이다.
한국 사회가 IMF이후 대출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정부, 기업, 가계 부채 모두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이는 이자 낳은 자본이 그리 만든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념으로.
신용을 이용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곤궁하게 한 사건들은 부산저축은행 사건, 영동진흥개발 사건 등이 있다. 이런 대박환상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가 타인의 노동에 기생하는 구조로 이루어지기에 발생한다. 주식시장을 흔히 자본주의 꽃이라고 하는데 이곳이 타인에게 기생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금융영역의 주인공인 화폐가 눈에 보이지 않은 상품가치에 형태를 부여하면서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이기에 복잡하다.
화폐소유는 잉여가치를 생산할 가능성(사실상 반드시 필요한 조건)과 그에 따른 자본의 생산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에 따라 화폐자본(잉여가치 생산에 사용되는 화폐)은 상품형태를 취할 수 있다. 그것은 교환가치(가격)와 사용가치를 모두 갖는다. 그것의 사용가치는 잉여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것의 교환가치(가격)는 이자이다. 2권에서는 맑스는 자본으로서의 화폐를 단지 화폐의 기능으로 즉 구매와 판매에 사용되는 것으로만 간주했다.
제21~24장에서 맑스는 자본소유와 가동 사이의 분리와 대립, 그리고 그것의 각각의 인격화 곧 화폐자본가와 기능자본가 사이의 분리와 대립에 기초하여 모든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산업자본가가 자기 자신의 화폐로 영업을 하며 타인 화폐를 차입하지 않은 한에서는 이자와 이자 낳은 자본의 개념이 형성될 수가 없다. 맑스가 1권 핵심적인 부분에서 이야기했던 물신성개념을 명시적으로 되살려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는 거기에서 자본의 현실적 토대(잉여가치의 생산)는 실제적이긴 하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표면적인 현상 아래에 묻혀 있다고 주장한다. 현실에서 우리는 시장에 가서 화폐를 사용해(노동력을 포함)상품을 구매한다. 문제는 이 시장관계가 상품생산 속에 응결되어 있는 노동의미와 사회성은 물론 상품이 시장에 나오게 되는 전체과정을 은폐한다. 맑스 목적은 이들 현상의 배후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3권에서 자본의 물신적 형태와 자본물신성에 대한 개념(혹은 표상)이 완성된다. 이자를 낳은 자본은 극히 휘황한 형태로 신비화된 자본의 형태이다라고 그는 단정한다. 맑스는 1권에서 물신성을, 참된 인식을 가로막는 외적이고 객관적이며 실재적인 장애물로 규정한 다음, 여기에서는 그것의 심장부로 들어가서 그것이 가지고 있는 파괴적이며 폭력적인 힘에 대한 내면의 깊고 주관적인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기계적으로 이야기해서 화폐는 1권에서 완벽한 물신성의 모습으로 그려졌다(그것은 사회성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은폐한다.) 화폐가 자본으로 어떻게 유통되는지를 다루는 것이 2권이다. 여기 3권에서 이자 낳은 자본의 유통은 자본유통의 완벽한 물신적 형태로 다시 등장한다. 이제 우리는 화폐자본이 어떻게 해서 스스로 더 많은 화폐를 창출하는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나타나는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이 힘은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엄청난 효과를 내면서 자본의 운동법칙을 왜곡시키고 신비화한다. 그리하여 자본은 끊임없이 자신의 물신적 형태와 거기에서 비롯된 잘못된 가공인식에 의한 희생자가 되는 위험에 빠진다.
화폐자본의 상품가격은 이자이고 화폐자본의 순환은 이자 낳은 자본으로 유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부르주아 이론에서처럼 자연이자율은 존재하지 않는다. 맑스는 자연가격(공급과 수요가 시장에서 균형상태에 있을 때의 상품가격)을 가치에 근접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 경우 자연가격은 존재할 수 없다.
상품으로서의 화폐자본에 대한 내재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고 자연이자율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자율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맑스는 화폐자본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이자율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수요와 공급을 특수성의 범주로 간주하고 이들 양자는 그것들이 균형상태에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자율은 경쟁에 의해 결정한다. 경쟁의 강제법칙도 특수성의 범주로 즉 경쟁에 따르지 않는 자본운동을 강제로 규제하는 내적 법칙의 요소로 간주한다.
특수성 범주와 자본운동의 일반적 법칙 사이의 관련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2권에서 검토된 현실의 토대로부터 3권에 등장하는 표면적 현상의 물신성으로 이동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우리는 자본이 왜 그 물신적 형태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지 그리고 그런 물신적 형태가 일반적 운동법칙을 어떻게 왜곡하고 신비화하는지를 보게 된다. 맑스는 이자율을 독립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가치와 잉여가치 생산의 세계에 포섭되어 있는 것으로 다룬다. 이자율과 이자 낳은 자본의 유통은 독립적인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는데 이는 그것들이 수요와 공급 및 경쟁이란 예측하기 어려운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는 특수성의 범주에 속한다.
이런 특수성이 결정적인 방식으로 생산일반성에 다시 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없을까? 그런 경로가 있다면 특수성이 자유롭게 작용할 때 자본의 일반적 운동법칙은 어떻게 작동할까? 혹은 특수성이 어떤 경로를 통해 자본의 일반적 운동법칙에 영향을 받고 있을까? 화페시장에 나오는 대량의 화폐자본은 계급들의 공동자본으로 행동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2007~2009년 공황을 통해 자본의 뿌리를 뒤흔들엇다.
이자낳은 자본의 유통이 산업자본의 유통이 만들어내는 잉여가치(이윤)에 대해 어떻게 독립성을 획득하는지를 살펴보자. 맑스는 화폐자본가(화폐권력자)와 산업자본가(잉여가치생산을 조직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자율은 이 두 계급사이의 경쟁에 의해서 정해진다. 두 자본가들의 사이 세력관계가 중심이 된다.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수고를 감당할 것인가 그냥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바하마로 가서 편안하게 살것인가? 맑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다수의 산업자본가들의 소망은 블로소득만으로 생활할 수 있은 만큼만 생산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이자나 블로소득만으로 생활하고 잉여가치에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다면 이자율은 제로로 하락하고 생산에 재투자에서 얻은 이윤은 천정부지로 상승할 것리고 지적한다. 이자 낳은 자본의 유통이 잉여가치 생산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 한 가지를 본다.
화폐는 산업자본의 순환에 진입함으로써 화폐자본이 된다는 것이며, M-C...P...C′-M′의 순환에서 화폐자본은 단순히 화폐로 기능한다. 여기애서 화폐는 상품들(생산요소)의 구매수단으로서 작용할 따름이다. 따라서 모든 화폐는 잠재적 화페자본이라고 할 수 있으며 화폐는 산업자본의 순환에 진입할 때 그 화폐는 산업자본가에게는 화폐자본이 되고 화폐소유자 또는 화폐대부자에게는 이자 낳은 자본이 되는 것이다. 대부될 잠재적 화폐자본(대부자본)의 수요와 공급2이 이자율을 결정한다고 할 때 대부자본은 산업자본의 재생산과정에 이미 투자된 현실적 화폐자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대부자본은 당분간 산업자본의 순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다. 즉 화폐가 화폐자본으로 전환: 두 단계 전환 필요-화폐→대부자본과 대부자본→현실적 화폐자본.예)은행기능 여유화폐를 예금집중-몇 배의 대부자본 창조→현실적 화폐자본전환은 전적으로 산업자본가측의 수요에 달려 있다.화폐 그 자체와화폐자본 사이에는 양적인 동일성이 없다
이자율의 경우 화페와 화폐와 관계이기 때문에 아무런 형태변화도 존재하지 않는다. 화폐가 무한히 축적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자 낳은 자본은 복리도 늘어날 수 있는 신비한(물신적 인)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화폐가 무한히 축적될 수 있다면 화폐자본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물신적 환상이다.
우리가 금본위제를 버리고 결국 모든 상품의 척도를 지폐에 내주었는지를 설명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전체에서 화폐공급은 무한히 늘어날 수 있는데 왜 그것이 단지 숮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용형태로 더 많은 화폐를 만들기 (차용증서의 급격한 증가)위한 대차관계는 통제불능 상태로 발전할 수 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모든 신용시장에 가공성격을 부여한다.
이 가공자본은 화폐자본의 물신성에 보다 실물적인 유형의 형태를 제공한다. 화폐자본은 주택 수요와 공급 모두를 제공할 수 있다. 이것이 하나의 완결된 유통(주택생산과 실현을 통한 자산거품 현상)이 될 수 있음을 쉽게 확인 가능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자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부동산을 구매하는데 그것이 가공자본의 한 형태이다. 이처럼 이자율과 이윤율은 매우 강력한(종종 투기적이기도 한) 방식으로 서로 만나고 서로에 영향을 미친다. 화폐자본(가)은 독립적이지만 일정한 방식으로 잉여가치 생산에 예속된다. 화폐형태의 물신적 성격은 환상과 가공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것은 주기적으로 통제불능의 금융 및 상업공황을 터뜨린다.
맑스이론 가운데 또 다른 하나의 불합리한 숫자인 지대의 경우에도 맑스의 이론의 일반적인 틀에 적용되지 않는다. 지대는 이자와 마찬가지로 실제로 존재하고 현실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가공자본의 한 형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자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부동산을 구매하는데 그것이 바로 가공자본의 형태이다.
제3권 제21장: 이자 낳은 자본
자본으로서 기능하는 사용가치에 대한 대가는 이자이다. 이윤을 생산하는 자본가에게 대부되는 화폐는 이자 낳은 자본이 된다. 여기에서는 두 개의 자본유통이 결합한다. 하나는 이자 낳은 자본의 유통(화폐-화폐)이며 다른 하나는 이윤을 생산하는 자본 유통(화폐-상품-화폐)이다. 하나는 이자를, 다른 하나는 이윤을 붙여서 되돌아온다.
맑스는 일반이윤율이 산업자본과 상인(상업)자본 모두가 활동에 의해 창출되며 이들 둘 사이에서 이윤율은 균등화된다. 그러나 화폐는 다르다. 화폐소유자는 잉여가치를 만들 수 있는 수단을 소유한 셈이며, 그는 그 화페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그 대가로 이자를 받을 수 있다. 화폐자본가와 생산자는 화폐자본이 생산할 수 있는 잉여가치를 서로 나눈다. 이자는 기능하는 자본이 자신의 이윤 가운데 자기 호주머니에 챙겨 넣지 않고 자본의 소유주에게 지불하는 부분을 일컫는 특수한 명칭이다. 맑스는 자본의 순수한 소유권이 일정한 비율의 수익을 청구할 있는 권리임을 인정한다. 예) 자본 100만원-평균이윤율 20%-20만원 이윤 생산할 수 있는 힘. 잠재적인 자본인 셈. 위탁-20만 이윤 중 화폐소유자에게 5만원 사용가치 대가 지급되는 부분을 이자라 한다. 화폐는 노동자들로부터 부불노동을 착취하는 데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잠재적 자본이다. 대부는 일정한 이윤을 낳은 힘을 허용한 셈이다. 100만원 화폐소유자는 이를 대부받은 기능자본가와 대치하고 있다.
상품과 화폐의 운동 그리고 교환은 자본의 순환내에서 항상 이루어지며 언제든지 더 많은 잉여가치를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거래에서 화폐는 화폐로서의 기능(구매와 판매를 원활하게 하는 )만을 수행하고 상품은 상품으로서의 기능(최종 소비 혹은 생산적 소비를 위해 판매되는)만을 수행한다. 그러나 자신의 화폐를 이자낳은 자본으로서 증식시키고자 하는 화폐소유자는, 자신의 화폐를 제3자에게 양도하여, 그것을 유통에 투입하고, 자본-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도-으로서의 상품으로 만든다. 즉 그 화폐는 그것을 양도한 소유주에게만 자본인 것이 아니라 제3자에게도 처음부터(즉 잉여가치(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사용가치를 가진 가치)으로서 양도한다. 그것은 완전히 주는 것이거나 판매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대부되는 것일뿐이다. 그것은 일정한 기한이 지나고 나면 원래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물론, 그것도 실현된 자본으로 되돌아옴으로써 잉여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자신의 사용가치를 실현한다는 조건으로만 양도되는 것이다.
혼동을 일으킬 수 있는 한 가지 원인은 자본이 화폐나 상품형태로 대부된다는 점이다. 공장과기계는 이자를 대가로 화폐와 마찬가지로 쉽게 대부될 수 있다. 어떤 상품들은 그 사용가치 솎성 때문에 항상 고정자본으로만 대부될 수 있는데, 주택,선박.기계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모든 대부자본은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든 또 그 상환방식이 그 사용가치 때문에 어떻게 변형되든 항상 화페자본의 한 특수한 형태일 뿐이다. 맑스는 상품형태의 대부를 이자 낳은 자본의 일반적 유통형태에 포함시킨다. 중요한 함의 만일 소유물(주택)과 토지도 대부될 수 있다면 지대와 이자낳은 자본사이에도 내적 관련이 형성될 것이다.
대부자본가는 자신의 자본을 아무런 등가도 받지 않고 산업자본가에게 양도한다. 그의 양도행위는 산업자본가가 움직이는 이 순환을 준비하는 행위일 뿐이다. 화폐의 이 최초의 자리바꿈은 어떤 형태변화 행위(구매나 판매)도 나타내지 않는다. 소유권은 양도되지 않는데 왜 교환이 일어나지 않기에(아무런 등가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자본가가 그것을 이용하여 잉여가치를 생산한 후 화폐는 대부자에게 반환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법률적 거래다. 자본이 대부자의 수중에서 차입자의 수중으로 이전되는 최초의 지출은 하나의 법률적 거래로서 실제 자본의 재생산과정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단지 그 과정을 준비하는 것일 뿐이다. 대부자본의 출발점과 귀환점, 양도와 상환 등은 법률적 거래에 의해 매개된 자의적 운동으로 나타난다.
이 법률적 거래와 실질적인 잉여가치 생산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법률적 관계와 거래는 한편으로는 이자 낳은 자본의 유통, 다른 한편으로는 잉여가치의 생산 사이의 관련을 은폐한다. 대부는 그것을 화폐나 상품이 아닌 자본으로서 양도하는 데 알맞은 형태이다. 다른 상품의 경우 사용가치는 마지막 구매자의 수중에서 소비되고 따라서 상품의 실체와 함께 그것의 가치도 거기에서 소멸한다. 그러나 자본이란 상품은 그 사용가치의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와 사용가치를 단지 보전할 뿐만 아니라 증식하기까지 하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대부화폐자본의 사용가치도 자신의 가치를 보전하고 또 증식할 수 있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통상적인 상품거래와는 달리 여기에서는 이 사용가치 그 자체가 바로 가치(즉 화폐를 자본으로 사용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가치량이 원래의 가치량을 넘는 초과분이다)다. 이 사용가치가 곧 이윤이다.
이자율과 가치생산 사이의 내적 관련이 도대체 무엇인가? 화폐 내지 상품은 그 자체로서 잠재적 자본인데 이는 노동력이 잠재적 자본인 것과 마찬가지다. 왜 1.화폐는 생산요소들로 전화할 수 있고, 또 그 자체로 이들 생산요소의 단순한 추상적 표현이자 이들 생산요소의 가치로서의 현존재이기 때문이다. 2.부의 소재적 요소들은 잠재적으로 이미 자본이 될 수 있는 속성을 지니기 때문인데, 이는 이들 요소를 보충해주는 이들의 대립물 즉 이들 요소를 자본으로 만들어주는 바로 그것(임노동)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초위에서는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화폐(혹은 상품)는 자본으로 판매될 수 있고 또한 그런 형태로 타인의 노동에 대한 지휘권이자 이들 타인의 노동을 취득하고자 하는 청구권이며 따라서 스스로 증식하는가치이다.
임금에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면 이들의 작용은 멈춰지고 임금은 노동력의 가치와 일치하게 된다. 그러나 화폐자본의 이자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여기에서는 경쟁의 법칙이 편차를 규정하지 않으며 경쟁에 의해 부과되는 분할법칙 이외의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 이자율은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서 확정되는 이자율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자율의 자연적 한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경쟁이 단지 편차와 변동만을 규정하는 데 그치지 않을 경우, 즉 이들 상호작용하는 두 힘이 균형을 이룸으로써 모든 규정성이 중지되어 버린 경우, 규정되는 것은 모두 그 자체법칙과는 상관이 없으며 자의적인 것에 불과하다.
경쟁은 철저하게 운동의 내적법칙을 강제하는 요인으로 나타난다. 그 강제의 메카니즘은 여기에서 계급의 공동자본으로 역할을 수행하는 이자 낳은 자본의 유통을 결정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그 강제적인 요인은 법칙과는 상관없는 자의적인 것이다.
맑스는 지금까지 연구해왔던 전제들의 틀 안에서는 이자 낳은 자본의 유통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맑스는 가치 대신 생산가격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유기적 구성이 서로 다른 산업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 이윤율이 균등화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이윤율 균등화의 결과, 상품들은 상품가치가 c+v+m으로 구성된 다고 했던 앞선의 자본유통정식에 따라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불변자본+가변자본+평균이윤 (c+v+p)으로 이루어진 생산가격에 따라 거래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유기적 구성이 낮은(노동집약적)산업은 유기적 구성이 높은(불변자본이 집약적인)산업으로부터 보조를 받는다.
이자율이 법률적 계약에 따른 것인데 그 정당성은 생산관계로부터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법률적 형태는 거래 당사자들의 의지행위(그들의 공통된 의지 표현)로 나타나지만 이 정당성의 내용은 해당 생산양식에 비추어서 적합한 경우에 한한다. 즉 노예제도나 상품의 질을 속이는 것은 모두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관점에서 정당하지 않지만 임노동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정당한 이자율이란 자본의 지속적인 재생산과 일치한다. 그것은 고리대자본과 명백히 구별된다.
프루동이 잉여가치론과 이자 낳은 자본의 유통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상신용을 제공하는 은행을 통해 착취를 종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생산영역에서 벌어지는 살아있는 노동에 대한 착취이지 이자의 수탈이 아니다. 살아있는 노동에 대한 착취는 무시한 채 이자율을 만지작거리는 것은 맑스가 보기에 어리석은 정책이다.
제3권 제22장: 이윤과 이자율의 분할
자본유통은 두 개이지만 출발점을 이루는 화폐는 똑같은 것이다. 동일한 하나의 화폐가 자본으로 두 번 출연하는 것이다. 이 화폐가 만들어낸 이윤은 두 자본에 분할된다.
M―[M-C(...C′)-M′]―M′ ( [ ] 생산자본, M―M′ 대부자본)
대부자본이 자본의 재생산과정을 기초로 하면서도 산업자본과는 다른 운동을 한다. 일견 대부자본은 하등의 매개과정없이 M′-M′로 자기증식하는 화폐의 운동처럼 보인다. 이는 부불노동의 원천은 사라지고 노자의 기본적 계급관계는 일체 말살된다. 자본신비화가 완성된다.
대부자본에 대한 이자비율을 이자율이라 한다. 이자가 이윤일부로서 지불되는 것이라면 이자율은 일반적으로는 이윤율보다 낮은 수준이라 해도 좋지만 이자율은 대부자본의 수급관계에서 자주 이윤율과는 다른 방향으로 변동한다. 그것은 산업자본과 대부자본은 다른 독립한 자본이라는 사실에 의거한 것이며 양 자본은 이윤율과 이자율의 대항관계로서 나타난다.
이윤의 이자 및 기업이윤으로 양적 분할과 관련하여 맑스는 산업순환에서의 그 분할을 검토하기 전에 이자율성격에 관하여 두 가지 특징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이자율은 자연이자율과 같은 중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자율은(모든 상품처럼) 수요와 공급의 상황에 의하여 결정되지만(다른 상품들과 달리)이자율은 가치법칙이 결정적 또는 중심적 경향으로 작용하지 않은 채 결정된다. 노동생산물인 상품들의 시장가격은 그들의 가치를 중심으로 변동하고, 이자율은 대부자본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동한다.
1929~1970년대 까지 이윤생산 지배-케인즈 경제학,(경영자 자본주의) 1980년대 이후 이자 낳은 자본-통화주의 또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주주자본주의)~ 두 자본 사이의 이해 대립
두 종류의 자본가, 즉 화폐자본가와 산업자본가 혹은 상업자본가 사이의 관계를 포함한다. 자본가 내부에서도 서로 관심과 이해관계가 다른 분파가 있다는 개념을 만난다. 화폐의 가격이란 것의 불합리성과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것은 가치와 질적으로 다른 가격이란, 터무니없는 모순이다. 이자를 자본의 가격-불합리한 표현:자본은 일정한 화폐액인데 그런 화폐액이 바로 가격이다. 1만원 자본에 대한 이자가 1년에 1천 원이라고 하면 1만원에 대한 가격이 1천 원이다? 이자는 노동자가 만들어 준 타인을 위한 노동 즉 잉여가치에 비롯-자본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면 이자율도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만일 이자율이 화폐자본의 수요와 공급조건에 의존한다면 이것은 산업순환에 따라 어떻게 변동할 것인가? 이자가 낮은 시기에는 호황기나 초과이윤시기에 해당되고(회복과 공황시기 동안만 대부자본의 풍족과 산업자본의 확장이 공존할 뿐), 이자가 높은 시기는 호황기와 그것의 전환국면 사이의 중간기간에 해당되며 이자가 극도의 고리대수준의로 최고에 도달하는 것은 바로 공황국면이다.(대부자본에 대한 과도한 수요, 곧 대부자본의 부족과 최소수준의 이자율이 산업자본의 과잉과 공존, 공황기에는 유동성에 대한 큰 필요는 지불수단으로서의 대부자본에 대한 산업자본가측의 수요증가와 화페자본가측에서의 화폐퇴장에 의한 대부자본의 공급감소를 내포.) 공황정점에서 이자율을 제로수준까지 끌어내릴 수 있는(2007년 이후 미국정부가 수행한 것 같은)정부의 화폐공급이 없다고 가정한 것이다.
맑스는 대부자본에 대한 강력한 수요가 충족되는 것이 용이함과 어려움이라는 각도에서 호황기와 공황기를 특징지우고 있다. 대부자본의 축적은 일체의 산업자본의 현실적 축적없이,은행제도의 확대와 집적,유통준비금 또는 개인의 지불예비금의 절약( 단기간 대부자본으로 전환된다)과 같은 순전히 기술적인 수단에 의하여 달성될 수 있다. 또한 산업자본의 축적을 위해 유보한 이윤부분과 각종 형태의 소득이 은행에 예금되며 은행은 그 예금의 몇 배나 큰 대부자본을 창조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더욱이 그는 새 산업자본 또는 추가적 산업자본의 형성이 방해받을 때에도 대부자본이 증가하게 된다.
이자율이 하락하는 데는 (이윤율 저하경향과는 별개의)몇 가지 독립적인 요인이 존재한다. 먼저 잉여가치생산으로부터 화폐를 철수시켜(나이가 들어감에 따라)단순히 화폐자본의 이자에만 의존하여 살아가고 생산의 불확실성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으려하는 유혹이 끊임없 존재한다.
유통에 필요한 초기자본을(항상 나중에 이자를 붙여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하면서)끌어 모으는 금융제도의 역할을 언급한다. 모든 계층의 저축을 모아서 화폐자본으로 사용하게 하는 금융제도의 역할은 자본주의의 전체 역사에서 점점 더 중요해져왔다.이자율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발전함에 따라 점점 낮아지는 경향-노동생산성 증가 불구 경쟁 격화됨에 따라 자본가들이 초과이윤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 점차 줄어듬-평균이윤율 상승억제되는 반면,자본축적 가속화로 자본 대규모화되면서 유휴자본증가하여 대부자본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더빨리 증가하는 경향
일국 내에서 지배적인 평균이자율-끊임없이 변동하는 시장이자율과는 구별되는-은 어떤 법칙에 의해서도 전혀 규정받지 않는다. 만일 경쟁에 그것을 결정한다면 이런 결정은 그 자체 우연적이고 순수하게 경험적인 것일 뿐이며, 이런 우연성을 어떤 필연적인 것인 양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망상이다. 경쟁의 결과는 관행이나 법률적 전통 등의 개입에 의해 완화되고 두 사람 사이가 얼마만큼 갖는가 하는 것은 그 자체 순수하게 경험적이고 우연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이것은 임금과 이윤 사이의 관계와는(지대와 이윤 사이의 관계와도) 매우 다르다. 이자의 경우에는 질적 차이가 같은 크기의 잉여가치의 순수한 양적 분할로부터 발생하지만 임금과 지대의 경우에는 그 방식이 다르다. 지주는 유형의 상품(토지)을 제공하고 노동자는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화폐자본가는 화폐자본을 제공할 뿐인데 이 화페자본은 가치를 표현하는 것일 뿐 생산에는 아무련 유형의 실체를 제공하지 않는다.
일반이윤율은 잉여가치를 결정하는 요소들(잉여가치량, 선대자본의 크기, 경쟁의 강도)에 의해 결정된다. 이자율 결정에 유리한 두 가지 경우가 있다. 1.이자 낳은 자본이 이미 역사적으로 과거부터 존재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일반이자율이 존재하는 경우 2.세계시장이(일국 내의 생산조건과는 상관없이) 이자율의 결정에미치는 영향이, 그것이 이윤에 미치는 영향에 비해 훨씬 큰 경우. 경쟁과 수요의 공급의 조건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자율의 자의적이고 법칙과는 상관없는 변동을 경험적인 규칙과 관행으로 환원하려고 했던 맑스의 시도와 관련하여, 이 모든 중심에는 금융 및 화폐제도의 운용구조 내부의 깊은 비대칭이 존재한다. 즉 개별자본가는 개별사업을 위해 화폐자본을 조달하려 하는데, 이를 보편적 등가 전체를 통제하는 은행가로부터 조달하려 하기 때문이다.
제3권 제23장 이자와 기업가 수익
고리대자본-산업자본과 관계x, 대부자본-관련0-상업자본과 마찬가지로 산업자본의 세 가지 기능 가운데 화폐자본의 기능이 독립하면서 성립한다. 자본가계급은 화폐자본가와 산업자본가로 나뉘고 이들 사이의 경쟁이 이자율이 형성한다. 화폐자본가와 생산자본가가 법적으로 서로 다른 인격으로서 뿐만 아니라 재생산과정에서 전혀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로서 사실상 만난다는 가정에서 출발해야겠다. 한 사람은 단지 대부만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생산적으로 사용한다. 그러면 이제 소유권의 법적 지위가 중요한 문제가 떠오른다. 그가 이 대부자에게 지불하는 이자는 총이윤 가운데에서 자본소유 그 자체에 할당되는 부분으로 나타난다.
자본의 사용자는 설사 그가 자기 자본으로 일하는 경우에도 두 사람으로 분해된다. 즉 자본의 단순한 소유주와 자본의 사용자로 분해된다. 그의 자본도 그것이 산출하는 이윤범주와 관련하여 자본소유와 생산과정 내부에 있으면서 과정 중인 자본으로서의 기업가수익을 생산하는 자본으로 나누어진다. 이제 이것은 총자본과 총자본계급에 대한 질적 분할이 된다.
총자본이 화폐자본으로 전화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기초 위에서 자본이 생산자본으로 기능하지 않고도(잉여가치를 창출하지 않고도) 이자를 낳는다는 생각도 더욱 잘못된 생각이다. 이자라는 형태에서 임노동에 대한 이런 대립이 사라져버린다. 왜 이자 낳은 자본은 임노동이 아니라 기능하는 자본을 자신의 대립물로 삼기 때문이다. 기능하지 않는 한 자본은 노동자들을 착취하지도 않으며 노동과 대립하지도 않는다.
노동자와 기능하는 자본가 사이의 대립전선이 노동과정과 노동력시장에 있음에 명백하고, 노동자와 소유자로서의 화페자본가 사이의 관계는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화페자본의 권력과 유통방식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매우 문제시된다. 은행과 금융기관에 대한 반대 입장은 노동자보다 영세업자의 경우 더 강력하다. 이런 투쟁을 통상적인 의미의 계급투쟁에 포함하기는 어렵다. 역사적으로 화폐자본가(금리생활자)에 대항하는 투쟁은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경향을 보여왔고 지금도 그렇다. 사례는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 그러나 이자 낳은 자본은 생산자본에 잉여가치를 생산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며 이자율이 높을수록 이런 압력은 더욱 강해진다. 그러면 생산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더 높은 잉여가치율을 강요하며 그것이 높은 이자율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이들의 주의를 은행가들의 탐욕과 권력으로 돌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계급투쟁은 방향을 바꿀 것이고 심지어 왜곡되기도 할 것이다.
기업가 수익이 자본소유와 무관하고 오히려 비소유자(노동자)로서 자기 기능의 결과물로 나타난다. 기업가수익인 자체임금이라는 생각 즉 감독임금이라는 생각 임노동자의 통상임금보다 높아야하는데 그 이유는 1.그의 노동이 더 복잡한 노동이며, 2.임금을 지불하는 사람이 자기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개념화되면 자본가는 스스로 노동을 수행하는 것(스스로 감독임금을 지불)과 다른 누군가에게 이 일을 시키고 임금을 지불하는 것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자와 기업가수익이 잉여가치의 일부분들일 뿐이며 그런 분할이 잉여가치의 본성과 그것의 유래 그리고 그것의 전제조건 등을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잊혀버린다.
자본가논리는 만일 이자가 단순한 자본소유를 나타낸다면 잉여가치 생산과의 관계에서 이자는 두 자본가들 간의 관계이지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관계가 아니다. 이자는 이윤의 다른 부분에대해 기업가수익이라는 질적 형태를 부여한다. 자본가가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그가 자본가로서의 속성과 무관하게 노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잉여가치 가운데 이 부분은 더 이상 잉여가치가 아니고 그것과 반대로 그가 수행한 노동에 대한 등가물이다. 착취하는 노동도 착취되는 노동이 모두 똑같이 노동으로서 같아져버린다. 이 모두는 자본가들의 의식에 반영된 것들이다. 이런 방식으로 이윤 일부가 임금으로 분리될 수 있다. 감독과 지휘의 노동은 사회적으로 결합된 과정의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경제영역에서 권력자는 노동력을 소비할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주인은 일단 충분한 재력을 갖게 되면 이 성가신 일의 명예를 감독자에게 넘겨준다. 감독노동의 문제는 모든 생산양식에 공통된다. 인종적인 열등성원리는 타인의 노동을 조직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주식회사의 경우 관리자들(CEO와 중간관리자)은 점차 소유자들을 희생시켜 자신들만의 이익을 도모하게 됐다. 맑스는 온갖 새 형태의 사기의 가능성을 분명히 보고 있었고, 이 사기는 나중에 자산관리 자본주의라고 불리게 된다.
우리 시대에 기업의 소유자와 경영자 사이의 갈등은 경제적으로 물론 사회적,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자본주의는 사실상 남의 돈에 의한 제도라는 생각. 소유와 경영의 구별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관행이 되어 있는 경영자에 대한 스톡옵션도 이 문제를 전혀 은폐할 수 없다. 자본을 위한 봉사의 대가로 지불되는 감독임금의 진화가 생산에 참여하는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 수탈을 은폐한다는 그의 본질적인 관점은 중요하다.
제3권 제24장: 이자 낳은 자본의 형태를 통한 자본관계의 외화
이자 낳은 자본에서 자본관계는 가장 표피적이고 물신적인 형태에 도달한다. 물신성(신용화폐)이 자본의 운동법칙을 장악한 다음 가공의 형태-자본의 축적의 운동법칙을 신비화하고 왜곡하며 궁극적으로 훼손해나가는-로 넘어가기 시작하는 부분에 해당한다. 자본은 이자(자신의 증가분)의 신비로운(스스로를 창출하는) 원천으로 나타난다. 이자낳은 자본에서는 자동화된 물신성(스스로를 증식하는 가치이자 화폐를 낳은 화폐)이 순수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이런 형태 속에서 자신의 발생흔적을 깨끗하게 지워버린다. 사회적 관계는 물적 존재(화폐)의 자신에 대한 관계로 완성된다.
이것도 다시 더 왜곡된다. 즉 이자는 이윤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이제 여기에서 거꾸로 이자가 자본의 고유한 열매(본원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이윤은 기업가수익형태로 전화하여 재생산과정에서 얻어지는 단순한 부속물(부가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자본의 물신적 형태와 자본물신성에대한 개념(표상)이 완성된다. 이 신비화된 형태는 속류경제학자들에게는 뜻밖에 얻어진 횡재가 되는데 왜 그 형태가 부의 원천 즉 가치창출의 원천과는 분리되어 자립적인 현존재로서 자본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이 자신의 재생산과 관련하여 불합리하게 행동하는 물신적 형태의 왜곡에 어느 정도 현혹될까?
이 문제는 [자본]전체에 걸쳐 다루어지고 있다. 노동일 부분인데 경쟁이 노동일 연장하여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단축하고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뒷일은 알게 뭐야라는 정책으로부터 자본가들을 구원한 것은 노동일을 규제하는 국가개입이었다.
맑스는 복리로 지구 끝까지 불어날 것이라는 이 어리석은 생각이 자본축적과정은 이윤(잉여가치) 가운데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부분(이윤 가운데 새 잉여노동의 흡수를 위해서 사용되는 부분)이 이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데서 비롯한다도 지적한다
또 다른 현실 재생산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기존의 자본의 대부분은 많든 적든 끊임없이 가치절하를 겪게 되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사회적 노동생산성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제3권 제25장 신용과 가공자본
공황 촉발에서 신용역할을 검토함에 있어서 맑스는 산업순환 그 자체의 존재를 미리 전제하고 있으며 공황을 촉진하는 또는첨예화하는 데 있어서의 신용역할만을 인정하고 있다. 맑스의 공황이론에 내포된 신용의 제한적 성격은 자본집중과 잠재적 화페자본의 과잉 사이의 모순ㅇ로부터 공황발생의 특수 국면을 도출했다. 최소자본규모의 상승과 자본의 집중.집적의 진행 때문에 약간의 개별자본들은 산업자본으로 기능할 수 없게 되어 잠재적 화폐자본ㅇ르 유통과정에 머물게 되는데, 이것이 신용의 화폐적 원천을 형성한다. 이 신용은 자본집중과 잠재적 화폐자본 과잉 사이의 모순에 의하여 확대될 뿐만 아니라 이 모순을 더욱 심화시켜 공황을 폭발을 야기시킨다. 결국 산업자본의 최고 규모 상승이 신용을 발달시킨다는 논리 위해서 공황이론이 전개되고 있다.
신용제도가 공황의 형성에 추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황 이전의 국면에서의 잠재적 화폐자본의 거대한 성장인데 이것이 과잉생산과 과잉투기의 주요한 지렛대로 기능한다는 점이고, 다음으로는 이자율의 상승은 공황원인이 아니라 재생산과정의 혼란의 전조라는 점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생산과소비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상품의 판매와 구매 사이에 공백이 발생한다. 자본유통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중단되는 것을 이어주는 것이 이자 낳은 자본의 역할이다. 이들 유통이 중단되는 것은 화폐가 유통에서 아직 회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출-수입 경우. 항해가 무사히 이루어지기만 하면 화폐는 비록 시차는 있겠지만 나중에 회수될 것이다. 회수될 전망에 화폐의 지불을 약속하는 서류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이들 자본유통이 중단된 동안 화폐를 대신한다. 이것이 신용이며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대개 어음이라고 한다. 구매자는 판매자에게 어음을 발행해 주고 판매자는 이 어음을 마치 화폐처럼 사용하여 자본유통을 시작한다.
상업신용-어음. 외상구매자가 판매가에게 내주는 채무증서. 갑→을:50만원 상품 외상판매/을→갑에게 현금 대신 일정 기간 후 이자를 가산-예 55만원-지불하겠다는 어음/ 갑은 을에게50만원 돈을 대부하고 5만원 이자 받은 것과 같다. 자본가들간의 상품거래와 자본회전을 촉진.
어음은 연쇄 거래-자본주의생산 위험초래. 가수요유발-상품과 자본의 과잉생산. 상품형태에만 해당- 상품거래에만 출현할 수 있다. 임금지불이나 장기적 투자에는 제약.
은행신용은 은행가가 화폐자본가를 대신하여 산업자본가나 상업자본가에게 이자를 받을 목적으로 화폐를 대부. 중장기적으로 사용 특히 자기자본규모를 넘어서 생산 확장하는 경우 매우 유용. 은행신용-은행권, 상업신용에서 발행한 어음 할인, 담보권 설정 등을 통한 대부
현실자본이 축적을 하면서 생산이 순조롭게 확대되면 신용도 함께 확대되지만 현실자본이 이윤율저하로 생산한계에 부딪히면 신용도 금방 함께 축소된다. 이 신용한계를 돌파하는 것이 은행이다. 은행은 시중의 화폐를 끌어모아 이것을 재원으로 어음을 곧바로 화폐로 바꾸어 준다. 대개 어음할인 방식으로 어음의 액면 금액에서 일정한 이자를 공제한 다음 화폐를 대부하는 것이다. 은행에서 대부되는 이 화폐가 본격적인 의미의 이자를 낳은 자본이다. 어음을 화폐 교환 가능성-가상의 세계인데..가공자본
약속은 약속을 만들어내기에 가상의 세계는 무한히 확장-대표적 수법이 재할인: 이미 한 번 할인에 사용된 어음을 담보로 다시 대부를 해준다. 기술적 뻥튀기-2008년 미 주택채권(레버리지) 더 많은 대부목적—이자가 목적이기에→ 대부시장 팽창시켜 공급을 늘려 이자율↓. 신용은 자본주의 생산 한계를 돌파하여 그것이 계속 팽창하도록 한다. ~생산은 인구로 결정되는 사회적 소비능력에 의해 제한. 생산 계속확대는 한계-산업자본은 판매되지 않은 상품재고-어음지불에 쫓김. 신용이 만들어 낸 가상세계는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구조.
판매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음을 발행하기 위해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는 시장에서 가짜 수요를 만든다. 신용은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를 그 극한으로까지 밀어올린다. 불일치의 폭발이 공황이다. 공황이 금융시장에서 발발하는 이유이다.
상품유통에서 발생하고 상품생산자 상호간에 서로 맺는 대차관계를 상업신용이라 한다. 그것은 모든 신용제도의 기초를 이룬다. 상업신용은 본래 재생산과정에 종사하는 산업자본가가 서로간에 맺은 신용을 기초로 자본의 상품형태에서 화폐형태로의 전화를 촉진시킨다. 이에 의해 유통과정에 추가해야 하는 자본은 절감되고 또한 현금이면 바로 판매할 수 없는 것을 신용이면 바로 판매할 수 잇고 이리하여 M′-C′의 신속한 완료가 초래되어 생산과정의 더 빠른 계속적 확대다 촉진된다. 가치증식과정은 이렇게 해서 개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상업신용에 의해 확대된다. 재생산과정이 상업신용에 의해 연쇄적으로 맺어지게 되면 유통자본의 절약과 생산과정의 확대는 한층 더 크게 된다. 그러므로 자본생산의 발전과 함께 상업신용은 확대해 가며 또한 역으로 상업신용의 확대는 자본제생산의 확대를 촉진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은행발전은 이러한 사적 신용결합을 은행을 매개로 한 결합으로 바꾸며 이른바 사회적인 것으로 확대시켜 간다. 상업신용은 여기에서 은행신용으로 전화하고 신용은 그와 함께 새 기능을 가지게 된다.
은행은 한편으로 은행은 사회적으로 유휴자금을 예금을 통해서 흡수하고(현실적으로 자본가의 소비자금이나 노동자.농민의 소득의 일부도 흡수),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대부하여 자금의 사회적 융통관계를 전개시킨다. 은행신용은 이와 같이 유휴화폐자본을 사회적 기능자본으로 전화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재생산과정은 그만큼 사회적으로 확대된 규모를 전개할 수 있게 된다. 은행은 예금과 대부와의 이자 차액의 이익금을 자기 자본의 이윤으로 획득한다. 은행자본의 이윤이다. 은행이윤도 평균이윤율에 의해 규제된 것이다.
맑스는 자신의 분석을 상업신용과 은행신용에 국한했는데 이 두 신용이 자본주의 생산양식 일반의 특성을 밝히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상품거래가 증가하면서 신용제도는 확대되고 일반화되며 완성된다. 판매와 지불사이의 시간적 격차가 일반화되면 화폐는 점차 계산화폐로 사용된다. 따라서 지불약속도 유통되며 맑스는 이런 모든 것들을 통틀어 어음으로 묶는다. 이들 어음 가운데 많은 부분은 대차관계를 통해서 서로 상쇄되기 때문에 금속이나 정부화폐가 전혀 개입하지 않고도 이들은 화폐로 가능하다.
어음의 일부를 낳기도 하고 또 어음의 급격하고 위험한 팽창을 조장하기도 하고 화폐과잉과 낮은 이자율 혹은 할인율 등을 억제하는 이외에, 어음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은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전체 어음가운데 실제 거래에(실제 구매와 판매에)근거하는 어음이 얼마이며, 그리고 한 부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져서(가공)융통어음으로만 사용되는지, 즉 만기일 전에 유통시킬 목적으로 발행하는 어음이 얼마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화폐가 과잉되고 흔할 시기에 어음의 발행은 그 극에 달한다.
맑스에 의하면 어음 할인은 산업자본가에게 추가자본을 제공하지 않으며 그것은 그의 자본의하나의 화폐형태(곧 어음)를 다른 화폐형태(현금)로 전환시키는 것에 불과한데, 이 전환은 만기된 채무의 지불을 위해서 또는 그의 재생산과정의 원활한 유지를 위해서 필요하게 된다.
은행가들은 화폐자본의 일반적 관리자가 된다. 이 화페자본이 앞서 말한 자본가계급의 공동자본니다. 은행은 한편으로는 화폐자본(대부자)의 집중을 나타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차입자의 집중을 나타낸다. 은행의 이윤은 일반적으로 은행이 대부하는 것보다 더 낮은 이자로 차입하는 것에서 만들어진다. 은행은 사실상 대부자와 차입자 사이에 자신이 만든 신용도를 끼워 넣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 은행권을 발행하기도 한다. 은행권은 어음과 비슷하다. 은행권 발행하는 은행은 국가신용을 업고 있어 어느 정도 법정지불수단으로 되어 있다.
제3권 제26장 화폐자본의 축적
화폐를 획득하고 하는 소망 다음으로 절박한 소망은 이 화폐를 다시 풀어서 어떤 종류의 투자를 함으로서 이자나 이윤을 벌어들이고자 하는 소망이다. [자본]전체에 걸쳐 몇 곳에서 과잉자본처분 문제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진다. 국채가 그러하듯 환영받은 배수구로 간주되며, 또한 대규모 사업( 대규모 공공사업, 물리적 인프라, 도시화 프로젝트 등)도 과잉자본을 흡수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이런 생각은 부의 축적이 부채의 축적과 병행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