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승가의 탄생
부처님이 숫도다나왕을 문병하여 설법한지 이레 만에 왕은 평화롭게 임종했다.
바로 그 해에 부처님의 양모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 번이나 부처님을 찾아뵙고 자신을 포함한 사꺄족 여인들도 출가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세 번이나 간청했으나, 당신은 끝내 그 이유는 밝히지 않은 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까삘라성을 떠나 웨살리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얼마 후(부처님 성도 후 6년, 부처님 나이 41살) 의지가 매우 굳은 여인이었던 마하빠자빠띠는 뜻을 굽히지 않고 스스로 머리를 깎고 황색 가사를 입은 다음, 뜻을 같이 하는 사꺄족 여인들을 이끌고 까삘라성을 떠나 웨살리성까지 550여 km를 걷는 먼 여로에 오른다. 천신만고 끝에 마하빠자빠띠와 사꺄족 여인들은 웨살리성에 도착했다. 그때 부처님은 웨살리성 교외에 있는 마하와나(Mahāvana大林)의 꾸따가라살라(Kūtagārasālā重閣講堂)에 머물고 있었다. 웨살리에 당도한 여인들의 몰골은 처참하였다. 과거의 아름답고 기품 있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비단같이 곱던 손발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으며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된 몸에서는 악취까지 풍겨 나온다. 한없이 초라한 행색으로 부처님이 머무는 사원에 도착한 마하빠자빠띠는 방 앞에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아난다 존자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깜짝 놀라서 묻는다.
“고따미시여! 어인 일입니까? 어떻게 그 먼 길을 걸어오셨습니까? 어째서 이런 모습으로 여기 계십니까?”
“아난다 존자시여! 부처님께서 여인들의 출가를 허락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집을 떠나 왔습니다. 우리 사꺄족 여인들은 출가를 허락해 줄 때 까지 여기서 기다리기로 했답니다.” 마하빠자빠띠는 울먹이며 대답한다.
“고따미여! 제가 다시 한 번 부처님께 여쭈어 보겠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곧 부처님에게 그 같은 사실을 알리고 여인들의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간청을 드렸으나, 역시 허락하지 않는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아난다가 세 번이나 간청했으나 부처님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그러자 아난다는 화제를 바꾸어 다시 묻는다. “세존이시여, 만약 여인이 이 가르침을 따라 출가하여 수행한다면 남자와 같이 수행의 효과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아난다야, 물론 그럴 수 있다.”
<부처님의 생애, 조계종출판사 p247~249 참조>
이 대답을 듣고 용기를 얻은 아난다는 다시 마하빠자빠띠가 부처님께 바친 은혜를 말하고 꼭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몇 번이고 간청을 한다. 부처님은 마침내 여성의 출가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여덟 가지 조건이 따른다고 하였다. 이것을 팔경법(八敬法 비구니가 받들어야 할 여덟 가지 조항)이라한다. 그중 세 가지만 들어본다.
첫째, 출가하여 백년의 경력을 가진 비구니(比丘尼)일지라도 바로 그날 자격을 얻은 비구(比丘)에 대해서는 먼저 합장하고 존경을 표해야 한다.
둘째, 비구니는 비구가 없는 장소에서 안거(安居)를 해서는 안 된다.
셋째, 비구니는 한 달에 두 번씩 비구 승단으로부터 계율의 반성(포살布薩)과 설법을 들어야 한다.
아난다는 마하빠자빠띠에게로 가서 만약 이 여덟 가지 조항을 받아들인다면 여성의 출가가 허락되리라는 뜻을 전하니, 그녀는 “젊은이가 머리를 감고 아름다운 꽃을 장식하는 것을 좋아하듯이, 나는 이 여덟 가지 조항을 한평생 소중하게 지켜가겠습니다”라고 답한다. 팔경법(八敬法)을 받아들임으로써 마하빠자빠띠는 최초의 비구니가 된다. 마침내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계를 받음으로써, 이 세상에 비구니 승가가 출현하게 되었다.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오래지 않아 아라한의 깨달음을 이루었으며, 사꺄족 출신 비구니들도 열심히 수행을 하여 모두 아라한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부처님이 여인의 출가를 망설인 이유는 무엇이며, 왜 비구니에게 팔경법을 지키라고 했을까?
그 이유는 여인의 출가를 처음부터 승낙할 경우 당시 브라만들의 극심한 비난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기에 그들의 반응을 타진해 보기 위함이었다. 잠롱 통프라스트의 견해에 따르면, 부처님이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았던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첫째, 부처님이 여성을 제자로 삼기를 좋아하는 걸 보니, 아라한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추측하는 브라만들이 있을 수 있다.
둘째, 여성은 나쁜 남자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수가 없다. 이런 경우에 비구들은 여성출가자의 안전을 지켜 줘야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셋째, 비구니들이 신변안정상 비구들의 보호를 받으려면 같은 공간에 사는 것이 필요하다. 젊은 여자가 수행한다고 숲속이나 외진 곳에 떨어져있을 때 어떻게 안심하겠는가? 오늘날 인도의 치안상태를 보라. 더군다나 2500여 년 전 인도는 남녀불평등이 극심한 노예제 사회였으니, 어찌 여성 출가가 허용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불교가 번영하는 것을 질투하던 브라만들은 남녀수행자를 어떻게 한 공간 안에 살게 하느냐면서 부처님을 비난할 것이다.
넷째, 여성의 출가를 용인한다는 것은 브라만중심의 사회 제도를 부정하고 뒤엎어버리는 일이 된다. 이런 이유로 부처님은 여인의 출가를 마음에 두지만,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린다. 브라만중심사회에서 수행할 기회가 없었던 여성들이 점차 불교로 들어올 것이다. 이것은 브라만제도를 흔들 것이니, 이에 자극받은 브라만들이 부처님의 교화활동을 방해할 수도 있었다. 부처님은 먼저 브라만들의 반응을 알고 싶었다. 마하빠자빠띠가 출가를 요청했다는 소문이 당시에 널리 퍼져 있었는데, 여기에 대한 브라만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아마도 당시 브라만계급은 마가다국과 꼬살라 국왕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는 부처님의 카리스마가 너무 강렬하여 감히 공공연하게 반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절 인연이 다가오자 부처님은 사꺄족 여성 일행의 출가를 허가하기로 결심한다.
한편 대부분의 불교학자들은 비구니의 승가에 들어오는 조건으로 제시한 ‘여덟 가지 조항’ 즉, 팔경법(八敬法 Attha-garudhammā)은 상당히 후세에 정리된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부처님이 여성을 차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시 브라만사회의 극심한 반발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태국의 불교학자 잠롱 통프라스트(Jamlong Thongprasert)가 말했다. “부처님이 여성의 출가를 허용한 것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나 문화적 여건에서 볼 때 거의 혁명적인 사건에 가까운 것이었다. 인도의 사회구조와 반여성적 풍토는 여성에 대해 아주 냉소적이었으며, 특히 종교행위를 가장 신성한 것으로 간주하는 인도문화에서 여성이 출가하여 성직자가 된다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었고 파문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여성의 몸 그대로는 성불(成佛)할 수 없다는 ‘여성불성불론(女性不成佛論)’, 여자의 몸으로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다는 ‘여인오장설(女人五障說)’과 여자는 먼저 남자의 몸으로 변했다가 성불하다는 ‘여성변성남자성불론(女性變性男子成佛論)’을 거론하는 일이 생겨난다. 이는 남성문화가 지배적이었던 인도와 중국문화의 영향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모두 붓다의 참뜻이 아님이 거의 확실하다.
[참고]
①팔경법(八敬法)은 본문에서 언급한 세 가지와 아래에 나열된 다섯 가지이다.
넷째, 비구니는 안거가 끝난 뒤 남녀 양쪽의 승단에 대해서 수행이 순결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다섯째, 비구니가 중대한 죄를 범했을 때에는 남녀 양쪽의 승단으로부터 반 달 동안 별거(別居) 취급을 당해야 한다.
여섯째, 비구니의 견습(식차마나 式叉摩那Siksamānā)은 2년 동안 일정한 수행을 거친 다음 남녀 양쪽의 승단으로부터 온전한 비구니가 되는 의식(儀式)을 받아야 한다.
일곱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비구니는 비구를 욕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된다.
여덟째, 비구니는 비구의 허물을 꾸짖을 수 없지만 비구는 비구니의 허물을 꾸짖어도 무방하다.
②법인, “비구니 팔경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불교평론]제18호(서울: 불교평론사, 2004년 봄호), p.97.
잠롱 통프라스트, 이마성 옮김, “정치적 시각에서 본 붓다의 생애”, [불교평론]제7호(서울: 불교평론사, 2001년 여름호), pp.378-379.
③여인오장설(女人五障說): 여자의 몸으로는 전륜성왕, 제석천왕, 대범천왕, 마왕, 부처님이 될 수 없다는 주장.
④인도문화의 여성폄하 전통: <마하바라타>에 의하면 여성은 본질적으로 사악하며, 정신적으로는 오염되어 있다고 본다. 여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주위가 오염된다고 하며, 그런 점에서 여성은 해탈을 방해하는 사악한 마구니다. 여성은 자신을 제어할 수 없으며, 제사에는 부정한 존재들이다. 여성들은 정의롭지 못한 간통에 눈을 반짝이며, 내심으로는 까다롭고 혹독하며, 사려분별이 부족하다. 벌레도 죽이지 못할 것 같은 얼굴을 하면서도 그 배후에는 정욕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으니 여성의 성욕은 만족할 줄 모른다. 등등 여성을 폄하하는 내용으로 넘쳐나고 있다. 여성을 멸시하는 내용은 <마누법전>에 이르면 극에 달한다. “여성을 죽이는 것은 곡물이나 가축을 훔치는 일이나 술 취한 여자를 강간하는 일과 같다. 아주 작은 죄일 뿐이다.” 이외에도 “여성은 항상 독립해서는 안 된다”거나 “여자는 본래 성품이 사악하다” 등으로 폄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