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權奇模의 풍수칼럼(18) - 해맞이 봉덕산과 봉수대 그리고 산불감시초소
새해는 단기 4342년, 불기2553년, 서기2009년, 간지로는 기축년(己丑年) 소띠 해이다.
지난 해 역시 경제가 어려우니 맞물려 있는 정치, 사회, 문화등 전반에 걸쳐 아주 힘든 한 해였는데, 새해 벽두에 바라보는 전망 또한 그리 밝아 보이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과거나 미래 또한 언제나 현재의 연속일 뿐이기에 현재에서 다짐하고 꿈과 희망을 갖는다. 그래서도 지난해의 해넘이와 새해의 해돋이, 해맞이에 대한 분위기는 예년에 비해 들 떠 보이는 것 같다.
우리 예천(읍)에서도 곳곳에 봉덕산 해맞이 행사를 위한 현수막이 나붙었고, 천제를 올리고는 서로 새해 덕담과 음식물을 나누었다.
분명히 예천군청 소재인 예천읍 시내 지역의 주산은 흑응(산)이다. 흑응(산)은 비록 높이는 낮지만 주산이면서도 진산이다. 상식적으로는 진산에서 고천제를 행하거나 해맞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예천읍에서 해돋이를 보며 해맞이 하는 곳을 봉덕산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주산(뒷산,현무)은 북한산, 경복궁의 주산은 북악, 서울의 앞산(주작)은 관악, 근래 북악을 북악산, 관악을 관악산 하더니만 설악도 설악산이라 한다. 예천의 주산은 흑응인데, 흑은 북,뒤,현무요, 응은 뫼,산-매라서 뒷산,큰산,주산(+진산)이다.
그러면 해맞이 봉덕산은 봉은 봉우리,뫼,산이요, 덕은 높은, 크다는 의미겠지만 봉덕은 봉이 크다? 아무래도 "덕봉"이 아니던가!
큰 봉우리 즉, "덕봉"이라 관악산,북악산,설악산 하듯이 덕봉산이 아니겠는가? 한편 1700년대 세워진 서악사에 관련 지어 서암산이라고도 했는데, 근래 사천왕 문에 봉덕산 서악사라고 한 것은 아무래도 불교적인 색체가 강한 느낌이다. 물론 최근 지도에도 봉덕산으로 명기되어 있다. 가부를 떠나 단지 선택의 문제가 되기는 하다.
그리고, 예천에 봉수대(烽燧臺)또는 봉화대(烽火臺)가 있었던 흔적은 서악사 뒤 서암산 봉수대, 감천 포리의 봉수산(할미성 姑城)봉수대, 용궁의 비룡산 봉수대, 풍양 풍신리의 소이산 봉수대, 유천 고림리의 봉수산 봉수대, 지보면 대죽리의 봉수재 봉수대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나라의 봉수는 국경에서 일어나는 변란 또는 내란의 일을 신속히 중앙에 알리는 옛 비상경보통신 수단으로, 밤에는 횃불을 들고 낮에는 연기(夜火晝煙)를 피워 급한 소식을 전달 하였는데, 만약 날씨가 좋지 않아 연기나 불을 사용할 수 없을 때에는 부득이 배치된 봉수군(烽燧軍)을 통하여 말이나 도보로 상황을 전달할 수 밖에 없었다.
봉수의 신호방법으로는 평시에는 한 홰, 적이 나타나면 두 홰, 접전하게 되면 다섯 홰, 매일 전투를 하게 되면 이리 똥이나 토끼 똥을 나무에 섞어 태워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이러한 봉수는 서울 남산 꼭대기에 있던 봉수(일제가 없앤 것을 근래 다시 복구)를 중심으로 전국에 5개 노선이 있었는데, 제일 봉수는 양주 아차산을 거쳐 강원, 함경도에 응하고, 제이 봉수는 광주 천림산을 거쳐 충청, 경상도에 응하고 제삼봉수는 무악산 동봉을 거쳐 황해, 평안도 육로에 응하고, 제사봉수는 무악산 서봉을 거쳐 황해, 평안 해로에 응하고 제오 봉수는 양천 개화산을 거쳐 충청, 전라도의 해포에 응한다.
이러한 봉수대는 직봉이 369개소 지선인 간봉이254개소 로서 도합 623개소가 있었으며 예천의 봉수대는 제2봉수 육로(내지)봉수 였다.
전국 봉수로에는 소이(所伊) 소리(所利, 所里) 소래(所來) 수리(修利) 등의 소(所)자가 들어간 지명이 무척 많다.
우리 예천 풍양 풍신리 봉우재에도 봉수대가 있었던 소이산(所伊山) 이름이 있다. 필자의 의견은 결국「주변을 관광하기 좋은 높은산」즉, 수리(산 꼭대기)가 한자화 하면서 불려진 것으로 본다. 예천의 지명과도 연결된다. 단술 예를 술이나 물로만 해석할 아니라는 얘기다.
안양의 수리산이나 동두천의 소요산까지도 마찬가지 의미이고, 서악사 뒤 서암산 봉수대가 있던 덕봉산도 또한 그 사촌쯤 되며, 하물며 감천 포리의 봉수대가 있던 마고할미가 쌓았다는 조그마한 성(城)인 할미성, 고성(姑城)도 마찬가지 의미로 보인다.
할머니가 쌓았으니 조그마한 성이고, 신성시도 할 수 있으니 신령스런 마고 할미이겠으나, 젊은 사람 다 놔두고 꼬구랑 할머니 혼자 쌓을 일이 무엇인가?
마고나 할미나 높은산(한뫼)이나 다 같이 그냥 뫼(山)일 뿐인 것.
이제 옛 봉수대터엔 빨간 모자 쓴 산불 감사원과 감시초소, 또한 등산인들이 오르내리며 산불과의 전쟁이라도 치르는 듯하다.